영화 에세이

[스크랩] 박대원 감독의 <무문관, 無門關, THE GATELESS GATE, 96 min, 2018>

장코폴로 2018. 5. 4. 14:52

박대원 감독의 <무문관, 無門關, THE GATELESS GATE, 96 min, 2018>

나를 찾아가는 불교 수행법, 무문관

 

TBC 창사 21주년 특집으로 대구, 경북지역에 방송된 휴먼 세미다큐멘터리 무문관(無門關)’은 제50회 휴스턴 국제 영화제(

종교영화부문 대상), 24회 불교언론문화상 대상, 43회 한국방송대상 지역 다큐TV부문 작품상, 20회 일경언론상 대상

을 수상한 작품이다. 제작기간 오 년이 걸린 이 작품은 전국의 불자와 일반인들을 위해 2018년 재 제작된 장편 극장용 영화

로써 다양한 볼거리와 호기심을 끄는 소재들이 많다.



감독은 <무문관>의 연출 방향 설정에서 고민한 흔적이 많이 보인다. 다큐멘터리 쪽으로 방향을 잡다보면 대중성이 결여될 것 같고, 대중성에 치중하면 작품성 문제가 도출되는 혼돈을 경험했을 것이다. 독창적 소재의 조리법은 대중적 입맛에 담은 휴게소 식단을 만드는 것이다. 내레이션은 홍보용 뉴스 스타일이 되어버렸고, 내용 전달은 모든 관객이 불교에 무지한 것을 가정한 연기 삽입과 인터뷰 등 과장법이 눈에 띄었다.




 

2013년 오월 감포 소재 무문관에서 열 한명의 승려들이 천 일간의 무문관 수행에 들어간다. 무문관은 문이 없는 관문에서 수행함을 지칭한다. 뒷문을 통해 텃밭을 가꾸고 운동도 가능하지만 자물쇠를 채운 두어 평 남짓한 선방에서 밥 구멍 하나만 뚫린 교도소와 같은 공간에서 속세와 단절한 채 천 일 동안 하루 한 끼의 공양으로 무수한 마음의 문을 하나씩 열어가는 묵언정진의 고행은 침묵 저 편에 커다란 울림을 주었다.

 

수행에 들어가는 스님들을 보고 울먹이는 불자들의 모습과 수행을 마치고 나오는 선방에서 나오는 모습은 감동적 장면이었다. 화선지 위에 ’()라고 쓰인 종이 한 장이 걸린 벽과 촛불, 참선이 전부인 방에서 조상의 관문인 로 가는 길은 작은 깨우침 중의 하나일 뿐, 앉은 자세로 열반에 이른 노 선승 이야기는 중생들에게는 ’()는 허무이지만. 선승들에게는 사표(師表)로 여겨진다.




 

<무문관>의 선불교에 대한 철학적 사유는 말과 문자를 떠나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는 진리를 깨닫고, 참선으로 인간의 마음을 직관하여 자신의 본성을 깨달아 부처가 되는 행위의 일면을 보여준다. 영화는 수행자의 마음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기 때문에 육체적, 정신적 한계를 극복해가며 스님들이 수행을 이어가는 삼 년여의 세월의 흐름을 다양한 카메라 기법으로 철에 따라 변화하는 사계절의 모습에 담아낸다.

 

<무문관>에 담긴 사계절 영상은 시처럼 아름답다. 여름날의 장대비, ‘’()와 오버랩 되는 벚꽃, 겨울 산의 바람을 탄 눈, 하늘에서 쏟아지는 별, 부감으로 잡히는 논둑을 건너는 스님, 스스로 만든 녹슨 철조망, 큰 키의 나무 판 울타리, 눈에 덮인 선방의 기와지붕들, 맑게 잡힌 초승달 같은 것들이다. ‘삼년 후에 뵙겠습니다. 운동 잘 하세요!’와 같은 대사는 불교식 무뚝뚝함의 표현으로써 짧지만 깊은 울림을 준다.

 




<무문관>은 우리가 잃어버린 소중한 정신적 가치를 고양한다. 인간 존재에 대한 화두 하나만 들고 외부인의 출입이 통제된 곳에서 문명과 과학을 거부한 채 스스로 병마와 싸우며 무문관에서 보낸 천 일, 일 년간의 후일담을 담은 <무문관>은 죽비, 선문답 등이 낭만으로 여겨질 정도이다. 짧게 삼 개월에서 삼년간 이뤄지는 수행은 용()이 되고 부처가 되는 이 세상에 부존(不存)하는 마른 여덟 개의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무문관>은 투박하다. 세련된 포장술이 부족한 영화이다. 관객들은 염불을 통해 소원을 빌 듯, 영화를 통해 자신이 영화를 정제하면서 보아야한다. 선승들이 땀을 흘리며 토마토를 가꾸듯 관객도 영화 수행을 해야 한다. 까치소리를 듣고자 한다면 영화에 집중해야한다. 무언정진의 선방에서 나온 편지, 문하생의 방문은 긴장감을 유도한다. 계절의 변화, 스님들의 개인적 배경, 개인적 바람 등 해설은 목소리와 자막으로 처리된다.


세상의 모든 시비가 단절된 곳에서 화두의 문을 여는데 주어진 천 일의 시공간에서 펼쳐지는 단조로움을 깨기 위해 독일제 최첨단 알렉사XTS 카메라, 팬텀 고속카메라가 사용되고, 라이트닝 번개기와 살수차도 조연의 역할을 훌륭히 해낸다. 타임랩스 및 미속 촬영도 영상 수사학 구사에 가담한다. 연출은 생동감을 주고 현실감을 살리기 위해 빠른 장면 전환을 선택하고 가급적 컷을 지양하고, 롱 테이크를 주로 사용한다.




 

수행을 마치지 못하고 선방을 떠나는 구도자가 생길 때가 일반영화의 반전에 해당된다. 그 이후의 스님의 생활도 무문관 생활과 다름이 없음을 알고는 관객들은 상황을 수긍하며 존중을 표한다. 수행자들도 어금니를 몇 개씩 잃고, 육체가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다. 흔들리는 대나무처럼 마음이 일렁일지도 모를 일이다. 선지식의 친견 역시 화두를 더욱 부여잡고 화두를 깨는 정진을 요구한다.


현실과 상상의 혼재가 한 계절 변화의 현란한 수사가 반복되는 촬영, 편집은 현장의 음감을 최대한 살리고 인위적인 사운드나 내레이션을 배제, 수행 현장 가까이에 있는 듯한 느낌을 만들어 낸다. 이는 장면들이 끝난 뒤 긴 호흡으로써 관객들이 그 장면을 생각하고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을 주기 위한 배려였다. 그 결과 관객들은 영화에 깊게 빠져들었고, 영화가 주는 감동과 메시지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떠오르는 해와 타종소리는 날마다 반복되고, 세 번째 여름으로 진입하면서, 어미 잃은 고라니가 절집에 들어온다. 수행 스님들이 좋은 기도를 하는 모양이다. 여름을 지내고 노루는 떠났다. 무문관 수행을 마치지 못한 스님도 자신의 입장에서 또 다른 수행에 들어가 있는 것이다. 일반 불자도 자기 자리에서 불성을 깨우치면 수행을 하고 있음을 가르쳐주는 대목이다. 불자들은 수행 스님들의 건강을 걱정한다.

 

유난히도 눈이 많이 퍼 보던 겨울이 지나고 봄꽃으로 주위가 화사한 날에 수행해제일을 맞았다. 방 번호가 불려지고 문 열겠습니다.’라는 감동의 말이 들린다. 모두의 환대 속에 수행승들은 선방을 나왔다. 이후에도 석희 스님의 말처럼 끝이 났는데도……. 나라는 것이 왜 이렇게 나를 힘들게 만드는 지를…….’을 모르겠다는 것이 선승들의 입장이다. 참으로 묘한 것이 불교 수행법이고, 신기한 것이 스님들의 용기이다.

 




무문관 수행 후 두 명의 스님에게 암이 찾아 왔다. 월정사 지장암 기린선원에서 동안거 장면, 부산 해운정사에서 조계종 종정 진제스님과의 선문답, 통도사의 극락암과 서운암에서 무문혜개 스님(전무송)의 재현을 통한 사찰 기행은 의미 있는 사찰기행이었다. 자신의 완성과 중생구제를 위한 무문관 수행은 도 다른 신청자가 대기하고 있다. 그 스님들이 있어 우리는 아직 살만한 세상에 살고 있는 듯하다.

 

<무문관>만다라의 소설가 김성동이 구성을 다듬고, 사 년 동안의 기록을 편집하고 후반작업을 거쳐 극장용 와이드스크린에 최적화된 색깔을 입혀 완성한 작품이다. 방대한 분량의 압축한 작품은 곱씹으면 의미가 되살아나는 독특한 작품이다. 다시 無門關’(무문관)란 붓글씨가 쓰여짐은 이 수행이 여전히 수행자들의 관심을 끄는 수행법이며 수 천 년을 이어 왔음을 입증한다. <무문관>은 동시대의 차별화되는 영화였다.




 

                                        장석용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역임)  


                                                                    한국문학신문 2018.05.02 

출처 :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글쓴이 : 장석용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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