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왕의 남자를 삼켜버린 괴물 가족을 탄생시키다
보리밭을 흔든 바람이 스쳐간 가을의 정원들, 2006년 우리 영화는 다양한 모습으로 진화를 계속했다. 110편 제작에 108편이 개봉되었고 극영화 97편 중 신인감독 작품이 46편이었다. 한국영화 개봉작들의 평균 총제작비는 40.2억 원이로 집계되었다.
영화는 상상을 배가한다. <사이보그지만 괜찮아>, <올드미스 다이어리>가 파격과 현실을 논했다. 디지털 영화 제작이 활성화되고 <묵공>의 안성기 처럼 외국작품의 출연 문의가 활발해졌다. 우리영화의 해외판권 교섭도 꾸준히 이루어졌다.
한국영화평론가협회는 2006년 베스트 10으로 김태용 감독의 <가족의 탄생>, 봉준호 감독의 <괴물>, 이준익 감독의 <라디오 스타>, 장률 감독의 <망종>, 유하 감독의 <비열한 거리>, 이준익 감독의 <왕의 남자>, 김대우 감독의 <음란서생>, 이해준, 이해영 공동감독의 ,천하장사 마돈나>, 윤종찬 감독의 <청연>, 최동훈 감독의 <타짜>를 선정했다.
2월 15일 아들 장진원과 동행, 강소성 창조우 국제학교에 입학을 시키기 위해 남경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공항에서 2시간이 걸리는 학교까지 봉고차를 타고 간 기억이 있다. 자식을 위해 씨앗을 뿌리는 것이지, 빛의 갑옷을 입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가끔, 오지여행을 하면서 나는 우리 산천의 아름다움에 놀랐다. 그 선봉에는 동창 서양화가 선종선이 있었다. 함승호 화백, 기악 전공 박혜숙, 김효은, 가정과의 김선자, 김성자, 강양숙, 이순영, 기획의 달인 우상봉, ROTC 출신의 이승재, 이윤영이 강팀을 만들었다.
북한에서 만든 7편을 포함 총 78편의 영화를 남긴 신상옥 감독이 4월 11일 80세로 타계했다. 변인식 전회장과 나는 서울대 병원으로 문상을 갔다. 신감독 논문을 준비하느라 5여년이 걸린 아픈 추억이 걸려있었다. 생전에 나눈 짧은 만남들이 회상되었다.
홍상수 감독의 <해변의 여인>은 고현정의 출연으로 관심을 끌었고, 김기덕의 <시간>은 성현아, 하정우를 통해 시간의 성찰을 엿보게 하는 영화이다. 안판석 감독의 <국경의 남쪽>은 남북관계의 일면을 엿보게 하는 영화였다.
국새 장인 세불 민홍규도 가끔 만났다. 5월 17일부터 23일까지 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린 이청운 화백의 전시회의 기획을 맡았고 개회 사회도 했다. 안경환 서울법대 교수는 늘 다정한 형이였다. 국가인권회위원장이 된 그는 늘 이화백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한양대 이숙재 교수의 밀물무용단 공연과 M극장 공연으로 분주해졌다.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의 고향인 홍천에서 벌어지는 최승희 춤축제 준비로 바빠졌다. 이후 홍천 문화예술회관을 주 무대로 춤 공연이 이루어졌다. ‘달집’은 이때 공연되었다.
대구와 대전의 춤 공연 관람으로 노는 무대가 넓어졌다. 6월 13일 월드컵 토고전에서 2대 1로 승리하는 날이었다. 7월 3일 강우석 감독의 <한반도>가 서울극장에서 시사회를 했고, 7월 14일 ‘내 이름은 김삼순’의 촬영감독 이영관의 부친이 사망했다. 제자의 아버지 보다는 가까운 형으로서 친교를 나누던 사이였다.
7월 18일 <괴물>의 시사회가 서울극장에서 개최되었다.11월 3일 내 무용 작품 ‘솔거’가 경산문화회관에서 공연되었다. 외화 <브로크백 마운틴>과 <야연>은 외화의 흐름을 읽게 해주는 영화였고, 설경구의 <사랑을 놓치다>, <열혈남아>는 관객의 심리를 파악하게 한다.
임권택의 <천년학>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달콤, 살벌한 연인>의 손재곤 감독이 존재의 의미를 부각시켰다. 동성애 하드코어 영화 <후회하지 않아>가 독립영화의 힘을 실어 주었다. 2006년 손익분기점에 해당되는 130만 명 이상의 관객이 관람한 영화는 22편이며 한국영화의 해외수출 규모는 전년대비 68%가 감소한 2천451만 달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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