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서울국제무용제가 남긴 수작 한 편
갈대가 우는 사연을 감지하듯 시간의 흐름을 통해 자신을 성찰해 나아가는 모던 댄스, 2011년 10월 7일(금) 8시, 7일(토) 5시 서강대 메리 홀에서 강혜련(康蕙漣 경기대 체육학부 무용전공 교수)의 신작 『시간이 나간다』는 바람의 전설, 흐름의 서사를 강한 임팩트를 동반한 잔잔한 몸짓에 담아 강렬한 인상을 남긴 작품이었다.
투명한 도시적 감각으로 담은 이 작품은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이 시사한 물, 바람, 시간 속에 걸쳐 있는 세월의 나이테를 투명한 기억들로만 채우고 싶은 안무가의 소박함이 담겨져 있다. 포그 속, 세븐 댄서, 가벼운 벨소리를 따라 일상의 몸짓처럼 보이는 몸 풀기를 시작한다. 조명은 아직 바닥으로 돌고 벽면에 차가운 재질의 줄이 드리워져 있다.
서울국제무용제(Sidans) 초청작인 이 작품은 인생의 무상함과 차가운 도시에서 갈구되는 정(情)의 내러티브를 현대 춤 틀에 담아 발광(發光)한다. 백색 줄들은 현실에 대한 애착, 혼돈, 좌절, 희망을 상징하는 상황을 나타내는 조명을 조화롭게 받아들인다. 칠인일무(七人壹舞)가 만들어가는 공간분할과 빛의 공급은 공자의 예를 찾아가는 과정과 흡사하다.
폭풍우가 걷힌 것 같다. 회색 구름을 쓰러가 버렸다.(The storm seems to be over, The grey clouds had been swept away.) 긴 스펙트럼 속에 안무가 강혜련은 그녀가 느끼는 ‘시간’은 긴장이 수반된 희로애락이 분초(分秒)되어 있었을 것이다. 작품 속에 홀로 나아가는 여인은 강혜련의 분신이다. 내 앞의 벽을 두고 숱한 조합이 이루어진다.
하이키 조명으로 불협화음을 투여하면서 생기는 고차원의 환상을 보여주는 달인의 경지의 테크니션들은 현존성을 가진다. 안무가는 촉각적 장점을 업고 기하학적 구성을 만들어내며 , 표현미를 살리는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이 이미지들은 미묘하고 강한 느낌으로 전달된다. 누워서 서서히 하늘을 향하는 동작, 그 느림에도 사운드는 상승한다.
몸은 공간에서 확장되고 움직임으로써 공간이 구성의 한 요소가 된다. 모던 테크닉, 몸의 볼륨과 질감은 아직 낮은 곳을 향해있다. 누운 자세에서의 터닝, 뒤로 눕거나 다리 흔들기와 회전, 벽면 중앙으로 들어오는 붉은 빛, 서서히 일어서며 손들에 맞추어지는 조명, 명상과 물구나무, 기어들어옴, 장면분할과 부분조명, 신서사이즈 사운드들은 강박감을 조장한다.
춤의 방향, 댄서 배합의 비례, 춤의 크기 잡기, 터치와 접합의 묘미, 밸런스 감각 등에 있어서『시간이 나간다』는 춤 텍스트의 충실한 일면을 보여준다. 춤 볼륨은 중심축을 향해 형성되고 쉼 없이 디테일이 가미된다. 기도와 수양으로 비춰지는 장면에 따라오는 강박 사운드, 모든 것은 순리에 따르고, 조명 서서히 무대 전체를 비추면 사운드는 소멸된다.
피아노음이 전후관계의 균형감을 찾아가면 세 여인의 춤이 추어지고 이윽고 남녀 커플 춤이 된다. 현대의 특질을 살린 블랙 판타지,『시간이 나간다』는 안무가 강혜련이 구상한 공간위로 빛이 쏟아지고 원시 음이 깃털처럼 흘러내리도록 짜여 있다. 현대의 아이러니를 품은 채 여인은 자신의 길을 간다. 춤은 서서히 경쾌해진다.
절제된 동작, 테크닉의 농축, 자극적 사운드가 현대성을 살려나가면서 뜨는 화두(話頭) 블루, 조명은 블루에 접어들고 있다. 활기찬 현대 몸짓의 오인무, 벽면엔 쏟아 내리는 듯한 분수, 희망을 탑재한 그들, 도형들도 춤을 추고, 증기기관의 차가운 소리에 반응하며 모던 댄스의 특질을 도도하게 드러낸다. 야외가 트여 보여 지고, 남녀 세 커플, 시계추가 된다.
『시간이 나간다』의 사운드는 반복적으로 강(强)으로 가고, 발작에 이르는 떨림, 황금으로 변한 분위기, 음악 급 스톱하면 스톱모션, 화면이 춤춘다. 움직이는 그림자, 창에 있던 여인이 이동한다. 전위적인 매력을 갖춘 춤, 골든 라인은 이동한다. 젊음의 힘을 느끼게 하는 춤은 나르는 물고기처럼 튀어 오르고, 공처럼 구르고, 예술이 되는 매력을 소지하고 있다.
깔끔한 조명 블루로 바뀌고 여인 등장하면 벌레처럼 구르는 6인, 여인 구도의 길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떨어지는 풍선들, 핸드벨 소리, 풍선을 바라보고 집는 여인, 풍선은 다양한 색깔로 변하고, 음악 분위기 고조시키고 풍선 사이를 통과하는 여인, 세월을 관통하여 빛을 찾아 나선다. ‘나는 살아있다. 활기차게 살아가야한다.’를 춤의 개념에 집어넣는다.
안무가 강혜련의 『시간이 나간다』는 상상을 극대화함으로써 현대의 우울을 희망으로 치환하고 다양한 시대색을 띠고 있다. 그녀가 보여준 상징과 은유는 생의 약동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녀가 자연을 부드럽게 보다듬으며 시련을 극복해 나아가겠다는 의지의 춤 수사학은 시간의 묵중한 눈 떨림을 바람의 힘으로 치유해내는 듯한 마법이 들어있는 것 같다.
<장석용 문화비평가/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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