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에 담긴 우주, 희망으로 다가오는 두레박
고경희 안무의 『우물,井』
2011년 4월 23일 오후 6시 30분, 아르코 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공연된 2011년 한국무용제전 참가작 고경희 안무의 『우물, 井』은 희망을 상징하는 푸른 우물이다.
일상의 소중함을 간직하고, 고전적 소재에 깊은 탐구심을 갖고 창작화에 몰두해온 그녀가 무거운 업보를 소멸해내는 기와를 소품으로 삼아 벌이는 작업은 또 다른 색다름이다.
한국창작무용으로 시대와 공간이 혼재되어있는 고경희의 우물은 아날로그적 추억과 낭만이 스며든 공간이자, 현존의 모습이며, 청정 우물을 갈구하는 미래가 담겨져 있는 공간이다.
고경희는 우물의 운동성과 사물의 미묘한 움직임, 긴 호흡과 의미심기로 기와가 상징하는 제의적 의미와 절대자에 대한 순종의 모습을 느린 동작으로 디테일하게 그려내고 있다.
고경희의 우물은 생명을 잉태하는 여인의 근원이자 작은 우주의 축소지향으로 묘사된다. 작품 『우물,井』은 신선함과 율동감이 생명처럼 상존해있는 소통의 도구로서 차용된다.
생명의 윤회 속에 우물의 상징과 기호의 약화는 처음부터 기와를 들고 등장하는 여인의 모습에서 보여 진다. 이 여인은 성물(聖物)을 다루듯 하며 탑돌이를 진행한다.
실핏줄처럼 엉켜있는 인간사에 있어서 우물은 보혈과 같은 생명의 건양(建樣)이다. 젖샘 같은 우물의 실존과 부재는 생명의 유지와 사멸과 직결되는 비유이다.
다양한 아이콘의 우물은 또한 상실과 아픔이 살아있는 우리의 잃어버린 삶의 또 다른 공간이기도 하다. 이 작품에서 두레박은 우물을 퍼 올리는 희망의 상징으로 나타난다.
무대의 사각에 기와들이 쌓여있고, 태초의 생명체와 인간들을 나타내는 임효진, 김유진, 이상희, 김나정의 기와 들기는 겸손과 경외의 마음으로 그 가운데 우물을 대하는 모습니다.
우물의 양과 흐름을 나타내는 춤의 완급조절이 이루어지고, 고민스럽고 어지러운 부분들은 물의 함의에 따라 격정과 순해(順解)의 리듬과 율동의 순환 고리를 갖는다.
그녀는 현재의 우물, 상상 속 그녀의 마음속에서라도 우물을 길어 올리고자 한다. 고경희의 사유는 생명의 근원에서 출발한다. 생명체들은 음의 동작으로 움직이다가 양의 기운을 받으면서 몸짓이 커지고 활동이 빨라진다.
자신들을 존재케 하는 근원이 물이라는 것을 느낀 그들은 그 신비로운 힘에 이끌려 우물로 향한다. 생각하면 할수록 머리는 하늘을 향하고 다리는 땅에 지지하게 되어, 어느 순간 그들은 인간으로 환태된다. 우물을 탐색하던 그들은 변해버린 현재의 우물을 보고 좌절한다.
모든 것을 지켜본 물의 여인 '수련' (睡蓮, 고경희)은 이들을 위로하며 춤을 춘다. 그리고 그들에게 두레박을 내려주거나 자신이 두레박이 된다. 여인들이 수련 혹은 두레박으로 모여들기 시작한다.
그들은 열심히 두레박을 우물 안으로 내려 보내고 끌어 올린다. 우물 밖으로 두레박이 올라오자 맑고 푸른 물이 흘러넘치기 시작한다. 끝없이 흘러나오는 푸른 물을 바라보는 인간들은 희망의 춤을 춘다. 푸른 우물을 보며 태초의 자신을 기억한다.
그들은 차분하게 겸허한 자세로 하늘을 바라보며 경배한다. 수련은 이 모든 것을 다스리고 평정하며 마지막 기와위에 발을 올려놓음으로써『우물,井』은 엄숙한 제의를 마무리 한다.고경희의 새로운 발상의 창작품 『우물,井』은 의미 있는 춤 제전의 일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