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떠오르는 안무가전
치자나무 향 짙은 호흡으로 한없는 즐거움을 안겨주는 열정적 춤 공연이 시작되었다. 긴 겨울을 털어내는 의식은 황사와 같이 왔지만 삼월 중순의 M극장에서 가동된 역동적 춤판은 꿈길의 애정에서 진한 우정과 사랑의 전조들을 띄우고 세련된 몸 언어로 우직한 춤 애정을 보여준다. 이들의 춤 속에는 파도소리가 들리고 아쿠아 마린의 물빛 바다가 항존 한다.
2011년 떠오르는 안무가전의 긴 여정은 ‘2007 떠오르는 안무가전’(31∼2월 4일·M 극장)에서 출발한다. 3월 19일 출항하여 5월 22일까지 거의 매주 토요일, 일요일 춤 전용 M극장의 포이동 춤판을 달굴 36인 안무가들의 작품이 기대된다. '춤과 의식전' '신진안무가NEXT'로 이어질 작품들을 통해 연도별 작품비교와 테마별 작품 분석의 기회가 제공된다.
5년으로 다가오는 탄생년 속에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많은 작품들이 ‘젊은 예술창작품’으로 헌정되었고, 안무가들은 많은 수상과 국제교류를 경험했다. M 사단의 일군의 스타들은 이미 주류 춤의 한 축을 점유하고 있다. M극장 춤은 매너리즘에 빠진 기성 춤들에 대해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춤 창작 일꾼들에게는 경쟁이라는 중독성을 주입했다.
진정한 의미의 트라움 탄츠 호흐슐레(Traumtanzhochschule) 무용전용극장 M은 창작, 실험, 도전과 변혁을 주도하는 동학군(動學群)들의 본거지이다. 탁월한 기량과 도발적 상상력으로 신 남성춤시대를 열어가는 신묘년의 떠오르는 안무가들은 이우재, 이인수, 정석순, 박정한으로 시원을 삼는다. 그들의 춤 결정체는 통찰력과 미래에 대한 예지력에서 파생했다.
무사(舞士)들은 함성과 땀, 희생과 인내라는 낭만적 서사를 쓰기는 사치이다. 이제 그들은 기다리지 않고 직접 나서기로 작정한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춤 투사가 되어버린 것이다. 온통 몸을 던져 스스로 춤의 제물이 되고자 하는 이들 결사대 앞에 첫 번째 제물들이 놓여진다. 통 큰 남성들의 기운이 느껴지고, 기대를 뛰어넘는 잔치가 벌어진다.
이우재의 <한량의 오후>(The Odd Gentry in the Afternoon),이인수의 <현대식 감정>(Modern Feeling>,정석순의 <포유 3.0>(For You 3.0>, 박정한의 ,<충청도라 그런가벼~>(It might be from Chungcheongdo~>가 대상이 되었던 제물이다.
춤에 취해 춤을 추는, 꿈꾸기 위해 춤을 추는, 춤을 위해 춤을 추는 이우재는 신기(神技)에 가까운 춤 재능으로 해학적 ‘목신의 오후’를 정리, 명쾌한 춤 해석으로 깔끔한 <한량의 오후>를 보여주었다. 현대 춤에 더 익숙한 그가 고전을 플레임밍하면서 구운몽의 콘셉트와 유사한 일면을 소지한 이 작품은 제목이 주제이다. 고심한 흔적이 도처에 발견되는 그의 작품은 황혜수라는 여성 춤꾼을 발굴, 디테일한 가시적 연기를 선보이면서 완벽한 호흡을 보여주고 있다. ‘이화청춘’, ‘뽕따러 가세’, ‘목신의 오후’에 걸친 꿈, 술, 흥에 기반한 춤은 우리 춤의 해학이 갖는 예술성과 상업성의 가치를 다시 읽게 해준다.
서부 아파치 사회에선 침묵도 대화의 일종이다. 경상도 사람들의 무뚝뚝함도 맥락을 같이한다. 경박함과 무례의 차원을 잠재우는 침묵의 힘은 무엇일까? 차가운 응시로 보이던 무관심 같은 ‘섬’을 양파껍질 벗기듯 벗겨나가면 애정의 즙으로 흠뻑 고인 정이 싹튼다. 버디 댄스(남성 이인무 춤)의 두 주인공 인인수, 류진욱은 ‘스침’과 ‘통섭’의 고리 속에 필살기 같은 고난도의 현대 춤으로 차원 높은 춤 언어를 보여주었다. 절대 집중을 요구하는 춤 속에서 피할 수 없는 세기 하나하나로 짜여진 완벽한 구성으로 짜여진 <현대식 감정>은 몸말을 찾아가는 구도자의 길을 처연하게 보여준 작품이다.
정석순의 <For You 3.0>은 이전의 그가 춘 춤들의 버전 업, ‘그대들을 위해 춤을 추고 있지만 우리들도 춤으로 행복합니다.’ ‘그대들도 즐거웠습니까?’라는 춤의 묵시록을 연기해 내고 있다. 젊은이들의 현대 춤에, 극적 희극성을 가미,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한 이 춤은 소극장 무대가 꽉 들어찰 정도의 무게감과 남성 춤만이 가질 수 있는 폭발적 힘을 보여준다. 미국 현대 춤의 한 경향을 한국식으로 해석, 그 대안과 비전을 제시, 특이함으로 우월되는 작품이다. 스토리와 테크닉이 조화를 이룬 무사(舞思)의 전형은 극좌표의 각도를 현실극복을 향해 넓혀나간다. 헤드셋을 벗어던지고 보리밭을 힘차게 걸어 나올 듯 한 무사(舞士)의 모습 이면에 익살스런 마지막 등짝 몸 글 <For You>가 각인된다. 이 작품은 지속적 변이로 진화를 거듭할 것이며 뜨거운 관심 속에 잊지 못할 레퍼토리로 자리 잡을 것이다.
박정한의 <충청도라 그런가벼~>는 제목의 코믹성에 맞는 의외성과 우직함, 그리고 항변이 들어있다. 세련됨과 현대성에 익숙해온 관객들에게 LP판의 낡은 디스크 음처럼 아날로그식 춤 전개는 경악에 이른다. 클래식 음은 고사하고 개그와 같은 ‘거북아저씨’들이 등장한다. 부조리한 삶의 조건, 장애물을 헤치고 자신의 세계를 개척해나가는 과정은 춤꾼들의 현실과 다르지 않다. 권선징악적 요소가 다분히 가미되어있고, 두 주인공의 코믹한 춤 연기는 최교식의 마임연기로 잔재미가 쏠쏠하다.
2011 떠오른 안무가전 A팀이 지펴 논 불씨는 상반기 기획공연은 물론이고 포켓댄스페스티벌까지 이어질 것이다. 다양한 장르와 새로운 경향의 춤들을 살펴보는 이번 기회는 새로운 실험정신으로 전기를 맞는 M극장과 자유영혼을 가진 춤 작가들이 춤 언어를 개발하고 우리의 춤 사상에 커다란 도움이 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장석용 문화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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