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선생,춤 바람 나다

『엘레나 엘레나, ELENA ELENA』

장코폴로 2011. 4. 30. 08:37

(장석용/문화비평가)
강낙현 연출, 정재연 안무의 엘레나... 해부



『엘레나 엘레나, ELENA ELENA』

의미 있는 키노 테아터의 한국적 전형

 

  

 벚꽃향이 하늘을 찌르던 지난 4월 16(토),17일(일) 밤, 방배동 ‘두리춤터’ 1층의 새 공간 ‘포이어’(FOYER)는 들뜬 잔칫집처럼 흥겨운 대화들로 가득했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의외성과 즉흥성이 항존 하는 ‘강낙현’ 감독의 작업들은 늘 긴장감과 기대감을 갖게 했다.


 ‘노예처럼 일하고 신처럼 창조한다.’라는 조각가 문신 선생의 말처럼, 매주 황금알을 토해내는 거위처럼 창작하는 강감독의 이번 작품은 스페인 빌바오에서 2004년 촬영된 원작 『ELENA ELENA, 엘레나 엘레나』라는 3부작 30분짜리 흑백 단편 영화에서 기원한다.


 원작 ‘엘레나’에는 두 스페인 배우가 출연했다. 원작과 안무가 있는 서울에서의 『엘레나 엘레나』와의 차이는 필름 느와르라는 장르와 내러티브 전개과정 말고는 유사점이 없으며, 등장인물의 이름과 극 상 포지션 정도가 이번 공연과의 공통점일 뿐이다.

 

『의리적 구토, 1919』와 달리 강 감독은 45분의『엘레나 엘레나』에서 영상을 주인공으로 쓰고, 영상 속으로 공연을 포진 시키며, 극의 진행을 지휘한다. 원작의 영화적 장르 부분을 각색하고, 영화적 내러티브, 동작과 움직임은 필름 느와르의 상상을 확장시킨다. 


 강 감독의 원작은 설정과 색조가 흑백영화의 형태를 띠며, 상당 부분 두 실존 인물의 단면적 투영을 시네마적 내러티브를 통해 묘사했다. 2011『엘레나 엘레나』는 실화적 다큐를 우회한 일상을 과장된 영화적 환경으로 관객에게 보여주고 있다.

 

 

 일상 대화가 실화와 같은 픽션처럼 보이게 만들고, 독립적 내러티브를 갖는다. 엘레나(정재연)의 환상과 고민은 주변, 벨 보이 명규민, 모텔 주인 이정훈, 라이트 김지음의 도움으로 심사묘사가 돋보이는 극적 효과와 과장으로 내적 희극성을 유발시키며 관객을 즐겁게 만든다.

 

 강낙현 감독의 『엘레나 엘레나』는 극이 있는 영화, 영상이 있는 연극, 음악이 있는 춤 등 복합장르로서 크로스오버의 다양한 경계를 허물고 있다. 피나 바우쉬의 탄츠 테아터(Tanz Theater)가 떠오르는 영상과 몸짓, 음악의 총합은 집체창작의 묘미를 보여준다.

 

 강 감독은 공연예술인 연극, 춤, 음악에다 자연스럽게 영상을 입히고, 몸짓 수사학으로 시를 써내며, 비주얼을 가미시켜 왔다. 영국에서 리서치하고 실험한 방법론들이 한국에서 재생/차용/재현/창작되고, 새로운 형식의 매체는 진화의 표상으로서 각광을 받고 있다.


 강낙현 감독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이런 흐름은 간단명료한 작업으로, 과도한 테크닉 강조를 지양하고 일상의 이야기화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다. 영상 속에 들어온 연극과 현대 춤의 일면은 음의 공명효과 휘날리는 무대에서 방향을 상실할 듯하다.

 

『엘레나 엘레나』는 2011년 4월 30일 영국 게이트쉐드 국제공연예술제(Gateshead  Internationnal Festival Of Theater)에 초청된 작품이다. 강 감독의 작품들은 이미 국제적으로 알려져 있고, 해외의 아티스트들과 언제나 공동 작업이 가능하다.

 

 

 여러 번 공연을 같이 해왔던 국제적 인지도가 있는 예술가들의 협업하고, 인기 고전영화 등장인물을 원용하면서 컨템포러리 댄스와 영상, 음악이 결합된 『엘레나 엘레나』는 연출의 의도대로 환상 ‘범죄물’(Krimi)의 기본 포맷을 보여주었다.


 2011년 봄, 두리춤터, 일층 ‘포이어’(FOYER) 카페, 차를 마시던 사람들은 갑작스럽게 불이 꺼지고, 차량점검용 비상 라이트가 등장하자 어리둥절해 한다. 우리가 일상적 현상으로 생각하고 느끼지 못했던 사이, 카페의  벽엔 ‘ MOTEL' 이란 간판에 불이 투사되어 있었다.   거리의 관찰자로서 등은 살인사건에서 시작된『엘레나 엘레나』의 시종을 같이한다.


 실제상황으로 길거리에서 커피숍으로 들어오는 여인, 트렁크 가방이 들려있다. 재개관되는 모텔의 범죄 서스펜스, 계속되는 의문의 모텔화재 사고 속에 무엇인가에 쫒기는 듯, 비에 젖은 여인 엘레나가 포이어로 찾아온다.


 투숙을 기다리며, 가죽 가방을 들고, 불안한 표정으로 실내를 두리번거리자 여인을 맞는 수상한 벨 보이와 호텔주인 두 남자가 등장한다. 벨 보이의 인도에도 엘레나는 가방을 맡기지 않는다.

 

 수상한 느낌의 분위기와 관객들의 어색한 분위기 사이 옆방의 빈 공간에서는 커튼 넘어 연기가 밀려들어 온다. 옆방으로 이동한 우리는 온통 화염으로 뒤덮인 영상을 접하게 된다. 화재의 현장으로 관객들을 초대하고, 불안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타이틀이 깔린다. 

 

 

 다시 등장한 여인은 트렁크를 열며, 그 안에 들어있는 금괴를 감출 공간을 찾으며 극은 진행되고, 벨보이 와의 금괴 ‘찾고 숨기기’ 시소게임, 끝내 살인 사건이 벌어지고 폴리스 라인이 쳐진다. 다시 손님이 찾아온다. 


 공연의 대부분은 반복적 주요소들과 단순화된 제한된 공간 설정으로 낯선 공연의 어색함이 줄어든다. 연출은 일반적 공간이 연극적 공간으로 변해가는 공간이동(Site Specific) 장르의 이점인 공간적 분위기를 선점하고 친숙한 범죄형 스릴러 이야기의 집중을 유도한다.

 

 관객들은 밀도 높은 대중음악에 몰입되고, 강박적 영화언어들이 서사를 이끈다. 영상 서사구조와 극적 요소는 피/가해자, 사건의 시종으로 단순화 된다. 이야기 전개 방법은 각 등장인물들의 형태적 습관, 이동 동선 내의 타이밍 그리고 시각적 형상 재현이 사용되고 있다.


 영화에서 보여 지는 화재 현장, 누군가 끊임없이 훔쳐보는 구멍안의 눈, 비오는 도시의 어두운 밤 세 가지 요소가 극을 구성하는 전부이고 그 안에서는 불안하고 초조한 여인, 다중적 성격의 벨 보이 그리고 모든 일을 교사하는 듯 한 모텔 주인의 모습이 교차된다.

 

 

 범죄형 스릴러를 극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관객과의 괴리감이 생기지 않고,  원활한 이야기 전개를 위한 즉흥 신(transitional scene)들은 자동차 밖의 풍경과 불안한 분위기에 급하게 챙겨지는 짐의 모습이 극의 속도를 조율한다.


 비현실적 등장인물 사이의 갈등 이해와  갈등 요소 공유 등을 고려한 극 안의 조명으로 라이트(실제로 등을 들고만 있는 배우)가 등장, 극의 내용과 기법에 관계없이 관객들과 캐릭터를 연결해 주는 고리역할을 잘 해 주고 있다.


 강낙현 연출, 정재연 안무의 『엘레나 엘레나, ELENA ELENA』는 지속가능한 한국 공연의 새로운 전통을 이어갈 수 있는 소중한 작품으로, 다양한 시도를 확인하고, 배울 수 있는 교과서 역할과 담론을 도출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