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낙현 연출, 정보경 안무의 <드라이브 스루, Drive Thru>
도시, 현대와 인간을 향한 지성인의 차가운 응시
동식물들이 자유롭게 보금자리로 터를 잡고 즐겼던 대자연, 그곳에서 과거의 지성들은 깨달음을 얻고 오늘에 까지 삼나무적 지성의 가지를 뻗고 있다. 나/강낙현은 누구인가? 일 음절, 가벼운 단어에서 시작한 물음은 촛불의 미학이 되어 밤을 타고 흐른다.
현대의 도시 한 가운데, 텅 빈 공간에서 살육 같은 고독이 찬란한 인공광과 늦은 밤을 즐기고 있다.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명제에서 강 감독의 사유가 시작된다. ‘매혹의 법칙’의 흡인력은 ‘사랑하리라’로 귀착된다. 예술, 친구와 가족이 오브제가 된다.
산책의 자유를 느끼지만 체념 같은 외로움은 성찰을 낳고 도시의 따스함이 스며든다. 누구나 스쳐갈 수 있는 ‘드라이브 쓰루’는 오늘을 힘겹게 살아가는 지성인들의 자유항이다. 구속이 없는 자유항에서 바로 본 ‘칸딘스키적 역발상’은 서광이 비치는 예로(藝路)이다.
방배동에서 현대 퇴계를 본다. 야트막한 산들과 작은 개울, 순박한 사람들을 보며 한없이 정신을 가다듬으며 내공을 쌓았던 퇴계, 서래 마을을 바로 옆에 두고 벌이는 방배동의 퇴계, 강낙현의 타임 아일랜드의 ‘이니스프리’로의 여정에 동참하면 품격 높은 미래가 꽃핀다.
느끼는 자만이 체득할 수 있는 외로운 영혼, 출구/기회를 놓쳐버린 천사들의 시가 음송된다. 읊조리다가 불리워 진다. 때론 연출자가 쓸쓸한 거리 풍경을 낭송된 녹음으로 들려준다. 주체와 객체가 모호해진다. 전작의 이미지들은 늘 고리를 달고 연작에 나타난다.
빨간 양말이 춤을 추고 의자는 내밀한 속살을 드러내고, 칸막이는 숨바꼭질을 하고, 춤꾼들은 의자와 춤추고, 소통하고, 다양한 박자를 마중한다. 때론 삼보일배가 고개를 내밀기도 하고, 발가 벗겨진 무대위에 그림자놀이가 불쑥 등장하기도 한다.
영상·춤·음악의 3무사가 연합군을 이뤄 치명적 외로움을 토해내고 있을 때, 모든 것은 흐름으로 공통분모를 만들고, 판토마임이 이는 서사의 숲, ‘감각’의 뚝길 저 편에 현대는 강물처럼 흘러가고, 도시는 고즈넉하게 화사한 거울 속 3월의 희망으로 살아있다.
<드라이브 스루> 연작은 작년 10월 말 부터 발아, 성탄절 전야의 추운 밤을 거쳐 대나무 씨의 연대기를 통과의례처럼 거쳐 왔다. 3개월의 집중 실험을 거친 이 팀은 한국에서 정월을 고하고 스페인 빌바오, 베베카 아리아가 극장 초청 공연으로 유럽을 다녀왔다.
별밤을 거쳐 밤의 3무사의 동화를 써온 주인공들은 영국 청년시대를 예술창작으로 채웠던 강낙현, 한국창작무용계에 혜성처럼 나타난 정보경, 음유시인 이다 그란도스 리이다. 강낙현은 런던필름스쿨에서 영상학, 센트럴 세인트마틴에서 시각 디자인과 공연예술학을 전공했다.
런던과 뉴욕 뒷골목의 지성인, 페루의 어느 선술집에 허름하게 차려입은 시인, 지중해의 우편 배달부, ‘두리춤터’의 강낙현은 같은 맥락의 보헤미안적 지성의 아픔을 공유하고 있다. 그는 일상의 소중함을 곁에 끼고, 운명같은 지성의 고민을 자신의 즐거움으로 삼는다.
강 감독은 아방가르드, 전위와 실험, 인디 영상의 장점을 간파한 조던 벨슨, 존 휘트니, 제임스 시라이트, 백남준, 스코트 버틀릿의 전위영상 전통에 피나 바우쉬적 드라마 투르기인 탄츠 테아터를 접목, 융복합 시네마(interdisciplinary cinem)를 탄생시키고 있다.
몽환의 호숫가를 거니는 듯한 경쾌한 모습들로 영상, 무용, 음악이 한데 어우러졌다가 각각 흩어지지만 결국은 하나일 수밖에 없는 운명의 굴레를 소지한다. 이 실험을 하는 동안 각각의 유닛들은 세포분열을 하고 생존에 적합한(보다 가치 높은 예술)로 진화를 거듭한다.
<드라이브 스루>는 나비 유충의 변태, 구도자의 길, 도시 방랑자, 축제, 삶과 죽음과 같은
소재들을 형이상학적 범주에서 대중의 눈높이에 맞추는 겸손의 미덕을 갖추고 있다. 감독이 연기자가 되고, 음악이 춤꾼이 되고, 춤꾼이 연기자가 되는 주인공의 전이는 인상적이다.
특히 강감독은 인위적인 원근법에 지배되지 않고, 삶속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피사체들을 지각의 모험을 통해 포착해내는 탁월한 능력을 소지하고 있다. 소품의 배치, 생활주변의 모습, 일상들을 빠른 포착으로 이미지화해낸다.
뉴미디어 영상미학의 어떤 시각을 점유한 강낙현의 전위적 실험은 진행형이다. 사물의 색, 향, 미를 체험하지 않은 어린이처럼 관객들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작품을 접하게끔 만든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융합으로 고정관념을 깨고, 동영상 이미지와 사진 이미지를 혼합한다.
예술창작력 구사에 있어서 강감독의 혜안을 들여다 보자. 소통, 통섭과 영상 커뮤니케이션으로 작품마다 이미지 컷, 컷 백, 플래쉬 백 등 영화용어 등을 이용하고, 같은 시간대의 춤 동작과 카메라 시점이 일치하고, 공연 중 촬영과 카메라 자체가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관객을 작품에 동참시킴으로서 움직임의 반응을 감지하는가하면, 시를 비롯한 모든 장르의 예술을 <드라이브 스루> 총체댄스에 참여시킨다. 크로스오버로 경계를 허물고 종합장르 춤의 새로운 서막을 연다. 동서양을 한데 묶으며 이질 속의 시메트리(균제감)를 찾아 나선다.
천지 경계는 움직임과 영상의 템포로 결정된다. 매력이 넘치는 춤사위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음악의 긴 흐름은 주제에 밀착시키는 요인 중 하나이다. 슬라이드의 묘미처럼 강낙현의 영상 수사학에서 보여 지는 반복효과는 음악과 더불어 중독성을 띄고 있다.
끈적거리는 비트 음을 타고 오프닝에는 주로 기타가 등장한다. 버전을 달리하면서 무대는 비행기 내부가 되거나 일상의 커피숍이 된다. 등장인물들은 각자의 테이블에서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일상의 풍경들을 연출한다.
신문을 읽던 여자(정보경)의 책상을 두드리는 동작은 주변의 사람들을 동화시키고 모두 이 동작을 따라한다. 난장 같은 동작 속에 펼쳐지는 춤, 소리, 영상은 늘 강렬함으로 빛난다. 포이어의 테라스에서 익어가던 불꽃 영상과 흰 연기를 배경으로 정보경이 마무리 춤을 춘다. 탁월한 예술감각으로 강 감독은 <드라이브 스루> 버전을 업 데이트한다. 2010년,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가 선정하는 영상부문 ‘올해의 주목할 예술가상’ 을 수상한 그가 벌이는 ‘포이어 프로덕션’(FOYER Productions)의 작품들이 어떻게 진화해 나아갈지 기대가 크다.
장석용(댄스 칼럼니스트, 전 강남댄스페스티벌 심사위원)
뷰즈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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