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정조와 다산의 학문적 만남

장코폴로 2010. 8. 9. 09:55


 

 

정조와 다산의 학문적 만남


세상에는 아름다운 일이 많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아름다운 일의 하나는 최고의 통치자가 자기를 보좌해주는 벼슬아치들과 정치·경제·철학·예술에 대한 학문적 토론을 통해 진리에 접근하는 그런 열정의 모습입니다. 요즘 세상에야 천하의 학자들을 초빙하여 통치자가 마음을 열고 학문적 토론을 진지하게 진행한다는 이야기는 듣기 어렵지만, 옛날의 왕조시대에는 그런 일이 허다했습니다. 특히 학문에 밝은 제왕이 왕위에 오르면 ‘경연(經筵)’이라는 제도가 있어, 궁궐에서 임금과 유신(儒臣)들이 모여앉아 경사(經史)에 대한 열띤 토론회가 수시로 열렸습니다. 본뜻을 살려 제대로만 운영한다면 그 이상의 좋은 제도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세종대왕이 집현전의 학자 신하들과 자주 열었던 경연, 정조대왕이 규장각의 초계문신들과 모여앉아 경학과 사학(史學)을 강론하고 토론하던 일은 천추에 아름다운 모습 중의 하나였습니다. 다산은 28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초계문신이 되자 그 다음해인 29세에 수시로 임금이 열었던 경연에 초대되어 39세의 뛰어난 학자 임금과 정말로 깊숙한 학문적 토론을 벌렸습니다. 다산의 「십삼경책(十三經策)」이라는 임금과 신하의 토론문을 보면, 이 두 학자의 학문적 수준이 어떤 경지에까지 이르렀었나를 금방 짐작하게 됩니다. 그 당시의 학계는 ‘성리학’이 주조로서 여타의 새로운 학문이나 학설은 큰 파란을 일으킬 수도 있었건만, 마음을 열고 학자의 주장을 경청하던 정조대왕의 큰 배려 때문에 다산은 천고에 없는 독창적인 학설을 새롭게 주장하였습니다.

13경이란 역경·서경·시경·주례·의례·춘추3전·논어·효경·이아·맹자 등 열세 가지 경으로 유학의 기본경서였습니다. 그러나 정조시대만 해도, 주자학, 즉 성리학이 학문세계를 지배하던 때여서, 주자가 정리한 ‘칠서대전(七書大全)’만이 경(經)으로 행세하고 나머지는 학문 취급도 받지 못하던 때였습니다. 정조대왕 앞에서 다산은 과감하게 주장합니다. “지금의 학자들이 칠서대전(시·서·역·대학·중용·논어·맹자)만 있는 줄 알고 13경에 대한 주석서들이 있는 줄을 모르고 있으니, 이거야말로 학계의 대환(大患)이자 세상의 교화에 미치는 가장 급한 일입니다(徒知有七書大全 不知有十三經注疏…此誠斯文之大患 世敎之急務也)”라고 강력히 주장했습니다.

주자의 경전해석만 경학으로 여기고 다른 학문은 거들떠보지도 않던 당대의 학문에 거대한 거부를 선언한 다산의 주장입니다. 요즘도 그런 아름다운 토론회가 재현된다면 어떨까요. 대통령이 학자를 초빙하여 청와대에서 전통문화의 발양책이나 인문학 부흥책 같은 것을 공개적으로 토론하여 정책의 방향을 시정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교육정책이나 문화정책, 경제정책 등 제대로만 토론되어 합리적인 결론이 도출된다면 이 나라가 선진국으로 가지 않겠는가요.


박석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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