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솔함과 천박함을 돌아본다
금장태(서울대 종교학과 명예교수)
퇴계와 다산은 기질이나 학풍이 상당히 달랐던 것 같다. 퇴계는 행동을 조심하고, 말을 신중히 하는 경건한 ‘수도자형’ 인물이라면, 다산은 무슨 일을 맡아서도 자신감이 넘치고, 무슨 글을 읽으면서도 창의적 생각이 번뜩이는 ‘천재형’ 인물이라 하겠다. 그런데 퇴계를 만나면서 재기발랄한 천재형의 다산이 자신을 돌아보고 깊이 성찰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다산은 퇴계가 이담(靜存齋 李湛)에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을 읽으면서 마음에 깊은 충격을 받았던가 보다.
“나의 기(記)와 시(詩)가 그대에게까지 들렸다 하니 깊이 송구스럽습니다. … 우스개삼아 한 말이라 모두가 꼭 이치에 맞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 경솔한 짓을 한 허물은 이미 후회해도 아무 소용이 없군요.”
퇴계의 반성을 읽고, 다산 또한 반성하다
퇴계는 도산서당(陶山書堂)을 열고 서당의 건물이나 주변 경관에 이름을 붙이고 옛 선현의 글을 끌어들여 초야에서 사는 모습을 기록한 「도산기(陶山記)」를 지었으며, 자신의 유유자적하는 생활 풍경을 시로 읊은 「도산잡영(陶山雜詠)」을 지었다. 퇴계는 이 글을 감추어 두었는데 찾아온 친우에게 우연히 보여주었던 것이 계기가 되어 멀리 이담에게까지 알려진 사실에 자신의 경솔함을 부끄러워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밝혔던 것이다. 다산은 퇴계의 편지에서 이 대목을 읽으면서 자신에게 큰 병통이 있음을 새삼 깨달아 고백하고 있다.
“생각하는 것이 있기만 하면 글을 짓지 않을 수 없고, 글을 지은 것이 있으면 남에게 보이지 않을 수 없었다. 생각이 미치자마자 붓을 잡고 종이를 펼쳐 잠시도 머뭇거리지 않았다. 글을 짓고 나서는 스스로 사랑하고 스스로 기뻐하여 조금이라도 문자를 아는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내 말이 온전한지 치우쳤는지나 그 사람과 친한지 소원한지는 헤아릴 겨를도 없이 급하게 전하고 알리려 했다.”<『陶山私淑錄』>
다산 자신이 얼마나 저술에 열정적이었던 인물인지를 엿볼 수 있다. 생각이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는데 어찌 저술을 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이렇게 저술하는 것이 무슨 병통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는 자신의 독창적 사유와 재치 있는 문장에 스스로 도취되었던 사실도 솔직하게 토로하고 있다. 자신의 글에 도취되는 것이 과오는 아니겠지만, 그것이 허물의 발단이 되는 점을 지적하였다. 그는 자기 글에 스스로 도취되어 그 글을 깊이 다듬어 완성시킬 겨를도 없이 남에게 보이고 알리려는데 급급한 것이 바로 자신의 큰 병통임을 성찰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자신의 저술을 알리려고 애를 쓰고 난 다음에 오는 공허감을 그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
“사람과 한바탕 말하고 나면, 내 몸속이나 책상자 속에 한 가지도 남아 있는 것이 없음을 깨달았다. 그 때문에 정신과 혈기가 다 흩어지고 빠져나가니 온축하고 양육하는 뜻이 전혀 없게 되었다. 이러고서 어찌 정신[性靈]을 배양하고 명성[身名]을 보전할 수 있겠는가. 요사이 차츰 점검해보니, 모두가 ‘경솔함[輕]’과 ‘천박함[淺]’ 두 글자가 빌미가 된 것이다. 이것은 덕을 감추고 수명을 기르는 공부에 크게 해로움이 있을 뿐만 아니라, 비록 언론과 문채가 다 어지럽게 흩날리더라도, 점점 천박하고 비루해져서 남에게 존중을 받지 못하게 된다.”<『陶山私淑錄』>
다 빠져나가버리면, 속이 잘 익을 수 없는지라
학자로서 다산이 남겨준 저술은 우리 사상사에 더할 수 없이 소중한 보물이다. 그러나 그가 퇴계의 편지 한 구절에서 자신의 저술을 남에게 알리는 데 급급하였던 일이 경솔하고 천박한 태도였던 것으로 반성하는 까닭이 무엇일까? 그는 학문이 겉으로 화려하게 드러나는 것보다 안으로 깊이 성숙된 바탕이 있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저술을 그만두고 마음을 닦기만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곧 ‘남에게 보이기 위한 학문[爲人之學]’에 빠져 ‘자신의 인격을 배양하는 학문[爲己之學]’을 결여한다면 그 학문은 경솔함과 천박함에 빠지고 만다는 것을 성찰한 것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논리가 아무리 정교하고 문장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속으로 온축된 인격적 역량이 없으면 잠시 사람들의 이목을 현란하게 해줄 뿐이요 그 마음속에 깊은 감동으로 남아 있을 수 없음을 되새기고 있다.
과일 하나도 겉으로 모양과 빛깔이 아름다워야겠지만 그 속이 잘 익어야 제 맛이 나는 좋은 과일이다. 밖으로 치달리는 창의적 발견도 속으로 푹 익은 인격적 바탕을 요구한다. 새로운 것을 찾아 밖으로 향한 관심이 원심력이라면 끝없이 성찰하며 인격의 힘을 배양하는 안으로 향한 관심이 구심력으로 함께 작용할 때에 천재의 학문도 완성될 수 있다는 말이다. 다산은 퇴계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서, 밖으로 지적 탐험에 몰두했던 자신을 돌아보면서, 안으로 자기 존재의 의미를 다시 점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성찰이 다산의 정신과 사상을 원숙하게 성장하는데 소중한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글쓴이 / 금장태
· 서울대 종교학과 명예교수
· 저서 : 『실천적 이론가 정약용』, 이끌리오, 2005
『한국의 선비와 선비정신 』, 서울대학교출판부, 2000
『한국유학의 탐구』, 서울대학교출판부, 1999
『퇴계의 삶과 철학』, 서울대학교출판부, 1998
『다산정약용』,살림출판, 2005
『다산 실학 탐구』, 소학사,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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