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이 귀해진 시대
요즘 인터넷에 접속했다하면 보게 되는 것이 가수 타블로의 학력논란이다. 스탠포드 대학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4년이 되지 않는 단기간에 석사학위를 받았다는 사실에 대해 의혹이 생겨난 것이다. 그의 '진실을 요구한다'는 카페(사진)를 구경했더니 놀랍게도 회원은 11만명을 넘어섰다. 그의 학력은 물론 캐나다 국적 취득 과정에서의 이중국적 문제까지 샅샅이 파헤치고 있었다. 학력위조나 국적문제, 그에 연계된 병역회피는 이른바 지도층 인사들의 대표적 비리들이기에 더욱 보통사람들의 관심을 촉발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아직 의혹의 진위여부가 공식적으로 검증되거나 당사자인 타블로가 인정한 사실이 없으므로 의심하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이 그에 대한 의혹을 정당화해줄 수는 없을 것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는 지루한 공방이 지속되지 않는 해결책이 빨리 나와야겠구나 싶은 생각은 들었다.
더욱 놀란 것은 이를 계기로 알게 된 그의 음악에 대한 표절 의혹이다. 개인적으로 그의 노래를 좋아했다. 힙합을 좋아하고 미국 유학을 꿈꾸는 고등학생 아들은 그를 롤모델로 여기고 있는 눈치였다. 같이 콘서트도 가고 음반도 사고 책도 샀다. 나도 유난히 귀에 쏙쏙 들어오는 그의 멜로디가 좋아서 같이 좋아하는 뮤지션으로 손을 꼽았다. 그런데 의심의 눈길로 바라본 그의 멜로디들은 대부분 외국 뮤지션들의 멜로디를 그대로 가져왔거나 살짝 바꾼 수준이라는 것이다. 힙합이 기존 음악의 샘플링을 기본으로 한다는 것이야 알고 있었지만 출처를 명확히 밝히지 않는다면 그것은 샘플링이란 이름으로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 더구나 한두 음을 살짝 바꾼 채 거의 똑같은 리듬과 멜로디 편곡을 그대로 가져온 듯한 노래들은 의도를 의심할 만했다. 표절은 저작권자의 고소로 이뤄져야 법정에서 진위가 밝혀지지만 사실 팬들의 귀에서부터 의혹을 받는 순간 음악인으로서의 권위나 진정성 여부는 땅에 떨어지게 되고, 혹은 땅에 떨어져야 마땅하다.
문제는 이미 한국의 대중음악계에서 표절시비는 일류 가수들이 새 음반을 낼 때마다 연례행사처럼 치르는 해프닝 정도로 여겨지고 있고 팬들 역시 이제는 별로 문제 삼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효리가 표절을 시인하고 담당 작곡가를 고소했다고는 하지만 그 때문에 뮤지션으로서의 행보에 지장을 받을 것 같지는 않다. 한국 대중음악계를 대표한다는 이승철이나 지드래곤의 경우도 표절 논란에 전혀 상관없이 여전히 일급 뮤지션으로 활동 중이다. 음악하는 사람으로서 생명같이 여겨야할 창작성에 대해 스스로 금을 내고도 아무런 일이 없는 음악계의 창작자나 수용자 모두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다시 인터넷을 열면 또 피해갈 수 없는 주제어가 눈에 들어온다. 새로 임명된 고위 공직자들의 '위장전입' 문제다. 명백히 주민등록법 위반으로 3년 이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내야할 실정법 위반이다. 몇 년 전에는 위장전입 하나만으로도 국무총리들의 임명이 철회되곤 하던 시절도 있었으니 고위 공직자로서는 분명 중죄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한두 번도 아니고 한두 명도 아니고 위장전입 전력은 기본쯤으로 달고 있는 게 요즘의 고위 공직자들이다. 청문회에서는 아예 위장전입쯤은 논란으로 여겨지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공직자의 생명은 정직과 법을 지키는 정신인데 이것 역시 우습게 버려진다. 죄가 죄로 여겨지지 않는 시대, 아이들이 혹시 보고 배울까 두려울 뿐이다.
이윤정 문화칼럼니스트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요한(John Alderman Linton)박사의 강연 (0) | 2010.11.16 |
---|---|
경솔함과 천박함을 돌아본다 (0) | 2010.11.12 |
정조와 다산의 학문적 만남 (0) | 2010.08.09 |
언론은 임금의 잘못을 공격해야 (0) | 2010.08.09 |
청문하민(淸問下民) (0) | 2010.07.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