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지방자치선거가 끝나고도 많은 시간이 지났습니다. 여당이 참패하자 청와대는 인사개편을 단행하고 개각을 통해 집권세력의 새 면모를 보이겠다더니, 개각은 아직 단행도 못했습니다. 겨우 청와대 인사 조직이 바뀌고 면면도 교체해 새로운 진용으로 일을 한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제발 국사(國事)가 제대로 되고 국민이 편하고 자유와 인권이 보장되는 그런 세상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해마지 않습니다.
인선이 끝나서 제3기 청와대 비서진이 새롭게 출범하면서 자유로운 토론과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수시로 건의하고 토론하여 제대로 소통하는 청와대가 되어야 한다는 최고 통치자의 분부가 있었다는 보도도 나왔습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요. 그동안 그렇게 하지 않아 지도자와 국민과는 물론이고 청와대 내부에서 조차 제대로 소통하지 못했음을 시정하는 것 같아 약간은 마음이 놓이기도 했습니다.
최고 통치자와 일반백성과의 참다운 소통을 정말로 강조하던 시대는 바로 요순(堯舜)시대였습니다. 그렇게 위엄이 높고 절대 권력의 황제가 일반백성들과 격의 없이 소통을 하던 장면이 요순시대의 정치철학이 담긴 『서경(書經)』에 자세하게 나와 있습니다. “황제께서 힘없는 일반백성들에게 허심탄회한 마음으로 물었다(皇帝淸問下民)” (서경·여형편)라는 대목이 바로 그런 내용입니다. 최고 지도자가 청문(淸問), 즉 마음을 텅텅 비우고 겸허하게 상대방의 답변을 수용하겠다는 진정한 자세로 묻는 질문이 바로 ‘청문’이라는 의미라고 경전은 해석하고 있습니다. 형식적으로, 마지못해서, 격식을 갖추려는 뜻으로만, ‘질문을 하시오’, ‘건의사항을 말하시오’, ‘대책을 말해보시오’라고 해서는 마음에서 울어나는 질문이나 답변은 나오지 않고, 훌륭한 대책도 건의되지 않는다는 것을 『서경』은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때의 황제는 순임금입니다.
다산의 글을 읽어보면 ‘청문’이라는 단어가 가끔 등장합니다. 희대의 개혁군주이자 백성들의 참뜻을 알아내 정치를 하려했던 정조 대왕이 신하들에게 참다운 질문인 ‘청문’을 했다는 기록입니다. 허심탄회한 마음으로 받아드려 옳고 그름을 판단할 테니, 어떤 구애도 받지 말고 자신의 뜻대로 답변해달라고 신하들에게 요구하였다는 다산의 기록이 있습니다. 다산의 「십삼경책(十三經策)」이라는 논문의 맨 첫머리에 정조께서 ‘청문’하시니 진솔하게 답변을 할 수 밖에 없다고 다산은 말했습니다.
청와대가 진심으로 소통을 원한다면 우선 ‘청문’의 본뜻이 구현되어야 합니다. 진실을 파악하려는 진정성이 우선되어야만 묻고 답하면서 올바른 대책이 세워지리라고 기대해 봅니다.
박석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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