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언론은 임금의 잘못을 공격해야

장코폴로 2010. 8. 9. 09:33

언론은 임금의 잘못을 공격해야


역사를 잊고 살아가는 민족에게는 희망이 없습니다. 역사를 기억하며 치란흥망(治亂興亡)의 옛일을 거울삼아 잘 다스려졌고 흥성하던 때는 본받고, 난리가 났고 망했던 때는 다시 못 오도록 경계를 해야 합니다. 본받고 경계할 일을 알려주고 그렇도록 이끌어줌이 언론이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언로가 막히면 난리가 나고 나라가 망했던 것이 역사적 진실입니다. 언론기관에서 일하는 사람을 예전에는 언관(言官)이라 했고, 요즘은 언론인이라고 합니다. 언관이 아니면 언론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으나, 때로는 벼슬아치라면 누구나 상소를 통해 언론활동을 할 수도 있고, 벼슬아치가 아닌 초야의 일반 선비도 상소를 통해 강력하게 임금을 공격할 수도 있었습니다. 진정으로 언로를 열어주던 시대에는 그랬습니다.

전통시대에는 목숨을 걸고 임금을 공격하던 언론인이 많았습니다. 고려때의 우탁(禹倬), 조선시대의 조헌(趙憲)·최익현(崔益鉉)같은 의인 언론인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나라에 항의했습니다. 이른바 ‘지부복궐상소’(持斧伏闕上疏)로 유명한 분들인데, 임금이나 정부가 국민의 소리에 귀를 막고 민심에 거역하는 정치를 할 때, 의분심이 강하던 그런 학자관인들은 도끼를 차고 대궐문 앞에 엎드려 강력한 상소를 올렸습니다. 정부정책에 반대하는 상소문을 올리고 상소내용대로 시정해주지 않으려면, 도끼로 자신의 목을 베어달라는 무서운 언론활동이었습니다.

전제군주시대에도 참다운 벼슬아치들이 상소를 할 때마다 빠뜨리지 않던 주장의 하나는 바로 ‘광개언로’(廣開言路), 즉 언로를 넓게 열라고 주장했습니다. 요즘 같으면 언론의 자유를 무한대로 보장하라는 뜻입니다. 언로가 막히면 반드시 나라는 망했던 것이 역사의 거울입니다. 그래서 다산도 언관으로서 해야 할 일의 원칙을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언론인의 지위에 있다면 반드시 날마다 격언(格言)과 당론(?論)을 올려 위로는 임금의 잘못을 공격하고 아래로는 백성들의 숨겨진 고통을 세상에 알려지도록 해야 한다.”(在言地 須日進格言?論 上攻袞闕 下達民隱 : 示學淵家誡)라고 주장했습니다. 임금의 잘못을 공격하지 않는 언론이야 참다운 의미의 언론이 아님을 이런데서 알 수 있습니다.

도끼를 차고 상소는 못하더라도 기본이라도 지켜야 하는 것이 언론인의 임무가 아닐까요. 요즘의 몇몇 신문이나 방송은 임금의 잘못을 공격하는 일은 고사하고 사건의 진실에도 눈감으려 하는 경우가 많은데 답답한 일입니다. 전제군주시대에도 그랬거늘, 21세기 이 개명한 시대에 언론이 정부의 홍보에나 열을 올린다면 말이나 되는가요. 역사가 용서 할까요.


박석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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