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환 (고려대 언론학부 교수)
미국의 보수적인 NGO인 ‘프리덤 하우스’(Freedom House)는 2009년 보고서에서 세계적으로 4년 째 잇달아 자유가 후퇴하고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194개 나라 가운데 자유국가 수는 89개국으로 변함이 없었지만 비 자유국가 수는 47개 국가로 전년에 비해 다섯 나라가 늘었다. 아시아 지역에서는 대체로 자유가 늘어난 반면에 구 소련 국가와 아프리카, 중동 및 중남미 지역 국가에서는 자유가 위축되었다. 자유의 진보가 곧 역사라고 믿는 사가(史家)가 많은데 세계적으로 자유가 후퇴하고 있다니 큰일이다.
‘프리덤 하우스’는 자유 가운데서도 언론의 자유에 많은 관심을 쏟는다. 언론의 자유야말로 모든 자유의 총화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해 높은 관심을 쏟는 것은 지당하다. ‘프리덤 하우스’는 법과 제도가 보도 내용에 끼치는 영향, 정치적 압력과 통제, 경제적 압력, 언론의 실질적인 피해 사례 등을 신문과 방송으로 나누어 점수를 매긴 뒤 이를 합산해 총점이 100점 만점에 30점 이하이면 자유국가, 31점 이상 60점 미만이면 부분 자유국가, 61점 이상이면 비 자유국가로 분류한다.
우리나라 ‘언론자유지수’는 추락 중
우리나라 언론자유는 어느 그룹에 속할까? ‘프리덤 하우스’의 보고서를 보면 우리나라는 2009년에 법적 환경 분야에서 9점, 정치적 환경 분야에서 12점, 경제적 환경 분야에서 9점을 받아 총점 30점으로 자유국가로 분류되었다. 그야말로 아슬아슬하게 자유국가군에 턱걸이 한 셈이다. 지식인 가운데서는 우리나라만큼 언론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도 없을 것이라고 말하는 이가 적지 않은데, ‘프리덤 하우스’의 평가를 알고 나면 아직도 우리가 독재시대의 잣대로 자유를 재고 있다는 걸 실감할 것이다.
현장에서 발로 뛰는 기자들의 모임인 ‘국경 없는 기자회’(Reporters Without Borders)의 평가는 ‘프리덤 하우스’의 보고와는 달리 우리나라 언론 상황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다. 우리 언론자유지수는 2006년에 168개국 가운데 31위까지 올라갔지만, 2008년에는 173개국 가운데 47위로 떨어졌으며, 2009년에는 175개국 가운데 69위로 전년에 비해 무려 22위나 추락했다. 언론의 자유가 우리에 비해 형편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 대만이 59위를 차지했으니까, 근자에 들어 우리의 언론자유가 어느 지경에 처해 있는지 돌아보게 한다.
‘국경 없는 기자회’는 이 지수를 매길 때 주로 기자에 대한 외압을 중시한다. 그래서 기자 살해, 체포 및 투옥, 협박 및 고문 등 언론인에 대한 직접적인 가해 행위를 주목한다. 그밖에도 검열, 압수, 수색, 압력, 규제 등 미디어에 관한 사항 등이 지수 산정의 주요 변수가 된다. 이런 사실을 감안하면 우리나라의 언론자유지수가 과장되었을 개연성 역시 부정하기 어렵다.
권력이 제도적으로 관여하고, 권력에 줄 서는 현실인지라
우리나라는 권력이 언론의 미디어운영에 직접 간접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제도화하고 있다. 국영매체는 물론이려니와 국영이라고 하기 어려운 매체에 대해서도 인사권을 행사한다. 언론을 지원하는 외곽단체 역시 마찬가지다. 매체나 단체의 장도 그렇지만 운영을 책임지는 이사진도 정부나 정당이 추천한다. 그래서 대통령선거 때가 되면 부지기수의 언론인이 캠프에 줄을 선다. 이런 사실까지 감안한다면 언론자유지수는 더욱 뒤쳐질 것이다.
이런 제도는 또 다른 부작용을 낳는다. 언론환경을 감시할 일차적 책임을 지는 학계를 권력의 주변부로 전락하게 한다.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운 언론이 좋은 언론이라는데 우리나라는 권력이 다수의 언론사는 물론 학계까지 권력의 휘하에 거느리고 있으니 이런 상황에서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언론을 바라는 것은 하나의 헛된 꿈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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