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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태 망태 부리붕태
1960년대 끝자락, 전라도 고흥에서 나고 자란 소설가 전성태는 『성태 망태 부리붕태』에서 어제 쓴 일기처럼 꾸밈없고 선명하게 유년의 기억을 그립니다. 그 따스하고도 빛나는 추억이 여러분께 행복한 웃음을 드립니다.
무엇으로 삶을 사는가 |
사람이 한 생을 사는 것은, 아니 세상을 살아내는 힘은 아마 ‘사랑’에 있을 것이다. 사랑하는 대상이 있거나, 다른 이로부터 사랑 받거나 사랑 받는다고 느낄 때 삶의 무게는 가벼워지고 살아갈 에너지를 얻게 된다. 사랑을 주고받음으로써 우리네 부족한 인생은 비로소 그 의미를 촘촘히 채워가게 된다. 톨스토이가 의문형의 소설 제목으로 제시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에서 강조한 것이 바로 사랑이다. 과거부터 오늘날까지 우리 대중가요에 가장 자주 등장했던 단어도 단연 ‘사랑’일 것이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말만큼 스펙트럼이 넓어서 천 갈래 만 갈래의 모양새를 가진 것도 없고, 사랑만큼 ‘눈물의 씨앗’이 되는 것도 찾기 어렵다. 사람의 존재를 위무하는 추상적인 단어 중 으뜸인 이 ‘사랑’을 구성하는 요소에는 추억이나 향수 같은 지나간 시간들에 대한 애틋한, 다소는 미화된 기억들이 포함된다. 『성태 망태 부리붕태』의 저자 전성태에 따르면, 향수란 “시간이 가져다 준 마음”이란다. 칠정(七情)의 감정들이 흩어지거나 뭉쳐서 그리움의 자리로 옮겨 앉은, 이미 화학반응을 끝내고 전혀 다른 성질이 돼버린 마음이 바로 향수라고 멋지게 풀어쓴다. 이 책은 월간지 <좋은생각> 을 발행하는 동명의 출판사 사이트에 ‘주운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글을 중심으로 묶어낸 작가의 첫 산문집이다. 수십 편의 글이 처음부터 일정한 연계를 염두에 두고 씌어졌다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추억과 향수가 밴 여러 체험을 입체감 넘치는 3D 영상처럼 또렷하게 추억의 두레박으로 길어 올린 이야기들이다. ‘주운 이야기’는 “작가란 모름지기 세상 이야기를 주워 얻을 뿐 새로 짓는 건 아닐지도 모른다”는 작가의 창작관에서 비롯된다. 소설은 순전히 작가의 머릿속에서 지어진다기보다는 이미 세상에 있는 이야기를 작가가 글의 수레에 담아 옮기는 행위라는 것, 작가의 경험을 벗어난 이야기는 존재하기 어렵고 설득력을 갖기도 어렵다는 말로 해석된다. 그렇게 보면 세상의 많은 소설들이 대부분 작가의 삶과 겹치는 이유의 일단이 해명된다. |
‹좋은생각›이란 잡지 역시 주목거리 중 하나이다. 이 잡지는 1990년대 초반에 창간되어 한때 150만 부까지 발행된 적이 있는 ‘한국 출판 역사의 불가사의’ 중 하나이다. 여느 출판 선진국들과 달리 우리나라의 잡지시장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가운데, 넓은 정기구독자 층의 지지기반을 바탕으로 평범한 사람들이 독자와 투고자로 나서 만들어낸 돌출된 풍경이기 때문이다. 보편적이면서도 감동을 주는 보통 사람의 이야기를 매달 수천 편의 독자 투고에서 골라 명사들의 수필과 함께 싣고 있는데, 인터넷 등의 영향으로 잡지문화가 퇴색한 자리를 채워주고 있는 보기 드문 사례라 하겠다. |
소설이 된 산문 |
이 책에는 1960년대 끝자락에 전라도 고흥에서 나고 자란 작가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비롯해, 작가로 입문한 이후 국내외에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가 가득하다. 근대화가 더디게 진행된 시골에서의 가족사와 성장기, 염전과 강원도 산골에 묻혀 사는 사람들, 몽골에서 만난 이들과 같이, 세월의 풍파에 퇴적된 인생들의 이야기는 공감으로 머리를 끄덕이게 된다. 위대하고 군림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자기 존재를 끊임없이 숙이며 살다 갔거나 살고 있는 이들에 대한 따스한 시선과 애정이야말로 이 책의 미덕이요 정신을 이룬다. 바로 어제 쓴 일기 같은 꾸미지 않은 선명한 기억들은 유년의 영상들을 일깨워준다. 어릴 적 바지에 똥 싼 이야기, 초등학교 때 문인이던 호랑이 선생님이 써준 시로 백일장에서 상을 받았다는 천기누설부터, 다른 집으로 흑백 텔레비전을 보러 다니는 시골의 정경, 젯밥 얻어먹기, 동굴파기 등의 추억이 정겹다. 해학적인 시선이 끊이지 않는 문장에서는 설핏 웃음이 배어나오다가도 사람사는 쓸쓸한 풍경을 담아낸다. 그 한 편마다의 글이 모두 단편소설 같은 옴니버스 산문집이 이 책의 구성이다. 이것은 산문집의 속성에 연유한 것일 터이다. 시인이 쓰면 시집 같은 글이, 소설가가 쓰면 소설 같은 산문집이 된다. 근래 넘쳐나는 정치가들의 자서전이 필연적으로 정치적인 경계를 넘지 못하고, 연예인이나 성공한 이들이 쓴 수많은 에세이집들이 또한 글쓴이의 ‘삶의 국적’을 넘지 못하는 것과 닮았다. 그런데 제목치고는 상당히 특이한 이 책의 제목에 얽힌 연유가 재미나다. 작가가 어릴 적 고향 마을에 살던 할아버지가 붙여준 호칭이란다. 그이는 사시사철 갈퀴를 만들면서 아이들과도 친하게 지내던 사람 좋은 할아버지였다고 한다. 이름이 ‘성태’인 작가에게는 ‘성태, 망태, 부리붕태, 내리영태’라 부르고, 작가의 친동생인 ‘성갑’에게는 ‘성갑, 망갑, 부리붕갑, 내리영갑’이라 부른다. 말하자면 구나 행의 첫머리에 규칙적으로 같은 운의 글자를 다는 두운(頭韻) 방식에 아이들 이름의 끝 글자를 덧붙인 말놀이 같은 친근한 호칭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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