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선생,춤 바람 나다

고경희,박진미 공동 안무의 '타래'

장코폴로 2010. 1. 12. 08:09

제 목   고경희,박진미 공동 안무의 '타래'
작성자    장석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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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경희, 박진미 공동 안무의 『타래』

                          얽히고설킨 세상을 보듬는 지혜


 2009년12월 6일(일) 7시 대구문화예술회관 대극장에서 대구무용단 정기공연작 고경희(대구무용단 회장) 안무의『타래』가 공연되었다. 춤꾼들은 많지만 춤 작업이 미진한 대구 지역에서 젊은 춤꾼들은 의기투합, 1991년 대구무용단을 창단하고 ‘춤으로 여는 세상’을 주창하며 해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이라는 물음을 전제로 다양한 춤들을 공연해 왔다.

『타래』는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들의 이기와 갈등, 이념과 체제부정, 혼돈과 원망으로 ‘뒤엉킨 삶의 매듭을 풀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명제에서 출발한다. 그 근본은 가족이 아닐까 생각된다. 가족 중에서도 모성을 중심으로 한 ‘매듭풀기’가 가장 즉효성을 지닌다. 고경희는 『눈물의 나무잠』,박진미는 『곰비임미』와 『타울사위』에서 해답을 찾고자 한다.

 인연의 그늘을 ‘타래’로 삼고 춤은 진행된다. 이 작품은 1장 몽환, 2장 타래지기, 3장 오색울움, 4장 치유의 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지, 어머니의 가슴, 여인의 마음은 세상의 타래를 푸는 열쇠이다. 현실과 미래의 타래는 피안의 안식을 원하고 있다. 『타래』의 특징적 춤 형식은 현대창작무의 기본인 전통적 호흡에다 역동적 현대 춤사위를 구사하고 있다.

 고경희, 박진미 두 안무가 모두 가부장적 현실 속에서의 여인의 삶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그것에 기인한 여성성은 긴장감을 유발하고 삶을 윤택하게 하는 순응자의 ‘타래’를 착안한다. 그러므로 파괴적 도피가 아닌 현실적 휴식과 낭만적 서사를 떠올리게 된다. 숨가쁘게 살아온 춤 인생의 경사로에서 생각해 낼 수 있는 것은 일상의 판타지이다.

 고경희는 살풀이춤, 승무, 태평무 북춤 등으로 춤의 기본을 생각해내는 춤 작가 이다. 그녀는 고전적 춤사위에서 창작 무용까지의 스펙트럼을 쉬임 없이 오가며 춤 철학에 접근하고 있다. 그녀의 무정(舞丁) 블루스는 기하학적 공간을 창조하고, 시간적 배경은 범위가 넓고, 공간적 배경 역시 상상의 무한대를 추구하고 있다.

 대구, 창원 등 영남을 중심으로 활동해온 춤꾼 박진미는 지역적 특성과 현실에서 겪는 어려움을 춤으로 천착시키면서 여인의 삶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그녀의 현재적 삶은 춤을 통해 ‘타래’의 모습을 닮아 있음이 입증된다. 잿빛 우울과 창백한 현실 사이에서 파스텔 톤의 희망을 찾아가는 박진미의 춤사위는 사랑으로 덧칠된 희망을 희구한다.

 두 안무가의 옴니버스식 춤의 합체는 스토리와 무브먼트가 일체되게 만들고 춤은 작가의 경계를 허문다. 타래, 선, 천 등은 연결을 상징하는 기표로 주로 등장한다. 천벌처럼 달라붙는 타래의 현실을 시인 이상은 반복적 강박으로 여겼고, 까뮈는 도시에서 느끼는 ‘이방인’을 호소한지 오래된다. 타래지기는 ‘마음 다잡기’의 중심이다.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오색울음은 오방색과 혼령이 섞여 비주얼과 사운드의 현란한 도움 속에 카오스적 혼돈을 나타낸다. 우리들의 탐욕과 분노, 번민을 거치는 전투적 춤사위는 클라이막스로 전이된다. 이윽고 정제된 춤은 끊어진 실타래를 찾아 잇고 매듭을 푼다. ‘용서는 있다’를 강조한 춤은 교훈적 결론을 내린다.

 이 작품은 힘의 과잉과 들뜸을 잠재우고 차분한 결말로 연의 소중함을 기억해내며, 시대의 아픔을 슬기롭게 치유해 나아가는 과정을 차용함으로써 현실극복 논리를 구체적으로 보여준 다. 춤의 충격적 효과를 위한 비극적 결말을 애써 우회한다. 안무가가 직접 출연하고 이미영과 박병철 콤비가 열연한 가운데 김경린, 김은경 등의 노련한 춤꾼들이 협연한 이 작품은

짙은 여운을 남긴 대구무용단의 정기공연이었다.

               장석용(문화비평가, 2008 강남댄스페스티벌 심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