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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식물원에서 데지마박물관까지
자연사박물관과 식물원은 단지 관람을 위한 공간이었을까요? 아닙니다. 많은 인물들에게 지적 탐구와 위대한 헌신을 일깨우고, 자본가와 리더들에게 부와 권력 신장 기회를 열어준 곳입니다.
자연사박물관과 식물원은 왜 중요한가 |
이 책의 화두처럼 ‘자연사 박물관과 식물원에 주목해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이에 지식과 교양 때문이라고 답할 수도 있겠다. 자연과 식물, 광물에 대해 많고도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학습의 전당으로도 충분히 언급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공간은 단순히 어린이 교육용 공간은 아니다. 이 책을 통해 자연 박물 지식의 위대한 힘은 이미 해양진출의 시대의 자연사 박물관과 식물원을 통해 구현되었으며, 자연사 박물관과 식물원은 단지 관람 공간이 아니라 부와 국력을 창출하는 토대였음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
이런 정치적 리더와 의사 결정의 중요성 때문에 저자는 유럽과 일본, 조선의 엘리트 지식인들과 정치 체제를 비판하는데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는지 모른다. 다만, 그것은 정치제도와 권력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었다. 한 사회의 자연발생적인 학문과 사상이 근원되어야 했다. 이 때문에 저자는 이 책에서 단순히 자연사박물관과 식물원에 대한 풍경 스케치만이 아니라 그와 연관된 의학과 과학, 그리고 예술이 매우 중요했다는 사실을 구체적 사례를 통해 재삼 강조한다. 마찬가지로 한국과 유럽 그리고 가까운 일본과 비교하면서 성찰 어린 분석과 뼈아픈 충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
자연사박물관과 식물원에 국가의 부가 있었다 |
무엇보다 역사에서 구체적인 개인과 그들이 만들어낸 결과물이 제도와 어떻게 결합되었는지가 중요하다. 자연사 박물관과 식물원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한 사회와 국가의 힘, 부(富)로 연결되는 데에는 탁월한 인물들이 있었고, 그 인물들은 각각의 나라, 도시 그리고 자연사, 박물학의 공간과 밀접했다. |
알렌산더 훔볼트는 정치적 좌절 끝에 라틴아메리카로 탐험을 떠나 1799-1804년 동안 얻은 방대한 지식을 싸 안고 모국 독일로 돌아가지 않고, 프랑스 파리로 갔다. 그는 21년간(1807-1827)에 걸쳐 집필을 했고 지리학, 생물학, 지구과학, 기후학 등의 지식을 유기적으로 관통하는 자연지리학이라는 학문을 성립시킨다. 자연지리학은 생물분류의 법칙과 지리적 분포의 법칙 사이에 상호 대응관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독일이 그를 껴안았다면 독일은 더욱 달라졌을 것이다. 만약 정약용이 훔볼트처럼 해외로 탐험을 떠났다면 조선의 역사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
닫혀있는 조선의 의식, 반성이 필요하다 |
이제 이 책의 저자가 일본과 비교하면서 조선 사회에 대한 모순을 통렬하게 비판한 점을 살펴볼 차례다. 개항의 여부라는 통상적인 지적과 어떤 점이 다를까. 예컨대 이미 1635년 포르투갈인은 일본에 인공섬 데지마를 만들었고, 이후 일본인들은 이곳을 통해 네덜란드와 적극적인 교류를 한다. |
유럽의 자연사 박물관과 식물원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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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런던 자연사 박물관 리처드 포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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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의 괴짜 박물관 정진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