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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민은행 이야기
2006년 노벨평화상은 한 은행과 그 은행의 설립자에게 수여되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을 표방한 방글라데시의 그라민은행과 무함마드 유누스가 그 주인공입니다.
가난을 살리는 금융은 없는가 |
방글라데시의 기본 운송수단은 인력거다. 이들 인력거는 대부분 빌린 것이어서 인력거 운전자는 날마다 인력거 주인에게 비용을 지불하고 나면 겨우 먹고 살 정도의 돈만 손에 쥔다. 그러니 20년 동안 일을 해도 인력거 하나 장만하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여자들 역시 집에서 종일 대나무 제품을 만들지만 완성된 물건을 팔아 재료비를 감하면 하루에 2센트 밖에 벌지 못한다. 이런 하루살이 노동으로 살아가는 가난한 노동자 42명이 마음 놓고 일을 할 수 있는 데에 필요한 자본은 고작 856타카(약 27달러)에 불과하다. 하지만 아무런 담보가 없는 이들은 그 적은 돈도 쉽게 빌릴 수 없다. 어떤 은행 직원들은 오히려 이들에게 대출에 필요한 서류를 만드는 종이 값도 안 되는 돈을 빌려달란다고 손을 내젓는다. |
담보 없이도 대출이 가능한 은행 |
기술이 있고, 일하고자 하는 의지도 있지만 쉬이 27달러도 빌릴 수 없는 방글라데시 사회에 대한 자괴감은 경제학자 무하마드 유누스의 실험적인 도전을 이끌어 내었다. 그 결과가 바로 그라민은행이다. 이 은행은 담보가 있어야만 대출이 가능한 기존의 규칙을 깨고, 가난의 고통을 줄이고 꿈을 펼치며 살 수 있도록 경제적 토대를 지원하는 ‘무담보 소액대출(microcredit)’을 시작했다. 돈을 빌릴 수 있는 유일한 자격은 ‘가난’이다. 하위 25%라는 가난을 증명하기만 하면 돈을 빌릴 수 있다. ‘마을, 농촌, 시골’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그라민은행은 2006년 노벨평화상에도 그 이름을 올리며, 아름답고 따뜻한 희망의 증거가 되고 있다. |
그라민은행을 움직이는 신용공동체 |
그라민은행의 신용대출은 담보가 아니라 말 그대로 ‘신용’에 집중한다. 돈을 빌리기 위해서는 다섯 명의 채무자로 구성되는 연대보증 방식의 모임이 필요하다. 이들은 서로가 돈을 갚을 능력이 있는지, 무엇을 하기 위해 돈을 빌리는 지를 면밀히 따져 신용을 확인해주는 역할을 한다. 한 사람이 제때 돈을 상환하지 못하면 모임 전체가 이후에 대출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기꺼이 대신 돈을 갚아주기도 한다. 하지만 자연재해에도 쉽게 무너져버리는 신용공동체의 운명이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
저자는 유누스와 은행 직원, 그리고 대출자들을 직접 만나고 인터뷰하여 신문이나 뉴스가 다루지 못하는 그라민은행과 방글라데시 사회의 심도 깊은 모습을 그려낸다. 그리고 대출금의 상환 문제뿐만 아니라 은행 운영에 동참하는 직원들의 사적인 고충까지 생생하게 전한다. 덕분에 우리는 그라민은행의 성과와 업적을 유누스 한 사람에게 돌리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믿음’으로 이끌어낸 기적임을 보다 분명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
건강한 미래를 위한 특별한 대출정책 |
그라민은행 대출자들은 ‘16가지 행동강령’을 달달 외우고, 이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행동강령 항목들은 사회 정책 기능을 대신할 수 있을 만큼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다. 대출과 상환을 효율적으로 이끌어가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대출자들이 가난을 극복하는데 필요한 삶의 조건을 갖추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를테면, 아이를 많이 낳으면 대출을 받을 수 없도록 하여 자연스럽게 산아제한을 유도한다. 그리고 식생활과 주거 환경을 필히 돌보도록 하고, 자녀들을 교육 시키도록 한다. 두 번 이상 대출금을 정확하게 상환한 회원에게는 주택대출의 자격을 주어 안전한 보금자리를 마련할 수 있도록 돕기도 한다. 집은 작업장이자 창고가 되고, 질병으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하여 건강보험의 구실까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착한 자본주의를 실현하다 |
『그라민은행 이야기』는 방글라데시 남부 어느 대학의 교수 유누스와 학생들이 고안한 신용대출 프로그램이 ‘그라민은행’으로 발전해 나가는 과정을 상세하게 그린다. 그리고 되풀이되는 가난의 본질적인 이유를 ‘사회가 그 해결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단호하게 지적한다. 언젠가 가난은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그라민은행의 포부는 이제 신용대출운동을 넘어 공공가치를 위해 힘쓰는 다양한 사업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동전화 서비스를 제공하는 ‘그라민폰’, 전력 사정이 어려운 농촌에 전기를 공급하는 ‘그라민 샥티’, 어린이용 유제품을 생산하는 ‘그라민다농’ 등이 그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