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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뇌의 원근법
근대 미술 작품들을 보면, 대부분 ‘예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예쁘지 않은 그림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지워지지 않는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고뇌의 원근법』이라는 제목만 얼핏 보았다. 서양미술에서 원근법에 대한 이론을 쓴 책으로, 원근법 이론이 워낙 어려우니 ‘고뇌의’ 라는 수식어를 붙였을 거라 짐작했다. 하지만 첫 페이지를 읽는 순간 함부로 생각하며 접근한 나의 가벼움에 대해 반성하였다. 책의 겉장에 ‘서경식의 서양근대미술기행 ? 전쟁과 폭력의 시대를 응시한 화가들을 찾아서’라고 적혀 있었다. 이 문구가 모든 것을 말해 준다. 이 책은 일본에서 태어난 조선인 2세이자, 대학에서는 프랑스 문학을 전공하고, 현재 현대법학부 교수를 역임하고 있는 저자가 독일과 오스트리아 등지를 다니며 본 독일어권의 근?현대 미술 작가의 그림에 관하여 쓴 미술 에세이집이다. 한국에 체류하는 기간 동안 한국의 근대 미술을 본 저자는 “왜 내가 본 모든 한국 근대미술 작품은 그렇게도 예쁘게 마감되어 있는 것일까?”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국 근대미술이 아름다움에 대해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는지, 얼마나 깊이있는 문제 의식을 다루고 있는지에 대해 질문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시대적 고민이, 그림에 담긴 이야기 소개나 예술 기행과 같은 일반적인 미술사를 다룬 책이 아니라 시대와 인간이 충돌하는 장으로서의 예술을 절절히 담아내는 미술 에세이집을 만들게 한 것이다. |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많은 작가들은 다음과 같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예쁜 작품을 그려서 사람들을 위로하려 하지 않았다. 진실이 아무리 추하더라도 철저하게 직시해서 그리려 했다. 그것이 우리를 감동시킨다. 거기에서 ‘추’가 ‘미’로 승화하는 예술적 순간이 생긴다. 그들의 힘으로 우리는 그 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막연하게 공유하고 있던 통념으로서의 미의식을 과감하게 파괴하고 새로운 시대의 미의식을 개척”(6-7쪽)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저자는 예술적 역량이란 기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직시하고 그것을 독창적인 수법으로 그려내는 인간적인 역량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므로 예술은 정치적 현실과 무관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미술도 인간의 영위인 이상, 인간들의 삶이 고뇌로 가득할 때에는 그 고뇌가 미술에 투영되어야 마땅하다”(6쪽)는 저자의 말에서 느낄 수 있듯, 화가들의 그림 속에 녹아있는 그들의 삶과 미학적인 탐구를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
이 책에 등장하는 화가들은 전쟁, 폭력 등이 존재하는 시대를 똑바로 바라보고, 그것을 실제보다 더 강렬하게 표현하고 증언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그림들은 ‘일반적인 의미에서’ 아름답지 않다. 오히려 추한 것을 끝까지 응시하고 담아내려는 인간적인 고투, 그 자체가 아름다운 것이다. |
책의 내용은 6개로 나누어진다. ‘통일독일 미술기행’, 오토 딕스와 그의 시대에 관한 ‘너의 눈을 믿어라!’, 펠릭스 누스바움에 관한 ‘증언으로서의 예술’, ‘문을 열어젖히는 자’, 카라바조 이야기, 고흐에 관한 대담을 실은, 이 책의 제목이 된 ‘고뇌의 원근법’, 다니엘 에르난데스 살라사르의 천사들에 관한 ‘학살과 예술’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장 ‘통일독일 미술기행’은 통일된 동독을 여행하며 만난 작가들의 그림이야기다. 독일 여행의 목적은 냉전에 패배한 구동독 사회의 모습을 직접 보기 위함과, 아직 분단된 채 있는 조선의 미래를 점쳐보기 위한 것이었다. 저자는 지도에도 나타나 있지 않는 도시 ‘제뷜’에 있는 에밀 놀데 미술관을 찾아 간다. ‘그리스도의 생애’ 연작을 보고 “종교적이라기보다는 인간의 본성에서 직접 분출하는 듯한 감정이 방 전체에 충만해 있다.” (40쪽)고 느낌을 전한다. 또한 독일 표현주의에 속하는 놀데, 페히슈타인, 베크만, 키르히너의 작품들을 킬 미술관에서 만난다. 다리파 운동에 참여했고 1차 세계대전 때 강제징병 되었던 키르히너의 ‘군인으로서의 자화상’에는 군복을 입은 작가의 모습이 있는데, 더 이상 그림을 그릴 수 없다는 뜻을 암시하듯 손과 손목이 없다. |
모든 것을 자신의 눈으로 본다는 오토 딕스는 ‘전쟁제단화’에서 전쟁을 반복하면서 질릴 줄 모르는 인간의 어리석음과 잔혹함을 나타내었다. “전통적인 제단화라면 중앙의 대화면에는 인류의 원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가 그려져야만 한다. 하지만 딕스의 전쟁제단화에서는 그 자리에 예수가 아니라, 포탄을 맞고 철책에 걸린 채 부패해가는 병사의 시체가 그려져 있다. 이 제단화에는 천국이 아니라 지옥이, 그것도 인류가 스스로 만들어 낸 지옥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 것이다.”(116쪽) 오늘날에도 전쟁이 너무나 가까이 있고, 눈을 뜨기만 하면 잔혹하고 추악한 장면이 눈 앞에 뛰어 들어오리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가급적 눈을 감으려 하고 있지만, 딕스는 감기는 우리의 눈을 예술의 힘으로 억지로 뜨게 한다. 카라바조는 부활을 믿지 못하겠다면 상처에 손가락을 넣어보라는 예수의 말에, 실제로 손가락을 집어넣은 상태로도 정말인지 의심하는 토마스를 그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