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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역 여행
사람을 먼 곳으로 데려다 주는 모든 것들은 매력적입니다. 그 중에서도 기차는 특히 사람을 매혹시킵니다. 그래서인지 기차가 달리는 철길도, 멈춰서는 기차역도 사람들을 사로잡는 특별한 장소가 됩니다.
사람을 먼 곳으로 데려다 주는 모든 것들은 매력적이다. 이동수단은 그래서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사람들과 교감하는 특별한 무엇이다. 그 중에서도 기차는 특히 사람을 매혹시킨다. 자동차처럼 자유롭지도 않고, 비행기처럼 빠르지 않아도 사람들은 기차와 더욱 진하게 감정을 주고받는다. 기차가 달리는 철길도, 멈춰서는 기차역도 사람들을 사로잡는 특별한 장소가 된다. |
기차와 철길의 매력에 흠뻑 빠진 이로 일본인들이 사랑한 작가 미야와키 슌조(宮脇俊三, 1926~2003)가 있다. 일본의 유명 잡지 <주오코론>(中央公論)을 대표하는 명편집자였던 미야와키는 철도여행을 너무나 사랑한, 요즘 말로 하면 ‘철도 마니아’였다. 그는 20여 년 동안 일본 국유철도의 노선을 차례로 여행했고, 1977년 마침내 모든 노선을 모두 답파한 뒤 이듬해 일본국철 완승여행기 『시각표 2만킬로미터』란 책을 펴냈다. 이후 그는 산을 넘는 노선만 골라 다닌 여행기, 사라진 노선을 답사한 폐선 탐방기, 완행열차 여행기, 지정석을 피해 자유석만 타본 여행기, 시베리아철도 여행기, 인도 중국 스위스 유럽 철도여행기를 줄줄이 내며 ‘철도작가’란 호칭을 얻었다. 물론 한국 철도여행책도 냈다. |
한국판 미야와키 같은 이가 있다는 것을 최근 알게 됐다. 새로 나온 책 『간이역 여행』의 지은이 임병국씨다. 미야와키처럼 많은 기차여행 책을 쓰지는 않았지만 회사원이면서도 짬을 내 전국 각지 철도여행을 다니며 철도여행 동호회 사이트를 운영하는 임씨의 열정을 보면 철도에 대한 사랑이 미야와키 못잖은 듯하다. 올해로 꼭 10년째 전국 각지의 간이역을 돌아다닌 발품을 모은 책이 바로 『간이역 여행』이다. |
공교롭게도 건축전문가 임석재 이화여대교수 역시 최근 『한국의 간이역』(인물과사상사)을 펴냈다. 한국 사회의 숨은 구석에서 묵묵히 사람과 길, 시간과 공간을 이어준 간이역을 탐구하는 책 두 권이 동시에 독자들에게 찾아온 것이다. 두 책 모두 간이역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겼고, 정성스런 사진들이 보는 재미를 더해준다. 임 교수의 책이 간이역이란 공간에 담긴 건축적, 역사적 의미를 들여다보는 인문교양서라면, 임병국씨의 책은 간이역을 찾아 떠나보고 싶게 만드는 매력적인 여행안내서다. 바다에서 가장 가까운 역으로 유명한, 그래서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정동진역 말고도 우리나라에 얼마나 사랑스럽고 운치 있는 간이역들이 많은지 이야기보따리를 펼쳐 보인다. 10년 구력의 간이역여행 선배가 옆에서 손을 붙잡고 함께 기차에 오르자고 조근조근 권하는 듯한 책이다. |
간이역은 사전을 보면 ‘역무원이 없고 정차만 하는 역’이다. 임씨는 여기에 여행자의 관점을 더해 ‘한적한 마을 외딴 역’들로 간이역을 규정했다. 원래 우리나라 간이역은 500곳이 넘었는데 이제 기차가 서는 ‘살아있는 역’은 200여 개로 크게 줄었다고 한다. 이 중에서도 사람들이 가볼 만한 곳들을 골라 직접 찍은 사진과 취재한 이야기를 엮었다. 임씨가 골라 소개하는 간이역들은 기차여행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 또는 커다란 도시 기차역만 봤던 사람들에게는 먼저 놀라움으로 다가온다. 겨우 3평 남짓한 네모 시멘트 상자가 어엿한 기차역이며, 그런 역들이 전국에 아직도 저리 많으며, 우리 땅 구석에서 묵묵히 자기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저 귀여운 역들이 얼마나 매력덩어리들인지 순서대로 깨닫게 된다. |
그렇게 간이역과 만난 다음에는 한적하고 아련한 간이역의 풍경 뒤에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들이 핍진하게 담겨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경상도와 전라도를 잇는 경전선 중간, 작은 상자같이 생긴 원북역. 이 역은 한 사람이 기증해서 생겨난 역이다. 어린 시절 마을을 떠났다가 돌아온 유지가 마을을 위해 사재를 털었다. 이 작은 역 안에 원북마을의 역사와 자아실현을 추구한 한 사람의 이야기가 들었다. 역장의 하루 일과가 문 옆에 적혀 있는 희한한 역도 있다. 더 희한한 건 일과의 내용이다. 6시30분 일어나 하품하기, 기지개 두 번. 10부터 아이들과 놀 준비. 10시14분부터 오후 3시까지는 정말로 아이들과 노는 일과가 이어진다. 귀여운 하얀 개 아롱이가 명예역장인 경북 문경의 점촌역 이야기다. 동화 같은 역을 만들기로 한 역무원들의 노력이 모여 정말 동화처럼 새롭게 태어난 역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