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한국영화사
To love or not to love, that is the question.
1. 70년대 영화계의 동향
70년대의 한국 영화계는 이전의 어느 시대보다도 침체(沈滯)되고 암울(暗鬱)한 시기를 맞이 하게 되었다. TV의 전국적인 보급과 함께 유신 정국 하에서의 가혹한 검열로 인한 표현의 제한은 한국 영화를 불황 속에 내던졌으며 영화의 질적하락(質的下落)을 초래하게 되었다.
1972년 들어선 유신정부(維新政府)는 73년2월16일, 제4차 영화법 개정을 시행한다. 영화사 등록 여건을 한층 엄격하게 규정하여 은연 중에 활동하던 개인 영화업자들의 움직임을 막아버렸으며, 1년에 4편의 한국영화를 제작하게 하는 의무 편수 조항을 적용했다. 물론 모든 영화는 유신 이념을 구현해야 했으며 초기 법령과 마찬가지로 20개 영화사는 독과점 형태로 영화 시장을 나눠 먹기 식으로 주물러 가며 다른 세력을 키우지 않게 하기 위해서 서로 견제, 단합하기도 했다.
이 시기의 외화 수입은 한국 영화 육성이라는 이유 하에 국산 영화 제작의 1/3을 넘지 않고 상영일수는 전체 상영일의 2/3을 넘지 않도록 규정하였다. 자연히 1년에 약 30편을 넘지 않는 외화는 희소가치 때문에 흥행은 보장되었고 외화 수입 쿼터를 싸고 계속 신경전을 벌이게 된다. 또한 영화의 검열 기준을 강화하는 한편 합작영화의 기준을 명시하여 위장 합작영화 방지와 그 밖에 배급 업무를 담당하는 ������영화배급협회������를 설치 운영케 했다.
검열(檢閱)은 긴급조치에 위배되는 것은 가차없이 잘라내었는데, 사전 대본 심의와 실사 심의가 공존했다. 이 때문에 사회적, 시대적 리얼리티와는 거리가 먼 영화들이 양산될 수 밖에 없었고 그래서 나타난 돌파구가 호스티스물 등이었다. 이장호의 <별들의 고향(1974)>에 이은 호스티스물의 범람은 삶에 대한 냉소(冷笑), 육체적인 자유(自由) 추구, 여성(女性)의 상품화(商品化)라는 소비성 강한 사회 풍조가 크게 대두된 것이다.
우수 영화를 만들어 스크린 쿼터의 보상을 받는 제도는 60년대에 이어 문예영화를 양산하는 지지 기반이 되었다. 그러나 리얼리즘 계열의 영화는 사라지게 되었고 사회의식이나 작가의 비판은 당국의 강력한 통제하에 자취를 감추었다. ������우수 영화는 국책 영화������ 라는 의식의 팽배로 대부분의 관객이 신파물, 호스티스물에만 시선을 돌리는 사이에, 여전히 ������국난을 극복한 위인������을 다룬 영화나 독립 투사의 활약, 반공영화(反共映畵), 계몽영화(啓蒙映畵)들이 우수 영화로 지목되고 보상이 주어져 영화계는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되었다. 영화계는 산업화하지 못했고 소수의 영화 자산가를 만들어 내면서 영화감독들에게는 박탈감을 안기고 영화에는 질적(質的)인 퇴보(退步)를 가져왔던 것이다.
2. 유신 정권 하의 작품 경향
이 시대에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 손쉽게 관객을 사로 잡을 수 있는 가벼운 내용의 영화들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는데, 대표적인 것이 60년대 말에 제작되어 폭발적인 흥행을 기록한 정소영의 <미워도 다시 한번(1968)>의 속편(1969-1971)들과 그 아류작들이다. <미워도 다시 한번>류의 최루성(催淚性) 멜로 드라마들은 고정적인 여성 관객들을 확보하는 수확을 얻는다. 하지만 이러한 작품들이 과연 당대의 리얼리티를 얼마나 반영하고 있느냐 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긍정적인 답을 내리기 어렵다.
60년대 청춘영화(靑春映畵)의 계보 역시 고교생이나 대학생들의 학창시절을 코믹하고 낭만적으로 그린 하이틴물 대체된다. 김응천의 <여고 졸업반(1975)>을 비롯하여 <고교 얄개(1976)>, <모모는 철부지(1979)> 등 수많은 하이틴 영화들이 만들어지지만, 이들 영화에서도 당대의 리얼리티는 찾아볼 수 없다.
이 시기 영화의 또 하나의 경향은 급격한 산업화(産業化) 대도시화(大都市化)로 이농현상이 강해진 70년대 삶의 풍경변화, 그리고 현실 자체에 대한 비판적 묘사나 사실묘사 자체도 허용되기 힘든 검열상황에서 한국영화는 전통적인 멜로드라마 내러티브에 속칭 ������호스테스영화������라는 출구를 마련한다. 경제 성장의 그늘에서 자란 향락 소비문화의 희생자들인 ������호스티스������와 ������창녀(娼女)������의 이야기들의 대두와 물질로 인한 계급차이는 성차별(性差別)과 결합해 여성의 성적 타락담 혹은 여성의 망가지는 삶의 과정을 멜로드라마의 비극적 정서로 이용하는 전략으로 영화만들기를 풀어 나간다. <O양의 아파트>, <나는 77번 아가씨>. 그리고 <화녀>, <충녀>, <별들의 고향>, <영자의 전성시대>, <겨울 여자>, <내가 버린 여자> 등 70년대 박스 오피스 영화들은 여주인공들의 남성 편력담을 인생 유전담으로 구사하고있다. 이장호의 <별들의 고향(1974)>은 호스티스를 주인공으로 하였고 김호선의 <영자의 전성시대(1975)>는 창녀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우리 사회에서 불우하게 살아가던 일군의 여성들의 삶을 조명하였다. 특히 최인호의 소설을 영화화한 <별들의 고향>은 기념비적(記念碑的)인 숫자의 관객을 동원하며 영화사적 의미에서의 70년대를 열었다. 주인공 ������경아������는 고도 성장의 그늘 아래서 부생(浮生)하던 많은 유흥업계 여성들의 공감(共感)을 얻었다고 한다. 이러한 영화들은 이후에도 계속 아류작들이 만들어져 자본주의(資本主義) 사회의 병폐에 희생된 여성들의 삶을 조명함으로서 우리 사회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하지만 그나마 사회구조적, 비판적 성찰의 흔적이 각인된 <영자의 전성시대>마저도 억지로 해피엔딩을 구사하는 결말을 보노라면, 이건 검열용(檢閱用)이라는 항거(抗拒) 아닌 적응(適應)의 흔적으로 보인다.
또한 70년대에도 <별들의 고향(최인호 원작)>, <영자의 전성시대(조선작 원작)>를 비롯해 유현목의 <분례기(1971, 방영웅 원작)>, 최하원의 <독짓는 늙은이(1972, 황순원 원작)>, 김수용의 <토지(1973, 박경리 원작)> 등 많은 문예 영화들이 제작되었다. 이외에도 미국 UCLA에서 체계적으로 영화를 공부하고 돌아온 하길종은 전위적(前衛的)인 작품 <화분>으로 당시의 한국 영화계에 신선한 자극제(刺戟劑) 역할을 하였다.
70년대 한국 영화계는 이들 작품들로 인해서 그나마 명맥을 이어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 시대에는 정부의 강력한 통제로 말미암아 영화를 통해서 당대의 사회상을 사실적으로 내보일 수가 없었다. 따라서 사회의식(社會意識)이나 작가적인 비판 정신(批判精神)은 사라지고 당대의 풍경을 가볍게 다루거나 제도권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소재나 내용을 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결국 70년대 한국영화는 대중들로 하여금 불안하고 암담(暗澹)한 사회 상황에 대해서는 회피하게 하고 집단적인 마취상태(痲醉常態)에 빠져들게 한 셈이다.
하지만 이러한 영화계의 동향에도 작은 몸부림이 있었다. 70년대 상황에서 뉴웨이브란 말을 들었음직한 ������영상세대(映像世代)������의 짧은 활동이 슬픈 70년대 영화표정에 세대교체라는 색다름을 부여한다. 하길종, 이장호, 김호선, 변인식 등이 주도한 이 운동은 새로운 이미지 표현에 집중하면서 매너리즘에 길들여진 한국영화를 새롭게 시작하려는 의욕적인 청년영화운동(靑年映畵運動)이다.
이들은 당대 현실에 대한 비판적 성찰(省察)과 묘사를 내걸기도 했지만 여전히 매우 개인적 차원에서 연애담론(戀愛談論) 속에만 갇혀 있는 한계를 보여주기도 한다. <바보들의 행진>, <화분>, <별들의 고향>, <겨울 여자> 등이 바로 그런 텍스트들이다. 사회문제에 대한 영화적 인식이 늘 여배우의 몸으로 은유화되고 여자와의 성경험으로 젊은 시절의 고뇌와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는 뒤틀린 간접화법(間接話法)이 고착(固着)되는 것도 70년대이다. 검열환경이 그렇게 몰고 갔다는 이후의 항변은 선택에 대한 변명처럼 들리기도 한다.
3. 우울한 시대의 대표작들
1979년 김응천 감독에 의해 만들어진 <모모는 철부지>는 6~70년대 한국영화에서 심심찮게 나타나는 청춘영화의 계보를 잇는 작품으로 당시 엄청난 흥행 성공을 했다. 대학생들이 우연히 만나 사랑하게 되는 기본 줄거리에 삼각관계로 인한 인물간의 갈등을 가미한, 지금 보기에는 유치하고 비현실적인 진부한 이 영화의 내러티브가 당시 인기를 얻었던 이유은 무엇일까?
1979년이라는 시간대를 생각해 볼 때, 이 영화의 주인공처럼 대학생은 흔치 않은 계층의 인물이다. 당시 20세 안팍의 청소년들은 대부분 공장이나 회사에서 산업일꾼으로서의 고단한 삶을 살고 있었는가 하면 깡패나 창녀가 되어 피폐해져가고 있었다. 그들 대부분에게 대학(大學)은 동경(憧憬)의 대상이었고 간접적으로나마 그들의 삶을 체험하고자 했던 심리가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또한 주인공들 모두가 부유층에 속한 인물들이기 때문에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인물들의 삶이야 말로 이상적이며 완벽한 것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결국 당대에는 이런 영화를 통해서나마 고단한 현실을 잊고 장미빛 꿈을 꾸려는 관객들의 욕구(欲求)와 그것을 만족시키려는 영화 제작자의 욕구가 맞아 떨어졌기 때문에 이러한 영화들이 붐을 일으키며 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반면 1974년 최인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장호의 <별들의 고향>은 자본주의의 휘황찬란함 뒤에서 이름없이 시들어 가는 ������호스티스������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우리 사회의 어두운 한 단면을 보여주었다.
70년대는 공업화(工業化), 산업화(産業化)가 최우선 과제로 대두되던 시기였다. 1차 산업에 종사하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의 생업으로 생계를 꾸려갈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였고 이러한 때에 많은 시골 젊은이들이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서울로 상경하여 노동자가 되었던 것은 일반적인 현실이었다. 여성들은 공장을 전전하다가 좀더 돈벌이가 나은 직업을 찾게 되는데, 그 일이라는 것이 바로 호스티스나 매춘업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모든 사회적 여건 속에서 주인공 ������경아������와 같은 상황에 처한 인물의 삶이란 절망과 두려움뿐이었다. 최인호의 인기 연재 소설을 원작으로 한 <별들의 고향>은 70년대식 사랑이야기이며 70년대 청년들의 갈망을 다루고 있다. 가난하고 불행한 사람들의 운명은 항상 비극적이며, 이는 또한 사회적 편견과 지배 집단의 횡포와도 맞물려 있다. 하지만 결국 모든 비극은 운명적인 것이며 그래서 사랑은 슬프고도 아름답다는 것이 <별들의 고향>의 요지이다. <별들의 고향>은 겉으로는 휘황찬란한 모습을 보이는 우리 사회의 뒷골목 인생들을 조명하고 그녀들의 삶의 실상을 파헤쳤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은 것이다.
하길종 감독의 <화분(1972)>은 당시의 관점으로 보나 오늘날의 관점으로 보나 한국영화사상 상당히 독특한 작품이다. 이효석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지만 소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줬는데, 사건의 의미들을 뚜렷하게 알 수 없을 뿐 아니라 인물의 심리 상태를 표현하는데 있어서도 가히 새로운 형식이었다. 시종일관 음울하고 괴이한 분위기가 영화를 지배하고 있으며 인물들의 표정이나 화면까지도 모종의 음모를 숨기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강하게 풍긴다. 원작에서는 인물들의 애정관계를 방탕(放蕩)하게 보여주고 있는 반면, 영화는 이들의 애정관계를 지극히 단순화(單純化)시킴으로서 비교적 절제있고 심도 깊은 효과를 얻어낸다.
이 작품은 당시 안일하게 영화를 제작하던 영화인들에게 상당한 자극을 주어 우리 영화계에 새로운 활력을 심어주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지만, 대중들에게 공감(共感)을 일으키지 못했다는 비판(批判)은 감수해야 할 것이다.
4. 70년대 한국영화의 침체기
60년대 박정희 구사정권의 등장으로 서서히 답보와 퇴보의 길을 걸어 왔던 영화계는 70년대에 들어 서면서 급격한 퇴락의 길을 걷게 된다.
퇴락(頹落)의 가장 큰 이유는 72년에 들어선 유신정권(維新政權)의 영화정책이 근본적으로 영화인의 시각과는 커다란 차이가 있었다는데 있다. 73년 2월 단행한 영화법 개정은 60년대의 것보다도 더욱 강화되었다.
일례로 당시 매년 나오던 연례 영화시책을 보면 영화제작은 유신의 이념을 구현하여야 한다고 하는데서도 볼 수 있듯이 영화를 본래의 독자적(獨自的)이며 작가 자신에 의한 예술의 영역, 그 본질과 표현미학 및 관객과의 공감유대(共感紐帶)를 가진것이기 보다는 현실을 미화하고 정부의 유신이념을 홍보하는 계몽매체(啓蒙媒體)로서 통제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박정희가 죽는 그 날까지 계속 이어지게 된다. 흡사 30년대 히틀러나 뭇솔리니가 구사햇던 프로퍼갠더와 흡사하다고 볼 수 있다.
70년대의 작품경향은 60년대 부터 이어져온 문예영화(文藝映畵) 흐름이 이때에도 주조(主潮)를 이루게 된다. 71년 유현목의 '분례기'(방영웅원작), 72년 하길종의 '화분', 최하원의 '무녀도', 74년 김수용의 '토지'(박경리원작), 이장호의 '별들의 고향'(최인호원작), 최하원의 '갈매기의 꿈'(황순원원작), 75년 김호선의 '영자의 전성시대'(조선작원작), 이만희의 '삼포 가는 길'(황석영원작), 유현목의 '불꽃'(선우휘원작), 하길종의 '바보들의 행진', 76년 임권택의 '왕십리'(조해일원작), 김호선의 '여자들만 사는 거리'(조선작원작), 77년 김수용의'야행'(김승옥원작), 김수요의 '화려한 외출'(김성용원작), 김기영의 '이어도'(이청준원작), 78년 유현목의 '옛날옛적 훠이훠이'(최인훈원작), 김수용의 '화조'(차범석희곡), 고영남의 '소나기'(황순원원작), 79년 변장호의 '을화'(김동리원작), 79년 유현목의 '장마'(윤홍길원작) 등이 문예영화의 대표작들이다.
이러한 문예영화 외에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고도의 도시화와 산업화 사회의 희생물인 사회 소외계층 호스티스를 주제로한 작품들의 범람이다.
전자에서 열거한 '별들의 고향'이나 '영자의 전성시대', '여자들만 사는 거리' 등을 제외하더라도 73년 변장호의 '눈물의 웨딩드레스', 77년 김호선의 '겨울여자', 김응천의 '미스양의 모험', 정소영의 '내가 버린 여자', 78년 박호태의 '나는77번 아가씨', 79년 노세한의 '26X365=0', 79년 정인엽의 '꽃순이를 아시나요' 등이 바로 언급한 분야의 영화이다.
이런 멜로 드라마는 이미 화려하게 변모한 현대사회 즉, 산업사회를 배경으로한 성모랄과 시대상, 독신여성(獨身女性)들의 사생활(私生活)을 그렸으며 초반에는 상당히 새로운 작품 소재의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계속되는 작품의 범람과 엇비슷한 내용, 억지눈물 짜내기 식의 최루성영화(催淚性映畵)로 평가를 받게 된다.
또다른 한편으로는 당시의 유신정책과 맞아떨어지는 반공, 군사, 새마을, 계몽영화들이 홍수를 이루게 된다. '암살지령', '조총련', '잔류첩자', '팜문점 도끼사건', '7호실손님', '오륙도 이무기', '표적' 등과 같이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반공영화와 '모범운전사 갑순이', '내일의 팔도강산','방범대원 용팔이','병사와 아가씨들', '경찰관' 등등 계몽영화들이 활개를 치던 10년간이었다.
또한 10대 영화들도 붐을 이뤄 '여고졸업반', '진짜진짜 잊지마', '제7교실', '고교얄개', '우리들의 고교시대' 등 김응천, 문여송 등 이 쟝르의 전문감독들이 생기게 되었으며 임예진, 이덕화, 이승현, 김정훈 등 청춘스타를 양상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70년대 한국영화는 앞에서도 간략히 언급한바와 같이 깊은 수렁에 빠진 10년간이었다. 좀더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그 요인을 세가지 정도로 추론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전자에서 언급한 가혹한 검열(檢閱)과 특정정책이념의 강요로 이한 관객들의 식상함이 그 주요인이다. 진지한 현실과 사회에 대한 성찰과 비판성, 대담한 영상적 실험(實驗)과 성인수준의 수준 높은 오락성(娛樂性)이 거세된 대신에 거의 도식적인 사회 계몽물, 정책홍보물, 이른바 정책영화가 범람했으며 뚜렷한 개성이 없는 문예영화들이 우수영화의 대명사처럼 통용되던 아이러니의 10년이었다.
둘째는 70년대 산업화를 배경으로 해서 급속하게 번져 나갔던 텔레비젼의 보급이다. 전세계 영화시장을 강타했던 텔레비젼의 급성장은 이 땅의 영화계를 심각한 불황 속에 떨어뜨리고 만다. 가장 쉬운 예로 <미워도 다시한번>같은 최루성 멜로영화에 눈물흘리던 아줌마들을 집안의 안방에 꽁꽁 묶어 둠으로서 영화의 수요자가 급격히 줄어든 것이다.
셋째는 국민들이 없이 살던 시대의 유일한 볼거리엿던 '영화'를 등지고 스포츠와 각종 취미의 대중화(大衆化)에 급속히 흡입된다. 이것은 국민들의 오락형태가 다양해 진 것을 보여주며 영화만이 대중의 유일한 오락이었던 시대는 지나갔음을 보여준다.
이렇듯 수적으로나 질적으로 위축될 때로 위축되었던 70년대의 한국영화게도 1979년 10.26발생과 더불어 종막을 고하게 되며 전도가 불투명한 80년대로 넘어가게 된다.
5. 70년대 대표적 영화들
영자의 전성시대: 3년간 군복무를 마치고 목욕탕 때밀이 노릇을 하고 있는 창수는 경찰서 보호실에서 우연히 영자를 만난다. 3년전 철공소 직공이였던 창수는 심부름으로 사장집에서 영자를 처음 만났고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창수의 군복무중 영자는 사장집 아들에게 욕을 당하고 쫓겨나 춘자언니에게서 봉제를 배운다. 할 수 없이 박봉에 빠걸이 죈 영자는 다시 버스 안내양이 된다. 불행하게도 만원버스에세의 사고로 팔을 잃은 영자는 자살(自殺)을 기도한 구사일생(九死一生)으로 목숨을 건지고 창녀로 전락을 한다. 창수는 영자에게 의수까지 만들어 주며 그녀를 찾는다. 세월은 흘러 불행했던 영자는 아이를 낳고 남편과 행복하게 살게되고 그런 모습을 본 창수는 지난날 영자의 전성시대(全盛時代)를 떠올리며 결실을 맺은 영자의 행복을 빈다.
토지: 이야기는 1890년대의 경상남도 하동군에 5대를 만석지기 부호이며 명문으로 행세해 온 대지주 최참판의 집과 그 마을사람들을 주축으로 하여 전개된다. 최참판가의 주인인 최치수의 어머니 윤씨부인은 치수가 십여세때 김개주에게 겁탈을 당하고 김환을 낳게 되는데 그는 후에 치수집 머슴으로 들어와 별당아씨와 통정하여 야간 도주한다. 한편 고종이 등극하신지 40년째 되던 해 전국을 휩쓴 호열자와 그 뒤의 대흉년으로 모두가 고통받을 때 치수의 외척형 조준구는 내외는 그의 만석살림을 탐내서 계략을 꾸미고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된 후 가까스로 죽음을 모면한 조준구는 자신의 위치를 더욱 공고히 한다. 이런 혼란 속에서 몇몇의 마을 사람들과 치수의 딸 서희는 마을을 떠나 북간도로 향한다.
분례기: 가난한 집의 맏딸 분례는 나이가 찬 어느날 유부남 용팔이에게 겁탈(劫奪)을 당한다. 그러나 절망과 야릇한 설레임으로 지내던 분례는 성불구자인 영철의 후취로 들어가나 영철은 분례를 무시하고 도박만을 일삼는다. 이런한 남편을 안타까워하며 일에 전념하는 분례의 주위에는 분례를 사모하는 콩조시가 기웃거린다. 그러나 부례는 용팔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차 있기만 하다. 노름으로 다시 뛰어든 영철은 분례에게 돈을 달라며 폭행을 가하고 돈을 잃은 분풀이로 분례를 내쫓는다. 이때 콩조시가 나타나 영철을 죽이자 분례는 미치고 만다. 완전히 분례는 용팔을 만나 용팔을 찾으러 간다고 말하고 떠난다.
별들의 고향: 첫 사랑에서 사내에게 버림받은 경아(안인숙 분)는 천성의 밝음과 명랑성으로 슬픔을 이겨내고 중년의 이만준(윤일봉 분)의 후처로 들어간다. 그러나 임신했던 과거 때문에 헤어지게 되고 술을 가까이하게 되어 동혁(백일섭 분)이라는 남자에 의해 호스테스로 전락하게 된다. 문호(신성일 분)라는 사람좋은 화가를 알게 된 경아는 곧 그와 동거 생활을 하게되나 심한 알콜 중독 증세와 자학에 빠진 문호는 그녀를 다시 사랑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새벽이 되도록 경아의 잠든 모습을 지켜보다가 가지고 있던 돈을 경아의 머리맡에 놓아두고 방을 빠져나오고 만다. 그리고 일년이 지난 어느 눈내리는 밤에 길거리에서 발견되는 어느 젊은 여자의 죽음으로 하여 착하고 천진하고 명랑했던 경아의 짧은 생애는 무책임한 이 도시의 우리들 앞에서 사라진다.
모모는 철부지: 모모는 엉뚱하고 귀엽고 덤벙대는 식품공학과 3학년생으로 준치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준치는 강변 가요제에서 기악과 3학년인 말자를 만나서 급속도로 가까워지게 되나 그녀는 이미 약혼자가 있다. 모모는 그 사실을 알고 약혼자와 맞서지만 모든 면에서 그를 이길 수가 없어 말자와 헤어지고 만다. 모모는 상처를 달래기 위해 방랑길을 떠나고 설악 에서 오르는 태양을 보는 순간 악상이 떠올라 말자가 쓴 가사에 곡을 붙여 대학가요제에 출전한다. TV 중계를 본 말자는 모모의 진실한 사랑을 느끼며 약혼자와 외국으로 떠난다.
고교얄개: 나두수는 고교 2년생으로 온갖 사건을 일으키는 말썽꾸러기다. 하지만 내면에는 따뜻한 우정이 있는 학생이다. 급우 호철의 어려움을 보고 자신이 직접 나서서 병원비를 마련하려다가 다치기도 한다. 얄개는 한창의 푸르름으로 낭만도 있고 실수도 있고 용서가 있다. 아름다운 고교시절을 헛되이 보내지 않는 얄개 나두수,여자친구를 사귀면서 밝은 웃음을 짓는 그를 보며 또한 우리의 마음도 푸르름에 젖어든다.
화분: 서울 근교의 거대한 한옥에서 현마의 애첩 세란은 동생 미란을 데리고 산다. 어느날 그곳에 주인인 현마가 비서인 단주를 데리고 나타나고 미란은 단주를 사랑하게 된다. 단주를 동성애 해온 현마의 질투와 분노는 극에 달해 단주를 빈사상태에 이를때까지 구타하고 골방에 가둔다. 현마는 그날밤 지병인 간질병이 발작하고 단주는 골방에서 고행을 통하여 자기의지로 귀환하는 노력을 계속한다. 몰락해 가는 현마는 일본으로 떠나고 푸른집은 갈등속에 넘겨진다. 세란은 푸른집과 함께 무침히 짓밟힌 후 정신이상으로 죽고 미란은 집을 떠난다. 이 모든것을 지켜본 단주는 어둠에 뒤덥힌 푸른집을 나간다.
나에게 연극이라는 것은 그저 막연한 이야기 인 것만 같았다. 지방에서 연극을 본다는 것은 연극에 관해 큰 관심을 갖고있는 사람이 아니면 쉽사리 연극이라는 매체에 접근하기가 어렵다. 더욱이 연극 공연이 수도권이나 서울만큼 잦은 것도 아니다. 그래서 이번에 본 첫 연극인 ‘고도를 기다리...다 보면?’ 은 나에게 잊을 수 없는 연극으로 남을 것 같다.
‘고도를 기다리...다 보면’은 사무엘 베케트 원작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각색한 것이다. 인생이라는 긴 긴 여행의 의미와 언제 올지도 모르는, 존재조차 불확실한 고도라는 이름의 희망 아래 살아가고 있는 인간 군상들을 통해 우리에게 웃음과 슬픔을 동시에 던져준다는 사실은 원작과 별 차이가 없다. 그러나 작품의 공간을 4곳으로 확장하고, 등장인물을 4명으로 확산시킴으로써 ‘기다림’과 ‘견딤’의 의미를 더욱 강화한 것이 ‘고도를 기다리...다 보면’의 가장 큰 특징이자 매력이다. 원작의 고고와 디디 두 인물은 어쩌면 기다림이 숙명인 인간의 관념화된 모습일 수 있다. 하지만 ‘고도를 기다리...다 보면’에서는 등장인물을 4명으로 확산, 그 인물들 간간이 서로 다른 기다림의 양태를 보여줌으로써 기다림과 견딤을 우리의 일상 속으로 끌어내리고 있다. 공간의 확장 또한 원작의 두 인물을 현대적으로 해석해 내는 데 일조하고 있는데, 막연히 기다리는 것이 아닌 좀 더 적극적으로 고도를 찾아 나서게 만드는 데 4곳의 공간은 큰 의미로 작용한다.
처음 가는 길을 지나 온통 처음 보는 사람들로 가득한 소극장을 친구 3명과 같이 앉아서 봤다. 첨에는 극장처럼 상당히 큰 무대에서 화려한 무대 장치들과 조명으로 치장이 된 연극 무대를 기대했으나, 작고 아담한 무대와 단지 모래와 기타 작은 소품들과 20~30개 정도의 조명을 보고 난감함과 실망을 안고 연극을 보게 됐다. 무대는 바다에서 볼 수 있는 황토색 모래로 가득 찼으며 무대의 한귀퉁이에는 선인장이 우뚝 서있었고, 또 다른 한쪽에는 두 개의 네모난 가방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뒤 벽 쪽에 자동차 트렁크가 장치되어 있었다. 모래가 주는 삭막함과 허망함으로 이 연극의 대강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었다. 주의를 둘러보니 여러 개의 조명들이 장치되어 있었다. 붉은 빛깔의 조명, 파란 빛깔의 조명, 그리고 흔히 볼 수 있는 노란색 빛의 조명.
갑자기 불이 다 꺼졌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어둠 이였다. 완전한 어둠. 작은 불빛 하나조차 들어오지 않는 완전히 밀폐된 어둠. ‘이제 불이 켜지고 슬슬 배우들이 등장하겠지’라는 우리의 기대를 무참히 짓밟아 버리듯, 불이 켜지는 순간에 이미 배우들은 무대 위에 서 있었고 이제 연극은 시작되었다. 서로 무엇인가를 갈망하면서 서서히 한발짜국씩 발걸음을 옮겨 나갔다. 한발한발 그들이 한걸음 걸을 때마다 물방울 떨어지는 듯한 배경음악이 흘러 나왔다. 이렇게 막은 오르고 ‘고도를 기다리...다 보면’은 시작이 된 것이다.
고고, 디디, 삐삐, 주주라는 4명의 주인공은 고도라는 누군가를 황폐한 모래만 있는 사막에서 한도 끝도 없이 기다린다. 언제 올지도 그 누구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들은 고도를 각자 자신만의 방법으로 시간을 보내며 기다리고 있다. 신발을 벗으려다 일어나는 에피소드는 우리에게 첫 웃음을 선사해 주었다. 기다림에 지쳐 때론 힘들어하고 짜증도 내면서 그들은 그렇게 막연히 고도라는 인물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춤도 추고 노래를 부르기도 하면서 그들은 고도를 기다린다. ‘나무에 목을 매달아 볼까’라는 식의 엉뚱한 생각도 한다.
그런 와중에 럭키와 포조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포조는 밀림에서 쓰는 모자를 착용하고 있고 한 손에는 채찍과 또 다른 한 손에는 밧줄을 들고 있다. 밧줄에는 럭키의 목이 걸려 있다. 그의 외모에서 그의 대강의 성격이 드러났다. 온갖 허세와 허영으로 가득찬 인간이 떠올랐다. 럭키는 포조에게 속박되어 있고, 포조는 럭키를 속박하면서 온갖 허세를 다 부린다. 럭키를 이상해 생각하던 그들은 포조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진다. 럭키에 대한 궁금증과 질문이 끝나고 그의 이상한 행동이 멈추자 럭키와 포조는 또다시 그들의 길을 떠난다. 순간 그들과의 이별로 외로움을 느끼고 그들의 막연한 기다림에 대해 깊은 회의에 빠진다. 그가 고도는 아니였는지, 과연 고도는 그들을 알아 볼 수 있는지, 고도와 만나기로 한 것이 여기가 맞는지......
그들은 다른 장소로 이동을 한다. 바다다. 바다에 다다른 그들은 기쁨에 빠진다. 누가 침을 더 멀리 내뱉는지 놀이를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기쁨도 순간. 다시금 고도에 대한 회의에 빠진다. 불확실한 기다림에 대한 두려움과 회의. 또다시 길을 떠난다.
그 와중에 포조와 럭키를 만난다. 형편없어진 그들의 외모를 보고 순간 즐거움을 느낀다. 눈이 멀어진 포조. 모래 밭에 누워서 일어나지도 못하는 그를 그들은 실컷 골려 준다. 하지만 곧 그들은 떠나고 다시 4명만이 남게 된다. 다시금 그들은 외로움에 사로잡히게 된다.
결국 그들은 다시 처음의 위치로 되돌아온다. 하지만 그곳에는 나무가 없어졌다. 허탈함과 박탈감에서 그들은 그들 스스로가 나무가 되듯이 나무처럼 포즈를 취한다. 또다시 기다림에 회의를 느끼고 그러면서 하염없이 막연히 고도를 기다린다.
베케트 원작 ‘고도를 기다리며’는 신이라는 존재의 막연함과 그것에서 파생된 애매모호한, 그러면서도 벗어날 수 없는 구원에의 갈구는 현대인의 슬픈 자화상을 표현하고 있다. 위성신의 ‘고도를 기다리...다 보면’ 또한 하루하루가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 같이 고달프고 지루한 우리내 인생사를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알 수도, 알지도 못하는 무언가에 대한 기다림으로 지쳐 가는 우리의 삶을 대변해 주고 있다. 아무리 ‘우리는 행복하다’고 자기 암시를 하지만 우리들은 자신이 기다리는 막연한 존재에 대해 회의를 느끼고 홀로 남겨졌다는 점에서 외로움을 느낀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그런 막연한 존재에 대해 기다릴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제 스스로 그 무엇인가를 찾아 나설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막연한 존재를 기다림으로써 고뇌와 외로움을 겪을 것이 아니라 직접 자기 손으로 그 존재를 찾아 나설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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