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연론
강수연은 한국을 대표하는 여배우이다. 흔히 강수연을 소개할때 말해지는 월드스타라는 단어, 이 말이 주는 의미와 책임감에 대해 강수연은 스스로 말을 하곤 한다. 강수연은 삼십대 나이에 29년의 연기경력을 가진 배우이다. 혹자는 여배우가 부족하던 80년대에 강수연이 그 자리를 잘 들어간거 뿐이며 임권택이라는 거장을 운좋게 만나 국제영화제에서 상을 몇번 탄것뿐이라고 강수연을 깍아내리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이 한국을 대표하는 여배우를 표현할 말은 아닌것 같다.
강수연은 1966년 8월 16일에 서울에서 태어나 동명여고를 졸업했다. 4세 때 이미 아역배우로서 연예계 활동을 시작했다. 4살 때 이미 연기의 맛을 보고 1975년 ‘똘똘이의 모험’으로 본격 데뷔, 깜찍, 앙증맞은 연기로 강수연 신드롬을 낳기까지 했다. 그리고 1985년 고래사냥2에 출연하며 본격적인 영화배우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1987년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로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받아 주목을 받았고 87년에 ‘씨받이’로 44회 베니스 영화제 최우수여우주연상을 받아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다. 이후 ‘아제아제 바라아제’에 출연, 모스크바에서도 최우수여우의 영예를 안게되는 등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99년에는 유바리영화제 뷰티스피리트상을 수상하기도 하며 한국영화를 만방에 알렸다. 출연작으로는 85년에 ‘고래사냥2’, 87년 ‘감자’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 ‘청춘스케치’ ‘연산군’ ‘씨받이’, 89년 ‘아제아제 바라아제’ ‘그후로도 오랫동안’, 90년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91년 ‘경마장 가는 길’, ‘베를린 리포트’, 92년 ‘그대 안의 블루’, 93년 ‘웨스턴 애비뉴’ ‘그 여자 그 남자’ ‘장미의 나날’, 95년 ‘블랙 잭’ 98년 ‘처녀들의 저녁식사’ 99년 ‘송어’ 등이 있다.
이렇게 강수연의 경력을 대충 나열해 봤지만 이런 화려한 경력에서 알 수 있듯이 강수연의 인생은 곧 영화의 인생이라 할만 하다. 말문이 트이자마자 연기를 시작한 강수연은 아역 탤런트로 활동하던 중 이혁수 감독의 ‘핏줄’로 영화를 시작하게 된다. 영화 데뷔 후에도 얄개 드라마 등 연속적으로 출연을 하였으나 언제부턴가 브라운관에서 모습을 감추고 영화에만 전념한다. 80년대 중반 부터 약 10년간은 강수연의 전성기였다. 그 시발점은 물론 ‘씨받이’였다.
강수연이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 세계적인 월드스타로 만든 작품은 ‘씨받이’이다. 강수연은 이 영화로 베니스 영화제에서 최우수여우상을 받으면서 주목받고 인정을 받게 된다. 씨받이는 베니스의 시사회에서 4백~5백명의 관객들로부터 5~6분간의 기립박수를 받았다고 한다. 그 영화제의 최우수작품상으로 수상된 작품도 영화가 끝난 뒤 고작 30여초의 박수가 있을 정도였는데 ‘씨받이’는 5분여간의 기립박수를 받았다고 한다. 물론 작품 자체의 뛰어남도 있었겠지만 강수연의 뛰어난 연기때문이기도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씨받이’는 당시 유럽의 언론들에게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유럽 영화에 큰 자극이 될 만한 작품”이라는 평까지 받았었다. 강수연은 세계 평론가들의 호평을 받으며 민족적 자긍심까지도 느꼈다고 한다. 이렇게 해외에서는 강수연과 ‘씨받이’가 격찬을 받았지만 국내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흥행면에서도 1만 7천여명의 관객밖에 들지 않았고 단지 강수연이라는 아역출신의 배우가 국제영화제에서 상을 탔더라 정도로 인식되며 강수연을 알리는 계기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나 강수연 자신은 80년대 만든 임권택의 작품들이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더 좋은 평가를 받을 걸 감안하며 ‘의외’란 느낌은 갖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국내외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며 작품들을 선보였던 한국의 거장 임권택 감독이 당시에 강수연을 기용한 것은 약간은 의외라고 생각한다. 아마 그것은 임권택의 모험이였을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강수연은 아역으로 널리 알려지 상태였고, 그런 배우를 ‘벗긴다’는 것은 분명히 부담이였을 것이다.
그러나 며칠전 과제물을 위해 ‘씨받이’를 보면서 난 몹시 놀랐다. 당시 19세라는 나이를 느낄 수 없을 정도로 강수연은 너무나도 능청스럽게 성인연기를 잘 해내였던것 같다. 아무리 보아도 강수연의 천부적인 재능이 없었으면 베니스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을 ‘씨받이’는 있을 수 없을것 같다. 역시 ‘씨받이’가 강수연을 만든 것이 아니라 강수연이 ‘씨받이’를 빛낸 것이다. ‘씨받이’에서의 강수연을 보면서 혹시나 강수연이 아이를 낳은 경험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까지 해 보았다. 어쨋든 강수연은 조선시대 유교적 사회규범에 희생양이 되는 여인 역을 19살의 어린 나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리얼하게 소화해내었다.
그리고 88년 삭발연기로 화제를 모았던 ‘아제아제바라아제’로 모스코바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다. 국제 영화제 수상작 이외에도 강수연은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 ‘고래사냥’에서의 청순하고 귀여운 역, ‘그대안의 블루’,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에서 능력있고 당당한 페미니스트역,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장미의 나날’에서의 요부 역 등 다양한 연기를 보여주면서 한국 최고의 여배우 임을 확인시킨다.
그러나 90년대 중반부터 들어 강수연은 과거에 비해 눈에 띌만한 성과를 올리지는 못하고 주춤해 하고 있다. 다양한 역할을 통해 연기의 변신을 시도하고 있지만 과거의 이미지를 뒤엎거나 뛰어넘는 연기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듯 하다. 그리고 과거의 흥행보증수표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흥행에서도 저조한 성적을 보이고 있다. 이렇게 슬럼프를 겪고 있지만 강수연은 여러 모습에서 별로 게으치 않는듯 하다. 관객의 입장에서 강수연은 아역때부터 평생 배우를 할 것이고 그러다보면 흥행되는 영화보다 안되는 영화가 더 많을 거란것을 잘 알고 현명하게 대처하고 있는듯하다. 흥행에 연연하게 되면 오랫동안 배우생활 못할것이라는 것을 알며 여유 있는 자세마저 보인다. 오직 '영화'라는 외길 만을 고집스럽게 걷고 있는 강수연이야말로 진정한 영화인이 아닐까. 현재 배우로서의 활동뿐만 아니라 국내․외 각종 영화제의 심사위원으로도 많은 활동을 하며 한국영화를 세계에 알리는데 더 많은 힘을 쏟고 있는듯하다.
그러나 흥행의 잣대로 보면 강수연에게 요즘의 슬럼프 기간은 너무 끔찍할 것 같다. 아무리 본인이 여유를 가지고 흥행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해도 결국은 영화라는 장르자체가 상업적 성격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요즘의 ‘블랙잭’과 ‘깊은 슬픔’은 서울 개봉관에서 채 3만명도 못 채우고 간판을 내렸다. 충무로에서 ������강수연은 한물간 배우������라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정말 강수연의 시대는 갔을까.. 그러나 곰곰이 따져보면 강수연이 흥행 보증수표라는 평판을 얻은 적은 딱히 없다. 90년대 초반 ‘경마장 가는 길’, ‘그대안의 블루’, ‘그여자 그남자’ 등이 관객을 끌었지만 그에게 ������월드스타������라는 별칭을 얻게 한 임권택 감독의 ‘씨받이’나 ‘아제아제 바라아제’도 흥행에 성공한 영화는 아니다. 그냥 사람들이 남자 영화배우하면 ������안성기������, 여자 영화배우하면 ������강수연������을 떠올릴 뿐이다. 극장에 가야 만날 수 있는, 20년 이상 같은 자리를 지켜온 배우라는 흔치 않은 매력 때문일 것이다.
사실 1976년부터 22년간 스크린을 지킨 배우에게 흥행성적이 절대적일 순 없다. 관객이 많이 들었다고 훌륭한 영화일 수 없듯 형편없는 흥행을 기록했다고 배우의 연기를 문제삼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강수연이 늘 ������영화배우 강수연������ 이미지 안에 갇혀 있다는 비판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90년대 그가 나온 영화들을 보노라면 왠지 모를 답답함이 있다. 매번 다른 배역인 것 같지만 언제나 눈에 들어오는 건 극중인물보다 영화배우 강수연이다. 강수연은 비슷한 톤으로 말하고 움직이며 별 다르지 않은 화장법으로 꾸민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무려 24년간 영화 안에 살았던 배우라는 사실이 강수연에겐 엄청난 부담일 것이다. 강수연은 영화에 출연하지 않을 때는 인터뷰에도 응하지 않을 정도로 스크린 바깥 세상과의 만남을 꺼린다고 한다. 마치 영화가 아니면 존재하지도 않는 사람처럼, 관객은 지난 영화의 이미지에 겹친 강수연의 다음 영화를 볼 수 있을 뿐이다. 심지어 몇년 전 찍었던 맥주 CF는 그가 영화배우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엄청난 규모의 항공촬영을 동원했던 기억도 난다. 강수연도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이는 강수연의 치명적 약점일 것이다. 강수연에 대해 너무 많은 게 공개돼 있기 때문에 관객은 영화를 봐도 극중인물이 아니라 강수연으로 보게 되는 것이다. 과연 강수연은 영화적인 환영으로 가득 찬 이미지의 성채를 벗어날 수 없는듯하였다.
이런면에서 90년대 후반의 작품 ‘처녀들의 저녁식사’는 강수연은 어느정도의 성공을 거두었다. 노처녀들이 밝히는 성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풀어가는 이 영화에서 강수연은 성에 대해 개방적인, 잘 나가는 디자인회사 사장 호정으로 등장한다. ‘그대안의 블루’와는 또다른 각도에서 페미니즘 논쟁을 일으키기도 했던 작품인것 같기도 하다. 이 영화에서는 잘 벗지 않기로 유명한 강수연의 섹스장면이 있다. 하지만 행위 위주의 장면은 아니다. 분명히 얼마나 벗었고 안 벗었고가 영화를 빛나게 하는 것은 아니니까.. ‘지독한 사랑’때 대역을 썼다고 하는데 그것도 썩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아마 대역을 쓴 장면이 더 나아서 강수연은 대역을 썻을 것이다.
강수연의 가장 최근 작품은 ‘송어’이다. 얼마전에 ‘송어’ 란 작품을 보았는데 영화자체에서 강수연의 비중이 그렇게 컸다고 생각지는 않으나 가장 강수연답고 좋은 인상을 남긴 작품이였던거 같다. ‘송어’에서의 돌발적인 상황이 닥쳤을 때 극도의 이기심을 드러내는 악녀적 캐릭터는 다시금 강수연의 매력을 느끼게 해준다. 강수연의 곤두선 눈길과 얼음장같은 말투는 이 영화의 긴장미를 더해줬던것 같다. 영화에서 강수연은 자기가 차버린 옛날 애인이 동생과 가까워지자 묘한 질투심을 느끼는가 하면 그들의 정사사실을 눈치챈 후에는 새파랗게 독이 올라 어쩔줄 모르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급기야는 자신의 남편이 친구와 저지른 일을 옛 애인에게 뒤집어 씌워버리는 장면에선 섬뜩함마저 느끼게 한다. 강수연의 암팡진 눈매와 똑똑 부러지는듯한 말투가 ‘송어’에서 이런 캐릭터에 사실감을 더해준다. 강수연은 아직도 자신에 대한 애정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옛애인을 향해 뾰족한 송곳을 들이댈만큼 자신의 안일을 위해선 가차없이 잔인한 여자인 것이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강수연은 최근들어 가장 생동감있고 자신에게 어울리는 배역을 맡았던거 같다. 결국은 이기심으로 귀결지어지는 복잡한 여자의 심리를 그녀는 정확하게 묘사해냈다.
뚜렷한 이목구비에서 풍기는 긴장미는 강수연의 강점이다. 작은 얼굴에 비해 유난히 높은 날선 코에서 느껴지는 자존심과 오기는 평범함을 거부하며 작게 오무린 입술은 여성적이면서도 야무져 보인다. 강수연은 이런 얼굴을 능숙한 연기력으로 때로 소녀처럼 천진스럽게 변화시키는가 하면 때로 요부처럼 관능적으로도 돌변시킨다. 그리고 ‘송어’에서처럼 자신의 악마적인 면을 섬칫하도록 드러내는가 하면 어느새 천연덕스럽게 감춰버리는 이중적인 인간형을 마치 다른 사람처럼 연기해낸다. 강수연은 천사와 악녀의 두 얼굴을 가진 배우인것 같다.
강수연은 관객층이 그리 두텁지 않으니까 신경쓰지 않을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항상 여유로운 강수연의 모습을 볼 때 그리 불안해 하진 않는듯 하다. 강수연은 강수연이기 때문에 아마 강수연은 나이가 들어가도 자신의 나이에 맞게 해나갈 부분을 알맞게 찾아 나갈 것이다. 어쩌면 ‘월드스타’ 강수연이 주연이 아닌 단역으로 영화에 나올 날이 있을지도 모른다.
강수연이 제작자나 감독을 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강수연은 역시 배우 강수연이 가자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우에 대한 열정이 누구보다도 깊어 보이니까..
이렇게 강수연에 대한 극찬아닌 극찬들을 늘어놓기는 했지만 사실 요즘들어 강수연이 너무 답답해 보인다는 생각을 많이 해보았다. 본인이 누구보다도 그것을 넘저 이겨내려 노력하고 있겠지만 앞에서 말했든 영화에서 보이는 강수연은 모두 똑같다.
너무 경직되어 있고 자신감에 가득차 보인다. 그동안의 강수연을 이끌어 왔던 명성들이 과연 이러한 시점에는 강점이 될까 단점이 될까..
하지만 언제봐도 강수연은 싫증나지 않는다. 아마 영화에 대한 그녀의 열정때문일 것이다. 까다로운 듯 하면서도 화끈한 강수연. 프로의식과 천부적인 재능으로 똘똘 뭉친 강수연의 이름 석자에 한국 영화의 자존심이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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