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 수묵화 이미지에서 출발한 탈 이념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은 막다른 계곡에서 희마의 마을 동막골의 동림으로 우리를 영접한다. 개망초처럼 흔히 볼 수 있는 지명 ‘동막골’은문명의 이름으로 우리가 버려왔던 코리아토아의 전형을 제시한다. 연극과 영화에서 유니크한 장진의 상상력은 연극이 되었고 박광현 감독에 의해 몇 배 승화된 영상물로 빚어졌다. CG는 영화의 완성도와 환타지 분출에 지대한 기여를 하였고, 현란한 철학적 미장센은 압축된 서정적 수채화와 근사하다.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품은 마을은 자유를 상징하는 빠삐옹의 부드러운 비상으로 미지의 사람들을 초대한다. 전쟁의 이면에 상반된 상황과 안티테제가 자연스럽게 자리한다. 초대된 모든 사람들 모두는 운명처럼 ‘동막골의 선한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집단 최면에 걸린 듯 등장인물들은 일순간 전쟁이 정지된 꿈을 꾼다. 그들을 가두어 버린 스승은 꽃들과 나무, 새들과 곤충, 계곡과 산들, 맑은 물과 검푸른 나무들이다. 동막골의 전설은 광고처럼 환타지로 피어오르고, 이 환타지는 영화를 만든 앞배우나 뒷배우, 관객들 모두 하나가 되게 만든다. 산골 동막골에서 벌어진 모든 해프닝은 전쟁을 무색케 만든 통일 한마당이었다. 이를 뒷받침한 것은 우선 색채와 리듬, 빛과 사운드였다. 박광현의 통일해학은 우리 고전이 갖는 은근하고 심오한 묘미를 맛보게 하고 그의 독특한 영상철학을 읽게 해준다. 감독의 영상언어는 비쥬얼의 친화력, 현란한 시각효과에 상승된 근접 이미지로 토속적 대사와 환타지를 이끄는 음악을 잘 콘트롤 해내고 있다. 그의 이번 작업은 '쉬리', '공동경비구역 JSA', '태극기 휘날리며', '간첩 리철진'의 투박한 반공 이데올로기 해체작업을 말끔하게 정제한 통일지향 영화이다. 해방이후엔 광복영화가 있었다. 그리고 반공영화의 어두운 습지를 지나 통일영화가 광복 60년을 경축이라도 하듯 우담바라처럼 만개한 것이다. 특히 주목할 대목은 그가 그려낸 인간들은 현대라는 때를 입기전의 순박한 우리들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기에 더욱 낯설은 모습들로 우리에게 다가온 이 영화는 ‘남과 북이 하나가 된다면 통일은 온다’는 강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 핵심은 인간이다. 종교나 이념을 초월하는 동막골 사람들에게서 정답을 찿을 수 있다. 유니폼을 제거하고 한복을 입으면 우리는 하나이다. 심지어 제3자도 우리가 될 수 있다. 영화를 밀도있게 만드는 긴장감, 이를 이완시키는 장치들은 곳곳에 포진해 있다. 이 엄청난 영화적 수다는 수사, 즉 심오한 상징성을 낳는다. 동막골 사람들은 긴장감을 이완시키는 장치들 중 하나이다. 일순 모든 것을 무력화 시키는 행동의 범례들은 웃음을 유발하지만 전쟁의 참혹함을 우회시키고 반성하게끔 만든다. 가벼운 웃음 뒤에 깔리는 노장사상은 미친 것도 아름답게 하고, 사랑하게끔 만든다. 총은 나무 막대기, 전투기는 아이들 놀이터, 복장과 계급이 없으면 형과 아우, 슈류탄이 옥수수를 팝콘으로 만들어도 즐거운 세상에서는 만물동근의 순수만 있을 뿐이다. 무소유의 일깨움에서는 원초적 본능도 초월할 수 있다. 지켜내야 할 동막골은 우리의 본디 모습이고 지향해야할 미래의 본향이다. '웰컴 투 동막골'은 풍부한 영화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코리언들을 하나로 묶는 사랑의 묘약이다. 박광현은 화려한 광고의 스포트를 과감하게 벗어던지고, ‘웰컴 투 스크린’에 진입한 진정한 통일 일꾼이다. 통일감자와 고구마가 익을 무렵 멧돼지에 막걸리를 마실 날도 멀지 않을 것이다. 히사이시 조의 음악은 그날의 우리를 축하하듯 동막골의 추억을 여운으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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