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경 안무의 ‘스타팅 포인트, Starting Point’는 반복적인 삶의 지침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이루어 내려는 젊은 안무가의 의욕적인 의도가 엿보이는 작품이다.
어둑했던 장면이, 이내 무대 한 켠에 있던 한 여인을 비춘다. 여인은 어찌된 영문인지, 층계에 머리를 박고 거꾸로 서 있다. 아슬아슬한 자태. 아찔한 그녀. 다른 한 켠에는 건장한 남자가 쉴 세 없이 반복적인 리듬을 타며 서성인다.
그런 그에게 어떠한 틈(闖)이란 없어 보인다. 이들은 무엇을 하고 있나?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언제까지 저럴 참인가. 하던 끝에 그가 그녀를 응시한다. 층계를 가까스로 내려오는 그녀. 공간을 뒤흔드는 아득한 바이올린 연주음이 무대를 메운다.
가슴을 쥐어짜는 그녀. 꽤나 괴로운 듯하다. 그녀의 관절 관절의 움직임에 테엽 감는 소리가 더해진다. 더 깊이, 더 빨리. 뒤 돌아보기를 간구하지만, 그런 그녀를 온몸이 거부한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하늘을 응시할 뿐. 그녀는 무엇을 그토록 갈구하나? 그런 그녀의 뒤엔 언제나 처럼 그가 우두커니 서 있다.
점점 압박해 오는 테엽 감는 소리. 만나는 그녀와 그. 그녀를 옥죄여 오는 그. 벗어나려 해도 벗어날 수 없는 속박. 그리고 숙명(宿命). 그를 쫓아가 있는 힘을 다해 마지막 발악을 해 보지만, 그에게 제압당할 뿐 당해내진 못한다. 필사적인 몸부림. 그녀는 맹렬히 갈구한다.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것. 그녀에게 있어 그것은 무엇인가? 그토록 처절하게 자신을 내던지며, ‘일탈’을 꿈꾸지만 허락되지 않는다. 이제 무대는 태엽 감는 소리와 가쁜 숨을 몰아쉬는 그들만이 있을 뿐이다. 이내 혼자 남겨진 그녀는 다시 또 다시 하늘을 향해 힘없는 가냘픈 손을 뻗어본다.
그 가냘픈 손에서 우리는 ‘일상’에 대한 명쾌한 해답의 부재(不在)를 볼 수 있다. 계단을 오르는 그녀. 다시 원점이다. 아,.이 고된 삶의 무대는 다시 들려오는 태엽 소리로 끝을 맺는다. 이보경의 무대는. 무음( 無音 )의 시도와 간간히 테엽 소리만을 사용함으로, 실험적인 무대를 마다하지 않는다.
관객과 함께 호흡하며 무용수의 움직임에 집중케 할 수 있는 힘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러한 의도가, 반복적인 일상에의 표현을 상징성 있게 잘 드러내주었다는 점도 주목 해 볼만 하다. 특히, 무용수들의 느슨한 듯 하면서도 긴박한 춤사위가 25분 내내 관객들의 심신(心身)을 여유 있게 붙잡았다.
넓은 공간을 충분히 메울 수 있는 이들 이인무의 흡인력과 풍요(豊饒)에 관객들은 아낌없는 박수갈채를 보낸다. 다만, 생각 하고 싶은 것은 '일상'이라는 이미 많이 노출되었던 평이한 소재를 풀어나가는데 있어, 관객의 입장에서 이 작품만이 가지는 다른 반전과 요소를 기대했다면, 큰 오산일까?
무용수의 뛰어난 기량만이 무대를 완성 시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작품을 관람하는 관객들의 생각과 느낌을 마음껏 아우를 수 있는 감각적이고 도전적인 연출의 시도가 아쉽다. 그런 점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은 무대에서 눈을 떼지 못하였으며, 그들의 몸짓과 함께 호흡한다. 이것은, 이 무대가 주는 흡인력의 반증이다. '변화 없는 일상의 반복성'이라는 인간의 대표적인. 그래서 약간은 고루한. 하지만, 영원한 인간사의 과제인 ‘일상’이라는 주제를 소신껏 차분하게 풀어나간 이보경의 ‘스타팅 포인트, Starting Point’ 에서 우리는 평생에 걸친 고질적인 고뇌의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누구나 한번쯤 생각 해 봤을 법한, 반복적인 일탈을 꿈꾸는 이러한 우리네 답답한 일상에 대한 성찰은, 불편한 진실인가, 배부른 투정인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김유진(춤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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