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선생,춤 바람 나다

강혜련 안무,연출의 '풍류-사구의 노래'

장코폴로 2009. 3. 24. 22:56

그리움, 동경, 추억으로 엮은 사부곡(思父曲)
강혜련 안무․ 연출의 '풍류-사구의 노래'
 
장석용 주간

 
2009년 봄소식은 강혜련(경기대 무용학과) 교수로부터 들려왔다. 겨울을 털어내기엔 이른 3월 6일(금) 8시 ,7일(토) 6시 아르코 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된 '풍류-사구의 노래, Flow of Wind,- Song of Sandhill' 는 인생의 굴곡과 정(情)의 스펙트럼이 퇴적된 사암층 전설에 관한 낭만적 서사를 현대 춤 형식으로 보여준다. 
 
안무가 강혜련은 우주 한가운데 홀로 서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실타래를 풀어 나아가듯 바람과 모래로 모티브를 삼아 테마를 엮어 나아간다. 삶과 죽음, 육체와 영혼의 혼재와 탈리(脫離)를 통한 환타 슈퍼리얼리즘은 폭넓은 이미지를 확장한다.
 
바람의 전설, 추억의 조각인 그리움은 풍류하고 부성의 핵심을 비집고 사구의 단층들을 보여주는 행위를 반복한다. 김수정과 김영재를 남 녀 무용수의 축으로 놓고 사층(沙層) 쌓기와 허물기는 만다라 의식 과정과 유사하다.
 
물의 흐름에서 바람의 흐름으로 중심 화제를 삼은 강혜련의 이번 작업은 ‘내안에 부는 바람’을 형상화한 것이다. 애잔한 사막의 미풍이 강혜련을 스치면 그리움이 충만한 무대는 사막의 살색으로 변하고 긴 인생행로 속의 역사, 퇴적된 저층의 신비/가력(家曆)이 밝혀진다.
 
경사면에 선 사내(김영재)는 사막의 신비를 연기해 낸다. 사막의 신비는 간명(簡明)한 명제, 장례식에 사용되는 말 ‘먼지는 먼지로, 재는 재로! Dust to Dust, Ash to Ash!’로 귀착된다. 소유와 집착을 버리고 해탈, 이타행을 선택한 자들이 자각했던 말이다.
 
반복되는 내레이션으로 겸허함을 일깨우며 안무가 자신의 신조로 삼겠다는 의지도 담겨있다. ‘이게 사막이야! Das ist Sand!'/’ ‘Es ist Leben.이게 인생이야!’의 이역(異域))인 자연에 대한 경외감, 기독교적 경건함, 절대자에 대한 순응적 태도를 보인다.
 
이곳에 부성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나를 감싼 바람, 나를 막아 준 모래언덕 들은 사라지고 황량한 겨울이미지, 그 잔상을 딛고 피어나는 강인한 자생력, 인고의 세월을 지나 지금을 이루었건만 정작 깨닫기도 전에 사랑은 만다라의 수행처럼 사라져 버린 것이다.
 
로우 앵글로 ‘쌓임’을 강조하던 조명은 모래 퇴적 스토리와 세월을 알리 듯 딥 블루로 변한다. 느림과 낭만, 조화와 흐름, 조합과 독립, 젠더와 통합, 순수와 치장, 부서짐과 쌓임, 고리와 절단, 투사와 현실감 등이 완급을 타고 채움과 비움의 미학을 연출한다.
 
강혜련은 느린 부드러움과 빠른 퀵 스텝으로 세월을 묘사해내며 다양한 모습으로 움직이는 바람들을 만들어 낸다. 때론 미세한 디테일로 때론 선 굵은 연출로 사막의 신비를 만들어 내면서 움묵단비의 참 뜻과 기쁨을 우리에게 보여 주었다.

『풍류-사구의 노래』의 하이라이트는 미세 먼지 모래가 쏟아지는 가운데 인간들이 생존하고 하나가 되는 모습이다. 삶은 쉬운 것도 아니고 죽음이 허무한 것도 아니다. 엄청난 모래의 떨어짐, 엄청난 서정은 무아지경과 열반의 모습들을 떠올리게 하며 가벼운 미풍과 뜨거운 훈풍, 삭풍의 괘도를 스쳐간다.
 
안무가 강혜련은 『풍류-사구의 노래』를 통해 여성특유의 섬세함과 미장센을 풍요롭게 만들었고, 무대공간 확장과 반복적 이미지 탐색을 한다. 몸의 아름다움과 신비감을 자연의 신비와 대비 교차시킴으로써 우리 현대 춤의 탐미적 매력을 배가시켰다.
장석용(문화비평가,국제영화비평가연맹한국본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