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월드컵의 열기 속에서도 영화 꽃은 피어나고
나의 2002년을 여는 의식은 2월말 동해의 영덕에서 시작되었다. 이 곳, 저 곳 게들의 활발한 움직임으로 뜨거운 여름을 예상했었지만 월드컵 4강까지 가는 기간은 뜨거워지지 않을 수 없었다.
고3 담임, 20년이 지나서야 맡아 본 고3 생활은 조감독 생활의 기다림과 같은 것이었다. 유현목, 김호선, 테렌스 영 등의 나의 조감독 생활은 녹녹한 것만은 아니었다. 허기짐과 기다림, 스노비즘과 겉멋을 배우는 꿈의 시간들이었다.
금년에는 우리영화 관객이 부쩍 늘었고, 대망의 세계 3대 국제영화제에서 수상도 하였다. 거품 제작비로 가득 찬 대형제작비 투입 영화들이 처참한 흥행 몰골로 들어났다. 수험생들에게도 월드컵이 끼어 있어 죽을 맛이었다.
전년 대비, 20.8% 늘어난 전국 영화 관객은 1억 800여 만 명에 달했다. 77편의 한국영화가 46.7%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했다. 작년 한국영화 흥행작 5편의 관객 점유율이 54.1%, 10편 점유율이 76.6%였다. 올해는 5편 점유율이 34.7%, 10편 점유율이 54.4%나 되었다. 30만 명 19개 작품 점유율은 76.7%로 집계되었다.
최민식이 열연한 임권택 감독의 조선조 화가 장승업의 일대기를 다룬 『취화선』이 칸 영화제 감독상(미장센 상)을, 이창동 감독의 장애녀(문소리)와 정상남(설경구)의 어긋난 사랑이자 정당한 사랑이야기를 다룬 『오아시스』가 베니스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파격적 장애연기를 벌인 문소리가 신인 배우 상을 수상했다. 이때부터 문소리의 시대가 열린다.
리메이크 판권 계약은 『가문의 영광』이 워너 브라더스에 미니멈개런티 50만 달러에 전 세계 수익 3% 조건에, 『조폭 마누라』가 미라 맥스에 95만 달러에 팔렸다. 『엽기적인 그녀』는 드림 웍스에 75만 달러에, 『달마야 놀자』는 MGM에 30만 달러에 팔렸다.
영화 제목만큼이나 엽기적인 연기와 파격적 대사로 짜여져 있는 『엽기적인 그녀』는 아시아권에서 흥행 대성공을 거두었다. 외할머니 집에서 보낸 나날들을 그린 『집으로…』는 국내시장 의 빅 히트와 미국 시장에서도 인기를 끌었다.
제7회 부산국제영화제는 칸, 베니스, 베를린 등 3대 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이 참가하여 11월14일부터 23일까지 선보였고, 부천영화제는 7월 11일 오프닝을 선언했다.
『예스터데이』,『아 유 레디』,『성냥팔이소녀의 재림』등의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흥행 참패는 영화제작 자본의 철수를 유도하는 상황에 까지 이르게 되었다.『101번째 프로포즈』제작 전에 벽산건설 김희철 회장이 나와의 면담을 요청했던 일이 생각났다.
한편『집으로…』,『폰』,『색즉시공』 등은 나름대로 관객을 모은 작품이었다. 특히 『집으로…』는 저예산 영화이지만 폭발적 관객을 모았다. 『집으로…』의 시나리오가 투자자를 찾아 떠돌아다닌 10년은 정말 이상했고, 이 영화로 영동 산골은 돈 냄새로 오염되었다.
거품 제작비로 배를 불린 결과 한국영화의 수익성 부실이 수면위로 떠올랐다. 6월 29일 월드컵 한국과 터키전이 있었다. 노인들의 성을 다룬 『죽어도 좋아』는 문제 장면 처리 이후 18세 관람가로 상영되었다. 서서히 비디오시장은 힘을 잃고, DVD시장이 부상했다.
올 해 극장에서 개봉된 만화영화는 이성강 감독의 『마리이야기』 한 편이다. 1967년 신동헌 감독의 『홍길동전』이 만들어진 지 35년 만에 제26회 안시 국제만화영화제에서 장편 경쟁부문 대상을 수상한 것이다. 미국, 일본, 프랑스 등 세계 3위의 만화영화 하청시장에서 예술성과 흥행성 양 측면에서 가능성을 인정받은 셈이다.
4대 만화 영화제 중 하나인 캐나다 오타와 애니 페스티벌에서는 한국 애니메이션 특별전이 열렸다. 국내에서는 만화영화 산업의 이모저모를 둘러볼 수 있었던 서울 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SICAF)이 5월4일부터 12일까지 남산에서, 춘천 애니타운 페스티벌(CAF 2002)이 8월13일부터 18일까지 개최되었다.
12월 19일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결과 여당 이회창 후보가 노무현 후보에게 참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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