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에 걸린 임산부의 선택 | ||
(장석용의 비디오산책) 솔베이 앙스파흐 감독의 '줄리엣을 위하여' | ||
영화 쓰기(영화연출)의 기본인 만연체냐, 간결체냐의 선택은 전적으로 감독의 몫이다. 메이저 회사에서 찍을 것인가, 마이너 독립영화사에서 찍을까도 마찬가지이다. '줄리엣을 위하여'는 간결체의 독립영화답게 군더더기가 없다. 담백한 오이소박이 같은 맛을 지닌 영화이다. 프랑스 영화 특유의 코미디도 없고, 대사도 수수하다. 일상의 소중함과 가족의 의미를 최우선 순위로 두는 스토리 라인 위에 가족과의 갈등이 비춰지고, 이웃은 더욱 정겹고 힘을 주는 에너지원으로 그려진다. 대학원생 애인 시몽과 첼리스트 엠마가 살림을 차린 생활공간은 도회의 뒤 골목이지만 그들은 기쁨과 미래에 대한 꿈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그들에게 찾아 온 것은 암을 겪고, 지켜보는 고통이다. 헤아릴 수 없는 암 치료의 고통은 동양과 다를 것이 없지만 참아내는 방법은 퍽 숙녀적(?)이다. 영화의 전개방법은 특별한 복선을 깔고 있지 않다. 차창으로 보이는 풍경과, 무균실에 갇힌 방에서 내다보이는 바깥 등 몇 개를 제외하고는 촬영도 비교적 냉정을 유지하고 있다. 올리비에 마누리, 마르땡 휠레의 공동 음악도 클래식에서 현대를 훑고 있지만 아픔을 참아내는 극기의 코드로 일관한다. 프랑스권의 영화가 간간이 눈에 띄는 한국 영화시장에 프랑스/벨기에 합작 암에 다룬 영화는 겨울을 털어 낼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우리들 만의 아프릴 바움으(Aprilbaum)으로 흡족하다. 감독의 체험을 영화에 옮긴 영화는 죽음을 건 도박으로 탄생한 줄리엣의 잉태를 상위 테제로 상찬한다. 젊은 한 쌍, 엠마(까랭 비야)와 시몽(로랑 뤼까스)의 축복을 받은 줄리엣은 눈물과 아픔으로 빚은 도자기와 같은 존재로 부각된다. 신의 선택이라면 성탄절의 전구 트리가 거리를 밝히고, 벚꽃이 꽃비로 내리는 날에도 우리는 아픔과 상실을 준비해야 한다. 이 영화는 그것이 인생이라고 말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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