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에세이

1991년 영화풍경

장코폴로 2009. 3. 1. 11:09

 

◆1991년


영화의 해, 신 한국영화의 도약 조짐   

  우리영화가 새로운 날개를 달았다. 13년 만에 최고제작편수를 갱신했고, 아시안 게임과 올림픽에서의 자신감은 ‘고부가 창출’이라는 시류의 명제답게 121편이라는 작품이 91년을 달구었다. 임선의 『코리언보이』에서 강우석의 『스무 살까지만 살고 싶어요』까지 생산된 91년은 종합촬영소가 첫 삽을 뜨던 해였다. 남양주 조안면 삼봉리 4월 17일 오후 3시는 영화사에 기록될 엄청난 시간이었다. 

  소재의 폭이 넓어지고 해외로케와 독립프로덕션이 의욕적으로 나서는 가운데 우리영화 기획은 피말리는 작업에 들어갔다. 22개국 354편의 외화가 오락영화의 기능을 하고 있을 때 우리영화들은 아직도 엄숙주의를 지키고 있었다. 일부의 영화들은 포르노영화랑 별반 차이 없는 양태를 보이고 있었다.

 안정효의 『은마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김은국의 『순교자』못치 않는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고 장길수에 의해 영화화 되었다. 인본주의를 바탕에 깐 임권택의 『개벽』은 동학교주 최시형의 모습과 시대적 사명, 지식인의 고뇌를 새로운 시각으로 보여 주었다. 윤심덕의 생애를 그린 김호선의 『사의 찬미』는 김호선 만이 가질 수 있는 끈질김과 중후한 러브스토리로 다듬어져 관객들의 적극적 지지를 받았다.

 30회 대종상은 최우수작품상에『 개벽』, 우수작품상에 『사의 찬미』,감독상에 김호선, 남우주연상에 이덕화(『개벽』),여우주연상에 장미희(『사의 찬미』), 27회 한국백상예술대상엔 『은마는 돌아오지 않는다』가 작품상을 비롯한 5개 부문을 수상했고 제15회 몬트리얼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과 각본상을 수상했다. 11회 영평상엔 박광수의 『그들도 우리처럼, 5회 싱가폴영화제 최우수 작품상 수상』이 작품상을 비롯한 4개 부문을 수상했다. 12회 청룡상의 최우수작품상과 2회 춘사예술상은『사의 찬미』에 최우수 작품상을 수여했다.

 강우석의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 김유민의 『푸른 옷소매』, 김한성의 『토끼를 태운 잠수함』, 김현명의 『서울의 눈물』, 박광수의 『베를린 리포트』, 박철수의 『테레사의 연인』,선우완의 『피와 불』, 오석근의 『네멋대로 해라』, 원정수의 『잃어버린 너』,유영진의 『아그네스를 위하여』, 이석기의 『낙타는 따로 울지 않는다』, 장길수의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 장선우의 『경마장 가는 길』, 정지영의『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등이 영화족보에 명함을 내밀었다. 하명중의 『혼자 도는 바람개비』는 인도 대호 제7회 국제영화제에서 특별상을 수상한 우수 작품이다.

 91년 우리영화는 서울개봉관 숫자로 태흥영화의『장군의 아들 Ⅱ,임권택』이 35만 관객동원으로 90년에 이어 연속 흥행 톱을, 외국영화는 제리주커 감독의 『사랑과 영혼』이 112만 명의 관객을 동원 흥행 톱을 기록했다. 

  한국영화 톱10은 ①『장군의 아들 Ⅱ』②『나의 사랑 나의 신부』③『잃어버린 너』④『사의 찬미』⑤『젊은 날의 초상』⑥『수잔 브링크의 아리랑』⑦『은마는 오지 않는다』⑧『낙타는 따로 울지 않는다』⑨『아그네스를 위하여』⑩『돈아 돈아 돈아』이다.

 91년 총 영화 관람객수는 5천2백19만6천6백54년이었다. 평균관람료는 작년보다 15%인상된 3천34원이었다. 

 91년 전국의 극장은 소극장 5백 22개 합쳐 7백 62개로 집계되었다. 북한은 극영화 23편, 기록영화 13편 총37편의 영화를 제작했다. 문화영화는 21편, 광고영화는 305편이 제작되었다.  우리영화 수출은 6개국 21편에 47만 2천 8백 50 달러가 수출되었다.

『파업전야』가 민예총에 의해 민족예술상을 수상했고, 3월1일 이정국의 『부활의 노래』가 개봉되었다. 새로운 기운이 감도는 영화계에 역동적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알을 깨기 직전 여명의 붉은 기운은 서서히 터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