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에세이

침잠, 군산포구에 함박눈은 내리고…

장코폴로 2009. 2. 13. 12:47

◆1981년


 침잠, 군산포구에 함박눈은 내리고…


  1981년 이월, 청년 자유인 장석용은 대학졸업식장에 후배들을 격려하려 들렸다. 파이프 담배를 즐기시던 장남준, 정 투성이 이병우 교수, 완전한 독일병정 전영운 교수 삼총사를 배알하고 나오던 나에게 이병우 교수님은 연극인으로 삶이 고달플 것이라며 교사생활이 어떻겠냐고 우선 6개월간만이라도 선생하라고  군산동고로 추천장을 써 주셨다.

 고속버스로 호남 땅 군산에 도착한 나는 선임 김창렬 선생님을 뵙고 이병우 교수님의 안부를 전했다. 동안이시던 김창렬 선생님은 대선배 두홍룡 선생님을 소개하였다. 이병우 교수님은 아동용 TV 시리즈 『말괄량이 삐삐』를 번역한 분 이셨다.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가운데 허름한 막걸리 집에서 만난 세 사람은 눈과 인연의 소중함을 가지고 대화를 나누었다.

 이렇게 시작된 시골 교사생활은 채만식의 『탁류』,고은의 『화엄경』의 배경이 되었던 이곳저곳을 살피는 계기가 되었고, 호남의 한과 정서, 예술이 나올 수밖에 없는 분위기도 탐색하게 되었다. 그러는 가운데 『거짓말』의 주인공 이상현에게서 동경어린 편지가 오고, 나의 군산칩거를 그리워하는 많은 친구들이 군산탐방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역전의 명수 군산고를 옆에 하고 『TV 문학관』의 홍성룡 피디, 군산 출신의 김성환, 김수미, 심지어 『빨간 피터의 고백』의 추송웅씨도 만나는 계기가 되었다. 군산에는 단체관람을 주로 하던 군산극장을 비롯하여 네댓 개의 영화관이이 있었다. 극장 앞에는 홍등가가 있었고, 월명공원 아래 중앙동의 번화가가 선원들과 미군들을 특히 반기고 있었다.           총각선생 최창규는 독서량이 엄청난 호남선비의 품위를 유지하고 있었고, 이어 온 이정은 막걸리를 선호하는 대학 출신답게 대주가 이었다. 김경연, 이병태, 박성수 등 선배들이 주도한 술자리는 인생과 예술, 조국과 광주를 안주 삼아 대 토론의 밭을 갈고 있었다.

 쌍치와 군산포구, 전주와 이리, 시골로의 일탈과 바닷바람, 예술의 향기와 꿈틀대는 주먹, 드넓은 평야와 넉넉한 마음, 그 가운데서 생략과 압축의 시나리오 창작의 기본을 배운 곳이었다. 갑사, 동학사, 선운사, 백양사, 화엄사의 그윽한 분위기를 즐기면서 넘어가던 군산의 추억은 낭만 그 자체였다. 생선회를 처음 먹어 보게 되고 은파 유원지의 별밤을 즐기던 때는 언제나 전설처럼 남아 내 창작노트의 일부분이 되었다. 

 81년, 삼양동 맨으로 소설하나 달랑 들고 국회의원이 된 이철용의 소설을 영화화한 이장호의 『어둠의 자식들』, 헤르만 헤세의 『知와 사랑』,원효와 이상의 분위기를 일게 해주는 임권택의 『만다라』는 대범함과 한국영화의 질적 향상을 가늠케 해 주었다.『만다라』는 지산(안성기)과 송운(전무송)의 번뇌와 해탈을 그린 영화로 임권택을 국제적 감독으로 만들어준 영화였다. 정진우의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는 관능미 물씬 풍겨내는 향토사극이었다.

 전국의 극장은 불황의 여파로 800석 이상 기준으로 작년보다 63개나 준 403관, 극영화 87편 제작에 방․외화를 전국 4천4백4십4만3천1백22명이 즐긴 가운데 절반가량이 우리영화를 즐겼다. 태창의 『도시로 간 처녀』가 운수노조의 항의로 상영중단이 되던 해였다. 이런 가운데에서 나는 전주 전국체전에 도움을 주고자 방송사들을 부지런히 뛰어 다녔다.

 김호선의 『세 번은 짧게 세 번은 길게』는 고도성장시대의 소시민 김종실(송재호)의 성공 드림과 좌절을 그린 영화로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멜로드라마 박호태의 『자유부인81』,김성수의 『색깔 있는 여자』, 정소영의 『겨울로 가는 마차』는 여전히 끈적끈적한 밤 이야기를 그리고 있었고, 최하원의 『초대받은 사람들』은 종교적 메시지를 풍기고 있었다.

 43회 베니스영화제에서 이두용의 『피막』 은 경쟁부문에 참가하게 되었고, 자유제작 선언과 완전 성인영화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전군가도의 벚꽃터널을 넘나들면서 도시와 소도시의 느낌들을 매주 느끼면서 도약을 꿈꾸던 나는 일년 만에 사표를 내고 말았고, 시인 채규판 선생은 만류를 거듭하였다. 오송회 사건에 연루되었던 이광웅의 처 김문자 미술선생의 걸쭉한 농담이 오가던 군산, 아직 그때의 서투름과 호기심, 회한과 감동의 일상들은 나를 감싸고, 나를 반추하며, 삶을 성찰하는 지침으로 새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