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유 프로덕션과 충무로의 우울
유현목 감독은 당시 동국대 연극영화과 교수이자 병행하여 유 프로덕션이라는 문화 영화사를 가지고 있었다. 중구 충무로 3가 51-7, 그 빛나는 주소 위로 모인 젊은 영화학도들은 지금은 모두 별이 되어 있다. 변변찮은 살림살이에도 불구하고 매일 집에서 용돈을 타다 쓰는 생활에 나도 자신에게 무척 화가 나 있었지만 부모님들은 나를 믿고 기다려 주셨다. 79년 이영욱 감독의『우리는 밤차를 탔습니다.』에서 김시현 감독의 『무림5걸』까지 한국영화는 시시껄렁한 영화들이 판을 치는 가운데 서울 12개 개봉관 국산극영화 흥행 베스트 10은 ①『속, 별들의 고향』(하길종 감독)②『내가 버린 남자』(정소영 감독) ③『꽃순이를 아시나요』(정인엽 감독) ④『마지막 찻잔』(정소영 감독) ⑤『병태와 영자』(하길종 감독) ⑥『26×365=0』(노세한 감독) ⑦『청춘의 덫』(김 기 감독)⑧『가을비 우산속에』(석래명 감독)⑨『을화』(변장호 감독) ⑩『당산비권』(이정호 감독) 이었다. 특히 명보극장에서 개봉된『속, 별들의 고향』은 신선한 에로티시즘에 많은 인기를 끌었다.
한국영화 60주년이 되는 1979년의 외국영화는 원화평 감독 성룡 주연의 『취권』이 1위를 차지했고 2위는 리 제이 톰슨의 『패세이지』,3위는 『깊은 밤 깊은 곳에』였다. 특히 마이클 치미노의 『디어 헌터』와 프랑크 제피렐리』의 『챔프』는 깊은 인상을 준 작품이었다.
『… 여자』제목이 붐을 이루어 호스티스물이 극성을 이룬 가운데 동서영화동우회는 유 프로덕션의 한 모퉁이를 차지하고 사무국장인 나는 고행을 하고 있었다. 이 때 사무실에 들른 전양준(지금은 부산 국제영화제 국제 프로그래머)과 같은 많은 영화학도들이 있었다. 문화영화를 찍던 선배들은 쥐포 한 마리에 소주 한 병을 해치우는 괴짜들이었다. 충무로 유프로덕션 앞 라면 가게는 지금은 주차장으로 변했다.
유현목 감독님에 의해 『장마, 제18회 대종상 우수작품상』이 만들어지고 임권택 감독의『깃발 없는 기수, 제18회 대종상 최우수작품상』이 두각을 나타내었다. 79년은 극영화가 96편 제작되었다. 멜로/ 43편, 액션/15편, 문예물/14편이고 특이한 점은 70년대 들어 처음으로 아동영화가 4편이나 만들어진 점이다. 당시 우리영화의 편당 수출가는 4,800 달러, 일인당 평균 관람회수는 0.74회였다.
불확실성의 시대에 영화학도들 모두는 좌절하고 있었다. 1978년 12월 8일 창립된 동서영화동우회는 한국과 독일 양국을 영화교류를 통하여 고전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국적을 초월한 영화 연구, 토론을 함으로써 보다 높은 차원의 영화 풍토를 마련, 양국의 문화발전과 친선에 기여하겠다는 사명에 불타 있었고 희망의 메시지처럼 비춰졌다.
노벨극장이 1월1일 폐관되었고, 1월 8일부터 31일까지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노스페라투』,『피곤한 죽음』,『최후의 미소』, 『영혼의 비밀』,『파우스트』,『메트로폴리스』,『서부전선 1913년』『푸른 천사』,『살인자를 찾는 도시 M.』등 10편이 독일문화원에서 상영되었다. 독일문화원 로비에서 회원 배가운동도 펼쳤고 노총각 변인식 선생이 데이트를 하는 모습이 자주 보였던 때였다. 당시 4월 15일자로 전국의 공연장은 4백 89관이었다.
당시 최고의 젊은 영화제는 청소년영화제였고 제5회째 되었다. 대종상 영화제 부문상 수상자는 해외여행 부상이 주어졌다.
만화영화들은 방학이 되어도 극장을 잡지 못했다. 1년간 서울 개봉관을 찾은 관객 수는 1천 3백 17만 9천명이었다.
1979년 2월 초,서울 혜화동 로터리 고려대 병원, 식물인간 상태인 하길종 감독을 유현목,변인식, 장석용 등 동서 멤버들이 방문했다. 그러나 하감독은 끝내 2월 28일 고인이 되었다. 장 르노와르와 존 웨인이 작고한 해이기도 하다.
1979년의 우울은 육군사관학교로 군 생활을 하면서 끝나고 말았다. 그리고 새로운 나의 운명의 길을 나는 가늠할 수 없었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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