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만추, 월명공원에 가을은 깊어
군산을 조망하는 공원은 월명공원이다. 고군산 열도를 가슴에 다 안을 듯 공원에 올라 저 푸른 바다를 타고 다가온 추운 영화의 겨울을 어떻게 되어갈까를 생각해 보았다. 나의 갈등은 끝없는 기다림과 그리움 아쉬움으로 군산에 남을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서울둥지를 틀 것인가를 걱정해야했다. 바다는 영원하건만 나는 매의 비상을 꿈꾸고 있었다.
김수용 감독의 『만추』는 2월 4일 제2회 마닐라 국제영화제에서 김혜자가 여우주연상을 타는데 만족해야했다. 가을이 남긴 긴 꼬리를 밟으며 『만추』의 시니피앙과 시니피어을 생각했다. 앙빵 떼리블! 사랑은 가고 세월은 남는 것, 나는 남은 계절들을 추억 만들기에 몰두했다. 헤베의 술잔은 내적 성숙을 재촉하며 에트나 산상의 의미를 깨우치게 하였다.
『거짓말』의 이상현에게서 편지가 오고 장 감독을 찾는 울부짖음(?)이 먼데서 들렸다. 괴테의 도시로의 귀환을 떠올렸다. 전국 450개의 극장을 놀래킬 꿈들은 영글어 가고 있었다. 밤을 잊은 창작과 독서는 나의 육신을 피곤케 하였으나 맑은 정신으로 나를 이끌었다.
그런데 영화계에서는 비구니 파동과 신상옥, 최은희 실종사건으로 시끄러웠다. 당시 최대의 스타와 감독이 사라졌던 것이다. 신상옥 감독은 수많은 작품들을 지도했고, 북한에서 7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해방 후 남과 북에서 영화를 만든 최초의 감독은 『사랑 사랑 내사랑』,『심청전』,『탈출기』,『돌아오지 않은 밀사』,『소금』,『방파제』,『불가사리』로 북한 영화계를 꿈에서 깨어나게 했다. 그분들의 신화는 미스터리로 영원히 회자될 것이다.
91편이 제작된 83년, 1754만에 가까운 우리영화 지킴이들은 2648만 여의 외화 선호자들을 지켜보고 있어야만 했다. 이해 영화진흥공사 부설 영화아카데미 1기 신입생 12명이 입학되었다. 이들은 화려한 모습으로 지금 영화계를 주름잡고 있다.8월 30일 영화법 개정을 외치는 1200여명 영화인 대회가 서울예전 앞에서 있었다. 바야흐로 아픔을 깨는 본격적 진통이 시작된 것이다.
83년을 지킨 임권택의 『불의 딸』은(한승원 원작, 박근형, 방희, 김희라 주연) 샤머니즘을 조명한 작품이다. 또 지금은 건국대 연극영화과 교수가 된 배창호의 『적도의 꽃』(최인호 원작, 안성기, 장미희, 남궁원 주연)도 방탕한 옆집 아파트 여인을 구하겠다는 사나이의 이야기를 다룬 것으로 당시로는 파격적 현대감각을 갖춘 의미 있는 작품이었다.
1970년 『잃어버린 면사포』로 데뷔한 『이두용』의 『이조여인 잔학사- 물레야 물레야』(임충각본,원미경,신일룡,문정숙,최성호주연)는 이듬해 제37회 깐느 영화제에서 특별언급상에 선정되어 국제적 관심을 모았다. 이 작품은 양반 댁 죽은 아들과 영혼결혼식을 위해 팔려간 처녀 길례(원미경)의 운명을 다룬 작품이다.
조감독시절 원미경은 김호선의 『밤의 찬가』로 내가 줄곧 대면하고 지켜본 배우이다. 83년을 흥분시킨 작품들로 이장호의 『바보선언』(이동철 원작,이보희,김명곤 주연)과 『과부춤』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이태리 페사로 영화제에서 주목을 끈 『바보선언』은 넝마주이 동철(김명곤)과 창녀 혜영(이보희)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작품인데 이후 이장호를 연구하는 주요 텍스트가 되었다. 『과부춤』은 다섯 과부를 내세워 삶의 애환과 사회의 허구를 묘파한 작품이다.
정인엽의 『김마리라는 여인』이 히트하자 멜로드라마는 변장호의 『사랑, 그리고 이별』,문여송의 『사랑 만들기』,이두용의 『욕망의 늪』,이경태의 『풀잎처럼 눕다』,김수형의 『오 마담의 외출』등으로 번져 나갔다.
다시금 겨울의 언저리에 군산과의 이별을 위한 긴 입맞춤은 이어졌지만 그 이별은 이별이 아니었다.
'영화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땡볕아래 아이들 (0) | 2009.02.19 |
---|---|
무네미 동산과 풍납토성 (0) | 2009.02.19 |
완산벌 벚꽃에 새겨진 꼬방동민들의 바보선언 (0) | 2009.02.19 |
침잠, 군산포구에 함박눈은 내리고… (0) | 2009.02.13 |
제5공화국 출범과 물꼬 튼 영화세상 (0) | 2009.02.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