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샘 옆 미술관

국새를 만든 세불 민홍규

장코폴로 2009. 2. 5. 09:55

월드 전각 마에스트로-세불 민홍규  


 한국, 중국, 일본에서 오직 한 사람의 옥새(玉璽)전각 마이스터 세불(世佛) 민홍규 선생을 만난 것은 완산벌 전주에서였다. 잎사귀 없는 목련이 반기고 벚꽃 흐드러지게 핀 봄날, 자랑스런 한민족의 전형으로 나타난 그는 모던한 신선으로 변해 있었다. 먼동이 틀 무렵이면 이미 그는 작업에 들어가 있다. 새벽의 정기와 함께 그는 작업 무(舞)를 춘다.

 세불은 지리산 자락 산청에서 청출어람의 천재성을 인정받아 황소산, 석불(石佛) 정기호의 옥새 전통제작법 계보를 이어 받았다. 한학과 명상, 동양철학과 자기단련으로 세파를 헤쳐나왔던 그는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불혹이 지나서야 은둔의 고리를 털어냈다. 

 중2 때인 16세에 입문해 열린 영역에서 활동해온 세불은 기존의 고정관념을 깨는 파격격 상상력을 많이 동원했다. 검정테 안경에 개량한복의 옷차림이었다. 세상의 모든 아침을 열기라도 하듯ꡐ600년을 이어온 민홍규 선생 옥새전ꡑ은 세월을 훌쩍 뛰어 넘어 현대에 더욱 청아하고 은은한 멋과 정취와  풍기고 있다.

 수수함에서 출발하여 마법적 섹시함까지를 겸비한 그의 작품들은 단순한 감상차원을 떠나 소유하고 싶다는 강한 유혹의 빛을 담고 있고, 절제되고 압축된 수사 속에 피어오르는 현란함은 ‘리벨룽겐의 반지’와 ‘반지의 제왕’에서 묘사된 여정의 서사성을 닮아 있다.

 몇 년간의 그리운 만남을 준비한 끝에 서울에서 대구로 그리고 다시 전주로 이어지는 문화투어에서 국립전주박물관에서의 민선생과의 만남, 그 자체는 설레임 끝에 피는 침향의 사월 토종 밤벚꽃 같은 깊은 감동으로 와 닿았다.

 사라진 조선시대 옥새 73과(科) 중 40여 과를 복원해낸 그는 역사속의 예술이 분리된 것이 아님을 분명히 입증 해낸다. 스승의 여건보다 결코 더 나을리 없는 현실에서 자신의 육신을 희생가면서 가정의 안락을 뒤로하고 오로지 국운의 융성과 예술적 승화를 위해 정진해온 세불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아리도록 슬픈 사연들이 숨어들어 있다.

 유년기의 습작에서부터 현재까지의 조형의 세계를 두루 보여주는 이번 전주 전시회는 도제수업에서 중시하는 노력하는 천재의 번뜩이는 예술 혼과 평소 실천해온 겸손함을 함께 담고 있어 보는 이들의 감동은 한 층 배가 되었다.

 서(書),화(畵),전각(篆刻),도예(陶藝)에 있어서 범인들의 경계를 훌쩍 넘어서 세계적 명장 반열에 들어있는 세불은 작품 ‘삼족오옥새’에서 천계(天鷄) 벼슬의 신비와 주변을 경계하고 조국 수호새의 안각(眼角)의 심오함을 보여줌으로 해서 또 한번 경탄을 자아낸다.

 세불의 강장점은 비교적 흔들림없이 작업에 매진하고 있고, ‘옥새’라는 화두를 가지고 철학과 예술계 등의 반향을 불러 일으키고, 무지를 일깨우고 있으며, 잊혀진 왕조의 유물로만 여겨졌던 옥새를 예술로 과감하게 소개하고 승화시키는 능력은 갈필의 사연만큼 신비롭다.    복원된 모든 작품들은 클래식한 품위에 걸맞게 생명이 부여되어 있다. 세불은 조선왕조에서 삼국시대, 그리고 고조선까지 걸쳐있는 소중한 상징과 모티브를 이용 자신의 작품영역을 넓히는 축지예작(縮地藝作)의 대장정을 시작한 것이다.

 자신의 영화만을 위한 것이 아닌 이 험난한 작업은 후손들에게 ‘소중한 상상의 보고’가 될것이 분명하다. 언제나 그랬듯, 세불은 ‘봉황 국새’등의 작업에 몰입하였지 유혹에 넘어가지는 않았다. 특히 옥새는 그냥 도장을 새기는 것이 아니며, 모든 길흉화복을 관장한다. 스승 석불이 마침내 허한 옥새, 동장(銅章), 전각등의 금필은 세불이 전통 옥새 복원에 나서는데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작품을 만들 흙이 최상인 경기 이천 설성면 장천4리엔 세불의 작업장이 있다. 모든 장르를 어우르는 옥새 작업은 아무리 첨단 과학기술을 이용한다해도 성공할 수 없는 비법이 전수되어있다. 옥새를 만드는 모든 정보가 담긴 ‘영새부’를 기록한 책이다. 세불이 스승 석불에게서 구전받은 것을 과감하게 공개하여 책으로 묶은 것이다. 이렇게 옥새는 차츰차츰 복원된 것이다.

 전체 옥새는 비용이 든다 하더라도 민족의 자긍심을 높일 수 있는 문화 상품으로 당연이 복원되어아 하고, 세불이 아직 인간 문화재가 되지 못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코미디이다. 매듭처럼 빛깔에 따라 계층이 있듯, 세불은 분명 두드러지는 천재예술가 이다.

 세불의 기본철학을 바탕으로 놀라운 서․장법, 전각, 조각, 주조술은 완전한 활화산 같은 진행형이다. 삼족오 국새,4캐럿 다이아몬드가 박힌 ‘용국새’, 주작 국새 등과 세불의 유년과 청년시절의 데생, 서예, 그림도 감상할 수 있는 전주, 특히 초등학교 시절의 데생 작품들이 대학생 정도의 수준을 보이고 있었다. 명쾌한 전통 주물주조법 국새의 장인은 옥새의 비밀을 아는 단 한 사람의 장인 세불 민홍규 뿐이다. 그가 옥새 장인의 적자이고 실력을 갖춘 유일한 아티스트이기 때문이다.

 세불에게 혼자 옥새를 만들 전권이 주어져야한다. 축구감독 많다고 좋은 골 성적 나오는 것은 아니다. 종합예술 옥새를 살려야 나라가 산다는 생각을 가지는 사람은 몇일까?  박물관을 나오면서 세불의 전시 포스터를 부탁했다. 그를 만난 감흥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그가 너무 자랑스럽다.

 

이 글 이후 세불은  전국 유명 미술상을 휩쓸었고 국새를 만들 전권을 위임받아 국새를 나라에 재공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