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란한 디자인의 전형, 광장성 회화, 리듬감이 실린 펜 드로잉
거장 문 신의 <미공개 펜 드로잉> 展
과학적인 발견이 ‘우연한 기회’에 이루어졌다면 이러한 우연한 기회는 평소 자질을 갖춘 사람, 독립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 그리고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하는 사람에게 찾아온다. 게으른 사람에게 우연한 기회란 없다.
- 화뤄겅 ((華羅庚,중국 수학자,1910.11.12~1985.6.12)
2009년 1월 30일(금)부터 3월 15일(일)까지 숙명여대 문신 아트 갤러리에서 문 신 선생 서거 14주년이 되는 올 해 문 신 예술의 특이영역인 미공개 되었던 작품 40 편이 공개된다. 노예처럼 작업하고 신처럼 창조했던 문 신 선생의 신조는 화뤄겅의 말과 일치된다.
꼭 오고야말 행복의 서사는 정직, 진실, 우애, 충실의 끈으로 엮은 문 신의 노작들에서 시작된다. 석류보다 붉은 열정으로, 메리골드 보다 노란 화평의 메시지로 문신이 드로잉한 평화의 오선지는 리듬을 낳고 자신과 남을 위한 조형과 창조의 시원이 되었다. 인간, 자연, 우주의 큰 틀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들은 청 노루 맑은 눈에 맺힌 햇살처럼 청초하다.
모성에 대한 그리움과 미포의 밤을 감지하며 달의 사나이 문 신은 파도 같은 일렁임으로 펜 드로잉에 열중하며 느낌이 살아있는 영혼과의 어울림 같은 환한 미소로 바다와 미풍을 어우르는 테크닉을 연출했다. 전통을 바탕에 둔 균제감은 문 신의 펜 드로잉에 이어 연상되는 조형과 채색 이미지의 극대화를 자연스럽게 유도한다.
문 신의 정교하면서도 큰 기운이 느껴지는 작품들은 거부할 수 없는 문화 자산이다. 유년을 일깨우는 개미나 가오리연 등의 드로잉으로 조형적 토대를 세웠던 문 신은 전통의 현대화로 국제화에 결정적 기여를 하였다. 섬세하고 해학적인 문 신의 보편적 감수성이 돋보이는 드로잉은 현대 트렌드의 환경 변화에도 불구하고 항존의 가치를 지닌 이미지를 소지하고 있다.
1970년대의 문 신 드로잉의 선도적 구도와 공간 배치는 한국 이미지들을 한층 모던하게 만들면서 미술의 응용, 크로스오버를 통섭하게 한다. 그의 장점은 우리 정서를 바탕에 깐 반복적 강박관념 같은 시메트리의 무한질주를 끊임없이 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의 앵글에 포착된 일상들은 추상의 상상 속에 모습을 드러내고 흐르는 강물 같은 부드러움으로 악상(樂想)의 리듬감을 탄다. 펜 드로잉이 미래의 숱한 작품들을 낳을 모태임을 생각하며 즐거워했을 그 모습을 그려보면 모두가 덩달아 흐뭇해짐을 느낄 수 있다.
그의 작품의 일면을 살펴보면 1970년대 초 수많은 드로잉 중 문 신 조형원리인 원과 선으로만 표현한 드로잉의 대표작으로 마치 살아있는 개미가 눈에 띈다. 이 그림에 근거한 많은 개미 연작들이 나왔고 실제로 조각으로 탄생되었다.
하늘높이 뜨도록 한 연줄이 보이기 때문에 한국의 가오리연을 연상하며 그린 듯한 드로잉이 보인다. 가오리의 꽉 다문 큰 입을 중심으로 좌우 대칭인 큰 눈이 접사되어 묘사된다.
문 신 조각의 대표인 흑단조각을 위한 드로잉도 포함되어 있다. 구체와 선으로 표현한 흑단조각이 모체가 되는 조각으로 수십 점의 작품이 있고, 1973년 프랑스 살롱 드메 (라데팡스 야외 조각장)에 출품된 조각을 위한 드로잉으로 약 2~3년에 걸쳐 그려진 것이다. 이 드로잉은 2008년 북경 올림픽의 메인 스타디움의 효시가 된 것 같은 그림이다.
70년대 초, 명예와 사랑의 상징이 된 에로스 드로잉의 연작 시리즈, 혹은 흑단 원목의 단면도로 추정되는 작품도 보인다.
73년부터 그린 섬세한 선 드로잉 중 하나인 동양의 불상 혹은 한국양반의 얼굴 모습도 보인다. 쟈끄 도판느의 표현처럼 문신은 ‘영락없는 한국의 작가’임이 드러나는 드로잉이다. ‘문 신은 미래가 기억할 위대한 작가’임에 틀림없다.
76년 서울 진화랑에 출품된 흑단 작품의 에스키스도 보인다. 그러나 문 신 특유의 대칭적 선이 모여 힘차고 단단한 흑단 나무의 견고함과 입체감을 느끼게 하는 조각의 드로잉이다.
드로잉은 인간, 식물과 곤충, 동물과 어류, 외계인에 이르는 상상, 소․접․연․욕(巢,接,緣,慾)에 대한 철학적 관조, 동경․ 얼굴․ 맵시․ 키스에 관한 가벼운 에세이적 터치, 선율(旋律), 우주기행, 기하 예찬과 같은 우주적 사고, 보리밭 서정과 갓을 화두로 삼기도 한다.
이 드로잉들은 보석, 넥타이, 머플러, 코르셋, 아트 포스터 등에 붉은 색, 주황색, 노란색, 초록색, 청색, 밤색, 연두색, 자주색, 무색 그리고 검은색을 동원하여 영원의 문 신 정신의 진주를 알렸다. 문 신은 차이의 변주로 몽환의 극치이자 사실의 출발점을 알렸다.
9×13.5,10.3×14,11.4×16.5,11.5×16,13×17,16×12,20×29,21×27,21×29,21×29.5,21×30,23×28,23.5×31.5,23.5×32,24×19,24×27.5,24×32,25.2×19.4,26×37,27.5×24,29×18.5에 달하는 다양한 사이즈의 종이에 펜으로 드로잉한 작품들이 전시된다.
60년대부터 80년대 까지를 아우르는 문 신 미술철학 연구의 핵심인 선묘(腺描)의 진수를 접하는 즐거움은 조화와 균형의 평화를 해석 해내는 것과 동일선상에 있다. 신기루처럼 비춰지는 상상 속의 팩션은 조형과의 필연적 만남을 위한 사색의 공간이었다.
40대의 혈기왕성한 프랑스의 문 신 펜 드로잉과 50대 후반으로 영구 귀국한 원숙한 한국에서의 문 신 펜 드로잉을 살펴보면서 동양과 서양에 어디에 있어도 문 신은 낭만주의자였다. 작가의 해의(解衣)적 삶은 늘 반개화(半開花) 정신을 견지하는 성실을 이어 나갔다.
마이스터 문 신의 펜 드로잉 작품들은 우화와 실화 사이에서 가변의 실타래로 우리의 상상을 자극하고 반딧불이로 우리 곁에 남아 있는 것이다. 환희와 고통이 동시에 수반된 미공개 펜 드로잉 작품들은 숙명여대 문신미술관의 품격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피카소의 선묘(선과 면, 원)를 늘 염두에 두었던 문 신은 영속성을 띈 그의 드로잉들에서 선과 면의 분할, 절묘한 균형 감각, 가변의 여운, 미래에 대한 희망, 투철한 예술정신, 장르 분화의 징조, 시대와의 연관성을 읽게 하는 집중을 보여준다.
청소년 시절부터 전쟁을 거쳐 파리에서의 정진, 한국으로의 영구귀국 후의 작업에 이르기 까지 그의 창조의 근원이 되었던 모든 작품의 출발은 드로잉에서 시작한다. 펜 드로잉, 에로스 드로잉, 구상 드로잉 등은 갈구와 동경 속에 터득한 생명 사상의 일부분이다.
강건한 재질로 만들어진 조각에 숨결을 불어넣어 생명을 잉태시킨 문 신, 그의 ‘미공개 펜 드로잉 전’은 가슴 섬득한 생의 찬가이다. 예술에 순교하여 ‘융합과 나눔’으로 융합미학을 창시한 드로잉의 마법사가 천상을 향해 불어 댄 마술피리, 그 여운이 아직도 남아있다.
희망과 상상력을 생존과 진보의 무기로 활용한 문 신 선생의 예지가 번뜩이는 이 번 전시회가 절망과 포기의 그늘에서 신음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경전 같은 반가움을 주는 파스텔 톤의 메시지로 받아들여졌으면 한다.
<문신 미공개 펜드로잉전,숙명여대 문신미술관 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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