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샘 옆 미술관

에르도스 한의 판화 이미지 산책

장코폴로 2009. 2. 4. 14:57

 에르도스 한의 판화 이미지 산책


 서양화가 에르도스 한의 판화를 통해 나는 사색적이고 이지적 이미지와 만난다. 엄격한 내재율에 자유로운 사고방식을 갖춘 지성인의 체취가 담겨져 있다. 그것은 그의 고향 충무와 무관하지 않고 부모의 실향의 아픔을 예술로 승화해 내었기 때문이다.

 그는 바다를 보며 자유로워지고자 했고, 하늘을 보며 부끄럼이 없기를 늘 희구했다. 쪽빛 바다는 자신을 정제하는 무언의 내재적 프레임을 갖게끔 만들었다. 서정을 근간으로 한 그의 작품들은 비구상의 서양화에서도 무한한 그리움을 표출시켰다.  

 그의 작품들은 풀냄새에 버금가는 사람 냄새가 풍겨 난다. 그는 작품 제목 다는 것조차 작가의 간섭으로 여기고 오브제를 감상자의 몫으로 돌렸다. 무제(無題)에 대한 해명조차 사양하고 자신을 낮추는 심성은 그가 이미 내적 수양을 쌓았음을 입증한다.

 예닮의 삶에서 그의 미덕 중 하나는 콘크리트 벽에 갇힌 현대인들에게 창작의욕을 북돋워 주었다는 점이다. 그는 바쁜 일상에서 오피스 맨 들이 사무실에서 자유로움을 구가하며 복사기, 필기구, 컴퓨터와 같은 주변 기기들을 이용, 작품 활동 방법을 제시했다. 

 그는 뷔로쿤스트(Bürokunst), 사무실을 아뜨리에로 생각하고, 작업 방법을 찿아 신개념의 판화 기법을 선보였다. 언제나 복사가 가능하고 모두들 즐길 수 있는 작업이다. 지금은 보편화된 작업으로 자리 잡았지만 컴퓨터가 귀했던 당시 그의 발상은 신기한 이상이었다.

 복사기에 은박지를 구겨 넣어 사막 이미지를 만들고, 철사를 집어넣어 다른 이미지를 창출해내는 발상은 심장병을 앓는 환자의 상처를 도려내는 메스 질과 같은 것이었다. 그의 마우스 스크래치 기법은 꼴라쥬 기법을 생각해낼 때와 같은 호기심과 흥분을 불러 일으켰다.

 마우스 스크래치에서 검정을 흰색으로 만들어 나가는 과정은 느와르 영화에서 경찰의 활약과 같은 통쾌함을 주었고 시간과 비용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 작업이었다. 마치 백남준이 비디오 아트를 생각해낼 때와 같은 참신함과 청량감을 주었다.

 순수 목판 작업의 이미지를 간직한 그의 기법으로 클래식한 석판의 분위기를 넘어 서는 작가의 혜안은 대상에서 언어를 찿아 내게 한다. 작가의 검정과 백색의 환타지는 수묵의 중후감과 포스트 모던의 해탈감을 동시에 읽게 해준다.

 흑단의 품격을 간직한 검정과 자유로운 비상을 갈구하는 백색, 그  흑백 기본 이미지 속에 담긴 에르도스 한의 오브제는 도시, 바다, 배 ,여성, 고뇌하는 인간, 여인, 새, 병 속의 새, 손, 산, 장미, 물고기들이 주류를 이룬다. 오브제의 테제들은 모두에게 공감대를 형성한다.

 작가의 현재적 삶과 유별하지 않은 판화 작품 속에서 그는 도회지에서의 일상, 프레임에 맞춘 일상을 유희하면서 늘 자유를 꿈꾼다. 그의 영혼을 튼실하게 만든 바다와 바닷가, 친구들과의 추억이 늘 그를 흥분하게 만들고 신필(神筆)의 경지로 가는 길목에서 낭만의 품계를 서품 받는다. 그의 대칭은 자유를 가정하고, 견고한 고정이미지는 점프 컷의 유동성을 상상하게 만든다.

 작품속의 여성성은 작가의 어머니, 부인, 딸들에 대한 끝없는 사랑과 도회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삶으로 나타난다. 작품속의 여인과 여성들은 포스트 모던 아트인 스크래치 아트와 일통하며 간결한 선으로 처리된 단아한 모습은 도회성을 띈다.

 그의 작품 속에는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처럼 고뇌하는 인간이 자리 잡는다. 그의 책무를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신앙인으로서의 계율, 자식으로서의 본분, 직장인으로서의 의무, 배우자로서의 프레임 설정, 아빠로서의 사랑, 친구로서의 우정 등 모든 것을 함축한다.

 작품속의 여인은 설레임과 자유, 낭만을 상징한다. 남성에게 여인은 늘 그리움이고, 기댈 수 있는 마지막 공간이고, 꿈이며, 낭만과 자유, 평화와 도피 공간이기도 하다. 여인은 또한 경계의 대상이며 내가 존재하는 이유를 구성하는 모범 답안이다.   

 그는 늘 하늘을 날고 싶어 한다. 구속과 간섭이 없는 세상을  꿈꾼다. 그에게서 새는 자유를 상징한다. 자유가 없는 세상, ‘병 속의 새’ 일지라도 선비적 삶 화두를 깨치고자 한다. 늘 새로운 역사를 쓰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그는 구상과 추상의 구분을 두지 않는다.

 수평과 수직의 조화로움 속에 작가의 관찰과 관조는 빅 크로즈 업 된 손과 신체들을 지극히 단순화 시킨다. 한 음절 단어의 소중함을 작품 속에 담는 작가의 정성은 ‘산’처럼 높고 은밀하며 구름의 뜻과 바람의 전설을 깨우치듯 그 깊이와 콘텐츠를 심화시킨다.

 황량한 도시 한 가운데에서도 작가는 장미를 피워내고 물고기들이 노는 공간을 만들어 주고자 한다. 아파트들 사이에서도 정담이 오가고, 갈가리 찢어진 사람들을 친화력으로 어루만지고자 한다. 어두운 거리에서 외로이 일렁이는 영혼들의 치유사가 되기도 한다.

 그의 작품들은 다면적 구성을 소지하고 있다. 확대, 축소, 각도, 느낌에 따라 이미지 변형이 가능하다. 그의 자연은 필터링을 통해 의미를 달리 한다. 그의 작품은 생동감을 주고 자유를 구가하면서 때론 보호본능을 자극한다.

 그는 가끔 교훈적 서사를 잊지 않는다. 군집체로서 어울림을 설파하면서 조형성을 강조한다. 신과 인간의 문제를 터치하면서 생활 속의 기적과 기도, 찬양을 주 테마로 부각시킨다. 작가는 부드러움 속에 그 만의 문양과 기호 상징을 만들어 내면서 함축미를 창조한다.

 작가는 때론 만화적 이미지와 초현대적 이미지로 사물을 풍자하고 일그러진 세상을 희화(戱畵)한다. 부감과 대칭, 분화와 정갈한 배치, 위치 이동이 가능한 인물들을 달콤한 이미지 연작으로 처리한 그의 작품들에게서 살아 움직이는 선과 가로 세로의 조화가 느껴진다.

 그의 자유로움이 녹아있는 농익은 작품들에게서 흑백은 신명을 춤추며 우주는 세미 클래식을 노래하는 여유로움으로 비춰진다. 새는 시를 읊고, 산은 춤추며, 바다는 그림을 엮고, 여인은 달콤한 역사를 만들어 낸다. 그 총합이 이루어 내는 에르도스의 작품들은 아침 바다를 닮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