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효진 안무의 『나무 그리고 인간은 성장한다』
전통의 변주위에 퍼지는 느림의 미학
2008년 10월 18일 토요일 오후 4시, M 극장은 또 하나의 춤 창작 무사(舞士)를 맞이하고 있었다. 재기발랄한 안무가 권효진은 나이답지 않게 느릿한 여유와 자신감에 넘쳐 있었다. 전통창작 개인 공연으로 미지의 성을 쌓아가는 과정은 빛을 여과하는 과정처럼 아름다웠다.
안무가 권효진은 한예종 전통예술원의 재간꾼이다. 전통 춤에 대한 편집광적 숙고, 그 파생적 혁명 정신으로 빚은 중편 『나무 그리고 인간은 성장한다』는 뉴질랜드의 레드웃이나 넉넉한 마음으로 대지위에 느림의 미학을 실천한 네브래스카의 대평원과 오버랩 된다.
철학적 논제가 제목인 이 작품은 느린 템포로 나무를 화두로 삼아 원시림 속에 녹색 삶으로 살아가는 카카포 같은 존재를 떠올리게 한다. 궁중무용의 심오한 절제와 심관(沁觀)의 경지를 넘어 경쾌할 정도로 채색된 이 작품은 전통무용의 새로운 활로를 보여준 작품이다.
『나무 그리고 인간은 성장한다』는 그랑 블루의 희망이었고, 느림의 확산을 확대 재생산한 것이었다. 순리 속에 안으로의 회오리를 만들어가는 ‘휘몰이’ 이었다. 작품의 모티브는 『춘앵전』에서 출발한다. 안무가 자신의 효심과 효명세자의 효심이 중첩된 작품이다.
효명세자가 모친의 생신을 축하하기위해 만든『춘앵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이 작품에서 춤 작가 권효진은 나무의 성장과 자신의 성장을 대비하고, 과거와 현대를 부드럽게 접목시킨다. 순환, 정화, 호흡의 이치를 성장이란 여과기에 담아낸다.
세묘(細猫)의 점층적 구조를 쌓아가면서 자신의 표현방식으로 작품을 업그레이드한 이 작품은 현대와 전통을 충돌시키면서 전통의 위대함과 자연의 파괴를 부드럽게 고발한다. 나무와 문명을 대립 각으로 놓지 않고 조화를 강조하는 발상이 뛰어나다.
이 작품은 자연친화적 경건과 경외에서 인간은 더욱 존귀해질 수 있음을 고발적 영상을 통해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집착과 욕심의 빠른 흐름 속에서 정화와 휴식, 즉 고귀한 정신의 고양을 드높이고자 한다. 소박함 속에 피는 청년 문화의 향기는 주창의 이면을 보여준다.
작곡, 그 소박한 혁명과 삼현육각의 전통악기 구사는 작품에 대한 신비감과 신뢰를 튼 실히 한다. 자연음의 무간(舞間) 사용과 투사 영상은 문명이란 이름으로 파괴된 자연에 대한 용서를 비는 제의이며 나무, 무한의 이미지로 통섭과 소통을 깨우치는 통렬한 메시지이다.
바른 자연관에서 출발한 춤과 비주얼은 감정과 호흡의 균배를 꽤하고 있고, 타 작품과 차별성을 드러낸다. 변주의 흔적은 도처에서 발견된다. 자연에 대한 경배는 사운드와 영상의 변화로 곳곳에서 감지되고, 전통의상의 현대성으로 전통의 변주가 분명하게 이루어진다.
오방색이 흩어진 무대위에 현대를 상징하는 댄서들이 충돌매체로 등장하고 계절은 칼라가 입혀진다. 영상은 일렁이는 현대를 나무라면서 빠른 흐름으로 스쳐간다. 그리운 청정을 향해 댄서들은 사계의 오묘한 이치를 거친 호흡으로 문명의 떼를 벗겨나간다.
코리언 카카포 앵무새의 시원에서 도시의 소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의지적 몸짓으로 소화해낸 고은이,김선진,차민정,강보희,최정연의 땀방울과 여리며 거친 호흡, 땀방울은 아직 살아있다. 조급증을 잠재운 권효진의 춤은 뚜렷한 막간 구별이 없어도 이해의 폭이 넓다.
반문명적 인간들의 행태를 두려움에 떨게 한 안무가의 분노는 늦은 가을을 입은 나무들로 위안이 될 듯하다. 아침마다 나무는 성숙과 성장으로 자라고 우리는 나무의 이치를 깨닫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가기를 이 작품과 더불어 희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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