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사상을 일깨우는 빛나는 단편
유정재 안무의 『기우는 가도』
2008년 9월6일부터 25일까지 포이동 춤전용 M극장에서 공연된 ‘춤과 의식’展의 대표 주자 유정재(한양대학교 생활무용예술학과 강사)의 『기우는 가도』는 자연과 환경, 생태와 인간 본성을 심오하게 탐구해온 유정재의 독창성을 보여준 담백한 작품이다. 군더더기가 없는 깔끔한 소품에 모성과 같은 자연에 대한 애틋한 보살핌, 관심이 표출된다.
“현대문명 속 여성들의 일상적 노동, 현기증, 불안, 억제된 성적욕구, 그리고 그 흔들리는 실존적 감각을 계산된 미니멀적 움직임과 기하학적 공간감각 서정적 이미지를 빌어 표현‘한 그녀의 작품은 “뭉크의 한 회화처럼 소리 없이 입 벌리며 머나먼 공간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 길 위로 구르는 돌멩이, 하찮은 막대기 하나”가 그녀의 육신을 경이롭게 지탱케 한다.
자연의 일면을 상징하는 작은 화분, 자갈에 둘러 쌓여있다. 절대 침묵 속에 여인은 화분 속의 나무를 응시한 채 자갈을 부딪친다. 빠르게 스쳐가는 현대 영상이 시간의 변화와 더불어 문명의 점진적 파괴를 암시한다. 자연을 존중하라는 자연의 준엄한 경고와 의구함을 배워야한다는 교훈적 테마가 반복된다.
문명의 때, 코트를 벗어내면 원색으로 만나는 빨간 스웨터, 원초적 감정, 순수함 자체에 이끌리게 된다. 음악은 자연과의 만남을 그리워하게 만들고 파도소리처럼 그리워지는 일렁이는 욕망, 그리워지는 바닷가, 반복되는 자갈 부닥치는 소리, 그반복이 만들어 가는 이미지는 가장 낮은 곳에서 높은 곳까지 우리 마음을 노 저어간다.
반복의 묘미와 가파른 정지는 프로 춤 연기자들의 본색, 호흡과 몰입으로 곳곳에 걸린 전구들을 스쳐 가면 거리의 가로등 들이 연상으로 나타나고, 외면하고자 면벽, 그러나 사랑이 없으면 그 무엇도 이룰 수 없음을 우리는 안다. 과유불급, 작은 것에 만족하고 자연과 하나 됨, 그 경외감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정답이 아닐까하고 안무가는 생각한다.
유정재, 성아름, 최효진 3인의 움직임은 세 개의 사유 공간을 만들어 낸다. 전달과 표현의 유토피아적 소실점을 생각하게하는 제의, 타악과 현대음의 혼재로 만들어 지는 유정재의 만다라는 모든 것을 만들고는 허물어버리는 느낌의 공유로 지고의 창작 혼을 살린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호흡, 땀, 열기를 두고 결과물은 없다. 무소유의 삶과 춤의 행위가 일치된다.
불빛을 따라 걷다보면, 현(絃)에 따라 몸이 움직이고 싶은 충동이 일지만 불협화음의 현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직시하게 된다. 알 수 없는 립 싱크, 우주와의 소통을 하고 싶다. 음악은 현대로 진입하고 하나로 남은 전구가 작은 욕망의 상징으로 남는다. 낭만적 사유에서 하이 키 라이트가 들이 닥치면 춤꾼 성아름, 최효진은 익숙한 자세로 갈등을 만들어 낸다.
전구들의 변신, 라이트가 갈등을 묘사하면서 현대성을 강조하면 전진과 후진의 길목에서 승리하고자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은 자연의 이치, 세상은 전투임을 알린다. 안무 유정재는 서로의 발목잡기에서 벗어나 녹색의 결승선으로 달려가서 잊고 있었던 녹색, 흑색과 적색으로 하나 된 승자도 패자도 없는 자연에 품에 안기자고 주창(主唱)한다.
낭만적 음악이 자연의 성공을 알리는 피꼴로가 되면 나무는 성공을 먹고 자라고 인간의 우매함을 일깨운다. 환희의 춤은 우화적 동화, 동화적 낭만, 초록 희망 갖기의 모습을 갖는다. 타르코프스키 의 ‘희생’이 던진 파장이『기우는 가도』에 드리운다. 화분에 고목을 세우면서, 화분은 넘어지고 암전이 되면서 유정재의 서사는 끝이 난다.
냉철한 이성 속에 모래 꽃을 피워내는 유정재의 중심, 세월의 흐름을 감지하며, 부드러운 훈풍을 언제나 기다리는 소녀적 속성을 아직 소지하고 있는 춤 꾼, 약간 외로움을 타지만 그래도 강하다고 믿고 있다. 그녀가 작품에서 믿고 있는 녹색 신은 바로 자신이다. 비스듬히 기우는 가도에서 그녀가 믿고 있는 또 하나의 신은 희망이다.
유정재 안무의 『기우는 가도』는 과도함을 벗어나서, 세상을 따스하게 포옹하고, 자연에 순응하라고 점잖게 타이르는 평범하지만, 독특하고, 자신을 낮추는 수작이다. 작은 몸짓으로 큰 의미를 만들어 내는 그녀의 테크닉이 놀랍다. 그녀의 작은 실험작들이 우리들에게 늘 희망으로 와 닿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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