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선생,춤 바람 나다

최청자 안무의 '겨울이야기'

장코폴로 2009. 2. 1. 17:28

세익스피어 원작, 최청자 안무의 『겨울 이야기』
고정 레퍼토리로 자리잡은 블록버스터 댄스 뮤지컬

2006년 12월 21일부터 25일까지 5일간 공연된 이 작품은 최청자, 김형남, 조진희 등의 툇마루 무용단, 이태주, 이종훈, 김태훈, 송현옥 등의 연극 팀, 조승룡, 길성원 등의 뮤지컬 팀, 탤런트 한지혜 등이 협연한 인기 블록버스터 춤판이다.
세익스피어의 후기 낭만희극 중의 하나인 『겨울 이야기, The Winter's Tale』를 토대로 로버트 그린의 『세월이 가면, The Triumph of Time』을 소재로 한 코리안 댄스 뮤지컬 『겨울 이야기』는 송년 레퍼토리로 손색이 없는 크로스 오버 엔터테인먼트물 이다.
2부로 나뉘어 진 『겨울 이야기』는 서사적 틀 위에 낭만적 모던 댄스를 입힌 우리 춤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발상전환의 대표적 작품이다.
1부는 상징적인 시칠리아와 보헤미아의 두 지역, 시칠리아 왕 리온티즈(김경신)와 보헤미아왕 폴리서니즈(김형남)의 만남과 왕비 허마니어니(허인정)를 두고 오해에서 비롯된 질투와 왕비의 죽음에 이르는 비극적 과정을 정공법으로 해석해 보인다.
미성(美聲)으로 시작되는 먼 나라의 이야기는 아름다운성(쇤베르크,Schönberg)의 모습을 닮는다. 16세기의 흐름을 탄 복식의 우아함 속에 우정을 과시하는 두 왕의 이인무(二人舞, 이어 시종들의 춤이 따른다. 고품격, 춤을 타는 선과 적당한 중급 라이트, 궁중을 꽉 채운 귀부인들의 춤이 이어지면 축배가 곁들여지고 경쾌함이 왕궁을 뒤덮는다.
보헤미아 왕과 시칠리아 왕비와의 춤, 시칠리아의 왕은 질투에서 분노를 참지 못하고 결투가 벌어진다. 보헤미아 왕 앞으로 칼이 떨어지고 왕비는 생이별의 아픔을 감내하며 죽음을 맞는다. 떨림과 흐느낌으로 슬픔을 표현해내는 춤꾼들의 연기가 연기자들의 연기를 앞선다. 무대 셑으로 설정된 프레임들은 미쟝센의 개념을 충분히 살려내고 있다. 큰 공간에 혼자가 꽉 채울 것처럼 연기해내는 김형남을 비롯한 무용수들을 무정(舞丁)한 모습들을 모인다. 부지런히 셑이 움직이며 흰 브라우스에 아이를 안은 왕비는 죽음을 맞는다.
그 슬픔 속에 죽음을 알리면 흑백 영상들은 흐릿한 시골 풍경 속에 천둥과 번개 속에 하염없이 내리는 비속에 우산행렬들이 스쳐 지나간다. 공주의 고난의 성정과정을 암시하면서 1부는 막이 내린다.
2부에서는 2세들(리온티즈의 딸 퍼디타(전미라), 폴리서니즈의 아들 플로리젤(최문석))의 사랑이 결실을 맺는 과정, 난관을 극복하고, 아픔을 치유하고, 화려한 스펙타클 결혼식을 현대적 해피 엔딩으로 보여주면서 끝이 난다.
성장한 보헤미아의 왕자와 사랑에 빠진 공주, 로고 K가 배경 막에 뜨고 무대는 현대를 카버한다. 평상복을 입은 사람들 유니폼을 입은 시종들, 비밀 경호원 틈에 왕자는 춤을 뽐내고, 수영을 하는 젊은이들, 블루진과 셔츠를 입은 평민들 틈에 어울린 왕자, 디스코 클럽에는 비 보이가 등장하고, 2부는 1부의 엄숙함을 완전히 털어낸다. 배경 막에는 'Merry Christmas!'가 떠 있다. 신나는 록 앤 롤과 익숙한 현대곡 들은 각각 춤꾼들의 무용 장기를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왕자와 사랑에 빠진 처녀, 제지당하는 왕자, 희비극이 교차하면서 약간의 긴장과 약간의 춤 물결이 이는 가운데 시칠리아의 왕과 보헤미아의 왕이 재회하는 은총과 축복이 일어난다. 사랑은 사랑을 낳고 두 젊은이들은 결혼에 이른다.
자칫 오판하기 쉬운 춤 테크닉과 스토리의 난해성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탤런트 한지혜(폴리나)는 나레이터로 등장하고 뮤지컬 배우들은 등장이 어색하지 않게 노래를 곁들인다.
『겨울 이야기』의 덕목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특히 오해, 불신, 상처, 복수와 암투의 늪에서 신세대의 희망과 사랑,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화해의 정신은 주 테마로서 연말을 맞는 모든 이들에게 반성과 관용의 장을 마련해 준다.
『겨울 이야기』는 춤으로 대중과의 언로와 소통의 기회를 마련해두고 있다. 시칠리아의 궁에서 보헤미아의 궁으로 옮겨 오는데 16년의 세월이 흐른다. 우연히 마주친 왕자와 농가의 처녀와의 결혼은 거부된다. 이 처녀의 신분이 발견되면서 반전되는 시츄에이션, 난국이 타개되면서 반목했던 옛 친구들인 왕들은 화해로 다시 우정을 쌓고, 끝없이 내리는 눈세례를 맞으며 탄생되는 왕가의 결혼식은 모두가 축복받는 것처럼 행복해질 수 있는 장면이다.
특별출연으로 하객으로 등장하는 김수용,김동호,김혜정,박정자,박찬숙,오세훈,이재오,장선희 등 명사들의 까메오 연기도 볼거리 중의 하나이다.
결혼식으로 『겨울 이야기』는 엄청난 눈세례 속에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의 안녕을 기원하며 막이 내린다. 세부적인 디테일 보다 스토리 텔링이 너무 멋있어 전제되어야할 사안이다. 한 편의 댄스 뮤지컬로 행복해질 수 있는 한국의 겨울은 멋있다.
장석용(문화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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