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선생,춤 바람 나다

홍선미 안무의 『바다에서 온 여자』

장코폴로 2012. 5. 12. 08:29


(장석용/문화비평)
홍선미 안무의 『바다에서 온 여자』



현실에서의 일탈을 꿈꾸는 여인의 유토피아, 바다

 


2012년 4월 7일(토), 8일(일) 오후 6시 무용전용 M극장에서 공연된 홍선미(세종대 출강) 안무의 『바다에서 온 여자』는 입센의 ‘바다에서 온 여자’를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사실주의 연극의 창시자의 작품으로 기하학적 상상력을 가미 ‘추상의 미’를 만들어내는 안무력이 돋보인다. 박 지숙, 백 지연, 정 혜란, 안 태영 네 명의 여자는 늘 바다를 꿈꾼다.

 

남성, 제도, 굴레를 상징하는 남자 김 선왕은 훌라후프(굴레의 구체적 상징)를 컨트롤하며 억압적 이분법의 희생자 역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바다로 가고픈 여인”의 역설적 무제(舞題)『바다에서 온 여자』는 현재적 삶에서 그리는 바다 같은 무인도이거나 사람과 사람의 가슴에 존재해 있는 섬으로의 기행을 ‘내안에 이는 바람’으로 마무리 한다.

 

 

작품 속에서 남자 무용수의 역할은 ‘남자’라는 상징적인 의미일 뿐 여자무용수들에게 보이는 사실적 인물이 아니다. 입센이란 구상의 숲에서 바라 본 서사는 상징을 차용하기에는 사치이다.『바다에서 온 여자』라는 상징적 제목에서 사실이 깃들어지면 작품은 너무나 각박해진다. 그래서 홍선미 브랜드의 변장(變裝)적 상상과 무축(無築)적 사고가 필요하다.


‘이제는 돌아와 내 눈앞에 선’ 국화여인의 또 다른 모습, 바다의 황량함에서 따스한 굴레를 찾아 온 것일까? 홍선미의 『바다에서 온 여자』는 예상과 달리 노라이즘(Noraism)을 거부한다. 결론에 떨어지는 훌라후프는 다시 여인을 감싼다. 혹은 억압한다. 시각적 불안이 영혼을 잠식할 뿐이다. 과거적 낭만보다 현재적 실리를 택하는 여인, 현대적 해석이다.

 

 

『바다에서 온 여자』에서 남자에 대한 전투적 개념인 여자는 결국 여인의 귀가로 종결된다. 여자의 ‘바다로의 외도’라는 프로젝트는 허망을 남기고 말았다. 갈매기는 떠났고, 이미지의 변경(邊境)은 왜곡된다.

 

그녀의 가슴 속의 비, 그 쓸쓸함을 대체하는 양희은의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해서’ 가 메인의 앞뒤에 깔린다. 통속을 비껴 간 엄청난 고독의 쓰나미이다.

 

안무가는 하나의 모티브를 얻어 상징화 시켜나가면서 주제가 보여 지기를 바란다. 무브먼트의 동인(動因)은 ‘굴레’이다. 써머셑 모엄의 ‘굴레’에 대한 상상에서부터 로라의 ‘굴레’에 이르기까지, 여인의 굴레에서부터 홍선미의 굴레에 이르기까지의 결론, 홍선미의 유레카(나는 발견했다)는 유쾌한 외도와 집으로의 안정적 착지이다.

 

 

이 작품의 구성은 프롤로그: 굴레, 1장: 굴레에 대한 호기심, 2장: 굴레에 대한 권태, 자유의 바다에 뛰어들어 욕정을 불사름 3장: 굴레 속 에서 추던 탱고의 의미, 에필로그: ‘나는 굴레가 필요했다.’로 이루어져 있다. 이 작품의 의도는 ‘굴레’ 의 이미지와 바다로의 외도(욕정), 그리고 결국 다시 바다에서 굴레로 돌아옴을 표현하는데 있다.


타원을 파고드는 원형의 스팟은 그 굴레, ‘사실 난 그 굴레 안에서 남자와의 멋진 탱고를 추고 싶었는데...’ 라는 가정법 과거완료의 아쉬움, 굴레 밖 여자들의 일상 속으로 들어가는 일탈의 자유가 공존한다. ‘바다’, 그 곳에서의 여자의 몸짓, 파도 속에 몸을 맡겨 일렁이는 물결과 함께 육체가 불타오르듯 그것은 관능적 ‘욕정’혹은 그에 대한 일루전이다.

 

 

집시 음악을 좋아하는 보헤미안 홍선미는 여자라는 이미지와 가슴을 절이게 하는 바이올린 연주의 집시음악을 선택함으로써 주제와 조화를 잘 이뤄 내고 있다. 몰도바 출신의 세르게이 트로파노프의 ‘그노시엔느’(고독), 요셉 렌드베이의 ‘러시안 집시스윙’ 이 장면 사이사이에 흩뿌려진다. 절대고독을 뚫고 피어오르는 완벽 안무는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

 

                     <장석용 문화비평가/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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