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재로 승화된 모녀의 영별(永別)과 천도, 그 극적 재구성
2012년 4월 9일(월) 8시 아르코 예술극장 소극장에서 한국무용제전의 소극장 마지막 작품,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에 등재된 무형문화제 제 50호 영산재(靈山齋)를 모티브로 창안된 김기화(한국춤교육연구회 대표)안무의 『어미의 딸』은 어미의 49재를 통해 반목했던 어미와 딸이 화해하고, 영혼을 천도하는 극무용(Tanztheater)이다.
『어미의 딸』은 영산회상(靈山會相)의 큰 틀에다 극적 장치를 구성한다. 김기향의 시각디자인에 김기화(어미)와 안영화(딸)가 주연을 맡고, 유근희, 근빈, 이성결, 전몽성이 테제의 완성도를 위해 기여한다. 박소리에 연문(演門)이 열리면 빛을 담고 있는 법고, 목어, 운판을 든 여인들이 우보(牛步)로 등장한다. 회심과 왕생을 기원하며 애잔한 음악에 해설이 따른다.
가톨릭의 장엄미사에 해당될 영산재는 산 자와 사자(死者)가 함께 석가모니의 진리를 터득하여 자신의 완성을 이루는데 있다. 이 작품은 단계적 의식을 치르면서, 어머니의 영혼을 위안하는 찬불의례가 뒤따른다. 이때 이승에서 소원했던 모녀간의 관계를 복원하는 의식무가 추어지게 된다. 그 흐름은 ‘느림의 미학’으로 연희적 요소가 총 동원된다.
불교 분위기의 음악, 악기음과 같은 사운드, 의식용 춤, 영산재에 이용되는 춤의 축소형이 추어진다. 낯선 이름의 중국 춤꾼들이 공연(共演)하며 분위기를 맞추며 춤을 춘다. 3일에 걸쳐 화엄무로 진행되는 한국불교의 독창적인 예술표현으로 영산재 자체는 오래전부터 극적 전형을 갖추어 있었으며, 전통 춤의 대종사(大宗師)적 위상을 견고하게 유지해오고 있다.
모든 것이 박제된 가운데, 영혼의 소통로에서 어미 김기화의 어머니 연기는 압권이었다. 얼굴을 비롯한 표정연기와 걸음걸이와 손동작을 비롯한 디테일, 복식에 대한 현대식 정리 등 모든 것이 김기화의 의도대로 이루어졌다. 또한 미혹을 배제한 세월의 경험을 가슴으로 쌓은 딸의 연기도 주제에 잘 용해되어 진지함이 묻어져 나왔다.
이 작품에서 배제할 수 없는 꽃과 향의 의미, 출연진 여섯 명 모두에게 걸쳐있는 꽃과 향은 향화게의 축소판이다. 범패에 따른 작법무의 변형인 『어미의 딸』은 착복무의 성격의 일면을 보여준다. 6수가사를 입고 고깔을 쓴 승려가 양손에 연(蓮)을 들고 추는 무용처럼 모녀를 감싸고 네 명의 보살이 고깔을 쓰고 연꽃을 들고 춤을 춘다.
깨달음과 수행의 단계를 의미하는 춤사위는 깊은 슬픔의 춤 표현은 폭넓은 보폭이나 느린 뻗음, 굵은 선으로 나타난다. 딸은 세숫대야에 물과 향을 섞어 만든 향탕수와 종이로 접은 지의(바지저고리) 두 벌과 촛대와 향로 영가위목을 마련하고, 의식은 영산재의 기본을 따라간다. 어미에게 꽃을 정성스럽게 다는 딸의 진지한 행동에 어미는 감탄한다.
모녀간 화해가 이루어지고, 4인 보살의 의상의 색채(보라, 적, 청, 황)가 상징하는 방위와 의미로 천도한다. 결말은 평화적이다. 춤의 향기와 바람을 일으키는 영산재는 춤의 시원으로서 상상력의 보고(寶庫)이다. 점점이 어미의 가슴에 박혀있을 얼음송곳들을 빼내고, 자신도 어미가 되어가고,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밝힌다.
원소스멀티유즈의 대표적 연희의 오브제, 영산재를 통한 ‘춤 문식성’의 첫 번째 대상인 ‘어미의 딸’은 사후라는 조건이 붙어야 가능하다. 영별의 환상에 이르는 『어미의 딸』은 낯섦과 비현실성으로 가득하지만 예측할 수 없는 그 점 때문에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작품이다. 정형을 따르면서도 변형의 재미를 가미, 엄숙함속에서도 코믹한 상황은 곳곳에서 감지된다.
이 작품은 비록 어미의 사후이지만 인생에 대한 통찰을 다양한 은유와 상징으로 수서(壽序)적 존중으로 채운 ‘잘 나이 들어’ 가는 김기화의 노작(勞作)이다. 앞으로의 영산재 춤은 숱한 담론의 대상으로 발상전환, 장르의 해체, 종교 간의 크로스 오버, 이질적 악기 편재, 춤의 변주 등 다양한 과제의 핵심으로 우뚝서야할 것이다. 그녀의 차기작이 궁금해진다.
<장석용 문화비평가/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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