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선생,춤 바람 나다

정경화 안무의 『마음쌓다... 허물다』,『향미사야』

장코폴로 2012. 4. 27. 07:44

(장석용/ 문화비평) 정경화 안무의 『마음쌓다... 허물다』,『향미사야』두편의 작품



정제된 한국 창작무용의 뉴웨이브, 사유와 성찰

 

장석용 문화비평가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춤연기자 정경화가 선보인 두 편의 작품,『마음쌓다... 허물다』,『향미사야』는 두리춤터의 한국춤 시리즈 삼월의 마지막 작품이다.(28일공연)

 

한국창작춤 레파토리의 전형을 보여준 이 작품들은 성찰과 간구로 희망을 엮어내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 담겨져 있다.

 

정경화가 만들어 내는 조형성, 리듬감, 이미지화, 심리묘사는 긴 수련기간을 거쳐 전수자, 이수자에 이르기까지의 이론과 실제에 이르는 보리수 터널이다.

 

카를로비바리에 이르는 보리수, 그 치유의 능력을 수지한 나무의 긴 호흡처럼 작품들은 맑고 그윽한 깊이가 있다.

 

『유체이탈』,『영혼의 외출』,『아름다운 무덤』,『난 숨을 쉬고 싶다』, 면벽침사』,『서쪽으로 가다』,『마음 다시짓기』,『작은돌 큰울림』과 같은 그녀의 또 다른 주요 안무작에서 감지할 수 있는 영혼에 대한 교감과 마음수양은 그녀를 바로 서있게 하는 자양분이다.

 

 

『마음쌓다... 허물다』의 화두는 ‘영혼의 산’이다. 이 작품은 2009년 초연 이래 면벽침사 또는 만다라적 사유에 중독적 강박감을 느껴온 그녀, 그녀는 백자(白磁) 달 항아리에 견주어진다. 조형의 틀에서 비상을 바라는 면벽수도는 영혼을 살찌게 하고 상상력을 풍부하게 한다. 유형과 무형이 만나 어우러지고, 세상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늘 아름다운 것이다.

 

이혜민, 김하림, 오인아와 같이 춤을 추고 연출한 정경화는 자신의 영혼의 무게 때문에 키위처럼 날지 못하고 고고한 영혼의 성을 쌓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또한 부정과 긍정의 가치도 숙지하고 있다. 그녀는 도입부에서 벤치에서 일어나 벽을 향한 무브먼트를 통해 연역적 비약을 시도, 춤 수사로 면벽의 정당성과 가치적 과정으로 자신을 품격 있게 표현해낸다.

 

 

그녀는 마음으로 울기 좋은 때와 장소를 안다. 쌓다, 허물다 보면 인생이 무엇이지를 안다. 그런 깊이 있는 춤으로 열정과 침잠의 담금질로 만들어진 『마음쌓다... 허물다』는 존재와 성찰이 그 예술적 형상인(形象因,formal causes)이다. 고도의 진지성과 편력에 가까운 사유는 백합의 향 같은 독성도 존재함을 또한 연구해야할 것이다.

 

『향미사야』는 마음의 눈을 가진 이원섭의 시(53년刊)가 모티브가 된다. 향미사(嚮尾蛇)는 살무삿과에 속한 파충류, 꼬리 끝에 방울 모양의 각질이 있어서 위험에 처하면 꼬리를 흔들어 윙윙 소리를 낸다. 두리춤터에서 2010년 초연된 이래, 6.25 전후(戰後)의 피폐한 삶과 정신적 공황상태를 초탈하고자하는 민초들의 마음을 안무가의 삶으로 환치시킨 작품이다.

 

 

이 작품은 전체 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나를 기준으로 꾸며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장) 동물되기( 절망감, 어찌할 수 없는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 방울뱀처럼 춤추는 것이 아닌 마치 사막의 황량함을 자신에 비유하여 움직임을 찾으려 했다. 내가 알고 있는 나는 진실로 ‘나’일까? 나는 누구인가?

 

2장) 달밤( 주술적 공간 만들기, 폭발 후에 찾아오는 적막감을 제의적인 공간으로 바꿈, 무의식의 세계로 나를 인도하기, 나는 나를 구원할 수 있을까? 나의 절망감에서 나는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을까?)

 

 

3장) 침향( 하늘의 기운, 향불은 신과의 소통 통로이다. 향으로 신을 부르고 교감한다. 자신 스스로를 향 연기에 맡기고 그 속에서 ‘생성’의 길을 발견한다. 죽음과도 같은 현실에서 유일한 탈출구는 나의 존재를 새로이 발견하는 길이다.)

 

4장) ‘살불살조’( 불교가 자신을 부정하듯 자기부정으로 깨우치는 생성,‘있다’‘없다’‘이거다’‘저거다’ 하는 차원을 넘어선 세계. 자기가 자기를 초월하는 것이다.)

 

 

원작 시에서 등장하는 시어들, 청각의 방울, 원을 그리는 춤, 상대가 되어 추는 인간, 비주얼을 화려하게 하는 장미가지, 달밤의 서정, 모래사막, 은빛 모래밭 등은 오 감각을 자극하고, 가장 춤에 적합한 환경을 만들어 준다. 운명적 선율과 언사(言辭)는『향미사야』의 태생적 무법(舞法)의 착상(invention) 고리이다. 나 나름의 지환(指環)이다.

 

서서히 라이트 들어오면, 중앙에 놓인 향로, 향을 피우는 여인, 죽음의 공간, 모든 회개와 번민이 자리 잡을 수 있는 공간이다. 이 공간에서 생성을 탐해야한다. 안무자는 제의적인 분위기를 높여 대지의 뜨거움을 이겨가는 어떤 초연한 정신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사막의 뱀과 나, 극명한 대조와 비유의 묘를 보여주는 상징으로 등장한다.

 

 

차라리 판타지나 주술적 제의에 의해서라도 벗어나고 싶은 절박함, 사막 향미사의 삶의 의지, 그 인내력을 ‘화랑의 후예’에 비기는 공허한 자부심이 피어오른다. 이혜민,김하림,오인아,지가은,김세라가 정경화의 초월을 돕는다. 불가사의에 가까운 사운드의 혼합, 형이상학적 판타지는 데포르마시옹의 마법처럼 현실을 왜곡한다.

 

정경화의 의욕적 두 작품의 2012년 버전은 여전히 탐구적이다. 꾸미고, 더 치장해도 좋지만, 때론 해탈의 상처로 터진 수맥같은 새로운 출구와 방법론, 인식의 전환도 시도해 보았으면 한다. 그녀의 작품은 늘 광채를 지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