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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2093-91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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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서울연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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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s Theater In Seoul 제7 호 2011. 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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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잡지에 실린 내용은 서울연극협회나 연극기록실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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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처: 서울연극협회, 연극기록실 발행인: 박장렬 편집인: 오세곤 편집위원: 양기찬, 조만수, 최은옥 기자: 이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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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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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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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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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로당 폰팅사건 | 서은영 - 그냥청춘 | 이주영 - 꽃피는 포장마차 | 문선영 - 디너 | 장현주 - 라이겐 | 강양은 - 메디아 온 미디어 | 김민승 - 모두 안녕하십니까 | 이용복 - 상사몽 | 신아영 - 아마시 프로젝트 | 정명문 - 야끼니꾸 드래곤 | 백승무 - 장석조네 사람들 | 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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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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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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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배우 황금봉 | 최윤영 - 아시테지 겨울축제 | 김유미 - 요람을 흔들다 | 배선애 - 완득이 | 박정기 - 타이터스 | 박정기 - 신춘문예 단막극 제 | 박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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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기록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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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로 포럼 2010~2011 연속 토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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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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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수제 칠리소스, <명배우 황금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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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영(동국대 연극학과(문학박사),대진대 연극영화과 강사 kochjadrama@hanmail.net)
연출 : 김영찬 작 : 김태수 극단 : 김태수 레퍼토리 극단 일시 : 2011년 1월 7일-1월 23일 장소 : 대학로 두레홀4관
김태수 레퍼토리 극단이 선보인 <명배우 황금봉>은 왕년의 인기스타 황금봉의 인생역정을 통해 인생을 마주하는 삶의 자세에 대해 반문한 작품이다. 인생의 절정에서 내려와 은둔의 삶을 살다 간 어느 무명배우의 죽음은 자칫 경솔했을지 모르는 우리의 하루를 되돌아보게 한다. 작가의 빈틈없는 대본 만큼이나 빼곡히 꾸며진 무대 위에서 금봉과 그를 둘러싼 6명의 배우들이 과거와 현재 그리고 환상 사이를 오가며 극을 이끌어간다. 무대를 한가득 메운 황금봉의 집은 그의 기억을 반추하는 주된 장치로 활용된다. 무대 왼편과 중앙의 마루는 평범한 서민의 집에서 볼 수 있는 소박한 잡동사니들로 차 있다. 낡은 냉장고를 비롯해 소파, 전축, 장식장 등은 오른편에 나있는 마당의 의자, 그네, 은행나무, 화분, 항아리 같은 도구들과 함께 금봉의 지난 세월을 담았다. 무엇보다 정면에 걸려있는 출연작 포스터들과 장식장의 상패들은 마치 화려했던 시절의 황금봉을 상징이라도 하듯이 관객들을 응시하고 있다. 그야말로 황금봉은 잘 나가던 영화배우였다. <벽장의 여자> <임꺽정> <낙동강 모래알> 등 그가 등장하는 모든 출연작들이 대 히트를 치며 그를 스타로 군림하게 했다. 금봉은 자신의 연기가 다른 배우들과 차별화된 예술혼을 지녔고, 일반인이 예상하는 범주에서 벗어나 독창적 인물을 창조해낸 것이라 굳게 믿고 있다. 황금연기상을 비롯한 많은 상의 수상은 결코 그의 연기 인생이 헛되지 않았음을 입증해준다. 외길만 걸었던 금봉의 고집불통 삶은 그가 창조해낸 인물들에게도 투영되었고 당대 배우들 중 군계일학으로 급부상하게 된다. 지금까지도 금봉은 자신의 연기생활에 후회가 없었음을 자부한다. 그러던 중 금봉에게 단련의 시간이 찾아온다. 금봉이 올해의 영화예술가상 심사를 맡았던 심사위원장 면상에 주먹을 날리고 게다가 침까지 뱉는, 영화계를 발칵 뒤집는 사고를 저지른 것이다. 예술가상이 저질 상업영화에서 신파연기를 한 배우에게 주어진데 대한 금봉의 급약처분이었다. 이 일로 금봉은 배우협회에서 5년 동안 자격정지를 당하게 된다. 금봉은 투쟁을 결심하고 끝까지 버티기로 마음먹는다. 어느덧 5년의 시간은 25년이라는 긴 기다림으로 바뀌었다. 명배우를 떠나 출연요청 조차 받지 못하는 잊어진 배우가 된 것이다. 다달이 지급되는 정부보조금은 그가 하루하루 버텨내는 유일한 생계수단이 된지 오래이다. 그 사이 금봉의 유일한 희망이었던 외동딸 은하도 그의 곁을 떠났다. 은하는 금봉이 집으로 가져온 대본들을 읽으면서 시나리오 작가를 꿈꾸던 문학소녀였다. 문창과에 들어가 전국 대학생 시나리오 공모에 당선되는 등, 스스로의 꿈을 실현시키지 위해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힘든 항해를 계속 해나갔다. 시한부 인생을 살면서도 생계를 책임지고 글을 쓰며 아버지의 곁을 지킨 그녀였다. 은하의 부재는 금봉의 모든 것을 앗아갔다. 이제 술만이 그가 의지하는 유일한 벗이 되었다. 심각한 알코올 의존증은 어느새 그의 신체감각들을 갈아먹어 단순한 일상생활조차 힘겨운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게다가 지속되는 환청과 환각은 금봉을 심각한 만성우울증에 빠뜨려 놓았다. 철저히 고립된 금봉 앞에 은하와 함께 했던 옛 추억은 그의 자살을 지연시키는 탈출구로 현존한다. 금봉에게 있어 은하는 실존 인물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무대 위 금봉의 집에는 금봉과 은하가 공존한다. 그가 살아 숨 쉬는 모든 순간마다 은하가 나타난다. 여고생의 모습으로 때론 대학생의 모습으로 등장해 아버지를 즐겁게 해주고 울리기도 한다. 금봉은 딸을 보낸 후에도 그녀의 부재를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부재의 인정은 금봉의 죽음을 의미하는 까닭이다.
늦가을의 어느 날, 마침내 금봉에게도 기회가 왔다. 영화사 첫 창사작품의 주인공으로 발탁되어 출연을 섭외하는 전화를 받게 된 것이다. 정말 영화와 같은 일이 벌어졌다. 더 이상 선택의 여지는 없다. 이윽고 금봉은 영화사 여사장을 집으로 초대한다. 처절하게 단조로운 그의 삶에 큰 파장이 일기 시작했다. 서둘러 장에 나가 연어와 명품 칠리소스에 들어갈 재료들을 사고 한껏 부풀어 집에 온 금봉의 손은 무척 바쁘기만 하다. 명품 수제 칠리소스 연어구이를 만들기 위해 분투하는 그의 모습은 긴 기다림의 종지부를 찍는 마지막 순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학수고대하던 영화사 여사장은 오질 않는다. 점점 더 초조해지는 금봉 앞에 다시 환청과 환각이 오버랩 된다. 이 지점에서 은하와 영화사 여사장, 신경정신과 의사 고충길, 두부장수, 금봉의 영화계 옛 친구 서갑식이 번갈아가며 나타난다. 이들은 금봉의 삶을 부연해주는 존재들이다. 신경정신과 의사 고충길은 금봉의 꿈을 일순간 물거품으로 변하게 하는 인물이다. 고충길은 금봉의 최고 예술가로 남겠다는 망상과도 같은 집착이 결국 그를 만성 우울증으로 내몰았고, 그 덕분에 현실과 망상도 제대로 구분 못하게 된 것임을 알려준다. 은하의 등장은 물론이고 그가 받았다던 영화사 여사장의 출연요청도 심지어 여사장이 등장해 시나리오를 건네었던 모든 일들이 그의 환청과 환각에 불과했음을 관객들에게 들키는 순간이다. 비록 금봉의 처지가 발각되었더라도 관객들은 그를 질책할 수 없다. 어쩌면 이 병은 25년이라는 긴 인내의 시간 속에, 금봉이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만든 것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서갑식은 금봉의 인간적인 모습을 대변해준다. 금봉은 영화협회가 주최한 시나리오 공모에 딸의 당선을 부탁하기 위해 자존심을 버리기로 마음먹는다. 관객들은 목숨과도 같이 소중히 여기던, 외고집을 내던지는 금봉과 대면하게 된다. 서갑식을 통해 투영된 금봉은 이전까지의 행보와 전혀 다르게 조명되었다. 그의 인간적인 면모가 서갑식의 등장으로 적나라하게 들어난다. 그렇지만 갑식이 이를 수락하지 않자 싸움이 벌어지고 결국 금봉은 비참히 무너진다. 이 시점에서 다시 현실이 오버랩 된다. 무대에는 금봉만 덩그러니 홀로 남아있다. 이렇듯 <명배우 황금봉>의 배우들은 주인공 금봉을 중심으로 망상 혹은 과거기억 속에만 실존한다. 이들은 금봉의 심리적 추이를 따라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다양한 역할을 하고 있다. 때로는 기억 속에, 혹은 망상과 현실 사이에 등장해 금봉을 죽음으로 내모는 것이다.
금봉이 영화사 여사장을 기다리는 목마름은 지난 시절 출연섭외를 갈망하던 그것과도 같다. 금봉에게 있어 은하가 희망이라면 기다림은 삶의 이유이다. 연극에서 금봉의 기다림은 희화되었다. 경쾌한 피아노 소리와 반복되는 조명의 암전에 맞춰 금봉이 소파에서 자세를 바꿔가며 기다림의 지루함을 표현한 부분이나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기다림에 지쳐가는 모습을 코믹하게 보여준 점은, 연출의 세심한 배려가 읽혀졌던 장면들이다. 자칫 <명배우 황금봉>이 지닌 무거운 철학적 메시지들 때문에 회피하려는 관객들의 시선을 집중시킬 수 있었던 까닭이다. 이와 함께 두부장수의 출연도 극적 분위기를 반전시키는데 효과적으로 활용되었다. <명배우 황금봉>에서 두부장수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금봉을 둘러싼 등장인물 모두가 그의 망상과 환청 또는 과거 기억 속에 존재하는 허구의 인물인 것에 반하여 두부장수는 현실에 실존하는 유일한 인물인 탓이다. 실제 두부장수는 생활력 강한 여성으로 나온다. 두부를 팔기위해 스스로를 내려놓을 줄 아는 인물로 묘사되었다. 인물구축에 있어서도 경상도 특유의 억센 억양과 발화방식을 구사해 현실적 인물임을 강조했다. 금봉이 비현실적이고 나약한 인물이라면, 두부장수는 현실과 타협할 줄 알면서도 강한 의지력을 지닌 사람으로 비유되었다. 금봉과 두부장수의 만남은 비현실과 현실, 나약함과 강인함의 대립을 나타낸다. 이들의 대결은 금봉이 두부장수를 내쫓는 것으로 끝난다. 이는 금봉이 현실에 어떻게 대응하는 가를 잘 보여준 장면이다. 한참의 실랑이 끝에 두부장수가 퇴장한 후, 금봉은 다시 우울증에 빠진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금봉이 비로소 현실을 직시하게 된 것이다. 영화사 여사장이 기다림의 세월을 상징한다면, 두부장수는 현실을 뜻한다. 그는 현실조차 맞닥뜨릴 수 없었다.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갑식과의 굴욕적인 만남도 그가 처한 참담한 현실을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반면 고충길은 그의 고통을 상징한다. 고충길의 등장으로 인해 금봉의 만성우울증과 알코올 중독이 손떨림, 기력쇠진, 환각, 환청 등으로 이어졌으며, 이제 몸조차 제대로 쓸 수 없는 나약한 존재로 전락되었음이 드러난다. 금봉의 육체적, 정신적 고통이 고충길이라는 존재를 통해 명명백백해졌다. 결국 황금봉은 은하라는 질긴 그리움을 안고 참담한 현실 속에서 긴 기다림과 고통의 세월을 살다간 것이다. 금봉은 행복했던 은하와의 해후를 끝으로, 더 이상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는 현실의 탈출구로 자살을 선택한다. 이제 인생의 은퇴를 결정하고 은하와 관객들을 향한 마지막 메시지가 전달됨으로써 연극은 마무리된다. 그러나 <명배우 황금봉>이 지향하는 금봉의 진솔한 삶 이야기는 자칫 관객들에게 진부한 연극으로 다가갈지도 모른다. 작가가 지나치게 걱정하는 관객에 대한 배려 덕분이다. 너무나 소상한 스토리 전개와 대사 속에서 관객들은 지루함을 느끼며 따분한 일상이야기 그 이상으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시계 바늘처럼 정확하게 반복되는 우리 일상에, 연극은 금봉이 여사장을 위해 준비하는 수제 칠리소스와도 같다. 연어구이의 참맛을 내기 위해 만드는 칠리소스는 각종 재료들을 적절한 비율로 혼합해야 비로소 완성된다. 마찬가지로 작품의 진가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배우와 연출 그리고 조명과 음악, 무대 등이 만나 저마다의 목소리를 조화롭게 한데 섞어야 한다. 어느 한 목소리만 지나치게 강조되면 안 되는 이유이다. 지나치게 빈틈없는 작가의 대본은 관객들에게 맛을 음미할 수 있는 시간을 주지 못한다. 채 삼키지도 전에 이미 모든 재료들이 소화되는 잘 쑨 죽처럼, 씹거나 소화시키는데 충분한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명배우 황금봉>은 공연에 필요한 제요소들이 자신들의 색깔을 드러내는데 다소 미진함이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무대이다. 무대가 배우들의 연기를 도와주고 제 목소리를 내야함은 자명한 이치다. 다른 장치들은 사실적 묘사를 위해 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거실마루와 마당을 잇는 프레임은 상징적으로 만들어져 공연 내내 자리를 지켰다. 문제는 이 틀이 적절히 활용되지 않은데 있다. 결코 시야에서 사라지지도 않는 틀이 왜 거기에 있었는지 막이 내릴 때까지도 명확한 답이 주어지지 않았다. 거실마루에 난 3개의 문들도 각각의 문이 상징하는 이미지가 분명하지 않았다. 또한 금봉의 삶을 반영한 거실마루는 너무도 정갈히 정리되어있어서 오락가락하는 집주인의 성격을 제대로 표현해주지 못했다. 이 연극에서 무대를 비롯한 각각의 구성요소들은 제 몫을 담당하기에 역부족이었다. 텍스트가 지니고 있는 힘에 눌려 침입할 수 있는 기회조차 제공받지 못한 까닭이다. 대사는 물론 동작까지 친절하게 안내해주는 대본 탓인지, 배우들의 연기는 편안하게 다가올 수 있었다. 특히 금봉역을 맡은 배우의 연기는 황금봉의 연기 인생을 대변해주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일흔 노인의 일상을 진솔한 움직임과 발화를 통해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아쉬웠던 점은, 금봉이 오랜 시간 혼자 살아와 혼잣말에 대가가 되었음을 감안하더라도 지나친 대사 분량과 잠시도 쉬지 않는 그의 언행에서 오히려 삶에 강한 집착이 읽혀졌다. 비록 만성우울증에 시달려 왔지만 적어도 죽음을 예견하고 준비한 그였다. 죽기 직전 삶의 끈을 놓는 바로 그 순간이 다소 부자연스럽게 다가왔다는 점이다. 이 부분에 관해서 보다 면밀한 캐릭터 창조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어서 두부장수의 등장은 극의 분위기를 반전시키고 금봉의 비현실적인 삶을 부각시키는 상징적 역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극의 흐름과 겉도는 인상을 주었다. 마지막 금봉의 죽음이 뉴스 앵커의 목소리를 타는 장면도 여운으로 남는다. 지금까지 무대에 나와 금봉을 울리고 화나게 하고 웃게 만들었던 은하의 존재가 이미 7년전 간암으로 세상을 떠난 존재였음이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연이어 3번이나 “7년전 간암으로 사망한” 이라는 멘트가 반복되면서 극의 마무리가 희극적인 상황으로 전도되었다. 한순간 은하의 존재가 가벼워져 버린 것이다. 관객들은 이미 은하의 첫 등장에서부터 이를 어렴풋하게 혹은 확연히 눈치 채고 있었을 것이다. 구태여 강조하지 않아도 될 사실을 지나치게 표현함으로써, 오히려 금봉의 죽음이 우스운 해프닝으로 바뀌어버렸다. 그렇지만 극단 김태수 레퍼토리가 2011년 포문을 연 <명배우 황금봉>은 진실된 삶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공유하고자 한 작품이었다. 그야말로 작가의 진정성이 묻어나는 가슴 시큰한 연극이었다. 오늘날 대학로 연극시장의 모습과는 완연히 다른 차원의 공연이었음을 명백히 해두고 싶다. 명품 칠리소스를 만들기 위해 몸소 발품을 팔아 재래시장을 다녀온 금봉이처럼 작가의 인생역정이 그대로 스며든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이 점이 극작가 김태수와 그의 대본들을 다른 작품들과 구분 짓게 하는 경계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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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과 어린이연극 - 2010년 아시테지 겨울축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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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미
아시테지 겨울축제도 여름축제 못지않게 양적으로 풍부해졌다. 해외 초청공연 4편에 국내 작품 6편, 그리고 개막작과 자유참가작까지 10편이 넘는다. 좋은 작품을 엄선하여 보여주겠다는 의지가 아시테지 축제에서는 항상 중요하겠지만 어린이 연극의 수준이 많이 올라갔다는 것을 널리 홍보하기 위해 국내 작품의 수를 늘려 좀 더 다양한 작품들을 관객이 만날 수 있도록 문을 열어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특히 서울에서 보기 어려운 지방극단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었던 것도 긍정적이었다. 어린이 연극이 지역에 기반을 두고 성장하는 것은 외국의 사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듯이 바람직한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이번 겨울축제 작품 중 국내 작품 3편 <해와 달이 된 오누이>, <돈키호테>, <할머니의 낡은 창고>와 해외 작품 3편 <또로록 똑똑 물방울>, <춤추는 하얀 손>, <내 친구 피프와 투트>를 다룰 텐데 웃음을 이끌어내는 방법, 웃음에 대한 태도를 어린이연극과의 관련성 속에서 생각해 보고자 한다.
전통과 웃음
어린이 연극이다 보니 아무래도 관객들을 즐겁게 해주고자 하는 의도가 공연 전반에 드러나 있다. 그런데 관객들의 웃음을 이끌어내는 방식은 극단 간에도 차이가 있겠지만 동서양간에도 차이가 있다. 극단 누리의 <해와 달이 된 오누이>는 다소 무섭기도 한 옛날이야기지만 해학적으로 풀어내어 웃음을 전면에 내세웠다. 에스토니아의 <내 친구 피프와 투트>는 서양의 희극적인 전통에 바탕을 두고 두 명의 인물이 캐릭터 중심으로 웃음을 이끌어낸다. 이 외에도 극단 21의 <돈키호테>, 자파리연구소의 <할머니의 낡은 창고>, 이탈리아 극단의 <또로록 똑똑 물방울>과 폴란드 극단의 <춤추는 하얀 손>에도 웃음의 코드는 중요하게 작용한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는 호랑이에게 엄마가 잡아먹히는 사건을 비롯해 호랑이에게 쫓기는 오누이의 상황을 재미있게 표현했다. 이미 이 이야기를 아이들이 다 알고 있기 때문에 원작 그대로 가져가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판단한 듯하다. 그래서 어린이 관객들과의 한판 놀이에 더 많은 비중을 두었다. 관객들을 참여시켜서 호랑이와의 대결을 체험놀이로 만들었다. 배우들은 노련해서 아이들을 극으로 이끄는 솜씨가 좋았다. 어머니 역할의 배우는 사투리를 구수하게 사용하면서 우리 민족이 지닌 해학적 정서를 잘 섬겨주었다. 그러나 이 작품을 해학으로 풀어야 하는 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상징성 때문에 엄마가 호랑이에게 잡아먹히는 부분을 무섭지 않게 표현할 필요는 있지만 <해와 달이 된 오누이>만이 지닌 전래동화의 원시적 힘을 제대로 활용하지 않은 아쉬움 때문이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만의 개성을 해학으로 뭉뚱그리면 오누이의 정신적 성장이라는 알맹이들이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웃음을 유발하고 재미를 선사해주기는 했지만 그 이상을 칭찬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호랑이를 표현하는 인형의 사용이 매우 기능적이어서 칭찬받을 요소가 많은 점은 인정할 수 있다. 특히 호랑이에게 잡아먹히고 엄마 옷을 입은 호랑이로 재탄생하는 과정을 매끄럽게 표현해 낸 점은 인상적이다. 그렇지만 거기까지이다. 재미를 위해 알뜰히 사용된 부분을 제외하면 전체적으로는 완성도가 떨어진다. 전래동화와 해학이 어울리지 않는 조합은 아니지만 그것이 필요 이상으로 확대될 때는 웃음의 효과와 무관하게 작품 자체로서는 손해를 본다. 이 작품의 경우 분명 극을 이끌어 가는 노련미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아마추어적인 단계는 벗어나 있다. 한 쪽을 잘 살리면서도 다른 쪽이 망가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우리한테는 어려운 과제인 듯하다. 이 작품은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이 모두 두드러진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며 이는 현재 우리나라 어린이 연극이 처한 상황을 함축하고 있다. <내 친구 피프와 투트>는 피에로 코를 달고 나오는 인물들 자체가 이미 어떤 일정한 방식의 웃음을 암시한다. 약간 모자란 듯 보이는 그들의 희극적 연기는 매우 오래된 것이고 대중적으로 익숙해있다. 채플린이나 영구의 몸짓을 연상한다는 점에서 그것이 같은 종류의 것이라고 감지할 수 있다. 슬랩스틱 코미디라고 불리는 것을 이 배우들도 선보이는데 그렇다 보니 몸의 행위로 관객들에게 표현하는 것이 중심이 된다. 이 작품도 간단한 말은 영어로 하면서 관객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유도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관객들은 그들의 의도를 눈치채고 잘 따라가 주기도 하고 그들의 방식을 그대로 적용하여 기대 이상의 호응을 보여주기도 하며 한편으로는 무리한 요구를 해서 그들을 당혹시키기도 한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가 준비된 참여를 기술적으로 잘 소화했다면 이 작품에서는 즉흥적 소통이 이루어지는 현장을 보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물론 이 작품에서도 관객을 무대로 불러서 그들이 했던 동작을 같이 해볼 수 있게 하는 등 준비된 참여가 주를 이루지만 그것과 별도로 그들의 방식을 관객들이 이렇게 이해한다는 즉석에서의 소통이 전제된다. 이 작품의 중요한 의도 중 하나가 관객의 웃음 유발이지만 이 작품은 어린이 연극의 미덕을 녹여내는 데 게으르지 않다. 배우들은 서커스 비슷한 묘기를 보여주는데 사실은 꽤 난이도가 있는 행동이지만 쉬운 것부터 차근차근 접근하여 위험해 보이지 않게 한다. 이 작품은 뚜렷한 줄거리가 없지만 그럼에도 콘서트라는 개념을 일관되게 끌고 나간다. 관객과 두 배우가 서로의 입장을 바꿔가며 한편의 콘서트를 완성한다. 그 과정을 좀 생략했으면 덜 산만했을 것 같은데 힘들게 끌고 가는 데서 구조적인 완성도를 중요하게 여기는 면을 발견할 수 있다. 결국 희극을 주조로 하되 어린이 연극이 지녀야 하는 미덕을 세심하게 배치하여 전체적인 통일성을 추구했다는 점 자체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나 <내 친구 피프와 투트>는 각각 자신의 전통에 바탕을 둔 희극 정신을 살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적인데 그것이 어린이연극이라는 개념과 철학을 얼마나 지지해주고 있느냐에서 차이가 난다. 경험적 웃음과 발견의 웃음
웃음을 이끌어내는 방식에서도 차이가 난다. <돈키호테>는 온 가족이 함께 볼만한 작품이다. 원작은 풍자의 강도가 높은 작품이라 웃음의 질이 높은 편이다. 그래서 전체적으로는 흥겨운 작품이 된다. 우리의 경우 주로 말과 과장된 행동으로 웃기려는 경향이 강하다. 초청된 해외 작품이 언어적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 행동에 의지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우리 작품에서의 언어가 설명적으로 비춰지는 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런 점을 감안하고 본다고 해도 그들의 언어가 결국 “이것은 웃긴 거야 그렇지, 동의해. 우린 이미 이런 걸로 웃은 적이 많잖아. 기억나지” 식으로 웃음 코드의 경험을 들추어 웃음을 인지적으로 접근하려는 경향이 강하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웃음을 기존의 지식이나 경험에 호소한다는 것이 어느 정도는 불가피한 일이겠지만 그것이 같은 방식을 반복하는 데에 사용된다면 재미있을 수가 없다. 특히 어른들한테는. 그것이 패러디 물에서의 지식과 경험이 아니라 어린이연극 특유의 약속과 방식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외국 작품들은 발견에 초점을 두고 재미나 웃음을 끌어낸다. 너무나 별 것 아닌 것을 가지고 웃음을 유발한다. <또로록 똑똑 물방울>에서 물을 따르는 행동은 너무도 일상적인 것인데 그것을 보고도 웃게 된다. 물론 외국 작품의 경우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웃음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없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보편성에 기댈 수밖에 없기도 하지만 여러 작품을 통해 보면 이것이 그들만의 방식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방식이 어린이연극의 창의적 개념에는 더욱 잘 부합한다. 웃음도 의미도 함께 만들어 나가기 때문이다. <돈키호테>는 서사가 강하기 때문에 만들어 갈 수 있는 부분이 제한되기는 하지만 기존의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웃음 코드는 작품을 다소 식상하게 만들 수 있다. 전체적으로 배우들의 에너지는 밝았고 극을 능숙하게 이끌어갔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강약조절이 되지 않는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꼭 긍정적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서사는 비교적 짜임새 있게 정리했지만 서사 전달의 비중을 줄이고 웃음을 생성해내는 기법, 풍자의 질을 높이는 방법, 연극적인 표현의 다양성 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작은 인형을 사용하는 방법은 이제 새롭지 않다. 무대의 제한성을 극복하는 비교적 손쉬운 방법에 해당한다. 물론 <돈키호테>라는 명작을 아이들에게 잘 전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면 이런 논의를 할 필요가 없다. 그렇지만 1980년대 명작극장의 2011년 버전으로서는 미흡하다는 뜻이다. <또로록 똑똑 물방울>은 사실 교훈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일정한 서사가 있지는 않지만 물 부족에 대해 알리고 물의 중요성을 인식시키는 작품이다. 그렇지만 결코 가르치지는 않는다. 이 작품의 웃음은 <내 친구 피프와 투트>에서처럼 희극이 주는 폭발적인 웃음이 아니라 뭘 잘 지켜보고 알아가고 소통하면서 발견하는 잔잔한 웃음이다. 그런데 아이들 입장에서는 그것이 재미로 다가온다. <또로록 똑똑 물방울>은 교훈적인 내용도 가르치지 않고 발견하게 하면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다는 것을 모범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놀이와 유머
어린이극에서 놀이는 단골 레퍼토리이다. 많은 어린이극들이 부분적으로라도 놀이를 활용하는 경향이 강하다. 놀이는 실패확률이 적어서 본전이라도 챙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놀이가 작위적이 되면 본질을 잃게 되는 것이라서 마냥 쉬운 방법만은 아니다. 그리고 새로운 놀이들을 개발해야 하는 부담도 있다. 그 개발성과에 따라 작품의 창의성이 좌우되기 때문이다. <할머니의 낡은 창고>는 자파리라는 극단의 이름이 극단의 지향성을 이미 함축하고 있듯이 놀이의 성질을 비교적 잘 이해하고 활용한 작품이다. 일단 서사가 강하지 않아서 다양한 놀이가 중심이 될 수 있도록 했고 놀이를 위한 놀이에 함몰되지 않도록 긴장한 면도 보인다. 아이들은 할머니의 낡은 창고에 들어가서 아기구덕이 무엇인지 모르고 키처럼 사용하다 그 쓰임새를 알게 되기도 하고 작은 서랍장을 활용하여 다양한 모양들로 변신시키는 놀이를 하기도 한다. 원래의 서랍장은 변신이 불가능하지만 블록처럼 만들어져 의자, 엘리베이터, 강아지, 피아노, 아파트, 식탁, 비행기 등 소꿉놀이의 소도구로 탈바꿈한다. 물론 여기에는 서랍장이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가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한 의도가 있어서 작위적 가능성이 있고 놀라운 창의성이 변신의 과정에서 번뜩이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아이들이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평균이상의 재미를 준다. 본격적인 놀이는 아빠의 옛날 일기장을 훔쳐보면서 시작된다. 일기장의 세계는 거대한 팝업 북에 종이인형을 자석으로 움직이도록 하여 아이 관객의 감정을 대변해주는 주인공 인물들이 책 속 동네를 다니면서 아빠의 어린 시절을 고스란히 재현한다. 아빠의 어린 시절이지만 미스터리한 사건을 해결한답시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일상적 모습을 현재의 아이들도 충분히 공감하게 된다. 일상의 놀이가 결국 세대 간의 간극도 좁히기 때문에 교훈의 목소리가 개입할 틈을 주지 않는다. 놀이를 놀이로 풀어간 모양새가 일관된다. 또 하나 전통에 너무 끌려 다니지 않고 일상성을 살려낸 점이 새롭다. <춤추는 하얀 손>은 유머가 돋보인다. 손동작만으로 무수한 장면을 만들어내는 배우들의 손놀림은 매우 숙달되어 있지만 그것보다 더 돋보이는 것은 작품의 세련성이다. 그것은 숙달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세련된 느낌을 주는 중요한 요소의 하나는 유머이다. 사실 이 작품에서 유머가 빠졌다면 괜찮은 작품이라고 말하기 힘들다. 지루하기만한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이 작품의 유머는 은유적, 상징적 측면이 많아서 어린이 관객들한테는 다소 어려울 수 있다. 그렇지만 어른 관객들은 그 유머를 충분히 즐길 수 있는데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어린이 관객에게 보다는 어른 관객에게 인기가 있을 만하다. 유머감각이 가장 빛났던 장면은 운전할 때 시동이 잘 걸리지 않자 보닛을 열고 차를 점검하는데 그 보닛 안의 기계들을 손으로 표현한 부분이다. 시동을 걸 때마다 흰 손들이 엔진의 떨림을 표현했는데 실제 기계의 떨림보다 더 와 닿게 표현했기에 폭소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표현에 과장이 있긴 했지만 그것이 결코 리얼리티를 해치지 않고 오히려 사실보다 더 현장감 넘친다는 점에서 그들의 유머감각을 인정하게 된다. 어린이연극에서 놀이와 유머는 작품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 중요한 기능을 한다. 우리의 강점인 놀이의 전통을 발전적으로 계승하되 창의적인 놀이로의 변화가 필요하고 우리에게 다소 낯선 유머에 도전할 필요도 있다. 어린이 연극과 유머의 조합은 앞으로 우리가 개발해야 키워드이다. 이 외에도 아이들 관객을 즐겁게 하는 요소는 많겠지만 어린이연극에서 웃음이 어떤 성분으로 이루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좀 더 분석적으로 해야 하는 때가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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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가 육성의 의미-‘요람을 흔들다’ 참가작 리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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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선 애(연극평론가)
‘요람을 흔들다’
서울연극협회가 연출가 육성 프로그램으로 야심차게 준비한 기획 ‘2010 차세대 연극연출가 인큐베이팅 프로그램 - 요람을 흔들다’가 공연되었다. 2010년 7월부터 공모에 들어가 10월에 본선 대상작 세 작품을 선정하였고 합평회를 거쳐 2011년 1월 5일부터 16일까지 본선 참가작 세 편이 공연되었다. 이 기획이 무엇보다 반가운 이유는 마땅한 인맥이나 학연같은 비교적 손쉬운 활동의 연결고리를 전면에 내세우기 힘든 젊은 연출가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이며, 그들의 향후 활동을 적극적으로 보장한다는 것이다. 실상 연극 제작에서 가장 실세로 인식되는 연출가들 역시 그들이 활동할 수 있는 ‘판’을 만나는 것은 제작비나 스텝의 구성 등등 여러 가지 제작 여건 상 어려운 일이기에 서울연극협회의 이 기획은 여러모로 큰 의미를 지니는 기획이라고 할 것이다. 이제 본선 참가작 세 편을 대상으로,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기대되는 젊은 연출가 세 사람의 특성을 살펴보기로 한다. 공교롭게도 세 편은 각각 작·연출을 함께 한 작품, 외국 작품을 연출한 작품, 작가와 연출가가 분리된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어, 연출가의 취향과 연출 방향을 비교하여 가늠할 수 있었다.
최원종 연출, <에어로빅 보이즈>
본선 참가작 중 첫 번째 공연은 <에이로빅 보이즈>(2011년 1월 5일~7일,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로, 연출가보다 작가로서의 인지도가 더 높은 최원종이 스스로 창작한 작품을 직접 연출하였다. 작품의 내용은 비교적 단순하다. 데쓰 메탈을 공연하는 밴드 일동은 관객이 더 이상 찾지 않는 그들의 공연장에서 더 이상 하고 싶은 음악을 할 수 없다는 것에 절망한다. 그 때 밴드의 뒤를 봐주던 보스의 개인사정으로 그가 운영하는 휘트니스 클럽을 부흥시켜야한다는 과업이 부여되고, 그들만의 세계에 빠져있던 밴드는 전단지 돌리기부터 시작하여 휘트니스 클럽을 위해 여러 가지 일을 하지만 매번 어려움에 봉착하고, 결국은 우여곡절 끝에 에어로빅 경기에 참가하여 힘찬 율동을 하면서 작품은 막을 내린다. 33세 청춘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는 최원종 연출의 의도대로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해야만 할 것 사이에 방황하는 청춘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그의 전작인 <청춘의 등짝을 때려라>와 같은 맥락에 놓인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이 공연의 기획이 차세대 연출가 육성이니만큼 연출의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 살펴볼 때, 이 작품은 그다지 특별할 게 없는 작품이었다. 가장 먼저 지적해야할 부분은 자신이 쓴 작품을 직접 연출하는 작품의 오류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작·연출을 겸하는 작품은 연출가가 작가와 분리되지 않기 때문에 창작과정에서 본인이 애정을 가지고 만든 장면을 절대 버릴 수 없고, 그러다보니 작품 전체의 분위기가 산만하거나 지나치게 길어져 설명적이 되는 경우들이 많다. 이 작품에서도 그 부분이 드러나는 바, 보스와 그의 딸 초롱의 갈등이나 데쓰 메탈 밴드였던 승범, 웅기, 대환, 근호의 갈등이 필요없이 반복되거나, 휘트니스 클럽에서 여러 가지 에어로빅 동작을 익히는 장면이 사건의 전개와는 긴밀하지 못한 채 여러 번 펼쳐진 것 등을 들 수 있다. 이로 인해 이 작품의 공연 시간은 거의 2시간에 육박하는데, 이야기가 단순한 만큼 사건과 갈등에 집중하여 작품을 정리했다면 훨씬 효과적이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또한 전반적으로 사실적인 무대 연출이 기본 기조였기에 무대 역시 데쓰 메탈 공연장에서는 화려한 붉은색 휘장으로 분위기를 살렸고, 휘트니스 클럽에서는 사각의 공간을 활용하여 다양한 운동을 보여주었다. 그러다가 지병을 앓던 보스가 죽은 후, 보스를 추억하는 장면에서는 갑자기 보스의 영혼이 나오는 무대 뒤편이 집중되어 사실성을 벗어난 상징적 무대로 변환한다. 사실, 이 장면 이후에 데쓰 메탈 분장을 한 멤버들이 에어로빅을 해야 하기에 분장과 의상교체의 시간이 필요하였고, 그것을 위해서는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지 않는 유일한 인물인 보스를 활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기능성의 강화로 인해 지금까지 전개된 사실적이고 역동적 분위기와 전혀 다른 정적인 장면이 상당히 긴 시간동안 연출되고 있어 전반적인 분위기를 흔들어 놓고 있다는 점이다. 기능성과 효과적인 표현의 환상적인 조합, 그러면서도 작품 전체의 기조를 놓치지 않는 연출의 방법을 조금 더 고민해봐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눈에 두드러지는 참신한 연출은 그다지 표현되지 않았으나, 데쓰 메탈의 공연으로부터 시작하는 강렬한 첫 장면, 에어로빅으로 끝나는 역동적인 마지막 장면 등, 공연의 앞과 뒤를 매우 역동적인 장면으로 배치한 것, 그 사이사이에 배우들의 움직임을 극대화시켜내고 있다는 것 등은 장점으로 꼽힐 수 있으며, 무엇보다 그 움직임을 직접 소화해낸 배우들의 열정이 객석으로 고스란히 전해졌다는 것은 연극의 기본이 무엇인가를 잘 설명해주는 부분이다.
임세륜 연출, <고리끼의 어머니>
두 번째 작품은 고리끼의 <어머니>를 각색한 임세륜 연출의 <고리끼의 어머니>(2011년 1월 9일~12일,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이다. 참가작 중 유일한 번역극에 해당되는데, 연출은 이 작품을 지금 현재 대한민국의 맥락과 연관시켜 각색하였고, 바로 이 지점이 연출가로서 돋보이는 점이자 스스로 자초한 한계에 해당한다. 고리끼의 <어머니>를 연극무대로 옮겨온 것은 독일 연출가 브레히트이다. 서사극 이론의 대표이기도 한 브레히트는 혁명과정에서 아들을 잃으면서 각성하게 되는 어머니를 서사극 연출로 보여주었는데, 따라서 임세륜 연출도 서사극으로 무대를 구성하였다. 젊은 연출가답게 기존 무대에서 발견하기 어려운 양식적 표현과 실험이 진행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더구나 사실주의극의 전통이 강한 우리나라 연극계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무대 전면은 현실로, 그 뒤를 작품의 공간으로 구분하여 활용하면서, 배우들의 등퇴장 동선은 물론 의상의 탈의까지 관객에게 노출하였으며, 노래와 영상의 삽입, 1인 다역의 배우 활용 등등 서사극의 중요한 요소들을 모두 무대에 표현해 내었다. 그럼에도 몇 가지 숙련되지 못한 연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먼저, 혁명의 분위기를 담아내기에 소극장은 좁은 공간-참고로 고리끼의 <어머니>가 한국에서 초연될 때 그 무대는 대극장이었다-이기에 배우의 동선이 겹쳐지고 실제로 서로 부딪치기도 하는 문제점이 노출되었다. 빈 무대를 활용하는 것은 좋았으나, 상대적으로 많은 배우들이 움직이기에는 실제 공간이 협소하다는 점을 보다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었다. 그 다음은 소품의 활용으로, 무대 가장 중앙의 공중에 걸려있는 사진은 그 의도에 비해 작품 내에서 기여하는 바가 없었으며, 두루마리에 감긴 혁명의 메시지가 적힌 종이는 마지막 장면에서 길게 펼쳐지는데, 그 장면 하나를 위해 처음부터 무대에 놓여 있어 배우의 움직임에 방해를 주고 있었다. 종이를 밑에서 위로 끌어올려 마구잡이로 굴러가며 만들어내는 선들이 혁명의 분위기를 나타낸다는 의도는 참신하지만 오히려 빈 무대의 특성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마지막에 무대 위에서 아래로 뿌려지는 것이 더 효과적이지 않았을까 싶다. 구체적인 장면의 묘사만이 아닌 작품의 선택과 해석도 연출의 역할에 해당한다고 볼 때, 세 작품 중 이 작품이 가장 연출가 스스로의 세계관과 역량을 잘 보여주고 있다. 원작에 대한민국의 현실을 접목시킨 각색은, 작품 속 어머니를 중심으로 한 노동자들의 현실과 혁명 담론은 지금도 유효하다는 연출가의 현실 인식을 그대로 반영하는 부분이다. 무대 전면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현실의 이야기, 투쟁하며 혁명을 외치던 선배들이 하나씩 생계를 이유로 떠나가고 마지막 남은 후배가 그것을 기록하며 끝까지 남겠다는 이야기는, 혁명을 일상화했으나 지금은 그것을 그저 추억하고만 있는 386세대에 대한 비판이자 연출가를 포함한 다음 세대의 역할과 임무에 대한 선언으로 들린다. 임세륜 연출가가 작년에 베트남의 혁명 이야기인 <사이공의 흰 옷>을 연출한 것이 우연이 아니었던 셈이다. 이렇게 작품을 대하는 연출가의 태도가 확고하다보니 그 자체는 연출의 의도가 명확하게 읽혀진다는 점에서 장점이 되지만, 그것을 표현해내는 방법에서는 작품의 주제의식에 함몰되어 보다 자유로운 표현 방법의 모색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아직 덜 숙련된 서사극의 연출방법은 작품 전체를 어수선하고 산만한 분위기로 만들어 냈다. 왜 이 시기에 고리끼인가, 왜 혁명 이야기인가. 주제의식은 매우 유효하며 그것에 동의하지만, 이 작품은 오히려 그 주제의식에 눌려버린 작품이었다.
이성구 연출, <사라-0>
마지막은 황진주 작, 이성구 연출의 <사라-0>(2011년 1월 14일~16일,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로 작가와 연출가가 분리된 작품이다. 황진주 작가와 이성구 연출은 작년 6월 ‘100페스티벌 2010-전쟁 그리고 분단’에서 <인내의 돌>이라는 작품으로 이미 호흡을 맞춘 사이다. 사랑을 이야기하는 이 작품의 근본 모티프는 28세에 스스로 생을 마감한 영국 극작가 사라 케인의 삶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정화된 자들>, <4.48 psychosis>, <페드라의 사랑> 등이 공연되었는데, 무의식과 관념을 넘나드는 작품의 특성도 특성이지만 사라 케인의 삶 자체가 더욱더 연극적이라는 평을 받는 작가이다. 잦은 발작과 정신질환으로 병원을 드나들던 사라 케인의 삶과 작품이 내용의 중심이 되었지만 그 정보를 알지 못해도 작품의 이해에는 어려움이 없는 것은 ‘사랑’이라는 가장 보편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실제로 프로그램 그 어디에도 사라 케인에 대한 언급은 없다. 보도자료나 관계자의 말을 접하기 힘든 일반 관객들은 사라 케인과 이 작품을 직접 연결시키기 어려울 것이다). 이 작품은 자해와 자학을 일삼는 환자 사라, 그리고 그녀를 치료하는 의사가 중심이다. 의사는 자신의 눈앞에서 자살한 애인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처를 가졌고, 사라는 아버지를 사랑한 기억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두 사람은 치료하고 치료받는 관계로 설정되었으나, 사랑으로 인한 트라우마의 공통점을 지니고 있기에 서로 갈등하다가 그 고통을 서로 어루만지는 화해의 분위기로 끝을 맺는다. 이 작품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무대의 활용이다. 빛이 반사되는 양철로 만들어진 병원 공간이 무대 전면을 차지하며 현실 세계를 그려내고, 그 병원 공간의 정면, 육중한 문이 열리면 나타나는 무대 뒤의 검은 공간은 무의식의 공간이다. 현실과 내면 공간을 배치하면서도 두껍고 무거운 병원 벽을 설치함으로써 그것의 넘나듦이 매우 어려운 일임을 표현해내고 있다. 높은 곳에 있는 환기구, 환자 치료의 침대이자 식탁이기도 한 테이블로 구성된 병원 공간은 순백색의 세상, 그것이 열리며 나타나는 무의식의 공간엔 붉은 토마토를 실은 카트와 흰 옷을 입은 내면의 자아들이 차지하는 까만 세상. 이렇게 강렬한 색의 대비는 공간의 분리는 물론 그것의 기능까지도 확연히 도드라지게 만든다. 무의식의 세계는 필요에 따라 의사의 무의식이기도 하고 사라의 무의식이기도 하다. 의사는 왜 스스로 삶을 포기하는 환자를 살리고 싶어하는지, 환자는 왜 지속적으로 죽음을 맞고 싶어하는지가 무의식 공간 속에 상징적으로 나타난다. 관능적인 여인의 몸짓으로 가득 찬 의사의 무의식은 그녀를 눈앞에서 보낼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무기력으로 표출되고, 두 명의 내면 자아와 아버지의 상징적 존재로 구성된 사라의 무의식은 비도덕이라는 사회의 굴레와 자아의 고통으로 나타난다. 사라와 의사, 현실과 무의식을 공통적으로 묶어내는 것은 병원과 검은 공간에 똑같이 배치된 거대한 원형 고리이다(첫날 공연에서는 무의식 공간에 걸려 있던 원형 고리 중 하나의 연결 장치가 끊어지는 바람에 다른 고리와 계속 부딪치며 마치 종소리같은 음향을 내었다. 관객의 입장에서는 언제 다른 고리도 끊어질지 몰라 작품을 보는 내내 불안함을 주기도 한 장치이다). 제목의 ‘0’을 그대로 표현한 듯한 원형 고리는 내면와 현실, 고통과 기억이 결국은 하나로 만나는 것이며, 이는 곧 ‘0’, 즉 새로운 것을 시작할 수 있는 제로의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읽혀진다. 이렇게 뚜렷하게 대비되는 흑(黑), 백(白), 적(赤)의 색채 활용과 무대 공간의 구분은 작품을 시각적으로 주제화하고 있어 세 작품 중 가장 적극적인 무대 활용을 보여준다. 비록 육중한 병원의 벽면이 움직이는 과정에서 간격이 어긋나는 바람에 문이 열린 채 병원 장면이 진행되거나 무의식의 세계가 반만 열린 채 펼쳐지는 장면도 있었으나 이것은 기술적인 부분에 해당하는 것으로, 무대를 상상하는 연출의 신선한 발상을 가리지는 못하였다. 이 작품이 우수작품으로 선정된 것도 바로 이러한 무대 연출의 상상력에 기인한다고 할 것이다. 사랑을 중심으로 내면과 현실을 교차하며 작품을 만든 황진주 작가의 역량과, 자유로운 무대 상상력을 보여준 이성구 연출의 이후 행보를 기대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제대로 된 연극인 육성프로그램의 성과와 기대
각각의 작품이 사흘 혹은 나흘밖에 공연되지 않았음에도 매 공연은 모두 매진이었다. 이것은 이 기획 자체가 연극인들 내부는 물론 일반 관객들에게도 매우 큰 관심거리였기 때문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까지의 지원정책은 대부분 어느 정도 성과가 있는 기성 연극인들을 대상으로 하였고, 그 실제 내용 또한 지원금 지급 등 일시적인 것에 머물렀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지원이나 육성의 기획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서울연극협회의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은 공모와 1차 선정작의 공연, 그것을 통해 우수작품을 선정해 2011년 서울연극제에 출품시키기까지 ‘인큐베이팅’이라는 용어에 합당하게 첫 출발부터 완성된 공연까지의 전 과정을 담당하면서 지속적인 육성의 모습과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 연출가이든 작가이든 처음부터 잘하고 잘 만드는 사람은 없다. 중요한 것은 발전가능성의 씨앗을 발견하고 그 씨앗에 지속적으로 물과 양분을 주며 좋은 동량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오랫동안 지켜보는 일일 것이다. 진정한 육성의 의미는 여기에 있다. 배고픈 사람에게 당장 밥을 주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스스로 식재료를 구하고 음식을 만들 수 있도록 방법을 알려주는 것. 상당한 시간이 걸리고 그에 비해 성과는 뒤늦게 찾아오는 작업, 그러나 이것이 좋은 연극 환경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기에 이 힘든 일을 기획하며 모처럼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서울연극협회에게 박수를 보낸다. 참가작 세 작품은 사실 연출 면에서 젊은 연출가, 초보 연출가의 면모가 오히려 더 도드라져서 오십보백보, 누가 더 훌륭한가를 따지는 것이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작품이 뛰어나다 아니다의 완성도와 작품성의 문제가 아니라 연극 제작에 있어 자기만의 색채를 지속적으로 입혀나갈 수 있는가라는 가능성이다. 이 부분에서는 세 연출가 모두 기대를 가져도 좋을 듯하다. 앞으로 왕성한 활동을 할 좋은 연출가 세 명을 발굴했다는 점에서 이 기획의 의미는 충분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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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득이>를 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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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희곡워크샵 대표 극작가/연출가 박정기(朴精機)
연출: 김동수 윤색 극단: 김동수 컴퍼니 작 : 김려령 각색 : 정여진 공연장소: 김동수 플레이하우스 관람일시: 2011.2.6
2월 6일 이화동 김동수 플레이하우스에서 극단 김동수 컴퍼니의 김려령 원작 정여진 각색 이상훈 극본 김동수 윤색 연출의 <완득이>를 관람했다. <완득이>는 키가 몹시 작은 사교춤꾼 아버지와 베트남 여인 사이에서 출생한 혼혈소년의 이야기로 제1회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한 김려령의 소설을 연극으로 만들었다. 춤꾼 아버지가 제비족으로 오해를 받고, 어머니가 동남아 여인이라는 사실마저 부끄럽게 여기는 혼혈 고교생 <완득이>가 학급에서 소외당하고 산동네에 거주한다는 사실마저 늘 불만이지만, 법대출신 담임선생은 <완득이>를 인간적으로 대해주고 조언을 아끼지 앉지만, <완득이>는 달갑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급우중 공부가 수석이고 미모인 여학생의 따뜻한 관심마저도 <완득이>는 자신의 처지와 열등의식으로 여학생에게 마음을 열어주지 못한다. <완득이>는 자신의 어머니인 베트남 여인의 방문도 냉정하게 대하며, 자신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것 자체를 거부한다. 다만 <완득이>가 혼자서 입을 열 때는 집 부근의 조그마한 교회 십자가 앞에서 기도할 때뿐이다. 재벌의 후예이지만 산동네 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완득이>의 담임선생은 부정한 축재로 부자가 된 아버지의 눈을 피해 산동네로 이사를 하고, <완득이>네 바로 옆집에 거주하게 되면서 <완득이>의 아버지와도 가깝게 지내게 되고, 어머니와의 문제점도 알게 되면서, 산동네에 거주자들과도 내왕을 하며, 담임선생은 차츰 어려운 사람들의 삶에 한발 가까이 다가서게 된다. <완득이>는 킥복싱 선수로의 꿈을 키우며 도장에 나가게 되고, 시합에도 출전해 한방에 넉아웃 당하기도 하지만, 참피온의 꿈을 꺾지 않고 최선을 다해 정진한다. 드디어 학생 킥복싱 결전의 날이 오고, <완득이>는 아버지와 담임선생을 초청하고, 급우들에게도 알리고, 어머니에게도 시합장면을 보도록 일러준다. 시합이 시작되고 <완득이>는 난타를 당해 그로키 상태에 이르지만, 미모의 급우인 여학생의 절규 같은 응원의 힘으로 상대를 다운시키고 드디어 승리를 쟁취한다. 대단원에서 담임선생은 학교를 때려치우고, <완득이> 아버지에게 춤 교습소를 열어주고, 자신은 산동네 교회를 사들여 성직의 길로 들어서는 등 아버지의 부를 사회로 환원하는데 힘을 쏟게 되고, <완득이>는 미모의 여학생과 가까이 사귀게 되고, 킥복싱 참피언의 꿈을 향해 화알짝 날개를 펴는 장면으로 마무리를 하는 감동적인 연극이었다. 남녀노소는 물론 연극인 비연극인을 막론하고 이화동 김동수 플레이하우스에서 공연하는 연극 <완득이>의 관람을 권한다. 이 연극에는 어려운 현 세태를 극복하며 살아가는 산동네 사람들의 얘기와 한국다문화가족과 혼혈인의 삶과 사랑이 적나라하게 반영된 근래 보기 드문 감동만점의 연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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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터스(Titus Andronicus)>를 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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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희곡워크샵 대표 극작가/연출가 박정기(朴精機)
연출: 윤시중 극단: 극단 하땅세 작 : 윌리엄 세익스피어 각색 : 윤조병 공연장소: 대학로예술극장소극장 관람일시: 2011.3.15
3월 15일 대학로예술극장소극장에서 극단 하땅세의 윌리엄 세익스피어 원작 윤조병 각색 윤시중 연출의 <타이터스>를 관람했다. <타이터스 앤드로니쿠스>는 그리스 신화의 필로멜라 이야기에서 소재를 따온 윌리엄 세익스피어의 초기 작품이다. 잔인함의 극치로 토막살인, 폭력, 불륜, 강간, 영아유기, 사지절단, 혀를 절단하는 등 엽기적인 내용으로 세익스피어의 작품 중 가장 세익스피어 답지 않다고, 혹평과 악평을 받은 작품이다. 피터 부룩(Peter Brook)이 1950-60년대에 감독한 영화 중 윌리엄 세익스피어의 <겨울 이야기>와 <리어왕> 그리고 <타이터스 앤드로니쿠스>가 관객의 눈길을 끌었고, 1995년에 연극 연출가 줄리 테이머가 런던에서 <타이터스 앤드로니쿠스>를 공연한 후, 1999년에 줄리 테이머가 직접 영화로 제작 감독한 <타이터스>는 안소니 홉킨스(타이터스) 제시카 랭(타모라) 알란 커밍(새터나이너스) 제임스 프레인(바시아너스) 조나단 라이메이어스(카메론) 등 뛰어난 기량을 가진 연기자들을 등장시켜 호평을 받았다. 우리나라에서는 2009년에 서강대 메리홀에서 CJ영페스티발에 참가작인 상상만발극장의 박해성이 각색과 연출한 <타이터스>가 우수 창작상을 받았다. <타이터스 앤드로니쿠스>의 내용은, 명망있는 로마의 장군 <타이터스>와 고트족의 여왕 <타모라> 간에 끝없이 벌이는 복수극이다. 고트족을 평정하고 왕족들을 포로로 잡은 <타이터스>는 <타모라>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전장에서 부하들을 위해 <타모라>의 장남을 제물로 바친다. 그런 후 로마로 돌아온 <타이터스>는, 두 왕자가 서로 왕위를 다투고 있는 것을 목격하고, 선거를 원하는 로마 시민들의 희망을 외면한 채, 첫째 왕자를지지하고 그를 도와 왕위에 오르도록 한다. 왕은 그 보답으로 <타이터스>의 외동딸을 왕비로 맞으려 한다. 하지만 <타이터스>의 딸은 이미 둘째 왕자와 사랑에 빠져있어, 왕비자리를 거부하고, 그녀의 오라비 또한 그녀가 도망치는 것을 도와준다. 노한 왕은 <타모라>를 왕비로 삼게 되고, 권력을 잡은 <타모라>는 <타이터스>의 집안을 서서히 몰락시킨다. 극단 하땅세의 연극 <타이터스>는 대학로예술극장소극장의 협소한 공간을 최대한으로 이용하여, 관객을 로마시민에 동참시키고, 무대전환에 가세하도록 만드는가 하면 관객을 세워서 관람시키는 등의 독특한 방법으로 연기자와 관객 혼연일체의 공연이 되고, 공감대를 형성케 하려고 애썼다.이상직, 하성광, 정진아, 조선주, 양성철, 전범준, 이길준, 문숙경, 홍도영, 염용균, 우성주의 열연과 서상권의 음악, 유시중의 장치, 장지연의 조명, 정지연의 의상이 윤시중의 연출과 합하여 독특하고 기발한 연극 <타이터스>를창출시켰다. 극단 하땅세와 연출가 윤시중의 차기작에 기대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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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신춘문예 단막극 제를 대학로 예술극장 소극장에서 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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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희곡워크샵 대표 극작가/연출가 박정기(朴精機)
3월 25일 대학로 예술극장 소극장에서 한국연극연출가협회와 한국공연예술센터 주관한 2011년 신춘문예 단막극제를 관람했다. <한국일보 당선작>인 김성배 작 문고헌 연출의 <확률>은 도입에 차사고의 요란한 소음이 들리고 무대에 조명이 들어오면, 긴 등받이 나무의자에 남녀가 앉아 차사고 현장을 바라보며, 차사고의 원인을 그들 나름대로 분석을 하기 시작한다. 작가는 동시대의 흔한 차사고의 원인을 두 사람의 대화를 통해 밝혀나간다. 승용차로 서울외곽이나 전원으로 빠져 나가면, 경치가 좋은 곳이거나 유원지 부근에 흔히 볼 수 있는 모텔, 호텔 같은 숙박업소가 산재하고, 부부보다는 비부부지 간 남녀의 자유로운 성 접촉 장소가 되고, 근자에 이르러 불륜이 일상처럼 되어가는 세태를 적나라하게 지적하는 내용으로, 기성작가의 경우에도 밝히기를 꺼리는 내용을 신진 김성배 작가는 명쾌하게 지적하고 이것을 작품에 반영시켰다. 남녀 연기자 두 사람의 호연과 연출가 문고헌의 대범한 연출력이 관객을 연극에 쉽게 몰입시켰고, 작가의 의도와 관객과의 공감대를 100%형성시킨 연극이 되었다. <전남일보 당선작>인 최명식 작 김도훈 연출의 <자유로울 수는 없나요?>는 50년간 감옥형태의 공간에 수감된 노인과 새로 들어온 젊은 수감자 그리고 무소불위(無所不爲)의 폭군 같은 간수장과 간수장의 꼭두각시 견(犬) 노릇을 하는 간수 1, 2가 죄수와 벌이는 감옥 안에서의 특수한 상황과 생활을 그린 작품으로 대단원에서 폭군 같은 간수장이 죄수신분으로 입소된 후 연극의 도입에서의 젊은 수감자가 받은 대우를 되풀이 하게 함으로써 반전효과를 높인 작품이다. 수감자의 의식과 무의식, 기억과 망각, 탈출염원과 체념 등의 정신적, 심리적 요인을 극적으로 구성한 신예 최명식 작가의 작품을, 박정순을 비롯한 중견 연기자들의 연기력과 김도훈의 노련한 연출력이 연극 <자유로울 수는 없나요?>를 한 단계 높은 수준의 작품으로 만들어 내었다. <부산일보 당선작>인 오세혁 작 오동식 연출의 <크리스마스에 삼십만 원을 만날 확률>은 크리스마스이브에 남편과 아내 그리고 아들이 각자 동떨어진 거주지에서 삼십만 원을 마련하기 위해 벌이는 코미디다. 김밥장사를 하는 아내, 부동산소개업을 하는 남편, 고시원에서 숙식을 하는 작가지망생 아들이, 각자 가족이외의 이성과 은밀히 크리스마스이브를 즐기기 위한 자금을 마련하려고, 남편은 김밥장사를 하는 아내에게 돈을 부탁하고, 아들역시 어머니에게 부탁하고, 어머니에게서 나온 돈이 돌고 돌아 결국 아내에게로 되돌아가게 되는 코미디로, 필자를 비롯한 관객모두가 가족을 다시 생각하게 되고, 흐트러진 자세와 불순한 마음을 가다듬게 되는, 교훈도 되고, 반성도 하게 되는 감동적인 작품이었다. <경상일보 당선작> 배진아 작 백은아 연출의 <one more time>은 미아보호소에서의 어린여아들의 일상과 놀이, 그리고 아이를 찾는 부모와 아이를 찾은 부모에게, 아기를 돌려줄 수 없다는 입장을 피력하는 보호소 직원과의 부모와의 갈등, 그리고 놀이동산처럼 만들어진 정사각형의 입체구조물에 미러클 워커라(miracle worker)는 영문글씨를 구조물 하나하나마다 적어 넣어, 아이들이 그 사각의 입체구조물을 가지고 놀이를 하는 장면이 전개되고, 이곳에 수용되어있는 아이를 입양의 형식으로라도 데려오려는 부모에게, 보호소 직원은 다른 아이를 입양대상 아로 이름을 바꿔, 대신 입양을 시키는 등의 비상식적인 행위를 태연자약하게 행한다. 작중인물인 어린아이들도 성인의 모습이지만, 행동거지는 어린이처럼 보이는 여성 연기자들의 철부지 다운연기와 아이를 찾으려는 부모들의 열정이 어린이 보호소 소장의 냉정하고 사무적이고 냉혈적인 성격과 대비되어 <one more time>이라는 독특한 분위기의 연극을 창출해 냈다. <한국희곡작가협회>당선작인 이해주 작 손규홍 연출의 <돌고래가 나오는 꿈>은 배경 막 가까이에서부터 무대좌우와 양쪽 벽면에 이르기까지, 촘촘히 늘어뜨린 공연소개 인쇄물이, 노교수의 서재에 쌓여있는 책으로 설명이 되는 상황 속에서, 중풍과 치매 증세를 앓고 있는 노교수와 노교수의 아들은 이미10년 전에 작고했고, 홀로된 며느리와 손녀, 그리고 죽은 아들의 친구와 정신병자 수용소 직원이 벌이는 내용으로, 중증 질환을 앓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숨기려드는 노교수와 중증임을 인식시키려는 며느리와의 갈등, 그리고 어린 손녀의 <돌고래가 나오눈 꿈> 이야기가 펼쳐지면서, 노교수의 죽은 아들의 친구와 며느리가 벌이는 은근한 사랑이, 정신병자 수용소 직원의 방문과 노교수를 입원시키는 과정에서 들어나고, 대단원에서 노교수가 정신병자 수용소 직원과 벌이는 기괴한 언어다툼과 그에 따른 결과로 정신병자로 간주되어 정신병자 수용소로 끌려가게 된다는 기이한 내용이다. 노교수 역의 원근희의 발군의 기량과 아름다운 며느리와 예쁜 손녀의 호연이 다른 출연자들의 호연과 함께 연극의 수준을 한 단계 상승시키는 역할을 했다. <동아일보 당선작>인 방동원 작 황동근 연출의 <목소리>는 주한외국인근로자가 작업장에서 중대한 신체적 상해를 당했을 때, 그에 대한 배상문제와 손실보상, 그리고 근로계약에 따른 보수지급과 보험약관에 따른 상당금액지불과 이행을 다룬 연극으로, 사주와 근로자 그리고 여비서가 전화기와 휴대전화의 발신음에 따른 수신과 수신거부, 그리고 거부이유 그리고 재발신음과 재수신거부가 반복되면서, 사주와 근로자 그리고 여비서가 각자 나름대로의 입장과 대처방법을 놓고 희극적으로 엮어가기는 하지만 의미심중하고 심각한, 현재 우리나라의 외국인근로자에 대한 처우개선과 재해 및 재난 발생시 그 대처방안과 손해배상 및 손실보상, 그리고 거기에 따르는 보험액산정과정에서의 불평등한 약관이행과 극심한 차별대우에 관한 작가의 항변이 희곡으로 씌어져 우리사회와 관객에게 문제를 제시한 걸작연극이다. 사주와 외국인근로자 그리고 여비서 역을 한 3인의 등장인물의 열연과 장치와 음향을 담당한 스텝진의 장인정신과 황동근 연출의 열정이 희곡 <목소리>를 신춘문예 단막극 중 문제작으로 부각시켰다. <조선일보 당선작>인 김슬기 작 박원경 연출의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은 어렸을 적부터의 소꿉친구이자, 연인관계인 남녀와 두 남녀의 부모가 가까운 장래에 부부로 맺어지게 되면서, 두 남녀가 연인사이에서 남매로 바뀌는 과정과 그러한 상황적 변화를 현실로 받아들여야 하는 입장과 사랑의 정리를 아름답고 애절하게 표현한 연극이다 마네킹을 제작하는 남자의 작업실 겸 침실에서, 연인관계를 종결하려는 남녀의 마지막 만남이, 산뜻하고 깔끔하게 전개되지만 깊은 회한과 고뇌 속에서 사랑의 정리와 이별을, 두 사람의 아름다운 남녀 연기자의 내면까지 표출시키는 연기와 원로연출가 박원경의 대가다운 기량이 어우러져, 신춘문예 당선작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을 <테네시 윌리암즈>나 <손톤 와일더>의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완만한 갈등구조와 부드러운 표현방법으로, 관객 누구나의 가슴 속 깊은 곳까지 여유 있게 다가가 스며드는, 그런 서정적이고 감동어린 작품으로 만들어 냈다. <서울신문 당선작>인 오세혁작 손정우 연출의 <아빠들의 소꿉놀이>는 급작스러운 해고로 실직을 한 가장이, 동네 어린이 놀이터에 잠시 머물러, 집으로 들어가 가족들에게 어떤 자세와 모습으로 회사를 그만두었음을 설명해야 하는지를 생각하며, 가족에게 해야 할 말을 실제로 가족들에게 얘기하듯 연습을 하고 있을 때, 선배격인 1년 전에 실직을 한 가장이 이 광경을 지켜보고, 선배로서 새 실직가장에게 가족에게 할 말과 대처방안을 조언한다. 실직가장은 선배의 조언에 따라 가족들을 대하고, 그 다음의 상황변화와 대처방안까지 모색하고, 선배의 조언에 따라 하나하나 그대로 대처해 나간다. 두 실직 선후배 가장의 가족들은 이러한 남편들의 연기를 미리 갈파하고, 두실직 가장의 부인들도 남편의 해고와 실직을 알고도 모르는척하기로 약속을 하고, 부인들도 나름대로의 대처방안을 모색하며, 부인들의 취업 문제를 논의하기도 하고, 실제로 대형매장에서 임시고용직으로 취업을 해 일을 하면서도, 남편들의 해직과 실직상태에 함구로 일관한다. 두 명의 실직가장과 그 가장으로서 가족을 실망시키지 않으려는 마음씨가 고스란히 그들의 가족, 특히 부인들에게 따뜻하게 전달되어, 가족에게 들이닥친 어려운 상황을 묵묵히 받아들이고 또 대처하는 모습이, 관객과 공감대를 형해, 관객 모두가 어려움에 처한 두 가족에게 용기를 불러일으키도록 따뜻한 격려의 박수를 보내게 되는 그러한 연극이었다. 한꺼번에 여덟 개의 작품을 관극하느라 무척 힘이 들었지만, 신진작가들의 작품이 예년에 비해 우수하고, 완성도가 높고, 창의적인 것에 우리 연극의 발전적인 장래를 예견할 수 있어, 필자는 피로도 잊고 흥겨운 마음으로 극장문을 나선 그러한 신춘문예 단막극 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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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기록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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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 포럼 2010~2011 연속 토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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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연극 정책 어떻게 볼 것인가’ - 7
참석자/ 박상현(연출가, 극작가), 김태수(연출가, 극단 완자무늬 대표)), 오세곤(평론가, 연출가), 채승훈(사회, 연출가, 극단 창파 대표), 김한아(배우, 기록) 일시/ 2011년 3월 12일 대학로 민들레영토
채: 오늘은 예술인 복지 문제에 대하여 이야기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2009년도에 ‘예술인 복지법’이 국회에서 발의되어 현재 논의 중에 있고, 올해야 말로 예술인 복지법이 좋은 쪽으로 잘 결정이 되기를 바라면서 토론을 시작해 보면 어떨까 합니다. 현대연극이 시작된 지 한 세기가 되었는데 예술인 복지문제를 연극인 스스로 얘기한 것은 아마도 2천년대 들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고요.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해결해야 하는 큰 과제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먼저 전업연극인들의 현실에 관하여 이야기 해보면 어떨까 하는데요. 여기 김태수 선생님이 전업연극인의 대표적인 경우이신데 수십 년 동안 연극을 해오시면서 어려운 점이 있었다면 주저없이 이야기 해주십시오.
김: 전업이라는 말도 현장에서 일하는 것은 같은데, 여기 세분이 교직에 계시다고 해서 전업이다 아니다 판단, 비교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고 생각하고요. 현장에서 남아있던 사람들의 생활이야 안 들여다봐도 빤하죠. 가정생활이라는 것은 도저히 생활을 책임질 수 없는 것이고... 그동안의 삶을 간단히 말하자면 연출로서는 김대중 대통령시대에 지원금이 나오기 전까지는 수입이라는 게 대학극 연출료 약간, 소위 다른 극단에 들어가서 스탭료로 약간. 그리고...... 정부행사에 잠깐 참여해서 약간...그리고.....어떻게 공연을 해 왔는지 조차 잘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채: 좀 더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은데요. 대답하기 곤란하실 수 있지만, 올해 김 선생님의 나이가 어떻게 되시죠?
김: 올해 만 60입니다. 환갑이죠.
채: 연세대학교 졸업하고 나서 월급을 받거나 직장을 가져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김: 서울 연극협회에서 상임이사를 하게 되면서 처음으로 40만원인가를 고정급으로 받았네요. 2년정도.
채: 제가 회장을 하고 있을 때네요.
김: 벌써 7년 전..? 그때가 50살이 넘었을 때니까요..그리고 30대 때 방송 스크립터 생활 2년 정도 주급을 받았었죠.
채: 어떻게 생각하면..... 약 50세 까지 경제적 수입이 거의 제로에 가깝다는 것인데요. 가정에 자녀들도 있으실 텐데 교육이나, 얼마 전에는 또 병고도 있으셨는데 그런 부분들은 어떻게 충당하셨나요?
김: 연세극예술연구회 동문들의 도움과 주변의 도움으로 병원비는 충분히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그분들께 고마움과 송구함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또 전체 비용의 10%만 지불하면 됐으니까 의료보험혜택도 본 셈이구요. 가정은 비정상적으로 운영이 된 것이구요. 가정은... 클린턴이 저지른 행동을 ‘부적절한 관계’라고 했듯이, 가장의 책임을 회피한 ‘비정상적 관계’라고 말할 수밖에 없겠네요. 그나마 조금 나아진 것은 지원금이 좀 나왔을 때 작업비로 충당하고 단원들하고 나눠가질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는 정도지요. 극단에서 올린 작품 중에 관객이 몰린 몇 편에서 차비정도 나눠 가질 수 있었고....
채: 자녀가 있으시죠?
김: 예.
채: 대학도 다녔을 텐데..
김: 한마디로 제가 한 일은 없습니다.
채: 사모님이 많은 책임을 져 주셨군요. 직장을 가지고 계셨던 것인가요?
김: 그분이 많이 벌었죠.
채: 남자 전업연극인에게 흔히 이런 경우가 많이 있지요?
김: 그래서 그런지 극단의 식구들만 봐도 가정생활을 하다가 깨지거나, 마흔이 넘었는데도 아예 가정을 이룰 생각을 못하거나, 상대가 있는데도 그럴 환경이나 능력이 안 되니까 중도에 포기를 하거나.. 주변에 그런 멤버들이 많아요. 웃을 수 없는 현실이죠. 세월이 흘러 점점 나이가 들게 되면 가정생활을 꿈꾼다는 건 더 어려워지는 거구요.
채: 상대적으로 남자연극인들이 조금 더 그런 부분에 해당되는 것 같아요. 우스갯소리로 연극출신으로서 성공한 연예인들이 간혹 방송에 나와서 자랑삼아 과거에 연극했을 때의 고생담을 무용담처럼 하는 걸 봅니다. 본인은 재미있는지 모르겠지만 일반사람들에게 회자되고, 그럴 때마다 젊은 연극인들의 혼삿길이 다 막힌다는 웃지 못 할 이야기를 자주 듣습니다. 박상현 선생님께서는 현재는 연극원에서 교수생활을 하고 계신데요. 과거에 대학교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좀 하셨나요?
박: 했죠. 84년부터 92년까지 한 8년 정도 했는데 제대로 안하고 중간에 3년 정도를 소설 쓴다고 집에 틀어박혀 있었죠... 전체적으로 따져보면 8년 정도 회사 생활을 지내고 연극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죠.
채: 그러고서 교수되기 전까지 12년 정도의 세월을 연극만 하고 지내셨죠? 기억이 나실지 모르겠지만,,... 직장인이었다가 창작 작업을 하면서 그 즈음에 겪은 상황을 이야기 해주실 수 있을까요?
박: 그땐 젊고 힘도 좋았기 때문에 사회적 스트레스에 내성도 강하고, 독신이다 보니 주변관계, 가족관계에 관한 괴로움은 덜 할 때죠. 단, 노부모, 조카들에게 자식이나 삼촌노릇을 못하는 것은 참 괴로웠지만요. 92년도 퇴직할 때 당시 1500만 원 정도의 퇴직금을 받아 쥐고 생활 했었는데, 1년 정도 후배들 술 사주고보니 아무것도 안 남더라고요. 어떻게 살았는지를 참 설명하기 어려운데.. 무용연출을 해준다거나 상업적인 극의 대본을 써준다거나 각색해주거나 이벤트 대본을 쓰면서 돈을 벌었나본데 그게 턱없이 모자라죠. 그래도 이모 김모 또래 연출가들과 술을 먹을 당시에도 제가 술값을 내곤 했어요. 그러니까 “궁즉통”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원래는 궁즉통이 아닌데.. 통장에 잔고가 떨어질 만하면 이런 일이 있는데 해보지 않겠냐는 알바거리 전화가 왔어요. 그래서 세상의 이치가 참 묘하다고 생각했지요. 어떻게 돈이 떨어지면 어디서 전화가 오는구나.. 근데 결국 돈이 떨어져도 전화가 안 오는 시기가 도래하더라고요. 그때가 바로 97년부터였습니다. IMF외환위기 사태가 되었을 때는 궁이 오더라도 통이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깨달은 것이 <주역>에 보면 바로 그대로 나와요. 궁즉통이 아니구나.. “궁즉변(窮卽變) 변즉통(變卽通)” 궁해도 내가 몸부림치고 변화를 모색하지 않으면 통할 수가 없다는 것이죠. 이치가.. 어떻게 그 몸부림을 쳤는지는 ... 예를 들어서, 옮기는 거죠. 여기서 연극하다가 훌쩍 떠나서 다른 곳에서 모색을 하고.. 연극을 잠시 관두고 이런 것을 해볼까? 갑자기 돈도 없이 미국으로 간다거나 그렇게 했던 것 같아요. 얘기가 두서없이 하게 되었네요.
채: 아니에요. 이런 이야기는 두서없이 하게 되죠.
박: 제가 작년에 항저우에서 국제극작가회의 같은 것에 갔었어요. 한국의 극작가들이 어떻게 생활하는 가를 소개 하는 자리가 있었는데, 평균을 내준다거나 통계를 소개하는 것 보다는 차라리 제 자신을 소개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어요. 20년 동안 제가 작가로서 번 돈이 100만원, 연출로서 번 돈이 350만원, 상금이 3천 300만원이다, 라고 했더니 그들이 나중에 당연이 묻죠. 어떻게 생존해 왔는가 묻기에 저는 기적이라 말을 했습니다. 저는 어떻게 설명할 수 없어요. 이제 결론을 내야겠어요. 저만 기적처럼 살았겠어요? 현장연극인들이 모두가 살아온 것이 기적이죠. 저도 44살에 월급을 다시 받게 되기까지 생존을 설명할 길이 없어요.
채: 그래도 박 선생님은 가난하게 살았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부잣집 도련님같이 생기셨는데.....
박: 그래서 저도 십대일 때부터 스스로, 나는 이렇게 부잣집 외아들처럼 생겼는데 왜 이렇게 힘들까.. 했죠.
모두: 하하하
채: 오세곤 선생님은 박사과정 공부하셨는데요. 역시 학교에서 연극을 하다가 우리와 조금 다르긴 하지만 어쨌든 연극계에 발을 들여 놓고 난 다음에 고생담이나 소회 같은 것을 말씀해 주시죠.
오: 저는 사실 수입은 대학 강사를 12년 동안 하면서 간신히 유지했고, 연극과는 번역으로만 소통을 했고, 돈이 안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 이상 발을 담글 수가 없었죠. 90년에 결혼을 하고, 91년도에 애가 생겼는데 그때 아주 실제적으로 고민을 하게 되었지요. 스스로가 아주 이기적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연극과 공부, 둘 다 가족을 부양할 수 없다는 것에 심각하게 고민했어요. 그때 제가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는데 그걸 잘리면서 심각한 위기가 오게 된 거예요. 이기적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중단 내지는 그만둬야 한다는 생각을 했죠. ‘너무 나만 생각하는 것이다. 아이는 죄가 없는데...’ 그런데 우유배달이든 뭐든 자본금이 필요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마저도 할 수 없어서 고민하다가 친구에게 보증 부탁을 해서 대출을 받았죠. 그 돈으로 한 2년 버티면서 전문번역자로 살길을 찾아봐야겠다 했는데 1년만에 다 없어지더라고요. 물론 그 사이에 논문을 썼어요. 박사 논문을 쓰고 나니 정신적 여유가 생기면서 자신감이 붙어서 연극계로 뛰어들었고, 한 4년 지나서 96년에 정규직 교수가 되면서 그런 것들이 해결되었죠. 어쨌든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애가 태어났을 때 연극이나 학문이라는 것은 남을 못살게 만들고, 나만 생각하는 굉장히 이기적인 삶이라는 생각을 아주 강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채: 그래서 옛날에는 ‘예술은 부잣집 막내나 한다, 배부른 사람이나 하는 것이다.’ 는 말이 있었는데요..... 모두 극단에서 후배들과 생활을 하시죠? 그들의 생활에 대해서 잘 아실 텐데요. 극단의 젊은 연극인들의 평균생활은 어떤가요. 과거의 우리보다 나아진 것이 있나요?
박: 이게 정확할 거예요.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액수는 똑같아요. 어쩔 수 없어서 공연 후 엔(n) 분의 일로 나눠주는 것. 그러나 문제는 그때와 지금은 물가가 다르다는 것이죠. 인플레이션과 관계없이 같은 액수를 받고 있어서 생활 여건은 훨씬 더 힘들어져서 그때 우리와는 다르다는 거죠. 그때 우리는 술이든 밥이든 어떻게 숟가락 하나 더 올려놔서 먹을 수 있었거든요.
오: 이제는 돈이 없으면 살기 힘든 세상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다들 가난할 때는 그래도 좀 나은데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돈이 없으면 절대 살 수 없는 세상으로 가고 있고, 그래서 피부에 더 강하게 오는 것이죠.
김: 전에는 같이 라면 먹고 술 먹고, 누군가 호주머니를 털어 함께 먹자고 했는데 그러면서 어떤 유대감이 생기고 동료의식 같은 것도 싹트고 작업할 수 있는 분위기 조성은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던 게 아닌가 합니다. 요즘 주변을 보면 다들 바빠요. 그래서 그런지 개인적으로는 작은 돈이 생기는 것 같아요. 알바나 중고등학교 연극 강사 나가서 그래도 조금의 여유 돈이 생겨서 자기 혼자는 어찌어찌 끼니나 교통비나 통신비를 겨우겨우 해결하는 모양새도 보이는데, 그래서 더치패이로 ‘오천원빵’ ‘만원빵’하며 유대감을 조성하려는 듯 몰려다니는 현상도 많이 눈에 띄고요. 저축 할 여유는 아직 없는 거고요,
채: 7차 교육 개정이후 출발된 연극인 강사제도가 일정부분 복지의 부분을 감당해 주는 것은 사실이죠. 그러면 이런 측면을 이야기 해보면 어떨까요? 김태수 선생님 극단에 젊은 배우들이 있죠?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도 있지요?
김: 지속적으로 남아있는 배우는 3분의 1정도라고 말 할 수 있을 겁니다. 극단에 작업이 꾸준하게 할 처지가 못 되니까 왔다 갔다 하거나 아예 멀리 떠나거나 어쩌다가 오랜만에 얼굴을 보이거나 하는... 그런 저변에 있는 젊은 연극인들이 간간히 단역으로 영화에 출연하기도 하고 그것도 가뭄에 콩 나듯이 어쩌다 얻어지는 기회인 것 같고, 영화 기획 일에 기웃기웃하는 연기자들도 보이고 아무튼 무대를 지킨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생활하기는 너무나 환경이 열악하여 그런 해바라기를 나무라기만 할 수도 없는 거구요. 대체로 여기 기웃 저기 기웃 하다가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아요.
채: 60% 이상이 현실적인 이유로 포기 비슷하게 된다는 것이죠?
김: 아예 포기한 것 같기도 하고, 반은 발을 담가 놓은 것 같기도 하고, 뺀 것 같기도 하고....극단 대표인 제가 능력부족이어서 그런지 좀 어정쩡한 주변입니다. 부끄럽죠.
채: 오 선생님은 순천향대학교에서, 박 선생님은 연극원에서 제자들을 배출하고 계신데 졸업한 다음에 연극 현장에 나온 제자들이 대체로 잘 견디고 있나요?
오: 저는 그 부분에 정신 교육을 시켜서 내보내는 편이에요. 나가서 중요한 것은 일단 살아남는 것인데, 계산을 하면 전혀 갈 수 없는 환경이고, 가서 버티는 것이 중요하다. 알바를 하면서 버티고, 최소한의 경제적인 삶을 영위하면서 어떻게 예술의 삶을 영위할 것인지. 그 둘을 일치시키려면 너무 힘들다. 일단 분리시켜서 견뎌야 한다. 견디다 보면 신기하게도 시간이 지나면서 전공에 관련된 일들이 조금씩 늘어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알바시간이 줄어들고, 연극만 하게 되는 때도 온다. 그것이 40대에 들어서 올 수 있겠지만 어쨌든 그랬을 때 주위를 둘러보면 남아 있는 사람들이 드물 것이다. 최소한 10년은 지나야 그 현장에서 식구로 인정을 받을 텐데 제일 어려운 시험은 살아남기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할 때는 당연히 용기를 내서 잘들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나가도 처음엔 의기 있게 하지만 결국 떠나는 경우가 많아요. 처음엔 자기는 절대로 안 떠날 것이라 하지만 그런 일들이 많습니다. 우리 단원들에게도 1년에 한편을 해도 좋고, 2년에 한편을 해도 좋은데 그것이 ‘그만 둔 것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물리적, 경제적 삶을 유지하면서 늘 머릿속에 뒀다가 다시 또 하는 설계를 해라. 1년이 아니라 2년에 한번이라도 좋다. 맨 처음에 괜히 많이 하려다가 지쳐서 철썩 같이 약속을 했다가도 진절머리를 치며 떠나는 사람들을 볼 때면 처음부터 자기 관리를 잘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 열악한 상황에서 살아남는 자기 관리에 대하서 많이 이야기 합니다.
채: 박 선생님, 연극원 출신들은 워낙 적은 편이죠? 소수 정예로 나오는데 어떻습니까? 대체로 자기 전공을 찾아 잘 하고 있나요?
박: 워낙에 입학 때부터 현장 연극인들이 되겠다는 작심을 하고 왔기 때문에 생각보다는 현장에 잘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오히려 도태되는 것이 궁해서 도태되기 보다는 능력이 딸려서 안 되는 경우를 보게 되지요. 그런데 문제는 이 친구들이 그렇다고 맨몸으로 현장에서 투쟁하듯이 하는 친구들은 보기 드물고, 어떤 우산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상업연극에 들어간다는 것이죠. 대표적으로 뮤지컬과 같은 것을 포함한 상업연극. 이런 것들이요. 거기 안정적으로 들어가게 되면 인정받는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어떤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이라든가 혹은 예술형식에 관한 공부를 위해서 쟁투하는 존경할 만한 후배 제자들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눈에 띌 만하지는 않죠. 아직까지는 전반적으로 잘 버티고 제 갈 길을 찾아가는데, 만일 상업적인 우산에서 벗어나 연극 활동을 하면서 산다면 얼마나 갈지 걱정이 되기도 하는 것이죠.
김: 그나마 자기 앞길을 가는데도.. 최고은양 같은 불상사가 생기고..
채: 우리도 연극을 하고 대부분 극단 대표자들인데요. 같은 뜻을 갖고 함께 가는 젊은 연기자들에게 평균 일 년에 얼마 정도의 사례를 주었는지 자기 고백을 한번 해 볼까요? 어떻습니까?
김: 작품을 안 할 때는 못주죠. 1년 평균이 그러니까 공연이 있을 때도 있고, 아예 없을 때도 있으니까요.... 2000만원 지원받으면 돌아가는 돈이 30만원~50만원이고, 게다가 인원이 많으면 그렇게도 못주는 경우가 있고, 3000만원이면 조금 더 100만원까지 줄 수 있는 배우도 있을 거고요. 100만원을 받는 배우는 참가하는 배우 중 최고수준일 것입니다.
채: 100만원을 받는 배우는 나이가 어떻게 됩니까?
김: 40대 정도일거예요.
채: 중견배우군요.
김: 어떤 때는 두 번하기 힘들 때가 있는데, 다른 쪽에서 지원을 받는 경우 두 배가 되는 것이지요.
채: 그럼 제일 적게 받는 배우는 어느 정도?
김: 제일 적게 줄 때, 안줄 수 없을 때는 그래도 차비는 줘야 하니까 사실은 차비도 안 되지만 참가하는 모든 사람에게 나눠줄 때. 제일 적을 때는 5만원, 10만원 봉투에 담아 시늉만 하는 거죠.
채: 가장 왕성하게 극단 활동하시는 박상현 선생님은 어떠세요?
박: 우리 극단은 이원적으로 연출에 따라서 다른데요. 대표를 맞고 있는 윤한솔 연출이 할 때는 경력 차이 없이 나눠요. 신입단원일지라도 참여를 했으면요. 하지만 제가 작업 할 때는 제가 필요로 하는 중견배우를 섭외해서 구두계약으로 “얼마를 주겠다” 해서 일부 배우들과 극단 배우들과 섞여 하는 것을 대표님께서 용인해주세요. 전체주의적인 평등체제와 자본주의 체제가 혼용되고 있죠. 근데 계약을 하지 않는 배우들에게 얼마를 주느냐, 우리 극단에서 한 작품을 롱런하는 것은 얼마 안 돼요. 한 달 안팎인거 같고요. 1년에 평균 3작품 4작품 한다고 해도. 1년에 100만원 넘고, 200만원은 안 될 것 같아요.
오: 우리는 여러 가지 사례가 있었습니다. 극단이 6년이 되었는데 여러 가지 방법을 적용해 보았어요. 처음 했을 때는 김태수 선생님도 출연해 보셔서 아시겠지만 연령대로 해서 5~30만원까지 철저히 연령순으로 상징적으로 봉투를 돌리는 식으로 했지요. 그래도 도저히 감당이 안 돼요. 그렇다고 젊은 친구들이 버틸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렇게 2년 해보다가 어떤 식으로 실험해 보았냐면, 우리는 교육연극을 자주 하는 편이니까 어떤 친구들은 수업을 나가고 어떤 친구들은 아니고 하거든요. 면담을 해봤어요. 한 달에 얼마면 최소한으로 살 수 있는가를 알아봤어요. 고시원에서 생활하면서 극단에 오면 밥 먹고 하는 식으로 숙식을 해결하니까 40만원이면 살 수 있더라고요. 그래서 40만원은 어떻게든 확보할 테니까 알바를 하지마라. 극단에서만 훈련하고 이렇게 해봤어요. 6개월 계획을 세워서 강의를 하든 안하든 돈을 모아 보았어요. 그중 서너 명이 같이 사는 집에는 월세도 내줬어요. 거의 공동생활로요. 6개월은 버틸 수 있었는데 12월이 되니 프로그램이 끊기고, 겨울이 되니까 못 하겠더라고요. 단원들도, 극단도 이를 악물고 버틴 것이었고, 몇 년을 간다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너무 힘이 드는 거예요. 또 그사이에도 누구는 일을 많이 나갔는데, 강의를 많이, 출연을 많이 했는데 하는 공통적인 불만들도 생기고,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그 프로그램은 끝났고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서 책정을 했어요. 누구는 5만원~30만원 했던 것을 좀 높여서 15만원~50만원으로 책정했는데, 어떤 때는 그대로 하고, 어떤 때는 도저히 안돼서 절반으로 깎아서 하다가 이번에 극단에 극장이 생기면서 오히려 노게런티(No guarantee)를 선언했습니다. ‘그 대신 1년에 작품을 두 달에 한 번씩 할 것이고, 그것을 연말에 발표를 하는데 자기가 어떤 것을 하겠다고 미리 신청을 하면 연출이 절대로 안 된다 하기 전에는 확정을 해주겠다. 그래서 일년 계획을 짜고 어떻게든 버텨라. 소위 물리적 삶과 예술적 삶을 분리해라. 자기가 계획을 세워서 1년에 1~2작품하면 된다. 대신에 극단은 교육연극 등으로 알바가 될 만한 도움을 주도록 노력 것이다. 그 밖에 정기공연 6번 빼고, 아동극이나, 순회공연 같은 것들은 게런티를 줄 것이다. 교육연극 프로그램은 공모해서 되면 그것은 강사로 너희를 위하여 이 안에서 알바를 할 수 있게끔 최대한 알바자리를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하겠지만 보장은 못한다.’ 그런 식으로 노게런티 선언을 했고, 누구건 간에 우리극단 작품에 참여 하는 사람은 노게런티로 하기로. 대신 우리는 공연을 10일 정도밖에 안하거든요. 항상. 그리고 공연을 해서 돈을 벌 수 있는 구조는 절대 아니니까 하는 데에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만 모여서 한다는 그런 선언을 했어요.
채: 우리극단 같은 경우는 제가 이야기 하는 것보다도 기록하는 김한아 양이 말하는 것이 좋을 것 같네요. 지금 졸업한지 얼마나 되었죠?
김한아: 4년 정도 되었습니다.
채: 4년여 정도 되었고 극단에서 출연도 하고 했는데 연극으로만 번 수입이 대략 얼마정도 됩니까 ?
김한아: 작년에 배우 및 스탭으로 외부극단 작품포함 6작품을 했는데요. 한 해 동안 50만원이 안 되었고요. 저희 극단에서 하는 것뿐 아니라 다른데서 하는 것들도 마찬가지였어요. 항상 하게 되는 것이 뮤지컬이나 상업연극 쪽보다는 대부분 비슷한 성격의 작품을 하거나 비슷한 운영시스템인 곳에 가게 되다 보니 대부분 그런 식이었어요.
채: 젊은 연극인들 입장에서는 상업연극 또는 순수 연극 등을 구분하는 것이 약간은 애매모호할 것 같은데.
김한아: 물론, 모든 계약서를 쓰는 작품이 상업연극은 아니지만. 대부분 그런 수입의 보장이 있는 작품들은 롱런을 하기 때문에 상업적인 경우가 많아서 오히려 작품성으로 상업연극을 구분하기보다는 계약서를 쓰고 들어가서 확실한 보장을 받는 작품으로서 구분하기도 하거든요.
채: 그러면 김한아 양과 다르게 그런 연극을 하는 동료들은 어떻게 생활 하나요?
김한아: 일단 작품마다, 경력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작품으로 번 돈만 가지고도 살아갈 수 있어요. 예를 들자면 연습수당이 나오는 작품은 그중 제일 잘 나오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죠. 그러나 대부분은 그렇게 받기 힘들고요. 연습수당 없이 작품 올릴 때 나오는 수입으로 지낼 때는 나름의 경력에 따라 수입의 차이가 있지만 적어도 한 달에 100만 원 이상의 수입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채: 대부분이 롱런하는 작품들이죠?
김한아: 대부분이 그렇죠. 모든 롱런하는 작품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흥행위주의 극들을 자꾸 기피하게 되는 이유는요. 그런 작품들은 대부분 연습할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첫 회차 배우인 경우에는 다음 회차로 들어오는 배우에게 자신이 했던 연기를 가르치고 나가야 하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뒤에 들어가게 되는 경우 전에 했던 배우의 공연을 보고 배워서 똑같이 해야 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러니까 배우로서 이걸 왜 하고 있는지를 모르게 되죠.
채: 경제적인 것은 조금 해결되더라도 예술적인 자부심은 느끼지 못 한다는 거죠?
김한아: 예. 어쩔 수 없이 하기 싫어지는 거죠.
박: 그러면 이 틈을 빌려 잠깐 이야기를 해볼게요. 그건 이를테면 기막힌 코믹 포인트를 딱 정확하게 따먹자는 이야기인데 그것보다 더 빛나는 코믹 포인트를 창조해주면 되잖아요.
김한아: 그러니까 더 잘 해내면 조금씩 수정이 되기는 하는데요. 일단, 만들어가는 과정의 문제 같아요. 최악의 상황 같은 경우 나도 잘 할 수 있고, 조금만 시간을 주면 좋은데 빨리 연습해서 빨리 올려야 하니까 공연을 아예 보여주고 “봤지? 그대로 해.” 라든가 나가기 전까지 다음 배우들에게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 아이러니한 것이죠.
박: 아..그럼 그런 것이겠네요. 공장제로 찍어서 연습기간 없이 바로 이어서 가는 경우겠네요..
오: 세팀, 네팀 하고 그러죠?
김한아: 네. 모든 뮤지컬이나 상업극이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대부분 그렇지 않으면 연습수당을 주거나 높은 수입을 보장해주기 힘들잖아요. 현실상.
채: 뮤지컬 혹은 그런 장기 공연을 하는 흥행이 보장된 상업극들, 또는 상업적 기획의 스타시스템의 공연들, 또는 어린이 연극 같은 경우, 소액이긴 하지만 50만 원에서 100만 원 정도를 월 단위로, 대체로 그렇죠?
김한아: 네
채: 그리고 아까 이야기 중에 나왔지만 이렇게 극단을 바닥에서 지탱하고 있는 젊은 연극인들 이외에 객원 출연자들 중에, 소위 톱클래스라고 얘기 할 수 있는 전업연극배우들은 편당 평균 300~400만 원 정도를 받는 것 같아요. 하지만 그런 배우들이 1년에 정말 많이 해봐야 4작품 정도인데 그래봐야 수입이 총 1,500만 원에도 못 미치고 있는 거니까.... 연령이 50대 줄인 최고의 연극배우들이 1년 동안에 1,500만 원도 안 되는 수입이고, 김한아 양 같은 경우에는 1년에 50만 원 정도를 버네요.
김: 어쩌다가 저희 “의자는 잘못없다” 같은 경우 2002년도에 시작해서 가끔 장기공연을 한단 말이죠. 주기적으로 몇 달간 혹은 1년간 70만원~100만원 씩 나눠가질 수 있는.. 아주 특별한 경우. 그 당시 잠깐 여유가 있는 것이지 그런 작품이 오래간다고 해도 생활이 되는 것은 아니다..기초생활수급자를 잠시 벗어나는 수준 아닌가요?
채: 다양한 경우가 있기는 하나 젊은 연극인부터 가장 바쁘게 움직이는 베테랑까지 그 어느 누구도 연극만으로는 생활하기 힘들다는 현실이 명약관화하게 나타나는군요. 그래서 젊은 연극인들은 각종 알바를 하죠. 경비를 서거나 주차 관리원, 대리운전 등등 나아가 TV나 영화에 단역으로 참가하거나 하는, 그렇게 해도 최저 생활비에는 턱없이 못 미치는 수입으로 생활을 하는 연극인들이 거의 95% 이상이 됩니다. 그중에 결혼을 한 경우 배우자에 의해서 기댈 수 있는 사례도 있기는 하지만......
박: 배우자에 의해서 더 쪼일 수도 있고..
채: 그렇기 때문에 연극인들이 결혼하는 자체도 쉽지 않고요. 경제적인 이유로 가정 파탄이 생기거나 술이나 질병에 빠져 피폐한 생활을 하는 사람도 있고, 연영과 학생들이 졸업이 가까울수록 현장에 나오는 것을 두려워하는 현상들도 나타납니다. 그런 이유로 근래에 예술인 복지 문제가 대두되고, 최근 복지법이 국회에서 논의 중에 있고, 마침 오세곤 교수님이 다방면으로 참여하고 계신데 연극인 복지문제의 출발점이라 할까요? 그 과정은 어떤가요?
오: 연극인 복지 재단이 생겼고... 너무 기다리고 있어야 대책이 안 나오니까 자구책으로 ‘사회에 자극을 주자’ 그래서 시작되었던 것이고, 상징적인 작업으로 의료지원이라던가, 어린이집, 연극인자녀 장학금을 주고 있죠. 최근 회의에서 ‘SOS기금을 만들자’ 라는 결정을 했어요, 물론 명칭은 아직 가칭이지만 그런 취지로 사용하기로 했죠. 송승환 대표가 매년 기부하기로 한 1000만원에 복지재단이 같은 액수를 내고 또 서울연극제에서 500만원 정도 협조해서 2500만원 정도로요. 운영방식은 아직 확정은 안 됐지만 무슨 상 주듯이 하는 건 이상하고, 정말 힘들 때 연락을 주면 심의를 거쳐서 긴급하게 주는 것이 어떻겠느냐 하는 논의가 있었고요. 1년 정도 해보면 효율적인지 아닌지 나오겠죠? 어쨌든 연극인 복지에 대해서 가장 먼저 나온 것이죠. 그전엔 영화인 복지재단이 있었지만 거의 존재감이 없죠. 그리고 우리가 연극인 복지재단을 만들고 난 뒤에 전문 무용수지원센터가 생겼죠. 오히려 그곳이 활동을 하는 쪽이고요. 2005년도에 복지재단이 생기면서 예술인복지에 대해서 어필하는 계기가 된 것이고, 그러다가 2009년에 법 발의가 이루어 진거죠.
채: 그러니까 당시에 한국 연극인 복지재단이 출범하고 그것이 정식 법인으로 문광부의 협조 속에 설립이 되고, 그때 김명곤, 정동채 장관 같은 경우에는 일 년에 1억 이상 씩 기금을 낸 적도 있고 기업에서도 선뜻 내놓은 곳도 있는데, 현 정부 들어서 복지에 신경을 쓰거나 기금을 보충해 주거나 그런 게 있었는지요?
오: 없었어요. 처음에 1억씩 2년이나 3년 오고 한 것이 있었는데 그 다음에 그런 식으로 문광부나 이렇게 온건 없고 자체적으로 무슨 모금활동을 한다든가 해서 조금씩이라도 기금을 늘려간 거죠. 물론 정부에 대해서 부단히 요구를 했죠. 명동극장이 생길 때 커피숍 같은 것도 요구를 하고 그랬는데 그럴 때마다 국가 재산 법이니 하는 것 때문에 결국 모두 안 되고 말았죠. 사실 어린이집도 결국은 중앙정부보다는 종로 구청하고 한 일이고. 그런 식으로 실질적으로 이 정부들어서 복지재단에 대해, 사실 유인촌장관 청문회자리에서 복지 쪽에 기부를 하겠다는 말을 밝혔기 때문에 기대를 했지만 아직까진 이뤄지지 않고 있고, 사실은 그래서 전 정부에 비해서 현 정부는 원활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채: 그런 부분에서 또 다른 이야기 없으신가요?
김: 유장관이 되면서 ‘연극인들의 위상을 높이겠다. 사회적인 지휘도 업그레이드 시키겠다.’ 말은 그랬는데 지나고 보니 오히려 지원금이 더 잘리고.....
채: 이번에 국회에서 발의된 것은 국회의원들이 한 것이죠?
오: 문광부에서 한 안이 있었는데 폐지되었지요. 문광부에서는 문예진흥법 개정안을 냈어요. 쉽게 말해서 문예 진흥법을 개정해서 문화예술위원회 산하인 문화예술위원회 안에 공제사업본부를 만들겠다는 내용이었고. 근데 그게 그때도 문제가 되었고... 그 공제제도는 연극인 중에 돈이 있는 사람에겐 좋아요. 여러 구좌를 들 수 있어요. 나중에 상당히 유리한 그런 건데. 어떤 사람들은 만원도 못 내잖아요. 우리 연극인들 돈도 없지만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못 내거든요. 연극인들이기도 하지만 예술인 전체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해서 반대가 있었고 폐기가 되었고, 그 비슷한 시기에 여당야당에서 각기 법안을 발의했어요. 한나라당에서는 지금 정병국 의원, 민주당에서는 서갑원 의원이 했어요. 두 안이 거의 비슷한데 그 초안은 연극인 복지재단쪽에서 만들어 줬어요. 결국 예술계 쪽에서 마련한 것이죠. 그 핵심은 예술인 복지재단을 만들어서 복지재단이 예술인복지기금을 관리하는 쪽으로. 쉽게 말해 예술인들이 예술인복지재단에 소속이 되고, 복지재단이 일종의 고용주처럼 보험료 절반을 내준다든가 하는 그런 안을 만들었죠. 또 예술인의 지위에 있어서, 예술인을 근로자로 본다. 그런 걸 법에 명시했어요. 거의 두 가지로 나오는 법안은 똑같아요. 글자 몇 글자만 다르고요.
채: 4대 보험에 대해 말씀 좀 해주신다면......
오 : 국민 연금은 상관없이 들 수 있고, 건강보험도 지역보험에 있으니까. 남는 것이 실업보험과 산재보험이에요. 부수적으로 임금채권인가 그런 것이 있어요. 핵심은 그 두 개의 보험을 들 수 있게 한다는 거예요. 고용이 안 되어 있는데 고용이 된 것처럼 본다는 법적인 해석이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고용보험법에 규정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입할 수 있도록 한다.’ 라든가. ‘산재보험에 명시된 것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입 할 수 있도록 한다.’ 라든가 하는 조항들이 포함되어 있죠.
채: 한마디로 프랑스와 같은 선진국형 복지법이군요. 그렇다면 아까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서 기금을 관리한다 했는데, 그 예상되는 기금의 액수는 대략 얼마 정도?
오: 기금 규모는 너무 다양한 안이 있어 뭐라 하기 어렵고 다만 국회에서 내놓은 비용추계가 있는데, 2010년 11만 2천명이 가입하는 것을 시작으로 2014년 18만 7천명까지 는다 할 때, 처음엔 410억원으로 시작해서 5년이 지나면 702억까지 올라갈 거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5년간 총 2750억이 드는 걸로요. 하지만 우리 연극인복지재단 쪽에서는 5만 7천명 가입에 5년 동안 총 727억원이면 된다는 주장을 하고 있고요. 역시 가장 난점이 돈에 관한 기재부의 반대거든요.
채: 그런 반대를 뚫고 성사되면 어쨌든 예술계의 입지를 획기적으로 격상시키는 일이겠네요?.
오: 그렇죠. 모든 것에 적용되거든요. 지금으로서는 예를 들어 교통사고로 사망을 했다 해도 무직자가 되는 거니까. 도저히 사회적으로 얼마로 본다거나 할 근거가 하나도 없거든요. 그런 것들을 이 사람들이 일을 하는 사람으로 본다는 것이죠. 그래서 예술인 복지법을 예술인 지위법이라고도 합니다.
박: 되게 본질적인 이야기인데요. 근로자가 가질 수 있는 어떤 최소한의 권리. 근로자에 대한 보호조항이 같이 원용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그건 즉, 예를 들면 최저임금제라든가 비정규직 보호법. 이런 것까지 준해서 가야한다는 것인데 현실성이 있냐는 것이죠.
오: 굉장히 복잡한 문제인데요. 예술계에서 왜 그런 법안을 제안을 했느냐는 거죠. ‘예술인만을 위한 사회 복지 법’을 만든다면 사회적으로 돈이 엄청나게 들어가거든요. 원래는 그것이 맞는 것인데 그렇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니까 현재 있는 보험제도에 예술인도 가입할 수 있게 규정을 만들자 하니까 ‘예술인들을 근로자로 본다’라는 거죠. 사실 썩 좋은 건 아니에요. 방금 박 선생님 말씀처럼 그러한 문제들이 나올 수밖에 없어요. 굉장히 복잡한 법리해석을 거처야 할 일이고, 고용노동부에서 반대하는 게 바로 그 부분인 것이죠.
박: 근로자라는 것은 고용자가 없으면 근로자가 근본이 없는 지위거든요. 예술인이 근로자면 고용인은 누구란 말인 거죠?
오; 프랑스 실업보험 같은 경우, 실업이라는 것은 직업으로 인정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고, 공연예술 같은 경우 4개월만 일을 하면 일 년 중 나머지 8개월은 실업상태로 보고 실업수당을 준다는 것이죠. 엥떼르미땅(Intermittent du Spectacle)이라는 유명한 법이잖아요. 우리나라에서도 근로자로 보는 것으로 해결하자는 것이죠. 가장 손쉬운 법이니까요. 더 선진적이라면 예술가에게만 맞춘 보장체제가 따로 있는 것이 좋겠죠. 그것을 피해 가려다 보니 근로자의제, 즉 ‘근로자로 본다.’라는 말로 근거를 만드는 겁니다. 고용인이 없는데 어떻게 근로자로 보느냐 하는 게 고용노동부의 반대논리 맞아요. 그렇다고 해서 적극적으로 고용을 하게 되면 월급을 줘야 하거든요. 결국 ‘다른 국민들의 것을 뺏어서 하는 것이다.’ 라고 할 수도 있다는 거죠. ‘고용보험에다가 파이프 박아서 하는 것이다.’라는 비난이요.
박: 일반 법논리나 혹은 일반 비정규직과 비교해서는 어떤 위화감을 주게 되거든요.
오: 그 부분이 핵심인데, ‘어쨌든 예술이라는 요소가 국가에 필수 요소라면, 그것을 담당하는 존재들이 버틸 수 있게 해줘야 하는데, 아무것도 마련해주지 않으니까 우리가 요구하는 것 아니냐. 그냥 안 된다고 하지 말고 뭐든 방법을 내놓아라.’ 하는 거죠.
박: 다른 방법이 있어야 할 거 같아요. 예를 들면 예술인을 근로자로 인정할 때 나올 수 있는, 지금까지 나온 논리 모순이라든가 현실적 해결방책에 난감함이라든가.. 예를 들면 별칭 특수 근로자 해서, 어떠어떠한 조건에 있는 조건에 있는 것은 특수 근로자에 칭한다 라든가..
오: 이미 전례는 우리나라 자영업자들이 보험에 들 수 있게 되었거든요. 그런 거라던가. 일용직 근로자들을 고용관계가 불분명하지만 어쨌든 사업주나 누가 낸다든가 이런 식의 건설 근로자 공제회도 있어요. 그런, 전례들은 이미 있으니까 그런 사례들을 통해서 근로자라는 단어의 의미 영역을 넓히는 식으로 수용을 한다는 것이고. 이번에 민주당에서 법안이 또 나왔잖아요. 최고은 법이라고. 그건 조금 달라요. 큰 범위에선 같은데. 복지지원법이라고 해서 공제회가 들어가 있고, 건강보험의 절반을 내주고 하는 조항도 들어가 있어요. ‘수입이 없는 사람들의 건강보험료를 면제해준다.’ 라는 조항이 있죠. 지역의료에 가입이 되어 있어도 돈을 못 내서 의료비를 못 받는 경우가 많으니까 직접 그 사례를 생각해서 그런 것 같아요. 공제회로 가되 건강보험까지 해결해주는 식으로. 공제회라는 것은 조금 저항이 있었어요. 공제할 돈이 없는데 무슨 공제회냐 했는데 그래서 그걸 상당 부분 국가기금으로 일단은 해결하는 식으로 하면서 건강보험을 포함시킨 내용이죠.
채: 법안들이 입법화되는 과정에서 힘든 부분이 많을텐데, 기준이 되어야 하는 것은 우리가 문화예술 선진국 쪽으로 가야하느냐 아니냐의 방향을 놓고 생각해야 할 것 같아요. 오 선생님, 복지법이 작년에는 정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표류되지 않았습니까.
오: 일단은 조정기간이 있을 것 같아요. 원래 분위기로는 여야 합의하에 통과시키기로 했다 하는데, 3월 국회는 못했고 4월 국회에서 한다고 하는데, 정부에서 반대 입장이 분명하고 문화부는 어정쩡한 태도인 것 같고요. 문화관광 정책연구원에서는 축소시켜서 공연 영상쪽으로 하는 것이 방안이다 하고 있고, 문화부안하고 비슷할 거예요. 3월 국회라면 통과될 수도 있었겠지만, 4월로 넘어간 이상, 그런 조정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제 생각에는요, 어찌됐든 통과가 된 뒤에 문제점이 드러나면 다시 대체법이 나오는 게 낫습니다. 여태까지 이래서 어렵다 저래서 어렵다 하면서 시도조차 못 했잖아요. 선언법으로라도 통과가 된 뒤, 실제 실행하려니까 어려움이 있어서 그것을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더라도 그래야겠다는 거죠. 특히 많이 이야기 하는 것이 앞의 고용의 문제와 같이 부정형성. 너무 케이스들이 다르다는 것이죠. 개인작업 하는 사람, 공동작업 하는 사람, 너무 다르기 때문에요. 물론 예술계에서도 노력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 연극 같은 경우 제작자를 고용주로 보고 표준계약서를 만들어가지고 몇 %를 공제하는 식으로. 우리가 마치 인쇄비 내고 대관료 내는 것처럼 당연한 경직성 경비로 인정하는 풍토를 만들어야겠죠. 사실 부정적으로 보자면 한이 없어요. 예술가가 어디까지인가에 대해서도, 형태가 너무 다른 것들이 속해 있다는 말이죠. 그리고 한 작품을 만들면서 투자하는 시간을 어떻게 계산 할 것이냐. 뭐 이런 여러 가지 사례를 들면서 이건 근본적으로 어렵다는 이런 시각이 많이 있어요. 어쨌든 그런 것 들을 극복을 해야 하는 것이 문제이긴 한데, 일단 이번 기회를 못 살리면 상당기간 늦어질 거 같아요. 어떤 수를 써서라도 여론을 환기시켜서 출발해야죠. 과연 누구까지가 예술가인가부터 서로 형태가 다른 분야들을 어떻게 수용 할 수 있느냐 하는 고민도 일단 법이 통과돼야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 같아요.
채: 어떤 분은 예술인 복지법이 통과되면 바로 예술인의 범위를 어떻게 규정 하느냐의 문제가 대두될 것이라고 하는데, 물론 그런 각론적인 문제들이 있겠지만 오 선생님 말씀처럼 법 설립 우선이라는 원칙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하고 싶고요. 사회빈곤층 지원과 중복된다는 논리에 대해서는?
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제도가 있는데 왜 또 이것을 만들어 예산을 들여 만들어야 하느냐는 얘기가 나오겠죠. 그렇지만 우리 복지제도에는 거의 모두 사각이 존재합니다. 예술인도 그 중 하나고요. 그 사각을 없애는 일이라 하면 중복이라는 말은 하기 어렵겠죠.
채: 두 분은 이런 논리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만일 복지법이 통과 되면 여기가 편한 곳인 줄 알고 무능력한 예술 예비생들이 무작위로 넘나들려하고, 예술현장에 안주하려는 현상이 증가 될 것이다 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김: 구더기 무서워서 장 담가 보지도 못하고, 그것 때문에 정말로 필요한 일들을 안 할 수도 없는 것이고요. 만약에 그런 사람이 있어서 다소 부정한 수급이 있다 해도 공무원이나 정치인들의 부정부패로 밝혀지는 부정한 돈거래에 비하면 새발의 피죠. 2000년도 쯤 복지문제로 노동에 대한 문제 때문에 왜 우리가 노동자냐고 우리는 예술가라고 우리 연극인들이 대든 적도 있었으니까요.. 현실적으로 자긍심만 있어서 실제적으로 우리가 찾아야 했던, 당연히 국가로부터 받아야 할 권리나 권익을 무지로 인하여 놓친 경우도 있었으니까요. 지금은 현실적으로 잘 들여다봐야할 때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술 하는 행위를 어떤 때는 경제논리를 앞세우고 어떤 때는 자기가 좋아서 하는 것들로 치부해버리고 정말로 우리가 지켜야할 무대정신은 어떤 희생을 누가 감내해서 지켜내야 하는지 난감 합니다. 어떻게 보면 경제 논리에 편승하면 이 세상을 살아가기가 쉬운 거고, 사각지대에 있으면 거의 죽을 직전까지도 가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요.
채: 복지법이 통과되어 혜택이 주어진다고 해도 아마 그것은 사회통념상 최저수준정도가 되기 때문에 그런 혜택 정도를 가지고 ‘예술인이 양산 될 것이다, 범람 할 것이다.’ 는 것은 기우에 지나지 않을 것이고, 또 그것이 긍정적인 역할이 돼서 도리어 재능 있는 예술인들이 빠져 나가지 않게 하는 역할이 더 중요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때, 그런 논리도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드네요. 올해 안에 꼭 통과가 되어서 선언적 의미가 형성이 되는 것이 중요할 것 같은데 상당히 걱정이 됩니다. 이럴 때 오세곤 선생님은 복지법에 대해 예술인들이 어떤 태도를 갖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십니까?
오: 제 생각에는 여기에 관해서 생각들을 많이 해야 하고, 스스로 우리가 이것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까도 얘기했지만 ‘누구나 다 하려고 한다.’ 라든가 하는 이런 얘기를 우리 스스로도 하거든요? 그렇게 하면 다들 무의도식 할 것처럼 그런 얘기들을 우리도 너무 쉽게 한다는 거죠. 그건 아니라는 거죠. 우리 스스로가, 무장이라는 단어가 좀 그렇지만... 어쨌든 이에 대한 대비가 있어야 합니다. 정책결정자들이, 쉽게 얘기해서 공무원들이 마이크를 들이댔는데, 여기서 다른 목소리들이 나왔을 때 그것을 얼른 가져다가 따옴표를 붙여 활용한단 말이죠. 그것에 대해서 우리 스스로 스터디가 되어야겠다는 겁니다. 이 어려운 길을, 그런 혜택을 줘도, 누가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하겠느냐? 그건 아니다. 기본적으로 어려우니, 너무 비참한 그런 생활을 막아보자는 안전장치 정도라는 거죠. 그리고 어쨌든 중요한 것은 사회적으로 ‘이 부분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라는 ‘국가적인 대접을 원하는 것이다.’라는 거고요. 예술이라는 것이 원래 비효율적 이어야만 하는 것이거든요. 저는 이런 비유를 많이 합니다. 도공이 있는데 도자기를 1000개를 깨뜨리고 1개를 남기는 도공하고, 10개도 못 깨고 부들부들 떠는 도공하고 있을 때, 결국은 1000개를 깨는 도공의 작품은 천배, 만배, 아니 그 이상의 엄청난 부가가치가 있는 명품이 될 수 있다고요. 열개보다는 천개를, 천개보다는 만개를 깨는 것이, 그러니까 확률이 낮을 수록, 즉 ‘비효율적일수록 효율적이다.’라는 역설이 가능한 것인데, 그런 비효율에 대한 보호와 지원을 ‘옥석을 가리기 힘들다.’라는 얘기를 가지고 안 하는 것은 정말 문제이다. 돌이 섞여 있어서 못 하겠다고 하지 말고, 혹시라도 옥이 섞여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뭔가 보호장치를 마련할 수밖에 없다는 태도를 가져라 하는 겁니다. 그게 국가 경제적 입장에서도 더 남는 것이라는 거죠. 그래서 이런 이야기를 해요. 어떤 정책이든 결정을 하려면 현실에서 생기는 문제들이 있어요. 근데 그 문제가 정책결정을 중단할 만한 정도인지 판단해야 하는데, 너무 지엽적인 요인들을 가지고 (예를 들어 누구나 다 한다고 하면 어떻게 하느냐?) 문제를 삼으면 안 된다는 거죠. 정책이란 일단 결정하고 나서 일반국민들을 계몽해나가야 하는 그런 경우도 많거든요. 국민들이 ‘왜 예술인들을 그렇게 우대하느냐?’ 하더라도 국가에 꼭 필요한 것이니 당연하다는 식의 설득을 해야 할 정책결정자들이, 술좌석에서 툭툭 던지는 정도의 사소한 얘기들을 근거로 못해준다고 하는 것은 결코 올바른 국가경영이 아니라는 것이죠.
채: 국가가 왜 도와줘야 하느냐, 예술은 자기가 좋아서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올 수 있고, 예술이 건설이나 토목처럼 무언가 눈에 보이는 그 무엇을 만드는 것이 아니기에 우리 예술이라는 것이 정말로 일정부분 국가에서 보상을 받을만한 이유가 없는 건가요?
박: 예술 존재론으로 가야하는 건가요. 좀 더 다른 식으로 우리가 결혼, 성을 이야기 하고, 직장동료나 상사를 이야기 하는 것 있잖아요,. 이런 것도 있지만 사랑이라는 것도 있고 우정이라는 것도 있고 자애와 존경이라는 것도 있잖아요? 이런 비가시적인 영역에 있어서 예술이 해내고 있는 것을 어떻게 측정하겠어요. 그러나 그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은 없거든요. 예를 들어서 예술이 GDP부분에 얼마나 많은 산출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공학과 상업이 하지 못하는 것을 이학과 인문학이 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러한 저변에 분명히 예술이 있다고 보거든요. 어떤 분이 그 질문을 했다하면 질문한 분도 이것은 인정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고요. 아까 이야기를 하면서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최고은씨 케이스에 대하여 동정하는 사람들이 왜 홍익대 청소노동자들이라든가 쌍용에서 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라든가 진짜 목숨을 걸고 투쟁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이 사람들에 대해서는 얼마나 관심을 가져봤느냐? 거기서 느낀 것은 ‘뫼비우스의 띠’ 같은 모순을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이 사회에서 보호받지 못하면서도 겨우겨우 살아가야 하는 노동자들 그것도 굉장히 열악한 조건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예술가들은 바라봐야 합니다. 하지만 일부 예술인들은 그보다도 더 못한 지경에 있는 거죠. 그들을 생소한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는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이러한 상호시선에 대해서, 또 하나는 이 사회제도를 만들고 운영하는 사람들, 주로 정부에 있겠죠, 그 제도와 권력의 운영에 대해서 예술가들은 응시합니다. 때로는 부당함과 불합리에 대해서도 응시하는데, 역시 그 제도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참 이해할 수 없고 감당할 수 없는 존재들.’ 또 이렇게 바라본다는 것이죠. 서로서로 응시하면서도 부대껴 하는 것이죠. 근데 이것은 창의성을 뛰어넘는 어떤 창조적 고민이 있어야 할 것 같아요. 현실적 제도적인 고민으로 이것이 감당된다기보다는... 창조적인 것이 뭐냐? 예술가라고 또 애매하게 이야기하고 빠져나가네, 라고 하면 할 수 없겠지만 예술가라는 존재자체가 이 제도적 언어로 분명하게 사회적으로 자리매김하기엔 어려움이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하고, 이래서 현실성이 없다는 이야기들이 모두 회피하고자 하는 이야기만은 아닐테지만..
오; 인간은 누구나 문화의 혜택을 받고 삽니다. 예술은 그런 문화에서 가장 중요한 기초도 되고 또 지향점이 되거든요. 또 과학기술도 예술에 빚을 많이 지죠. 아까 말한 예술의 비효율성이야말로 과학기술에 토대가 되는 것이거든요. 확률이 거의 제로에 가까워도 거의 무한의 시간을 쓰면서 만들어낸다. 시간과 육체적 정신적 에너지를 물 쓰듯 쓰면서. 그런 일을 다른 곳에선 안하거든요. 그렇게 해서 나온 결과가 문화에도 활용되고 과학기술에도 활용되고... 정책 결정자들이 그런 마인드를 가져야 합니다. 예술이 없으면 나라가 큰일 난다는 생각을 말입니다.
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소유와 존재의 싸움이 될 수도 있겠는데요. 위험한 이야기인지 모르겠지만 나라를 지키는 국방예산은 어마어마하면서 나라의 정신을 문화의 근간을 지키겠다는 분야에 왜 그렇게 옹색하게 구는지, 예술행위도 육해공군 다음 제4의 군대로 인식하면 안 되나요?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은 어찌 받아들여야 하나요. 보이는 것들, 즉 나라를 위해서는 국방의 의무라든가 군인들에게는 많은 것을 투자하면서 보이지 않는 것, 즉 정신을 지키는 또 다른 큰 영역을 담당하고 있는 곳은 소홀히 한다면 그런 세상이 사람 사는 세상이라고 말할 수 있나요. 경제선진국만 앞세울게 아니라 당연히 문화선진국도 함께 가야죠. 한류니 뭐니 하며 눈 가리고 아웅 하거나 떨어지는 감이나 주워 먹을 게 아니라고 봅니다. 총칼을 들고 싸우는 것만 나라를 지키는 일이 아니라 정신을 지키자고 일하는 사람들의 가치도 함께 소중함을 놓치지 말자 뭐 그런 말입니다.
채: 좋은 말씀들 너무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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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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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현기자 jh4017@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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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숨가쁘게 만든 7호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많은 분들이 도와주시고 응원해 주시는 덕분에 이번호도 마무리 지을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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