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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2093-9140 |
2011.05.1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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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서울연극
Today's Theater In Seoul 제8 호 2011. 5.1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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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처: 서울연극협회, 연극기록실 발행인: 박장렬 편집인: 오세곤 편집위원: 양기찬, 조만수, 최은옥 기자: 이정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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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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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연극제 미래야 솟아라 | 조만수 - 서울연극제 미래야 솟아라2 | 김민승 - 복사꽃 지면 송화 날리고 | 김선욱 - 샘플 054씨 외 3인 | 서은영 - 노인과 바다 | 정대용 - 사무라이 혹은 감각의 드라마 | 강양은 - 여기 사람이 있다 | 이주영 - 책 읽어주는 죠바니의 카르멘 | 양기찬 - 햄릿 | 오세곤 - 햄릿 | 서나영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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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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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g의 아킬레스 건 | 박연숙 - <내가 까마귀였을 때> <주인이 오셨다> | 백승무 - 야끼니꾸드래곤 | 오세곤 - 봄날 | 박정기 - <전쟁을 로비하라> <보스, 오 마이 보스> | 박정기 - 햄릿기계 | 박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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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기록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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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로 포럼 2010~2011 연속 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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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킬레스건, 작지만 치명적인 트라우마의 다른 이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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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팩수록> 작가: 김원태 연출: 박재완 공연기간: 2011년 5월 11일~15일 공연장소: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박연숙(철학박사/ 숭실대 교수)
내 아배는 똥개
김원태 작, <2g의 아킬레스건>이라는 제목이 주는 신선함은 무엇보다 아킬레스건의 가벼운 중량에 있다. 작가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유래하여 '몸에서 유일하게 상처를 입을 수 있는 곳'을 뜻하는 아킬레스건을 트라우마(trauma), 즉 정신적 외상을 뜻하는 비유로 사용하면서 ‘2g’이라는 매우 작은 중량에 초점을 두고 있는데, 이는 우리 인생의 치명적인 상처가 매우 사소한 것에서 비롯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작품 속 주인공 순택(황순영 분)의 아킬레스건은 장터에서 사진사로 일하는 아버지(김효배 분)이다. 프롤로그에 해당하는 첫 장면에서 늙은 순택이 낡은 카메라를 떨리는 손으로 만지며 반복하여 외치는 말이 “순택이 아배는 똥개 아배요.”이다. 늙어서까지 지워지지 않은 아버지에 대한 심리적 상처가 무엇인지, 얼마만큼 괴로운 것인지의 의문이 이후에 펼쳐지는 어린 시절 순택(차다연 분)의 기억과 성인이 된 순택의 꿈을 통해 찬찬히 드러난다.
자신의 아버지를 ‘똥개’라고 부르게 한 하나의 사건이 있다. 학교 행사가 있는 날 급우들 앞에서 자신이 발표하고 있는데도 사진사 아버지는 카메라로 자신을 찍어주는 것이 아니라, 부유하고 힘 있는 아버지를 둔 동급생 동만(장호림 분)만을 찍어 주었다. 이런 모습에 급우들은 순택의 아버지가 ‘똥만이의 똥개’ 같다고 놀렸고, 이날 이후 어린 순택이는 아버지가 자신의 사진을 한 번도 찍어 주지 않았다는 불평을 시작하게 된다.
아버지에 대한 어린 아이의 불평에서 평생의 트라우마로 발전하게 되는 계기에는 어머니의 죽음이 개입한다. 장터의 가게가 무너져 어머니가 깔리게 되었는데,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 순택은 아버지를 찾아갔지만 이때 아버지는 빌린 돈을 갚지 못해 동만네 아버지에게 매달리고 있던 상황이라 순택의 다급한 요청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아버지로부터 얻어맞으며 쫓겨난 순택이 장터 아줌마들에게 달려가 도움을 청해보려 하나 그들 역시 순택의 요청을 이해하지 못해 도와주지 않는다. 어머니를 잃은 순택의 분노는 아버지뿐만 아니라 도움을 거절한 장터 사람들로 확대되어 나중에 건설회사 사장이 된 순택이 장터를 밀어버리는 계기가 된다. 그러나 이 작품은 순택의 과거 기억과 꿈을 통해 그가 왜, 그리고 어떻게 상처 받았는지를 보여 주면서 동시에 제사를 앞둔 순택 아버지의 현재의 모습을 대비시켜 사실은 아들을 몹시 그리워하고 있으며, 순택의 상처가 사소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임을 보여준다.
과유불급(過猶不及), 과잉된 무대
박재완 연출의 재구성을 거친 <2g의 아킬레스건>에는 과잉이 거슬린다. 무엇보다 인물을 표현하는 방식에 있어서 지나친 점이 있는데, 그 문제점은 어린 시절과 성인/노인이 된 순택을 연기한 배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젊은 나이에 죽은 순택의 어머니에 있다. 아이와 노인을 오가는 순택에 비해 젊은 모습만을 간직한 어머니의 표현이 더 단순할 거 같지만 박재완 연출은 순택의 기억 속 분홍 치마의 어머니와 아버지 앞에 나타나는 소복 차림의 어머니 혼백으로 나누고, 또 그 어머니 혼백을 아버지와 대화하는 혼백 1과 그녀의 심리상태를 춤으로 표현하는 혼백 2로 세분한다. 그런데 거슬리는 지점은 혼백 2이다. 네 명의 매우 큰 탈을 쓴 저승사자들과 함께 등장하는 혼백 2는 탈을 쓴 것도 아니고, 혼백의 분장을 하지도 않은 채 등장하는데, 이러한 모습은 극이 진행될수록 더 혼란스러워진다. 혼백 2 배역이 순택을 체벌하는 여교사 역과 치매 시모를 무시하는 성질 사나운 며느리 역을 분할 때도 같은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어 이들 배역의 강한 이미지가 지워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처음부터 혼백 1과의 연결성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혼백 2 배역을 연기한 반주은씨는 배우이기 이전에 무용과 교수이다. 무용수에게 무용 이외의 두 명의 성격 강한 인물을 연기하게 하면서까지 캐스팅한 이유는 분명해 보이지 않는다. 특히나 다른 두 배역 때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혼백으로서 춤을 추는데, 그 춤은 저승사자의 동요 같은 리듬과 어울리지도 않았으며, 혼백 2가 춤추는 동안 혼백 1이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는 장면은 매우 어색하였다. 혼백 2의 무용이 재구성 과정에서 등장한 것이라면 불필요한 첨가였다는 생각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다른 인물들이 여러 배역을 동시에 할 때는 분명 분장과 연기에서 확연한 구분이 있었다. 그러나 혼백 2는 그러한 연기 변신을 소화해 낼 수 없었고, 혼백으로서의 무용도 저승사자나 혼백 1과 조화를 이루어내지 못했다.
무대 또한 과잉이었다. 무대와 객석을 가르는 전면의 가로로 길게 뻗은 난간과 좌우에 뻥 뚫린 지하 공간 둘, 후면의 높이 솟은 경사 언덕과 그 사이에 숨겨진 접이식 침대, 그리고 무대 중앙에 접이식 가게가 3개가 줄로 연결되어 있다. 그런데 사실 우측의 이동식 사진관을 제외하면 어느 것도 필수적인 것은 아니었다.
접이식 가게는 줄로 연결되어 필요할 때 세워지고 눕혀지는데, 가게라고 보기엔 너무 작고 허술할 뿐더러, 무너진 가게에 깔려 죽는 순택 어머니의 죽음을 연출하는 장면에서조차 효과적이지 못했다. 그 이유는 디자인상의 문제인데, 장터의 가게가 아닌 동화 속의 집들처럼 낭만적인 디자인에 하얀 채색이 되어 있어 더더욱 그랬다.
좌우 대칭으로 뚫린 지하 공간 또한 그 역할에 비해 과잉된 것이다. 어린 순택이 장터 아줌마에게 도움을 청할 때 단 한 번 사용되는데, 그러한 비중을 위해 좌우 공간을 죽이는 것은 매우 비효율적으로 보였다. 게다가 유일하게 쓰이는 때조차 지하에서 불려나온 아줌마와 이야기하기 위해 순택이 옆으로 길게 누워야 했기에 대단히 어색하고 조잡해 보였다.
순택의 꿈이 주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후면에 자동 설치된 침대는 중요한 도구이지만 침대로 변신하는 작동 과정에 소요되는 시간과 지나치게 큰 소음이 발생하는 점을 감안하면 자동 작동보다는 차라리 수작업으로 침대를 만드는 편이 나았다는 생각이 든다. 지루한 침대 설치가 몇 차례 반복되면서 극의 흐름은 자주 끊기고 무대의 과잉이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무대 전면의 길게 뻗은 가로 난관은 객석과 무대를 확연히 분리하는 매우 큰 부분이다. 그런데 몇 차례 철거반의 등퇴장에 활용되고 순택이가 아버지에게 얻어맞으며 쫓겨나는 곳으로 단 한 차례 사용되고 있어 기능에 비해 소모적인 공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처럼 불필요한 무대 설비와 부적절한 디자인이 무대의 답답함을 가중시켰으며 시간적으로 폭이 큰 원작을 더욱 단절적으로 보이게 했다.
배우들의 연기 스타일 역시 너무 난삽했다. 사실적 연기와 마임, 마리오네뜨, 꼭두각시, 춤, 노래 등이 혼합되어 꿈의 몽환성보다는 일관성없는 백화점식 전시처럼 느껴졌다. 순택의 꿈과 기억 역시 그 각각의 스타일의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한 채, 단지 순택의 트라우마의 발생 서사를 숨차게 열거하는 데 치우친 점이 아쉽다.
한 편의 과잉은 다른 한 편의 미흡을 초래한다. 이 작품에서 순택은 자신의 아버지가 자신을 카메라로 사진 찍어주지 않는 것을 여러 차례 불평하지만 결말에 가서 그것이 사실이 아님이 밝혀진다. 순택의 어린 아가 때 사진이 앨범으로 간직되어 있었다는 점에서 아버지는 과거에는 그러지 않은 인물이었음을 증명해 준다. 그렇다면 순택 아버지는 순택이가 자라면서 변한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그 계기가 드러나지 않는다. 살림이 어려워서가 이유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러한 추측으로는 미흡하다. 혼백 1의 대사에서 경상도 사람의 기질을 핑계로 아들에 대한 무뚝뚝함을 타박하고 있는데, 그 또한 충분하지 못한 설명이다.
순택의 어머니 죽음 또한 매우 미흡한 설정이다. 가게가 무너져 깔려 죽은 것으로 나오지만, 순택 아버지가 수레를 끌며 다니는 이동식 사진 기사라는 점을 감안하면 가게는 누구의 가게인지 의문으로 남을뿐더러, 무엇보다 가게가 무너져 깔려 죽는다는 설정이 매우 갑작스럽다. 설령 순택이네가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다 해도, 가게를 지켜야 할 사람은 어머니가 아니라 아버지였다. 게다가 가게가 무너진 시간, 아버지는 동만과 동만의 아버지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 장소는 가게가 아니고 어디인가? 관객은 이를 전혀 가늠할 수 없다. 더구나 가게가 장터에 위치하고 있을 텐데, 그렇다면 장터의 상인들과 오가는 손님들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 또한 납득할 수 없다. 순택이 나물장수(김은경 분)나 생선장수(임주현 분)에게 도움을 청할 때 그들이 순택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지나쳤다는 것 역시 납득할 수 없다. 초등학교 6학년의 순택은 앞서 학교 행사 때 발표를 썩 잘하던 학생이었고, 나중에는 건설회사 사장에까지 오르는 것으로 보아 똑똑한 아이임이 틀림없다. 이 같은 것을 종합해 보면, 결국 순택 어머니의 죽음 설정이 매우 부자연스럽다는 의미이다. 가게가 무너져 깔려 죽는 어머니의 죽음 설정은 아버지를 용서할 수 없게 하기위한 억지 설정이었다는 생각이다.
이해와 용서
순택은 아버지가 자신에게 무관심하고 힘 있는 사람들에게 비굴하게 구는 것을 견딜 수 없었다. 아버지는 스스로를 “달걀”이라고 생각했고, 살기 위해 종종 비굴의 가면을 쓰곤 했다. 그 때문에 어머니를 살리지 못한 원망이 더욱 큰 상처가 되었다. 노인이 된 순택이 그런 아버지를 이해하고 용서하는지, 또는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게 되었는지는 결말까지 확실하지 않다.
이 작품은 아버지의 속 깊은 사랑을 전제 하고 있다. 늙은 순택 아버지는 영정 사진만을 찍는 것으로 나오는데 그것은 죽은 순택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의 표현이다. 비록 그가 표현에 서툰 사람이긴 하지만 자신의 아내 혼백이 노래하라 채근하면 노래도 하고 춤도 추는 다정한 남편이다. 혼잣말을 통해서는 아들에 대한 그리움을 보여주고, 며느리에게는 숨겨 둔 앨범까지 건네는 애틋한 아버지 모습이다. 사는 것이 죽는 것만큼 어려웠다는 아버지의 대사에서 세상살이의 고단함으로 자신을 변호해 보지만 이런 아버지의 모습이 순택에게는 잘 전달되지 않는다. 그야말로 2g의 아킬레스건이 손상된 탓이다.
이 작품의 마지막 장면은 순택이 갓난 아이였을 때 세 가족이 찍는 사진 영상이지만 관객은 오히려 첫 장면을 떠 올리게 된다. 낡은 카메라를 매만지던 늙은 순택의 떨림 속에 아버지에 대한 용서와 사랑이 생겨났을지, 순택의 트라우마는 치유되었을지 되묻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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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은 영혼만 잠식하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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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희곡수록> 공연명: <내가 까마귀였을 때> / <주인이 오셨다> 연출: 임영웅 / 김광보 극작: 고연옥 극단: 산울림 / 국립극단 상연일시: 2011.3.29-5.8 / 2011.4.21-5.1 상연장소: 산울림 소극장 / 백성희장민호 극장 관극일시: 2011.4.23. 15:00 / 2011.4.24. 15:00 백승무(연극평론가, 서울대강사)
인간은 외롭다. 둘이 있어도 각각 외로울 뿐이다. 필멸의 존재인 인간은 무(das Nichts) 앞에서 아찔해지기 마련이다. 그 아찔함이 외로움의 근원이다. 키에르케고르는 그 외로움의 바닥에서 ‘근원적 불안’을 보았다. 하이데거는 아예 인간의 근본감정을 불안이라고 선언했다. 사랑에 목숨 걸고 행복에 목매다는 ‘호모 해피(happy)쿠스’로서는 여간한 좌절이 아니다. 불현듯 일상을 정지시키고, 행복감의 허약한 표피를 갈기갈기 찢어버리며, 그렇게 불안은 고개를 쳐든다. 불안의 망망대해에서 행복이란 그저 일순에 스러지는 포말과도 같다. 잡을 수도, 지켜낼 수도 없는 그 찰나의 포말 뒤에는 영혼을 잠식하는 불안(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이 검은 아가리를 벌리고 있다. 이런 실존적 분석이 20세기의 사회와 사상을 길러냈다. 드라마도 예외가 아니다. 베케트의 무의미, 아르토의 비명, 그리고 최근 해롤드 핀터의 부조리까지 이 불안의 지문은 무대에도 강렬하고 짙은 자국을 드리우고 있다.
불안은 불편하다 소름을 일깨우고, 몸을 옹송그리게 만드는 고연옥의 드라마는 이 불안감의 주변을 배회한다. 그녀의 인식론은 ‘나는 불안하다, 고로 존재한다’이다. 그래서 그녀의 드라마는 어지간한 자극과 충격에는 눈도 깜빡이지 않는 현대인의 불감 증후군에 대한 일종의 경고 메시지이다. 일어나지 말아야하는 사건사고가 우리의 상식과 윤리를 비웃으며 어지러운 춤을 추는 이 시대를 야유하는 적색 램프이다. 그녀는 천인공노할 (살인)사건의 표제 뒤에서 무심코 간과해버린 미세한 불안감을 조심스레 채취해 낸다. 사건이 무서운 것은 그 끔찍한 결과 때문이 아니라, 그 과정에 연루된 수많은 상처와 아픔 때문이라고 말한다. 호기심이나 흥미 본위의 연대기적 사건 서술이 담아낼 수 없는 미시적 심리 영역에 돋보기를 들이대고 그 불안의 상흔들을 한 꺼풀씩 벗겨낸다. 아프고 불편하다. 그 통증이 고연옥 드라마를 긴장시키는 원동력이다. 인물들이 아프고, 그 상황이 아프다. 그래서 관객까지 그 아픔은 전염된다. 그럼 불편함은? 실수나 무지로 인한 죄행은 연민이라도 가질 수 있지만, 고연옥 드라마의 아픔은 실존적이고 생래적이라서 마진도, 여지도 없고 복구도 안 된다. 그래서 불편하다. 진단이 나오면 처방이 떠오르는데, 그녀는 진단서를 내밀 뿐이다. 이래저래 불편하다.
관계의 심리학 20세기 드라마의 심리적 불안이 현대인의 정신적 불모성과 일상적 비극성에 그 기원을 두고 있는 반면, 고연옥의 불편한 불안은 주체의 문제보다는 사회적 병리로 말미암은 ‘관계’의 심리학에 경사되어 있다. 그녀의 드라마에서 불안이 번식을 시작하는 서식지는 주체 개인의 파탄난 내면보다는 인간관계의 왜곡이나 의사소통의 장애가 발생하는 지점이다. <내가 까마귀였을 때>에서 불안의 정체는 사회 밑바닥을 거친 막내의 비뚤어진 심성 자체보다는 13년 동안 타인처럼 자라온 이 아이가 중산층 가정의 질서 속에 무사히 편입될 수 있을까 하는 진입 장벽에 대한 시선에 있다. 가부장적 질서가 탄탄히 착근된 집안 분위기, 집을 떠나 해비타트 운동에 전념 중인 아들과 ‘모범생’ 한마디로 정의되는 그의 누나. 왠지 평범할 것 같으면서도 모종의 위태로움이 감지되는 이 가정에 어릴 적 잃어버린 막내의 갑작스러운 유입은 근원을 알 수 없는 미묘한 불안감을 야기한다. 비록 피를 공유한 혈족의 유입이긴 하지만, 너무나 이질적이고 게다가 공격적이며 때로는 안하무인인 막내의 등장으로 인해 이 집안에는 낯선 자의 방문을 능가하는 불안이 싹트기 시작한다. 동생이 생긴 걸 지나치게 좋아하는 아들도, 잃어버린 자식을 찾아 마냥 흐뭇해하며 기뻐하는 아버지와 어머니도 정도와 입장 차이는 있지만 그 불안감의 흔적을 씻어내진 못한다. 마치 지워지지 않는 막내의 불쾌한 ‘냄새’처럼.
불안한 언어, 파괴된 관계 <주인이 오셨다>에서 이 불안의 증상은 좀 더 보편적이고 일상적 방식으로 발현된다. 완전한 타인도, 그렇다고 낯익은 지인도 아닌, 그래서 들일 수도, 내둘 수도 없는 아들 친구의 방문이 그 요체인바, 누구나 흔하게 체험하는 이 애매한 상황은 10분 넘게 극의 도입부를 지배한다. 주영 엄마는 검은 피부의 자루를 보고 수시로 흠칫흠칫 놀라지만 외면의 불편함을 이기지 못해 결국 어쩔 수 없이 불안함을 선택한다. 이 둘 간의 대화는 불신과 경계(警戒), 그리고 진솔함과 진지함이 혼성적으로 뒤섞이며 아슬아슬한 줄타기처럼 간신히 이어진다. 중간에 자루의 탄생과정을 묘사하는 긴 극중극을 삽입하여 관객의 동의를 구한 극작가는 곧 바로 살얼음 같은 이 대화에 종지부를 찍고 살인이라는 무시무시한 결론을 던져놓는다. <내가 까마귀였을 때>에서 가족 간의 허술한 결속력이 막내의 갑작스러운 돌변으로 인해 밑바닥까지 추락하는 것처럼, <주인이 오셨다>에서도 불안의 전조는 결국 살인이라는 막장으로 돌진한다. 무대 근저에 뿌리박고 있는 이런 불안의 촉감은 지속적으로, 그리고 자극적으로 인물간의 대화와 상황을 잠식해 들어간다. 무엇보다 주목할 수 있는 것은 탈맥락의 경계를 내왕하는 소통의 방식, 부자연스러운 휴지(pause)와 상대방의 폐부를 자극하는 언술 등 고연옥 특유의 대화 구성법이다. 불안감이라는 비정상적인 심리 위에 구축된 인물 관계가 교감과 공감의 대화를 양산할 리는 만무하다. 해롤드 핀터(특히 <The Room>이나 <The Birthday Party>)의 극에서처럼, 영혼을 잠식한 불안은 대화를 잠식하고 종국엔 그들의 관계까지 잠식해버린다. 그래서 고연옥이 구사하는 대화에는 상대방과의 정서적 스킨십을 표방하거나 유도하는 표현이 없다. 인물들은 정서적 교감은 안중에도 없고 오직 자신의 얘기만 하거나 대화 중단을 두려워하여 회피발언만 남발한다. 당연히 그들의 대화에는 그라이스가 말한 대화의 격률(Gricean maxims: 1. 질의 격률 : 진실을 말하라. 2. 양의 격률 : 대화의 목적에 요구되는 만큼만 정보를 제공하라. 3. 관련성의 격률 : 주제에 적합한 것을 말하라. 4. 방법의 격률 : 모호한 표현을 피하고 장황하게 말하지 말라)이 심각하게 훼손되어 있다. 인물들의 언어가 자주 대화맥락을 이탈하고 때로는 알레고리적일 정도로 낯설게 지각되는 것은 그들이 현대인의 일상적 불안감 못지않게 무의식적 불안감에도 시달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애정결핍에 빠진 사람은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 간절하기 때문에 자신의 구애가 거절당하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한다. 그들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딱 두 가지, 애정결핍을 숨기기 위해 과도한 공격적 태도를 보이거나, 자기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무가치한 인간이라고 폄하하는 자기비하적 태도이다. 두 가지 태도 모두 이면에는 거절에 대한 불안감이 도사리고 있다. <내가 까마귀였을 때>의 막내나 <주인이 오셨다>의 자루나 이 불안감에 영혼을 잠식당한 인물들이다. 지독한 애정결핍 콤플렉스 사례인 것이다.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 불안한 언어는 불안한 관계와 사건을 양산한다. 형식논리 차원에서는 별다른 문제가 없는 고연옥의 대화는 그 내막을 보면 독을 뿜고 가시를 품은 언어들이 즐비하다. 인물들의 관계도 이 독에 중독되고, 가시에 찔려 피범벅이 된다. 관계의 왜곡과 파탄, 역전이 발생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주인이 오셨다>에서 고연옥이 천착하는 것은 정상적인 상호관계, 정상적인 타자의식이 어떻게 주인과 노예의 종속관계로, 피학과 가학의 애증관계로 변질되고 도착되느냐 하는 점이다. 주인은 노예의 승인 하에 존재하고, 노예는 자기생존을 위해 주인을 이용하기 때문에 결국 노예는 주인의 주인이 된다는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헤겔)이 이 사태를 해명하는 좋은 참조가 될 것이다. 노예의 노동만이 사물을 존재하게 만드는 구체적 실체라는 점에서 주인은 결국 지배관계라는 관념에 머무는 자이고, 노예만이 최종적으로 웃게 될 것이라는 헤겔의 예언은 이 작품을 지배하는 관계의 도착과 역전을 효과적으로 설명해준다. 자신의 등골을 빼먹던 망나니 남편의 죽음에 쾌재를 부르고 진정한 해방감에 도취되어 “미친년처럼 웃다가 울다가 춤추고 노래하고 술 마시”던 금옥이 기다렸다는 듯 순이의 주인으로 군림하는 장면, 금옥이 아내에게 얽매이는 남편이 아니라, 자유로운 남편이 되라고 종구를 다그치는 장면도 이 관계의 역전과 변질을 잘 보여준다: “네가 저 아이와 결혼하면 난 평생을 떳떳하게 부려먹을 수 있다. 그리고 넌, 평생을 자유롭게 살 수 있어. 네 아버지도 누리지 못한 자유를 가질 수 있단 말이야. 네 아버지가 어떻게 살았는지 알지? 나 만나서 평생 기도 못 펴고 살다가 제풀에 넘어져서 인생 포기했어.” 자루를 마음대로 부려먹는 종이라 생각했던 친구들이 오히려 자루를 무서워하며 기피하게 되는 장면이나 자루가 불청객의 신분에서 주영이네의 주인으로 돌변하는 장면도 입장의 도치와 관계의 파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전, 이 집이 좋아요.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맘에 들었어요. 그리고 마음만 먹으면 내가 가질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됐어요. 여기서 절대로 나가지 않겠어요. 이제 내 집이에요. 내가 이 집의 주인이에요.” 처참한 모습으로 죽어버림으로써 세상 사람들에게 복수하려고 한 자살자를 구해줬더니 오히려 자루를 “철천지원수”라고 몰아세우는 노숙자 장면도 이와 한 길 위에 있다. 특히 금옥이 ‘악마’라고 저주했던 순이와 자루(“이 년 <...> 속에 악마가 있었어. 그래서 악마를 낳은 거야”)가 마지막 미장센에서 마리아와 예수의 관계처럼 소통과 사랑의 이미지로 승화되는 장면은 ‘노예’만이 진정한 이해와 용서를 구사할 수 있다는 ‘반란’의 신호처럼 묘사되어 애틋하고도 먹먹하다. <내가 까마귀였을 때>에서 노숙자가 “조만간 저 집은 우리가 접수한다”고 호령하는 장면 또한 관계역전의 법칙을 준수하고 있다. <주인이 오셨다>에서도 그렇지만, 고연옥에게 ‘집’은 주체와 집단의 정체성을 보장하는 신묘한 성지나 공간적 사물로 구체화된 안식과 평온의 영물로 격상되어 있다. 집을 접수하는 것은 단순히 건축물(house)의 탈취행위가 아니라, 추상적인 개념인 가정(home)의 파괴와 몰락까지도 상정하고 있는 것이다. 두 작품 모두 외부인이 집안으로 유입되는 모티프를 서사의 뼈대로 삼고 있는 것은 상술한 관계의 역전이 개체적 단위가 아니라 가족이라는 집단적 단위에서 작동하고 있는 점을 한 번 더 상기시켜준다.
서사의 불평등 불안한 관계는 결국 불안한 사건으로 귀결된다. <주인이 오셨다>에는 두 가지 플롯이 겹쳐져 있다. 하나는 시간적으로 과거에 해당하는 자루의 탄생과 얽힌 비화와 그의 청소년 시기 이야기고, 현재진행형으로 서술되는 다른 플롯은 주영이네 방문과 노숙자들과의 만남, 그리고 감옥에서의 참회가 그것이다. 자루의 전사와 후사로 양분된 이 두 플롯은 각각 기형적 출생비밀이라는 개인사적 사건과 소외와 차별이라는 사회적 사건으로 규정할 수 있다. 단순화의 오류를 무릅쓰고 이 두 플롯을 하나로 도식화시키자면, 이 작품은 악의 유전자를 안고 태어난 자루가 사회의 편견과 병리에 의해 살인자로 양육되어 감옥에 수감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언뜻 보면 이 진술은 논리성과 개연성을 담보한 듯하지만, 그 속에는 은밀한 작위성의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자루의 범행을 유전의 결과로 치환하는 결정론의 오류가 그것이다. 작가가 인정하든, 않든, 피부색에서 유래한 편견과 선입견이 우리 사회에 강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자루의 성장사를 설명할 때 피부색에 관한 언급이 하나도 없는 것은 사실이나, 그것은 텍스트 표면의 알리바이일 뿐, 그 심층에 어떤 편견이 활성화되고 있는 지는 누구나 쉽게 유추할 수 있다. 작가는 친구들의 입을 통해 차별과 소외가 피부색 때문이 아니라고 항변하면서 수시로 순이와 자루의 ‘눈치없음’에 그 혐의점을 옮기려 하지만, 오히려 그 작위성만 도드라질 뿐, 설득력을 얻지 못한다.
이해와 오해 한민족이라는 순수혈통 신화, 개화기 이전부터 무의식에 이식된 이방인 혐오증(xenophobia), 인종차별적 민족주의 등 우리 내면의 불길한 감정적 카오스 앞에 자루를 던져놓고 그의 살인행위를 사회적 문제(소통단절과 왕따)로만 해석하거나, 애초에 예비범법자로 설정된 자루의 만행을 불안이나 고독 등 현대인의 실존적 문제로 귀착시키려는 시도는 몽니에 불과하다. 물증 없이 심증을 전제로 말하자면, 악의 유전과 범행의 결정론적 조건을 결합시키는 시도는 위험하고도 불순하다. 지난 짧은 현대사를 통해 혼혈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우리는 너무도 잘 안다. 일방적이고 배타적인 지난 시절의 차별과는 달리 다문화사회 속의 차별은 지역과 계층, 직업 등 전방위적이고 전면적 차원에서, 그리고 훨씬 광범위하게 발생하고 있으며, 그 결과는 <주인이 오셨다>에서처럼 심각한 사회문제로 비화될 것이 틀림없다. <주인이 오셨다>의 치명적 결함은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즉, 자루의 존재가 필연적으로 연상시키는 개연적 의문에 대해서 작가가 침묵하거나 외면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루의 탄생을 기점으로 한 전사와 후사가 어떤 인과관계로 접합되고 있는지, 악이 악을 낳는다는 금옥의 말에 대한 작가의 코멘트는 무엇인지, 자루 성격의 굴절이 어떤 심리적, 사회적 영향 하에서 발생했는지, 그가 왕따가 된 내력은 충분히 설명되었는지, 친구들에 대한 복수심이 살인행위의 직접적 동기인지, 할머니와 아버지를 죽인 것은 존재부정인지, 아니면 엄마에 대한 복수인지, 결국 엄마 순이를 죽이지 못한 것은 주인에 대한 그녀의 순박한 심성 때문인지, 아니면 자루의 자기연민 때문인지 등등. 고연옥은 사건과 별개로 대화구성 자체만으로도 예감과 전조를 직조해낼 수 있는 뛰어난 작가이다. 하지만 그녀가 의도하는 대화 격률의 파괴가 관객과의 연극적 소통까지도 잠식하는 것은 아닌지, 암시와 비약이 전면 배치된 대사들이 극작의 논리성까지 훼손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야할 터다.
<주인이 오셨다>: 상징성과 표현력이 돋보여 대본에는 없지만 주영 엄마가 자루를 주시하면서 수시로 화들짝 놀라는 장면은 김광보 연출의 예리한 통찰이 번뜩이는 설정이다. 인물들의 동선과 제스처를 개념화된 무대와 조명에 맞게 직선적이고 단순하게 재현한 것도 매력적이다. 하지만 자칫 지루해지고 지나치게 심각해질 수 있는 노숙자 장면은 마임에 의존하기에는 물리적 거리가 너무 먼지라, 파도나 벽 등 세상을 은유하는 다양한 소품이나 장치를 활용하는 게 더 낫지 않나 싶다. 차라리 양식화된 마임보다는 코믹하게 분위기를 재구성하는 것도 대안이 될 것이다. 우는 듯, 웃는 듯 묘한 느낌을 자아내는 배우 이기돈(자루 역)의 입체성이 제거된 표정은 딱 자루의 그것이었다.
<내가 까마귀였을 때>: 단조롭고 건조한 무대 비평은 숨겨진 맛을 찾아내고 지고의 미향을 포착할 줄 아는 고도의 미식가여야 한다. 또한 동시에 대중의 다양한 식성을 포괄해내고 그 평균적인 미각을 진단할 수 있는 식도락가이기도 해야 한다. 그렇다고 비평이 닥치는 대로 숟가락을 들이대는 잡식일 수는 없다. 편식은 피해야겠지만, 맛과 멋을 외면한 영양식이나 선식은 몰취미다. 땡겨야 먹고, 맛나야 즐기는 법이다. 그것은 심미적 주관성(칸트)을 넘어서는 보편적 원리이다. 자신의 혀와 코를 소중히 하지 않으면 기다리는 것은 급체나 소화불량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까마귀였을 때>는 생식 같은 공연이다. 설익은 쌀에 입이 갈라지고, 메마른 반찬에 입이 마른다. 숭늉 한 그릇 없는 인색하고 거친 밥상이다. 첫째, 동선이 미약하고 동작이 압착되어 희곡 낭송회를 연상시킬 정도다. 아이들끼리 벌이는 4장의 설전에서 배우들은 10분 넘는 시간동안 꼼짝도 않고 대사를 ‘읽는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관객은 보려고 왔지 들으려 온 게 아니다. 둘째, 제한된 동작은 제한된 정보와 제한된 형상만 축조한다. 그래서 인물들은 마네킹 같고 생동감이 부족하다. 아버지는 기백이 없고, 어머니는 교과서 같다. 아들은 반항기라곤 전혀 없는 모범생 같고, 심리적으로 가장 복잡한 딸에게는 역동성이 없다. 행여 중산층 가정의 위선과 위태함을 암시하기 위한 설정이라면 좀 더 효과적인 양식화가 필요했을 것이다. 셋째, 급격하게 변하는 막내의 행위 굴곡을 제어하지 못했다. 막내가 보여주는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는 부자연스럽고 억지스럽다. 막내의 심리에 대한 섬세한 스케치가 전제되어야 하지만, 기계적 사실성에 얽매여 변곡점의 맥을 놓치고 말았다. 휴지를 늘리고 불안감의 요소를 과장하여 막내의 심리에 좀 더 집중해야 한다. 특히 폭로와 각성이 발생하는 9장의 반전 장면은 부모들의 절박했던 과거와 비정한 선택, 그 실수에 대한 폭로와 반성, 막내에 대한 동정과 연민, 기억을 꿈으로 왜곡했던 딸의 각성 등 여러 계기들이 집중되어 있는데도 너무 밋밋하고 단조롭게 진행된다.
고연옥의 희곡은 무대에 올리기에 참 까다롭다. 언어는 논리적인 듯하면서도 우연적이고, 행위는 중층적인 것 같으면서도 우발적이다. 치밀한 구성과 내포적 대사에 감탄하다가도 일순간 작위성의 벽에 부딪힌다. 의미에 도달했다 싶으면 어느새 미끄러져 나간다. 분위기도, 사건도 불편하고 깔깔하다. 하지만 이런 낯설고 어색한 느낌은 한편으로는 연출가에게 새로운 영감과 자극을 제공하는 좋은 식재료가 되기도 한다. 그녀의 새로운 식단이 기다려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http://image.ozmailer.com/userFile/28951/3oe3hcum1.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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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한일공동제작연극 <야끼니꾸드래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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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2011.5,6월호 통권27호 수록>
공연명: 야끼니꾸드래곤 극단: 한일공동제작 공연일시: 2011.03.09 ~ 2011.03.20 공연장소: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 관극일시: 2011.3.18 오세곤
2011년 3월 18일 저녁 토월극장. 관객들은 공연 시작 전 입장하면서 무대 위에서 울려퍼지는 북 장단과 노래 소리에 잠시 의아하다. “어, 벌써 공연 시간이 됐나? 아닌데.” 그러나 일찍 들어오는 관객들을 위한 보너스 정도로 받아들이면 되는, 즉 결코 심각할 필요가 없는 일이기에 이내 그 장단에 흥겨워지면서 일종의 무장해제를 한다. 다소 생소한 이름의 연극 <야끼니꾸드래곤>은 이렇게 시작한다. ‘용길이네 곱창집’이라는 부제가 있지만 무대에서 들리는 왁자지껄한 말소리와 노래에서, 또한 무대장치와 소품에서 우리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 이 작품의 배경은 일본이고 등장하는 중심인물들은 거기 사는 재일교포들이다. 2011 한일공동제작연극! 정의신 작, 연출 <야끼니꾸드래곤>! 정의신은 재일교포로서 이미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작가이다. 더구나 이 작품은 2008년 한국 예술의 전당 20주년 및 일본 신국립극장 10주년 기념 공동제작으로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 주요 연극상을 휩쓸 정도로 커다란 성과를 낸 바 있다. 그래서인지 객석은 빈틈없이 만원이다. 그러나 3시간여 동안 관객들을 사로잡는 건 그런 명성만으로는 어려운 일이다. 중간에 쉬는 시간이 있었지만 휴식 후 빈 자리는 찾을 수 없었다. 하기야 그만한 자신감 없이 어찌 중간 휴식을 주겠는가? 사실 노래를 곁들인 흥겨운 놀이판은 물론이고, 거의 활극에 가까운 막싸움 장면이나 관객들조차 질릴 정도로 끝없이 이어지는 술 시합 장면 등, 맛깔스러우나 결코 쉽지 않은 장면들까지 포함하여, 공연 내내, 아니 공연 시작 전과 휴식시간까지 단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혼신의 힘을 다하는 배우들에게 찬사가 쏟아지는 것은 당연하였다. 일본에서 재일교포는 어떤 존재인가? 외국인인가? 거기서 외국인이면 한국에서는, 또 북한에서는 내국인인가? 아마 거기 동의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직도 남한, 북한, 일본, 모두 아닌 ‘조선’을 국적으로 하는 교포들이 있다는 것이야말로 재일교포들의 모호한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현상이라 하겠다.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아문다. 그러나 대개 흔적을 남긴다. 재일교포는 그러한 상흔이다. 하지만 일반 상흔과 달리 이 경우에는 아픔까지도 남아 있다. 그래서 상처가 아문 뒤 남은 상흔인지, 아니면 아직 덜 나은 상처인지 구분이 안 되기도 한다. 물론 그 구분이 중요하지는 않다. 중요한 것은 여전히 아픔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그 아픔의 해결책이 참으로 찾기 어렵다는 사실일 뿐이다. 2차대전에서 한 팔을 잃고 한국전쟁에서 부인을 잃은 김용길과, 그와 재혼한 아내 고영순. 이 두 사람은 직접적인 아픔을 끌어안고 그 아픔에 익숙해지는 것으로 방향을 정한다. 그러나 그 2세들은 영문도 모른 채 전세대에게서 물려받은, 그래서 막연할 수밖에 없는 상처 후유증에 때로 반항하고 때로 순응하면서 각기 다른 길을 택한다. 엄마와 아버지 중 한 쪽만 같은 세 딸들은 각기 결혼하여 남한과 북한, 그리고 일본을 택하고, 두 사람의 피를 받은 유일한 아들은 결국 일본 학교에 적응 못 한 채 자살하고 만다. 그러나 국유지라도 분명 돈을 주고 샀다며 물러나기를 거부하던 김용길은 사랑하던 아들을 가슴에 묻은 뒤, 결국 철거반원들에게 곱창집을 넘겨주고, 손수레 가득 살림살이와 아내 고영순까지 싣고는 내일을 기약하며 떠난다. 지진이 나고 산불이 나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은 나름의 질서를 찾는다. 전쟁과 파괴! 무책임한 국가와 정부! 그 틈에 생겨난 국유지의 달동네! 거기에도 인간들의 희로애락이 있고 사랑과 우정이 있다. 그렇게 간신히 질서를 잡은 달동네를 또 흔드는 무책임한 권력. 약한 민초들의 위기. 그러나 작품은 또 다시 나름의 질서를 찾게 되리라는 암시를 하고 있다. 그렇다. 외래종도 시간이 지나면 결국 자리를 잡는다. 마치 곱창집과 벚꽃, 한국민요와 일본 가요, 장구와 아코디언, 크리스마스트리와 고깔모자 등, 여러 문화가 마구 뒤섞여도 전혀 어색하지 않듯이, 일본배우와 한국배우가 섞여서 일본 속의 이방인인 재일교포 이야기를 펼쳐 보여도 조화에 아무 문제가 없듯이, 모든 문화란 계속 섞이면서 진화하는 것인가 보다. 변화는 고통스럽다. 진통이 따른다. 그러나 그 고통과 진통은 새로운 질서로 형성되기 위한, 또한 새로운 문화로 자리잡기 위한 통과의례 내지 성장통과 같은 것이리라. 결코 피할 수 없는, 아니, 피해서는 안 되는, 어쩌면 꿋꿋이 감내하며 헤쳐 나가야 할 그런 것이리라. 말과 문화가 상이한 두 나라 배우들의 완벽한 앙상블에 갈채를 보낸다. 또한 그런 앙상블을 조직한 연출력에 경의를 표한다. 다만 한국 배우가 일본어를 구사함에 있어 발성에 무리가 있었고 그래 목에 문제가 발생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두 언어의 조음 과정과 발성 시 사용 부위 등을 따져서 배우들의 무리를 예방해줄 전문가의 존재가 아쉽다. 어학과 의학과 연기 화술의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배우들을 위해 고민하며 해결책을 제공하는 행복하고 선진적인 연극 환경을 꿈꿔본다. ![](http://image.ozmailer.com/userFile/28951/3oe3hcum1.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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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백수광부의 이강백 작 이성열 연출 <봄날>을 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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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명: 봄날 극단: 백수광부 연출: 이성열 공연일시: 2011.03.31 ~ 2011.04.17 공연장소: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관극일시: 4월1일 8시
한국희곡창작워크숍 대표 극작가/연출가 박정기(朴精機)
4월 1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극단 백수광부의 이강백 작 이성열 연출의 <봄날>을 관람했다. 이강백은 <알> <파수꾼> <결혼> <호모 세파라투스> <봄날> <유토피아를 먹고 잠들다> <칠산리>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북어 대가리> <영월 행 일기> <느낌, 극락 같은> <마르고 닳도록> 등 많은 작품을 썼다. 희곡 <봄날>은 1984년 극단 성좌의 대표였던 고 권오일 선생 연출로 서울연극제 참가작으로 공연되었고, 2007년에 인천시립극단에서 예술감독 이종훈의 연출로 구월동 문예회관에서 공연했는데, 극단 민예의 대표이자 관록파 연기자 정현의 아버지 역과 열연이 필자의 기억에 남아있다. 2009년 극단 백수광부에 의해 서울연극제참가작으로 선정되어 공연되었고, 2011년에 극단 백수광부 창단 15년 기념으로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무대에서 재 공연된 작품이다. 연극이 시작되면 심산(心汕) 노수현(盧壽鉉)화백이나 의재(毅齋) 허백련(許百鍊) 화백의 산수화(山水畵)에서나 볼 수 있는 초가(草家)와 주변의 산세가 풍경(風景)으로 펼쳐지고, 집 앞 여기저기에 널브러져 낮잠을 자고 있는 장정들의 모습이 봄날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한가롭게 눈에 들어오고, 맏형인 장남의 등장으로 이들이 형제지간임을 알게 되고, 각자의 대화를 통해 어미가 제각기 다른 자식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곧이어 심한 기침소리와 함께, 막내아들이 등장하고, 막내는 다른 형제들과는 달리 꽃가루의 흩날림조차 견디지 못하는 유약한 체질이라는 것과 장남은 막내를 어미처럼 돌보는 정경을 보며 이 집에 어머니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불타고 있다는 청계산 부근의 외딴 초가집에서, 아홉 명의 형제가 비좁은 집에 오글거리며 사는 모습이 기이한 형태로 관객의 눈에 들어오고, 식량의 부족으로 쑥으로 떡을 해먹고, 쑥국을 끓인다는 장남의 대사에서, 이른 봄, 춘궁기에 식량난으로 고생하던 시절을 나이든 관객은 연상하면서, 집 구렁이나 기르는 닭이라도 잡아먹자는 여섯 째 아들의 제의와, 그리하면 아버지의 진노와 꾸중을 듣게 되리라는 장남의 발언을 통해, 형제를 통설하는 장남의 대들보 같은 면모와 의지, 그리고 어미를 대신해 동생을 보살피는 자애로운 품성까지 엿보게 된다. 잠시 후 원행에서 돌아 온 아버지의 등장으로, 홀아비인 아비의 깐깐한 성격과 구두쇠나, 자린고비 같은 근검절약으로 대가족을 이끌어가는 아비로써의 역할이 들어나지만, 이와는 반대로 장성한 아들들에게는 아비의 이런 행동이불평과 불만의 원인이 되고, 이것이 누적되어 급기야 아비가 은닉해둔 돈을 탈취해 가지고 집단가출을 하는 결과를 낳기에 이른다. 가출의 계기는 청계산 산화로 인한 백련사라는 사찰의 소실(燒失)로, 승려들이 다른 지역으로 떠나면서, 이들 형제들의 집에 여아를 맡기고 간다. 그런데 그 여아는 장성한 몸이고 인물도 곱기에, 막내는 첫눈에 여아에게 반한다. 70대의 아비는 약해져 가는 체력과 원기를 보충하는 방법으로 그 여아의 체취를 몸 전체로 보듬어 느끼려 하고, 이를 알게 된 막내는 저지하거나 항변할 수 없는 상황이기에, 절망감에 빠져 병이 깊어만 가고 아비도 이러한 정황을 눈치 챈다. 아비는,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무당에게 장성한 딸이 있고, 보리쌀 서말이면 그 딸을 데려다, 체력보강 겸 회춘용으로 색시를 삼을 수 있다는 소문을 듣고, 무당의 딸을 데리러 맏아들과 함께 길을 떠난다. 집에 남은 아들들 중 막내를 제외한 다섯 명은 농사를 지을 생각은 않고, 아비 방에 들어앉아 방 밖으로 나오지 않는 여아를 강제로 끌어내어, 희롱을 하고, 종당에는 여아의 하반신을 땅에 묻기까지 한다. 막내는 형들의 이러한 행동을 저지하려 애쓰지만 중과부적(衆寡不敵)으로 불감당이다. 형제들은 아비가 없는 사이에 구렁이를 잡아 가마솥에 푹 고아놓고, 송진을 끓여놓고 대기하며, 아비가 돌아오면, 구렁이 고아놓은 물을 먹이고, 송진 끓인 물을 눈에 발라 앞을 못 보도록 만든 다음, 아버지 방 구둘 장 밑에 감춰둔 돈 항아리를 꺼내서 도망하자는 흉계를 꾸민다. 맏아들의 등에 업혀 돌아오는 길에, 아비는 맏이의 권고대로 자식들에게 재산을 나누어주기로 약속한다. 집에 도착해 아들들에게서 구렁이 곤 물을 얻어 마시고, 주름이 없어지는 비방이라며 얼굴에 송진 끓인 물을 바른 아비는 앞을 못 보게 되고, 이러한 아비에 대한 패륜을 막으려는 맏이의 말, 아비가 자식들에게 재산을 나누어주기로 했다는 약속을, 형제들은 믿지 못하고, 아비방의 구들을 부수고, 돈 항아리를 하나씩 들고 집을 떠난다. 세월이 흐른 뒤, 어느 봄날, 마루 끝에 앉아 집 떠난 아들들을 그리워하는 아버지와 그 앞에서 빨래를 널고 있는 여아가, 막내와의 대화를 통해 살구가 먹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아비는 막내의 색시가 된 여아가 임신을 했음을 알게 되고, 새로운 자손이 태어날 것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집을 떠난 자식을 몹시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서 연극은 끝이 난다. 장남을 비롯한 아들들의 개성 있고 특출한 연기가, 그들이 가끔 부르는 노래와 읊조리는 시를 통해 잘 부각되었고, 막내와 여아는 흡사 봄날에 피는 한 송이 꽃과 향의 구실을 하는 듯싶었으며, 장남 이대연의 늠름하고 의젓하면서도 자애로운 맏아들 역의 완벽한 연기와, 그와 대비되는 막내 김현중의 나약하고 병들고 정에 쉽게 빠지는 연기가, 차남 장성익의 완벽한 모사꾼으로서의 연기와 삼남 강진휘의 저항아로서의 멋지고 잘생긴 모습이, 사남 정만식의 고집불통의 우직스런 연기와 오남 박완규의 총명하고 기린아 같은 성격이, 형제들이라는 진흙에 묻힌 옥 같은 모습으로, 그가 노래를 부르고 시를 낭송할 때 간간이 들어나고, 육남 유성진의 선동적이며 돌출형의 성격 등, 이대연이라는 대들보와 아들 여섯 명의 석 가래가, 아버지 역의 오현경 선생이라는 지붕을 떠받들어, 아름다운 명화를 그려놓은 듯한 손호성의 무대와, 애절하면서도 감미로운 박승원의 음악, 극중 인물마다 어울리는 옷을 입힌 이수원의 의상과, 성격창조에 날개를 달도록 그려 넣은 이동민의 분장, 그리고 적절한 색감과 농도와 용명으로 무대에 투사된 김창기의 조명이 혼연일체가 되어, 무대 위에 시와 그림과 무용과 음률을 만들어 내고, 거기에 생명의 꽃을 피우고, 그 향까지 객석에 전달시킨 연출가 이성열의 열정이, 오현경 선생의 불세출의 연기력과 합하여, 연극 <봄날>을 한국연극사에 길이 빛날 불후(不朽)의 명작으로 탄생시켰다. 극단 백수광부의 발전과 차기작에 기대를 한다. ![](http://image.ozmailer.com/userFile/28951/3oe3hcum1.gif)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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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로비하라>와 <보스, 오 마이 보스>를 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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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명: 전쟁을 로비하라 / 보스, 오 마이 보스 극단: 필통 / 가변 연출: 선욱현 / 송형종 공연일시: 4월20일 -4월21일 공연장소: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관극일시: 4월 20일 8시
한국희곡창작워크숍 대표 극작가/연출가 박정기(朴精機)
4월 20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제 32회 서울연극제 개막행사와 서극(序劇) 극단 필통의 선욱현 작/연출의 <전쟁을 로비하라>와 극단 가변의 차근호 작 송형종 연출의 <보스, 오 마이 보스>를 관람했다. 큰 건물을 짓거나, 대형선박을 침수시킬 때에 돼지머리를 놓고 술을 따르고 고사를 지내는 것은 우상숭배가 아니라, 미풍양속이라고 헤아려야 하겠다. 세계적인 연극제이자 동양제일의 연극축제인 서울연극제 개막행사와 공식참가작 공연에 앞서 서극(序劇)형식의 공연이 있는 것 또한 바람직하다. 그 서극이 작금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일별하고, 그 현안과 문제점과 당면과제를 집중조명하고, 비판하는 역할을 갖추는 것도 연극의 대중성을 높이는 방안의 하나이기에, 뛰어난 기량을 갖춘 선욱현과 차근호 두 작가의 작품이 그 서극으로 장식이 된 것에, 필자를 비롯한 연극인들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선욱현 작/연출의 <전쟁을 로비하라>는 남북의 두 정권이 장기집권을 하기위한 방안으로 쌍방이 담합을 해, 전쟁의 발발이나, 도발 같은 공포분위기를 선거에 맞춰 조성함으로써, 총선이나 대선에 국가안보를 문제 삼아 남측에서는 현 정권이 재집권을 하고, 북에서는 세습정권이 대대로 유지될 수 있도록 하자는, 남북 양측에 정치 거간꾼 노릇을 하는 인물이 은닉해 있는 깊은 숲속 무덤가로 찾아가 벌이는 굿판 같은 이야기로, 이우진, 신진철. 손대방, 고경진, 유재돈, 이송이가 출연해 호연을 보였다. 차근호 작/송형종 연출의 <보스, 오 마이 보스>는 기업의 총수가 시위현장에 임시직 근로자인양 숨어들어, 갈등이유와 근로조건, 임시직에 대한 차별대우 등을 직접체험하고, 그리고 해결책을 모색하려는 방안으로, 총수가 시위대에 합류해 벌이는 이야기인데, 시위현장의 임시직 근로자와 공감대를 이루기보다는, 방송출연을 고려한 총수의 행위로, 진정성보다는 자기과시로 점철되고, 위선적인 면까지 부각되는 등 임시직 근로자와 대기업 총수와의 현격한 입장과 사고의 차이를 보여주는 서극이었다. 이승현, 송지나, 김성만, 김다애, 박보환, 정청림, 정다운, 장동식, 이혜민, 이영훈 등이 출연해 좋은 연기를 펼쳤다. 두 작품이 다 공연을 통해 작금의 사회와 정치를 날카롭게 비평하고 문제점 을 제시한 연극으로 선욱현, 송형종의 연출력이 돋보인 서극이었다. 앞으로 총 26일간의 서울연극제의 대장정이 발전적이고 성공적인 행사가 되기를 기원하며, 필자도 정신을 가다듬고, 공연마다 관심을 기울여 들여다보리라 다짐을 한다. ![](http://image.ozmailer.com/userFile/28951/3oe3hcum1.gif)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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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극연구소의 하이네 뮐러 작 정민영 역 이윤택 연출의 햄릿기계를 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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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명: 햄릿기계 극단: 우리극연구소 연출: 이윤택 공연일시: 4월29일 - 5월 8일 공연장소: 게릴라극장 관극일시:4월29일 8시
한국희곡창작워크숍 대표 극작가/연출가(朴精機)
4월 29일 혜화동 게릴라극장에서 우리극연구소의 하이네 뮐러 작 정민영 역 이윤택 연출의 <햄릿기계(Hamlet Machine)>를 관람했다. 하이네 뮐러(1929-1995)는 동부독일 출신 작가로 <싸구려 노동자> <이주해온 여인> <게르마니아 베를린에서의 죽음> <햄릿머신> <사중주> <죽은 남자의 유령들> 그 외에 많은 희곡이 있다. <햄릿기계>는 하이네 뮐러가 1977년에 발표한 희곡으로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직계제자 다운 서사극적(epic drama) 방법으로 창출시켰다. 나치독일의 패망과 동서독의 분단이후, 동부독일에서 공산주의 이상향을 꿈꾸던 작가가,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동서독의 통일이후, 사회주의가 몰락을 하는 충격적인 국가사회의 변화를 접하면서, 서구 자본주의의 물질문명이 물밀듯 밀려들어오고, 거기에 기계적으로 동화되어가는 동구권 지성인들의 모습을,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햄릿의 사유에 대비시켜, 작가자신의 고뇌와 갈등과 성찰을 해설자의 대사로 표현하고, 덴마크의 왕자 햄릿이 숙부의 왕권찬탈과 독을 바른 칼날에 목숨을 잃고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갔던 것처럼, 20세기 격동의 현대사 속에서 하이네 뮐러가 그토록 꿈꾸고 그렸던 공산주의 이상향이 신기루처럼 허상이었고, 이룰 수 없는 꿈이었음을 무대 위에 소리없는 통곡으로 그려낸 금세기 최고의 걸작연극이다. 무대장치로 배경 막과 부착된 세자(3尺) 높이와 세자 폭의 단이 무대 좌우로 길게 연결되어 있고, 천정에는 세 개의 영상투사화면(monitor)이 무대 왼쪽과 오른쪽 그리고 중앙에 매달려 있는 것이 시야에 들어온다. 무대 왼쪽 객석 가까운 곳에는 작가의 서재로 보이는 책꽂이와 책상, 그리고 의자가 놓여있고, 무대 오른쪽 객석 가까이에는 소형 건반악기(piano)와 중형관현악기(cello)가 비치되어있고, 그 뒤로 사람 키 높이의 철제 냉장고가 세워져 있다. 연극이 시작되면 가면을 쓴 여인이 객석입구에서 등장 건반악기 앞에 앉아연주를 시작하면, 날카롭고 예지에 찬 모습의 매력적인 미남 해설자가 등장해 장면해설을 하면서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햄릿의 도입에서 상상할 수 있는 2미터가 됨직한 선왕의 망령이 등장을 하고, 선왕의 장례식 장면이 전개되면서, 커다란 관을 든 장례행렬이 비장 침울한 음악에 맞춰 등장하고, 햄릿과 호레이쇼, 그리고 숙부인 클로디우스의 가면을 쓴 모습이 보이고, 철제 냉장고 속에서 왕비인 거투루드가 역시 가면 쓴 모습으로 등장, 관 뚜껑을 열고, 선왕인 남편의 시체를 끌어안고 통곡과 절규를 한다. 잠시 후 시체는 팔이 뜯기고, 몸통이 들어 올려 지면서 마치 육고간의 통 갈비처럼 살갗이 벗겨진 동체가 들어나고, 등장인물들이 다투듯 시체를 물어뜯는 충격적인 장면이 전개되고, 환자이동의자(wheelchair)에 앉은 오필리어가 등장한다. 건반악기의 연주는 중형관현악기의 처연하고 애절한 연주로 바뀌면서, 천정에 부착된 화면에는 시위현장을 비롯한 현실과 대비되는 화면과 최근 발생한 일본에 들이닥친 거대한 해일의 영상까지, 세 개의 화면에 생생하게 투영된다. 해설자가 극의 진행을 일일이 열거하고 소개하면서, 햄릿 뿐 아니라 등장인물 전원의 상황변화에 따른 혼돈과 무질서 속에서, 생자인지 사자인지 구별할 수 없는 아비규환(阿鼻叫喚) 속에서의 연기자 개개인의 동작과 연기는, 마치 인조인간(robot)의 군상을 대하는 것 같은 느낌으로 관객에게 밀착되어 다가온다. 대단원에서 만년설로 덮인 고산준령(高山峻嶺)의 영상이 화면에 투사되고, 21세기에 태어난 인조인간 햄릿과 더불어 절망의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가야만 했던 등장인물들의 공동묘지가 무대 위에 만들어지고, 바로 그 무덤 속에서 새봄의 꽃처럼 다시 피어나는 생명의 태동(胎動)은, 하이네 뮐러의 절망을 희망의 약속으로 대체시킨 연출가 이윤택이 만들어 낸 인류 재창조의 모습이 되었다. 조정우, 배미향, 노심동, 민혜림, 조영근, 김연지, 김아라나, 강호석, 지민규, 이용의, 박병성, 장도휘 등 연기자 전원의 몸을 사리지 않는 열연과 김경수의 탁월한 무대, 조인곤의 적절한 조명, 신체움직임을 지도한 양승희의 노력이 김소희 대표의 열정과 혼연일체(渾然一體)가 되고, 천재적인 연출가 이윤택 교수의 장인정신이 하이네 뮐러의 <햄릿기계>를 원작을 능가하는 연극으로 창출시켰다. ![](http://image.ozmailer.com/userFile/28951/3oe3hcum1.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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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신작희곡의 낙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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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 상전(연극배우)
문제는 ‘야마’야!
이강백의 ‘봄날’을 대학로예술극장에서 보고, 며칠 전에는 남산예술센터에서 신진작가인 이해성의 ‘살’을 구경했다. 그리고 흡족한 마음으로 남산을 내려오는 기쁨을 맛보았다. 내가 대학에 입학하고(1969년도) 처음 본 연극이 오태석의 신작희곡인 ‘유다여, 닭이 울기 전에’의 드라마센터 공연이었다. 지금은 국민엄마가 된 김혜자선배의 예쁘고 청초하던 모습과 객석 한가운데에 자리를 잡고 근엄하게 앉아 계시던 여석기선생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때도 흥분 속에서 흡족한 마음으로 남산을 내려 왔었다. 그러니까 나는 자그마치 40년을 넘게 신작희곡을 보면서 흥분하고 감탄하면서 연극인생을 끌어온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의 연극사는 유치진 선생을 필두로 창작희곡의 역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한국의 연극인들은 희곡작가들이 발표하는 그들의 신작탄생으로 연극인생을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좋을 듯하다. 그래서 괜찮은 신작이라도 발표되면 연극계는 곧잘 흥분한다. 어느 평론가는 평론을 접으려다 박근형의 ‘청춘예찬’을 보고 마음을 바꾸었다고까지 할 정도로 우리는 신작을 고대하면서 살고 있다. 따지고 보면 오랜 전통의 서울연극제도 실상은 신작희곡의 축제요, 가장 먼저 나라에서 지원금을 받기 시작한 것도 신작희곡들이었다. 어디 그 뿐인가, 오태석, 김광림, 이윤택, 박근형, 김낙형, 최진아에 이르기까지 모든 작가들이 그들의 신작을 발표하면서 연출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그러니까 한국의 현대연극을 이끌고 있는 것은 신작희곡이고 그들이 탄생시킨 극작가이며, 그들이 뿜어내는 창작희곡이 한국연극의 얼굴이요, 전부인 게 숨길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모든 연극인은 끝없이 좋은 신작희곡이 발표되기를 고대하면서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앙코르도 원하지 않는 것 같다. ‘못 먹어도 go!’를 외치듯이 신작, 신작을 찾아 혈안이 되고 있는 꼴이다. 그리고 이러한 신작희곡들이 수많은 평론가들에게 일거리를 제공하고, 지원금을 받아내어 많은 배우들에게 출연의 기회도 제공하고 있는 걸 부인하기 힘들다. 그런데 남산을 내려와 술집에 앉아 있으려니 갑자기 오늘 본 ‘살’이 5년 후에 다시 공연되도 내가 이렇게 좋아할 수 있을까 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는 것이다. 그러면서 왜 나는 지금껏 신작희곡에 내 연극인생의 희비를 내맡기고 있어야 하는 것일까? 이게 어디 나만의 일인가? 불현듯 머릿속이 어수선해지기 시작했다. 40여 년 동안 언제나 그랬듯이, 내가 공연을 보고 흥분했던 것들은 대부분 그 시대를 소재로 한 새로운 감각이 깃든 신작희곡의 공연들이었다. 오늘 본 ‘살’도 외환딜러인 주인공의 생존과 현금만능주의, 섹스, 먹을거리에 대한 탐욕 등 이 시대의 좋은 소재를 다루고 있어 내가 흥분하고 있는 것이었다. 어느 날 젊은 후배에게 “너는 왜 뮤지컬을 하지 않느냐?” 고 물었다. 그의 대답은 뜻밖에도 “야마가 없어서요!”하는 간단한 한마디였다. ‘야마’ 일본말 같기도 하고 아니면 그들이 쓰는 은어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야마’가 무슨 뜻이냐고 묻지 않아도 분명 다가오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래 ‘야마’가 있어야지. 그럼 ‘야마’가 있어야 해… 따지고 보면 그동안 내가 흥분했던 신작희곡이 한두 편이 아니었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 후까지 여운을 이어온 작품은 없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그토록 흥분했던 작품들이 조금 시간이 지나고 나면 별 볼일이 없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렇다면 ‘살’도 그럴 것인가? 새로움이 거치고 나면 나는 아마 ‘야마’가 없음을 느낄지도 모른다. 시쳇말로 문제는 그래, 작품의 ‘야마’다! 그런데 불행히도 우리의 신작희곡들은 구작이 되고 날이면 그때는 ‘야마’가 없었음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대체로 시대를 관통하는 보편성이 없어서 그런 것 같다. ‘봄날’은 독재시대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이 작품이 공연될 ‘야마’는 뚜렷치 않았다. 내가 출연한 영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원작을 읽어보면 독재시대를 풍자하고 있지만 지금 읽어도 분명한 ‘야마’가 있다. 시대를 관통하는 인간의 속성을 들여다 볼 수 있어서다. 그런데 어째서 우리의 희곡은 3,4년만 지나면 초장의 흥분은 사라지고 심드렁해지는 것일까? 민주화가 되고 독재시대의 흥행작들이 재공연 되었을 때 나는 ‘김빠진’ 맥주가 어떤 맛이라는 것을 연극을 보고 깨달을 수 있을 정도였다. 정말 ‘야마’가 없었다. 내가 머물렀던 국립극단은 창작극의 중흥을 모토로 하고 있었다. 글로 명문화되어 있기도 하다. 그런데 50주년이 돼도 기념공연을 할 만한 작품을 찾지 못해 애를 태웠다. 나는 우리 작가들이 역량이 없어서 ‘야마’를 만들어내지 못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우리 연극판이 작가들에게 ‘야마’를 요구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희곡에 시간을 관통할 수 있는 ‘야마’를 무시해왔던 셈이다. 그저 그 시대를 투영하기만 하면 마냥 열광하고 감각이 새롭기만 하면 그저 좋아했던 것은 아닐까? 마치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 하듯 무작정 우리 이야기만 하면 좋아해왔던 것은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그래도 ‘예술’인데, 소녀시대 노래처럼 미래에는 불리어지지 않을 것 같은 작품에도 마냥 만족해하는 것은 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연출가’에게도 책임
내가 우리의 희곡에 ‘야마’가 없는 게 비단 작가들만의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공연에서 희곡은 ‘대본’ 텍스트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순수(?)연출자와 배우들은 그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한때는 작가가 자기 공연의 작가의 변에서 “이건 내 작품이 아니다!”라고 곧잘 외치곤 했다. ‘그나마 개선은 못할지라도 이렇게 개악을 하는 것은 작가로서 용서할 수 없다’고 저항을 하곤 했다. 가끔 번역극을 접하다 보면 작가가 초연 연출가에게 ‘감사를 표하는’ 글을 읽을 수 있다. 자기의 작품을 훌륭하게 만들어준 공연작가에 대한 감사의 변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다. 그리고 이러한 불신이 결국 모든 작가가 자기의 작품을 연출하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게 만들었다. 연출가가 작품을 공연하려고 하면 작가와 많은 대화를 나누게 마련인데, ‘야마’가 없다면 연출가에게도 책임이 크다. 그리고 당연히 주문이 없으니 작가들도 자신의 작품에 ‘야마’를 넣을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결과가 결국 ‘연출권’ 내지는 ‘연극성’의 약화를 불러온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20세기 이후 세계연극은 작가보다는 연출가에 의해서 주도된 걸 부정할 수 없는데, 우리는 연극의 아이디어를 극작가에게 미루고 결국 연극성을 잃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지나치게 문학성에만 의존한 결과가 결국에는 연극의 한계를 노출하고 뮤지컬에 앞마당을 내주게 된 것은 아닌가하는 자성을 해보아야 하지 않을까싶다. 평론가들도 마찬가지다. 구성이 어쩌고 인물들이 어쩌고 하면서 작품해설에는 열을 올려도 ‘야마’에 대해서는 지적을 하지 않았다. 그러니 당연히 작가들이 자기들의 ‘야마’를 키울 생각조차 해보지 못했을 것이다. 글 솜씨나 스토리 전개, 역할의 기능에는 시비를 걸어도 시대를 관통할 인간과 인생에 대한 통찰에는 무관심하니 시간이 흐른 뒤 재공연이 되면 당연히 감동이 없을 수밖에 없는 게 우리의 창작풍토라고 생각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왜 작품을 썼는지’ 알 수 없었던 게 지금까지의 우리의 현실이었음을 부인하기 힘들다. 16세기에 공연된 ‘베니스의 상인’에서 샤일록의 독백은 지금 들어도 최고의 인권보고서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의 외침에는 연민이 생긴다. 셰익스피어가 시대의 비위를 맞추려고 그를 악인으로 만들면서 얼마나 고심했을까 하는 느낌이 들 정도다. ‘살’도 요즘 시대를 반영하는 스토리와 소재를 다루더라도 분명한 것은 시대를 초월해서 전개될 인간의 탐욕의 본성에 대해, 부모의 간이식, 동생의 인간으로의 삶에 대한 절규를 통해서도 전반적으로 인간사에 대한 더 깊은 공감이 더해져야 했다. 그리고 이제라도 공연작가인 연출가는 인생을 관통할 ‘야마’를 넣도록 요구해야 한다. 드라마트루거의 기능이라도 활성화해서 이제는 ‘야마’를 찾아야 한다. 일회성 희곡을 탈피해야 한다. 일본을 쓰나미가 휩쓸자 어느 목사가 ‘하나님의 심판’ 운운해서 흠씬 욕을 먹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런 식의 설교가 먹혔던 전반적인 우리 기독계의 분위기가 문제였던 것에 대한 지적이 있어야 했듯이, 이제는 우리도 ‘야마’가 없이도 신작창작이 얼마든지 가능했던 우리 연극계의 풍토에 대한 성찰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싶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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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기록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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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기록실은 연극을 비롯한 문화예술 정책 전반에 대하여 활발한 의견 개진이 가능한 공간입니다.
게재된 의견에 대한 반론 또한 보내주시면 귀한 원고로 생각하고 적극 수용하겠습니다. | |
대학로 포럼 2010~2011 연속 토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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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연극 정책 어떻게 볼 것인가’ - 8
주제: 연극 단체 및 협회의 역할
참석자/ 송선호(연출가), 김태수(연출가), 오세곤(순천향대 교수), 박상현(연출가), 홍재웅(평론가), 채승훈(연출가), 김한아(기록) 일시/ 2011년 4월 16일 대학로 민들레영토
채: 토론회가 오늘로 8회째인데, 다음에 묶어서 소책자를 내는 작업을 하고, 언젠가 그 동안의 토론들을 잘 정리하여 여러 연극인분들과 열린 토론의 장을 열어 볼까 합니다. 오늘은 이런 이야기를 나눠볼까 합니다. 우리 연극계에 여러 협회가 있는데요. 예총이나 한국연극협회, 약 10년 전 부터 생긴 각 장르별 협회, 즉, 연출가 협회, 배우협회, 평론가협회 등과 같은 것들도 있고, 우리들도 이중삼중으로 가입이 되어있기도 하지요. 그런 협회들의 존재감이나 역할은 어떻고, 좀 더 발전적인 방법은 없을지, 역사형성 과정, 현재 상황 등등을 이야기 해볼까 합니다. 참! 오늘 중심 토론에 앞서서, 서울연극협회가 이번 서울연극제를 주최하는 과정에서 서울시의 지원액이 예년에 비해서 1억이 삭감되었다고 합니다. 왜 그렇게 되어야만 했는지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 좀 나눠봐야 할 것 같습니다. 서울연극협회에 참여하시고 계신 김 태수 선생님이 경과 등을 간략하게나마 말씀을 해주실 수 있는지요.
김: 처음에 내년에 지원금제도가 달라진다고 각 단체에(무용,미술etc) 연락을 했대요. 기존 사업이니까 관계없겠지 하고 설명회를 그냥 들었는데 올해 모든 소속단체들이 3분의 1이 깎이게 된 거죠. 지역으로 이전되는 지원금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설명인데, 사실은 핑계나 눈 가리고 아웅이죠. 서울은 인구 비례 그러니까 실제적인 현장작업인의 비율과 상관없이, 정책적으로 분담이 되어 짤 린 양상이 되었는데 그 안을 들어가 보면 나랏돈이 다른 곳에 쓰인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드는 거죠... 4대강 사업에 들어가고, 4대강 사업 전략적 홍보차원에서 써야할 자금이 많이 필요하다는 정보도 있고, 문화현장에 들어가야 할 돈이 공사현장으로 들어간 것이 아닌가 하고 추측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년에는 ‘서울에 현장에 있는 연극인들이 많으니까 그 비례를 참고해서 지원금을 배분하겠다. 정책을 보완하겠다’ 며 포럼이나 토론회를 한국연극협회에서 한번 하자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지역으로 골고루 나눌 것이 아니라 좀 더 심층적으로 분석, 종합해서 지원금을 나눠야 한다. 책상머리에서 만든 어떤 원칙에 따라 산술적으로 나눌게 아니라는 거죠. 서울연극제 지원금에 대해서는 협회에서 어쨌든 이의를 제기했고, 서울문화재단과 두어 번 의견조율이 오간 끝에 나머지 깎였던 1억5천이 다른 지원금으로 보충되어져서 다시 작년과 비슷한 수준으로 지원금 확보하여 보충한 셈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이런 사태는 문광부나 문화재단의 일방적 의사 결정 탓으로 현장인들과 이야기 없이 일방적 결정으로 예산을 삭감을 하는 것은 ‘현장인들을, 우리들을, 연극인들을, 예술인들을, 문화를 무시하는 행위이다.’라고 많이 반발을 했지요.
채: 원래 서울연극제는 연례 사업이고 꽤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지요. 그런 이유 등으로 해서 특별히 인터뷰를 하는 등의 심의 과정은 생략되어 왔는데 올해는 회장이 직접 가서 인터뷰 심사도 받았습니다. 특별한 사전고지는 있었나요?
김: 고지를 했대요. 지금까지와는 방식이 달라진다 하고. 작년10월인가 11월인가.... 우리가 듣기에는 무슨 일 인지했죠.
채: 그런 방침을 전달 받았을 때 서울연극협회 측에서 특별한 의사전달을 했는지요.
김: 분명하게 몰랐던 것 같아요. 지원금이 줄어들었다고 솔직하게 오픈시켜서, 그러니까 정보를 서로 공유해서 현안에 대해 서로 머리를 맞대고 정부나 기관단체와 협의를 미리미리 했다면 좋았을 것을... 협회 쪽에서는 당연히 연례행사니까 무슨 다른 일이 있겠어하고 문화재단을 믿었던 거고, 문화재단에서 미리 이야기를 정확히 해줘야 하는데 두루 뭉실 넘어가려다 서울연극협회에서 항의를 한거죠. 문화재단 관계자들의 ‘직무유기 아니냐.’ 그런 얘기도 있고.. 그쪽에서는 ‘이야기를 했다.’ 라는 것이고..
채: 제가 사회자 입장이 아니라, 서울연극협회 협회장을 했던 경험에서 이야기를 해보자면, 서울연극제에 지원되었던 액수가 3억 5천인가요, 하여튼 그 액수는 예전과 거의 달라진 것이 없는데.... 당시에 어떻게 되어 있었나 하면,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 서울시가 3억5천을 지원하던 액수가 있었고, 당시에 서울연극제를 주최하던 한국연극협회가 문화예술위원회로부터 역시 비슷한 액수를 지원받고 있었지요. 제가 서울연극협회장을 맡게 되면서 한국연극협회로부터 서울연극제의 주최권을 넘겨받았고, 더불어 서울시와 문화예술위원회하고 3자간에 논의를 해서 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금은 서울국제공연예술제로, 서울시의 지원금은 서울연극제로 조정했습니다. 서울연극협회는 서울시하고 미래발전을 위한 파트너가 되어야하기 때문에 서울연극제는 서울시에서 지원금을 받도록 하게 한 것이지요. 그러니까 서울연극제에 대한 서울시의 지원금은 문화위의 것도, 서울문화재단의 것도 아닌, 서울시민을 위한 서울연극제에 대해 서울시가 지원하는 돈으로 애초부터 정의되어진 것입니다. 지원금에 문제가 생겼다고 하니까 초기에 관여했던 저로서는 유감스럽지 않을 수 없군요. 그동안 지원금들이 지역으로 많이 이관되어 지원총액이 적어진 바람에 발생한 불가피한 상황이었다고 서울문화재단에서는 얘기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 그러니까 전체 지원금이 지역으로 많이 이관된 상황, 이런 문제에 관해 어떻게 생각해야할지 오 선생님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오: 우리는 지원금은 다 똑같이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국고든, 지자체지원금이든...... 어떤 때는 서로 협의에 의해서 이관시키기도 하고 그러는데, 그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큰 문제가 발생하기도 하죠. 예를 들어 예전에 사랑티켓이 복권기금으로 넘어갔거든요. 그때도 협의에 의해서 어차피 모두 국가 지원이라고 생각하고 복권기금으로 받았단 말예요? 하지만 나중에 사랑티켓이 크게 흔들리는 위험 요인이 됐죠. 복권위원회 쪽에서 “저소득층이라든가 소외계층을 위한 곳에만 써야하는데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고 계속 문제제기를 했고, 결국 처음과는 전혀 다른 성격의 사업이 되고 말았죠. 문화예술교육관련 예산 같은 경우 복권기금으로 다 넘어갔다가 언젠가 전액삭감이 되면서 할 수 없이 국고로 충당해야 하는 상황이 됐는데, 결국 그렇게 국고로 넘어가면서 안정되게 되었죠. 서울연극제도 별 생각 없이 서울 쪽으로 지원 주체를 넘겨도 괜찮겠다 생각했겠지만 지자체 장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흔들림이 크다는 이야기죠. 그러니까 안전성에 문제가 생긴 건데, 심지어는 담당공무원하나가 바뀌어도 흔들리는 경우가 생깁니다. 사실 이번 서울연극제 지원금 축소 문제는 이미 문예진흥기금 지원 사업을 대폭 지방으로 이관한다 했을 때 이미 예견된 겁니다. 제가 몇 년 전 조사해 보니까 문화예술위원회에서 문예진흥기금을 지원받는 비율을 서울과 지역으로 봤을 때 서울이 90% 이상이었어요. 물론 그 정도로 편중이 심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문화예술에 있어서 서울을 과연 한 지역으로 보아야 하느냐 하는 문제가 있죠. 거의 우리나라와 동의어로 보아야 하지 않느냐는 겁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고려 없이 무조건 지역 이관이 추세이므로 거기에 따른다면 상당히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거든요. 아까 연극협회가 무슨 토론회를 준비한다고 했는데 좀 늦은 감이 있습니다. 한국연극협회는 지방 눈치 보느라 얘기하기 어려웠을 것이고, 서울연극협회는, 물론 이번 예산 문제야 정확한 정보를 주지 않았으니까 어쩔 수 없었다고 하지만, 앞서 지역 이관에 대해서 다소 안이하게 있다가 정작 문제가 심각해진 후에 허둥대는 모양이 되니 참으로 답답합니다.
채: 수치상으로는 차후에 알아볼 문제지만은 현 정부 들어서 문화 예술에 관한 지원금들을 지역으로 많이 이관을 했는데요, 예를 들자면 전문연 같은 것이 대표적인 사례인거죠? 거기에 대한 명분이....음.... 창작지원을 할 때에 그동안은 창조자의 분포비율을 가지고 반영해 왔다고 한다면, 지금은 인구 분포 비율로 한다는 것이죠. 서울은 그런 면에서 본다면 인구가 약 1000만이니까 약 4분의 1정도가 되나요? 이런 명분을 가지고 지역 이관을 했다고 하는데 지원에 대한 나름대로의 철학이 달라진 것이라 봅니다. 이런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이야기를 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오: 늘어나는 것은 문제 되지 않지만 줄어드는 것은 문제가 있어요. 그렇다면 그 균형을 맞추는 것은 증액을 해서 하거나. 지역의 예술 환경을 좋게 해서 오히려 서울로부터 내려가게 하거나 이런 장치를 마련하면 좋은데, 기존의 것을 빼서 한다는 것은 기존에 영향을 미치게 되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죠. 더욱이 제가 있는 충남 지역에서 체감하기로는 지역도 별로 지원이 늘어났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어쨌든 추가로 기금을 마련해서 지역 활성화를 하는 정책을 펼친다면 칭찬해 줄만한데, 기존 지원이 충분한 것도 아닌데 그 지원을 떼어서 지역에 주었다는 것은 정책에 대한 기본 마인드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 지원이라고 이야기 할 수 없는 지원 액수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잖아요. 지원이라고 말할 수 없는 지원금인데 말도 안 되는 지원인데.. 그것을 지원이라고 했다 해서 많네, 적네 하는 것은 우스운 모양세죠. 그런 그림은 아닌 것 같아요. 예를 들면 문화예산이 현재로서는 1% 이상이 되기를 희망하는데 현재로선 1%도 안 되고 국민의 정부시절에 잠깐 1%가 넘었던 적이 있는데 현재는 말로만 문화니 한류니 하면서 그 결과물만 낼름낼름 따먹고 염치없는 생색내기죠. 1%가 넘어야 이야기 할 수 있는데 모양새도 갖춰지지 않는 지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채: 네.
김: 지금 이 이야기가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나라에서 지원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을 가지고 지원했다고 생색내는 것을 누구나 인정하는 꼴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는 거죠. 밥그릇에 비유하자면 열개는 있어야하는데, 흥부네 식탁처럼 밥그릇 하나놓고 열 식구가 숟가락 들고 대드는 형상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듭니다.
김: 지금 이이야기가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나라에서 지원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을 가지고 지원했다고 생색 내는것을 누구나 인정하는 꼴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는 거죠.
송: 또 하나 그렇게 지역으로 이관한다는 것은 큰 의미에서 지역으로 분산시킨다는 것이잖아요? 균형 발전을 위해서. 그러면 효율성을 봐야겠지요. 성과가 어떻게 나오냐 하는 것인데. 제가 몇 군데 경험한 바로는 실제로 늘어난 지역이 있어요. 지역 분들에게 실례되는 표현일지 모르지만 돈벼락이죠. 이제까지 해왔던 그 지역의 연극 규모나 인적 자원, 제작 편수 등을 봤을 때 이것이 과연 효율적인 정책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지원금이 떨어졌으니 일을 안 할 수는 없는 거고요. 안 쓰면 안 되잖아요. 그러니 나눠주는 거죠. 거기서 나오는 질이란 것이 사실 평가하기 힘든 수준인 경우가 많아요. 이미 넘어갔으니 구조를 빨리 바꾸지 않으면 문제가 생길 겁니다. 예를 들면 지역에서 제대로 연극하는 사람들이 혜택을 보는 것이 아니라 지원금만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나 사업이 급조되고 그 쪽으로 돈이 새고... 지역 연극인들은 그대로 어렵고... 왜냐하면 그런 쪽으로는 생각이 덜 미치니까.
채: 적절한 지적을 해주신 것 같습니다. 때에 따라서는 부유한 지역극단이 되는 것이죠. 서울극단들은 대부분이 절대영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데 말입니다. 송 선생님 말씀대로 투자 대비 항상 좋은 성과가 나오느냐 하는 회의적인면도 없지 않고, 또 하나의 문제는, 지역에서 소위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소수 연극인들이 신진 연극인들과 상호 협조, 호혜의 미덕을 실천하기 보다는, 자신들이 독점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고 말입니다. 연극계 전체의 미래를 생산하는데 악영향을 끼치는 경우가 없지 않다고 봅니다.
홍: 정부예산안 편성은 지원문제보다 상위개념이 될 텐데요. 실제로는 전전정부 들어서면서 금융위기를 맞고 시작하지 않았습니까? 그때가 오히려 어려웠던 시절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당시 IMF라는 어려움을 겪던 중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문화관련 예산이 1.2%로 였고, 지난정부까지 그대로 유지되었습니다. 그렇지만 현 정부 들어서면서 오히려 예산이 0.9%로 삭감되었습니다. 이에 대한 적정한 이유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냥 깎여 나갔습니다. 문화적인 정서가 반영되었다든가 아니면 실질적인 문제가 있어서, 위정자들의 계획이 바뀌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것에 대한 구체적 설명 없이 깎여 나갔거든요. 0.3%면 현 문화계에는 매우 큰 규모의 액수입니다. 또 다른 문제를 지적하자면, 방금 전에 말씀하신 것처럼 지역분산화라는 정책은 현 정부의 비전과는 잘 안 맞는 개념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지난 정부에서 추진했던 것처럼 중앙 집중적 부분을 해소하고 분산화하기 위해서 했다라고 한다면 이해가 가지만, 단순히 문화 분야에 대해서 그 잣대를 들이 댄다면 정부가 큰 그림으로 삼고 있는 비전과는 대치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북유럽 국가의 경우도 실제로 90년대 IMF상황을 겪었거든요. 이러한 상황은 사실 1970년대에 1, 2차 석유파동을 거치면서 최악의 상황으로 차츰 발전하게 된 것인데, 결과적으로 문화에 대한 중앙정부의 지원도 대단히 약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문화를 어떻게든 살려야 한다는 열쇠를 지방정부에서 쥐기 시작했던 것이지요. 그 전까지는 지방정부에서 예산을 확보하지 않았는데, 중앙에서 지원하지 않으니까 그러한 자구책을 만들려고 한 것입니다. 현재 상황으로 보면 중앙정부의 지원은 50%도 안 되고, 지방정부가 더 많은 자금지원을 하는 구조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그 배분이 어떻게 되는지 구체적으로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혹시 다른 분께서 아시면 답변 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중앙정부가 하는 부분이 있고 지방정부가 해야 하는 것이 있다고 봅니다. 또 다른 부분을 지적하자면, 지원체계가 되었든 예산안의 편성이 되었든, 실제로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의견이 반영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실무 담당자들은 전달했다고 하는 공지사항이 현장에 잘못 공지되어 이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전달을 잘못한 것이거든요. 한국말을 못하는 것도 아니고 .. 결국 가장 큰 문제는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 이야기가 나왔다는 것 자체가 사실 창피스러운 일일 수 있는데, 오히려 얼굴을 세우는 격이잖습니까?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적으로 듣고 잘 귀를 기울여 반영해야 하는데 지금 상황은 일방적인 통보 비슷합니다.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고, 독재 시대 때나 하던 그런 행태를 그대로 유지하려고 한다면 큰 문제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반드시 그런 결정에 관해서는 의견이 서로 반영, 이해, 공지 될 수 있게끔 소통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니까 추측만 하고 오해가 생기는 것이죠. 결과적으로 지원 주최 측의 전달자 쪽에서 문제가 크다고 봅니다.
채: 좋은 말씀입니다. 음, 그리고 창작자들에게 주는 지원과 국민 향유를 위한 지원이 구분되어져야 하는 것 아닐까요?
오: 향유자를 정말 생각한다면 단체가 어떤 지역이든 상관없이 예술적으로 수준 높은 작품을 제공해야 하는 것인데, 실제로 경기도만 해도 서울 바로 옆인데도 그게 쉽지 않다구요. 그러니 다른 지역은 더 하죠. 향유자 위하는 게 아니에요. 사실 향유자를 위한 정책을 펼치기 위해서는 정말 그렇게 되도록 아주 정교한 메뉴얼을 같이 딸려서 보내고 옵션을 걸고 기금도 분리시키고 해서, 그 지역 사람들이 좋은 작품을 볼 수 있고, 다른 지역 주민들이 자극을 받고 오히려 이렇게 유도 하는 것까지 굉장히 세밀한 정책을 펼쳐야 하는데 실정은 전혀 그렇지가 않습니다.
박: 향유자 중심으로 이야기 하는데 서울문화와 지역문화가 그렇게 크게 갈라지는지 잘 모르겠어요. 지방에서 하는 것도 서울 것 가져다 보기, 따라 보기, 따라하기거든요. 그런 현상으로 볼 때는 영화나 다름없어요. 그러면 창작자중심으로 장기적, 지속적으로 특성화시키는 정책이 있었느냐? 예를 들어 연극이다 하면 전라북도 지역을 중심으로 한 판소리에서 연원 한 창극중심이 활성화되어 있다, 경상남도 지역 탈춤에서 연원을 한 마당놀이, 탈극식의 연극이 아주 오랫동안 세련되어 왔다면 모르겠어요. 그런 현상이 있었다면 몰라요. 그것으로 부터 장기화된 특성화 정책이 있던 것도 아니거든요. 현대극으로 볼 때는 서울에서 창작이 이루어 진 것이고, 서울의 연극이 국민경제적인 개념으로 환산시키면 창작의 중산층이거든요. 이 중산층을 흩어서 애매하게 분산한다는 것은 국민경제적으로 중산층을 약화시키는 거나 다름없는 청책이라고 봅니다.
채: 예를 들어 지자체에서 문예회관 같은 것들을 건축하는 것은 그 지역에 있는 주민들을 위한 것이지요. 그 극장을 통해서 다양한 공연물들을 접하게 되는 것이죠. 그런 극장들이 생기는 것은 일차적으로 주민들을 위한 것이지요. 창작자들에 대한 지원과 향수자 지원은 구별되어야하고 지원하는 주체도 달라야한다고 봐요.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창작자들을 지원하는 돈이 빠져나가서 지역균형문화발전, 향유자 중심이라는 미명 아래 사라져버립니다. 이것은 근본적이고도 효율적인 지원시스템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입니다. 서울연극제에 지원되는 금액은 분명히 서울시의 시비였거든요. 시에서 직접 지원했던 돈인데, 언제부터인가 효율성을 위해서 서울문화재단에서 통합관리 하는 것뿐이라 봅니다. 그런 면에서 당연히 그 돈은 살아 있어야 하는데..... 늘기는커녕 줄었다니 유감입니다. 서울연극제에 대한 서울시 지원금의 정체성이 모호해져서 그런 결과가 나왔는데.... 부당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수 십 년 된 사업이고 축적된 자료가 다 나와 있음에도 서울연극인들을 대표 하는 단체장을 불러서 심사를 하는 것은 근본적인 예의가 아니라는 것이죠. 이런 일이 다시 있어서는 안 될 텐데요.
김: 내년에 5억으로 올려야죠. 머리띠 두르고 가야하는데~
오: 지원금의 성격과 역사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이 돈이 어떻게 시작된 것이고 그래서 결코 변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분명한 인식이 함께 해야 합니다. 그런데 담당 공무원이 바뀌면서 제대로 인수인계도 안 되고, 그래 그때마다 그들을 설득해야 한다면 너무도 낭비죠. 게다가 갑자기 심사를 해서 주고 안 주고 결정하겠다는 건데, 그 심사라는 것이 참 위험해요. 우리나라 심사제도는 다들 가보셨겠지만 우리가 손님이잖아요. 담당 공무원이 주인이고, 그 주인이 정작 중요한 원칙은 다 정해놓고, 심사위원들은 주인 눈치 보면서 미리 정해진 틀 안에서 쥐꼬리만한 자유를 누리면서 만족해하고요. 게다가 충분한 정보 없이 심사하면서도 속으로는 자신들이 많이 안다고 착각하면서 참으로 위험한 결정을 쾅쾅하고요. 그러니까 수십 년 된 행사에 대해 감히 평가를 하고 예산을 삭감하는 엄청난 용기도 발휘하는 거죠. 결국 담당 공무원이 할 궂은 일 대신 해 준 거면서요.
송: 다른 축제들은 어떤가요? 다 똑같이 놓고 면접하고 예산 검토해서 주는 건가요?
김: 무용 음악 등등.
송: 그럼 다 깎였나요?
김: 똑같이 깎였는데 연극계만 들이대는 거죠. 다른 데는 말을 못하고요..
채: 왜 다른 데는 말을 못할까요?
김: 다른 데는 우리처럼 가난한 사람들이 없는 모양이죠.
채: 인터뷰 과정이 있다는 것을 사전에 알았다면 이사회를 열어서 참석할지 여부를 결정할 필요가 있었을 것 같은데요.
오: 약간은 기분 나쁘지만 설마하고 갔겠지요.
김: 몇 일전에, 누군가가 관계자인지 심사위원인지 인터뷰 며칠 전에 “만일 깎이면 어쩔꺼야?” 라고 물어봤대요. 당연히 해오던 축제니까 의아하고 갔지만 다 깎였다는 결과를 받은 것이죠.
채: 실제로 서울연극제에 지원되는 돈을 가지고 만족한 연극을 만들기에는 경제적으로 빠듯하거든요. 의욕을 내는 극단에서는 도리어 적자를 보기가 십상인데, 늘기는커녕 도리어 지원액이 줄었다는 것은 유감이군요. 내년에는 이런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될 것 같고 지원액도 확충시키는 방안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자, 그러면 그 문제는 일단락하구요. 오늘 주제인 연극계의 각 협회에 관한 얘기로 넘어가 볼까요. 우리 연극계와 관련 있는 단체로는 먼저 예총 즉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가 있습니다. 박정희 정권 때 정부의 주도로 여러 장르들을 통합해서 만들었습니다. 매우 관변화 되어있던 단체이지요. 지금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요. 그 증거로 예총 회장 등은 임기 후에 소위 여당의 비례대표가 되기도 하는 등 정치적 영향권 내에 있었다는 것이지요. 다음으로는 예총 산하 단체이기도 한 한국연극협회가 있습니다. 당시에 한국연극협회는 주로 서울에서 공연하던 극단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었습니다. 80년대 초중반까지 약 40~50개 정도의 극단이 소속되어 있었는데,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공연 권한이 협회 소속 극단들에만 있었습니다. 요즘은 공연하려면 신고 없이 아무 극단이나 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허가를 받아야 하는 시대였으니까요. 중요한 것은, 극단을 만들려면 한국연극협회의 심사를 통과 해야만 했으니까, 이미 가입되어있던 극단들은 어떤 권한이라고나 할까요, 큰 기득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죠. 그러다가 1990년대 말 즈음에 한국연극협회에 소속되어 있었던 각 장르별 분과가 각기 독립하여 장르별 협회가 생겼지요. 배우 협회, 연출가 협회 등등 말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2000년대 초에 한국연극협회에서 서울연극협회가 분리 독립되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서울연극이 곧 한국연극이라고 해서 한국연극협회가 서울연극협회를 겸하고 있었거든요. 그러던 것이, 각 지역들의 연극이 활성화 되고, 따라서 한국연극협회는 서울연극인들만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전국연극인들을 아우르는 일을 하고, 서울 연극의 발전은 서울 연극인들이 담당하는 역할분담을 하자는 식으로 나뉘게 된거죠. 그와 더불어 제작자 협회, 뮤지컬 협회 등등 아주 다양한 협회나 단체들이 생겼지요. 제일먼저 이야기해 봤으면 하는 문제는요, 현재 우리는 대부분 서울연극협회에 소속되어있고, 서울연극협회는 한국연극협회에, 한국연극협회는 예총에 소속되어 있으므로 자연스럽게 우리도 그곳에 소속되어 있게 된 셈인데요. 자 그럼 얘기가 좀 길어졌는데요. 먼저 한국연극협회에 관해서 얘기의 물꼬를 터보지요. 나가다보면 예총이니 서울연극협회니 다 나올 것 같습니다. 한국연극협회의 긍정적인 역할과 방향성을 찾아보지요. 어떤가요? 한국연극협회의 존재감은?
박: 역사적 연원은 그렇다하고, 현재 한국연극협회 존재 이유, 목적은 어떻게 추정할 수 있나요, 현상적으로 미뤄볼 때?
채: 과거에는 서울연극인들이 거의 다 한국연극을 주도하고 있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한국연극협회지만 서울연극협회라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였지요. 그러므로 한국연극협회 속에는 서울연극협회가 함께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20세기 후반부터 지역연극도 활성화되기 시작하고 그러다보니 한국연극협회가 점차 각 지역연극에도 신경을 쓰게 되고, 도리어 서울연극인들을 위한 지원 정책들이 등한시되는 소위 역소외라는 현상이 나타난 겁니다. 서울연극인들을 위해서는 서울연극협회가 별도로 존재해서 그들만을 위한 실질적인 일들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 하는 여론이 생기고 결국 서울연극협회가 한국연극협회로부터 독립이 된 것이지요. 그래서 서울시나 서울시민, 각 구청들을 파트너로 하고 서울연극인들을 위한 구체적인 일들을 시작한 것이지요. 현재 서울연극협회가 그런 일들을 긍정적으로 수행한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한국연극협회는 무엇을 해야 하느냐, 한국연극협회는 전국의 지역연극협회를 통합하고 있는 전국단위의 단체이니까 당연히 정부, 국회 등을 상대로 한 국가적인 연극정책 등에 관한 일들을 하는 즉, 효율적인 역할 분담을 하기로 했던 것이지요.
박: 지금 그렇지 못하다는 건가요?
채: 글쎄요.
박: 아무래도 역사적 연원이나, 더 선배님들이니까 더 잘고 계시리라고 생각하고 질문한 건데 그렇게 유보하시면.... 하하....
오: 서울연극협회를 겸할 때와는 달라야죠. 요즘 서울연극협회가 자잘한 일부터 큰일까지 많이 벌이잖아요. 과거 한국연극협회가 서울연극협회를 겸할 때는 사실 사업과 정책이 동시에 진행되어야 하면서 양쪽 다 취약점을 갖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분리된 뒤 서울연극협회는 우선 서울 지역 회원들을 위한 사업을 많이 벌여왔다고 생각합니다. 반면에 한국연극협회의 정책적 기능은 상대적으로 그리 크게 신장되지 않았고요. 여전히 사업에 매달리는 모습도 남아 있고요. 전국연극제나 청소년연극제가 그런 예겠죠. 물론 당연히 맡아야 할 일이지만 거기 너무 많은 비중이 가 있다는 겁니다. 사실 앞서 문예진흥기금 지역 이관이나 최근에 많이 거론되는 예술인 복지야말로 한국연극협회가 적극 나서야 할 일이죠. 하지만 별로 적극적이지 않습니다. 지난 3월 국회 공청회 때도 한국연극협회에서는 큰 관심을 안 보이더라고요.
박: 제가 볼 때 연극인들을 대표한다, 대변한다, 봉사한다... 봉사까진 아니어도 여전히 대표하는 것 같아요. 대표하면 존재 자체가 존재이유를 충족시켜줄 수 있거든요. 왜냐하면 대표하니까 선출되었다? 당연히 난 대표한다. 내가 오케이면 오케이다, 라는 것이 인정되거든요. 그것보다는 이제는 대변해야하는 포지션이 아니냐.... 왜 그럼 대표하는 관행이 계속 이뤄지느냐 하면은 저는 그 이전, 서울연극협회가 분리되기 이전부터 대한민국 연극계에 패권적 헤게모니를 쥐면 바로 그 포지션으로 앉는 다는 것이 관행이 되었다고 봤거든요. 그러한 의식과 관행이 지속돼왔기 때문에 지금 역할분담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권익과 문제점을 해결하고 대변하고 대표하는 역할로서 만족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보면서 한편으로 걱정이 됩니다.
송: 대표하는데 존재감이 없지요.
박: 대표하면 존재자체가 존재이유가 되니까요.
송: 대표하는데 존재감이 점점 없어지는 게 당연한 시대가 되었고, 그렇다면 빨리 캐치해서 시대가 변한 만큼 그에 맞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아직도 과거에 머물러 있다는 느낌이에요. 역대로 쭉 보면 한국연극협회의 그림이 있잖아요. 과거에는 연극 권력이니까 그때 필요한 역할이 있었던 거고, 그 역할이 다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90년대 들어서면서 환경 자체가 바뀌었는데 관행이 그대로 남아있다는 거죠. 좀 전에 지역 문제 같은 경우도, 그게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은 그런 식으로 중앙에서 길을 들였다고 봐야겠죠. 여기서 내려간 사람과 잘 맞으면 그 지역에서 행세할 수 있고, 그러면 돈이 모이고, 말 안 듣는 사람들 소외시키고... 그런 잘못된 관행이 있었잖아요. 그런데 아직도 지역에 다니면서 선거운동하고, 대의원 올라오고... 이런 구태가 지금 시대에 과연 맞느냐 하는 겁니다.
홍: 선생님들께서 지적하셨던 부분과 관련해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문화예술인들이라고 했을 때 진정 대표성을 지닌 사람들이 그들의 정책결정에 얼마만큼 참여 할 수 있을까요? 예를 들어 대부분의 정책결정이나 노선들이 공무원들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이뤄지고 있는지 아니면 적어도 그런 것들을 연극인이나 문화예술인들과 의견을 타진해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경청한 후에 이루어지는지요..... 문화예술인들이 직접 참여 할 수 있는 자리나 그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자리가 거의 없다고 봅니다. 결국 그들의 의견이나 목소리가 반영이 안 되는 것이겠지요. 심지어 대표성을 지녔다고 하는 문화예술인들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들 마음대로 정책을 심의 결정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듭니다. 그리고 질문을 드리고 싶은 것이 있는데, 한국연극협회와 서울연극협회가 과연 어떤 관계에 있습니까? 애매모호한데요.
채: 행정상으로는 서울연극협회, 부산연극협회 등 모두 한국연극협회 산하입니다. 그리고 서울연극협회가 독립되면서 한국연극협회와 지역협회들의 역할분담이 아주 명약관화하게 되었지요. 각 지역협회는 지역연극인들을 위하여 정책 실현이나 구체적인 사업들을 하는 것이고, 한국연극협회는 사업도 사업이지만 우선적으로 정부나 국회에서 제시하려는 법안이나 정책들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거나 도리어 먼저 제시하거나 하는 것이죠. 과거 권위주의 시대엔 정부 측에서 이렇게 저렇게 하면 예술인들은 무조건 따라야 했었지요. 그러나 세상이 민주화가 되고 수평적인 사회로 바뀌게 되면서, 예술인들이 틀린 것을 틀렸다 얘기하기도 하고 반대도 하고, 도리어 의견제시를 먼저하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이쪽을 중시하게 되는 거지요. 그런데 이쪽에서 먼저 알아서 순응 일변도로 나가게 되면 무시하는 분위기가 생기면서 과거 시대로 돌아가는 것이지요. 시대정신을 거스르면 안 됩니다. 이런 것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국연극협회 이사장 선거할 때 보면 연극 만드는 것 보다 훨씬 열심히 합니다. 용광로가 끓듯이 에너지도 넘칩니다. 하지만 선거일정이 끝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김빠진 풍선처럼 되고 맙니다. 존재성이 보이지 않는 거지요. 그들이 남발했던 공약에 관한 것들은 공수표가 되고 결국 연극인 상호간에 상처만 남기는 삼류 정치놀음만 남아 있는 것 같아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정치 놀음이라도 멋지게 잘 해서 연극인들을 위한 굵직한 입법이라도 하면 좋을 텐데 그게 아니라 역대 한국연극협회를 보면 대체로 정권이나 정부의 방침에 일방통행, 따라가는 식으로 일관해 왔다는게 큰 문제입니다. 그것을 참여하는 연극인들의 탓으로만 돌릴 것이냐. 아니면 근본적인 구조상의 문제는 혹시 없는 것이냐 라는 것을 한번 짚어봤으면 좋겠어요. 아까 협회의 역사를 대략으로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독재 정부에서 만들었던 예총, 예총산하의 한국연극협회, 만약에 그런 태생적인 한계가 있기에 그런 것인지, 도대체 어떤 방향으로 환골탈태를 해야 하는지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해보죠.
홍: 만약 그렇다면 경제관련 단체나 NGO도 많고, 사회 분야에는 시민단체도 워낙 많은 것처럼, 연극인들을 위해서 그리고 연극과 관련된 세부상황을 구체적으로 대변 해줄 수 있는 어떤 NGO 단체들도 충분히 생겨날 수 있지 않을까요? 최근 자주 등장하는 복지와 관련된 이야기도, 진정 연극인들의 복지를 생각 할 수 있는 시민단체나 이에 대한 구체화적인 의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입을 모은다면 더 큰 힘을 발휘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오: 연극의 특징이라고 할까요? 다른 분야는 영화만 하더라도, 예총 산하 영화협회와 영화인 회의가 갈려서 둘이 상당히 비등한 힘을 가지고 가는데 반해 연극은 그런 식의 갈등은 거의 없어요. 그래서 자기들 정치적 성향은 상관없이 스스로들 대부분 연극협회소속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문제는 협회의 대표가 조용히 있었다, 그럼 연극계가 묵인하고 찬성한 것 이라고 봐야 하느냐? 정말 대표다운 대표가 되기 위해서는 연극계에 의견을 수렴해 가지고 “이것은 인정해야 한다.” “이것은 반발해야 한다.”라고 하면 좋겠는데 그런 의견 수렴이나 파악을 위한 노력은 없이 “나는 대표니까” 하는 식의 권한 의식만 가지고 있다면 대표다운 대표가 아니라고 봅니다. 상대를 봐야 할 것 같아요. 아주 수준 높은 행정이라서 민간 전문가들에게 발언기회를 적극적으로 주고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그러니까 참견을 받으려고 노력하는 그런 정도의 수준 높은 행정이라면 거기에 맞는 협회가 있을 것이고, 그게 아니라 그냥 숨기고 얼렁뚱땅 넘어가버리고 잘못 읽으면 오해를 할 수밖에 없는 정보를 주거나 뒤늦게 찔끔 이야기하고서 왜 못 알아들었냐며 책임을 전가하는 행정이라면 거기에 맞게 굉장히 날카롭게 지적하고 각을 세울 수 있는 협회가 필요하다고 봐요. 지금 우리가 필요한 협회는 명확한데, 결국 그렇지 못 하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채: 한국연극협회 등의 단체들이 들어 있는 사무실 자체도 예총건물이죠. 한마디로 나라에서 운영을 도와주는 거지요. 그런 형편에서 단체장으로 취임하고 일하게 되면 실제적으로 자신들에게 지원을 주는 정부의 정책들에 대해 싫은 이야기를 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워 질 수 있지요. 그런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박: 그것은 의식이 문제라고 봅니다. 국회의원은 세비와 인력을 제공 받는 것을 당연시 하는데..
홍: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문화예술인들이 많은데 대표성이 없다는 것은 소속감도 약하다는 것이거든요. 처음 가입 할 때는 회비도 내고 그러는데, 제 생각에는 단돈 100원이라도 회비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죠. 액수의 문제가 아니고 소속감을 위해서요. 모든 사람들한테 납세의 의무가 있는 것처럼,.. 연극인이라면 모두가 내야 하는 것이지요. 내고 싶으면 내고 안내고 싶으면 안내는 것은 문제가 된다는 것이죠. 그러한 상황에서는 힘의 결집이 안 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봅니다... 하다못해 동창회도 회비 안내면 아무것도 안되는데,, 돈의 문제가 아니라 소속감을 주기 위해서.. 그에 상응하는 의무를 했기 때문에 발언권을 갖듯이... 그러한 의무를 통해서 민주주의적으로 이뤄진다면 더 힘을 더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목소리도 더 커지고요.
박: 다시 역으로 거슬러 오르다 보면 왜 그러한 이사장들이 있었느냐. 왜 그렇게 선출되었느냐. 혹은 선출된 돈이 왜 지금 우리 얘기에 있어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 못하느냐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전 선거의 양태가 어땠느냐. 무엇을 가지고 선거의 이슈를 잡았는가.. 봤을 때는 소상히 이야기해야 할 부분이지만요. 역시 그 이전부터 있어온 의식에 있어서의 패권주의, 행동이나 행동양태에 있어서의 파벌주의, 이것 가지고 선거를 치뤘지. 어떤 정책적인 것이라든가 의식의 집합체로서의 쟁투..쟁패라는 말은 좀 파벌적인 냄새가 나지만.. 그런 대결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거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 다 알겠지만 지역표를 얼마나 받느냐로 승부가 갈렸지 정책으로 승부가 갈린 건 아니잖아요? 과연 차후 선거에서 이런 것이 지양되고 타파될 수 있느냐. 그것에 대한 해결책이나 비전이 없으면 역시 마찬가지이지 않을까합니다. 그리고 정치권 성향에 영향을 받는다면 차라리 정파적인 입장을 내놓고 표방을 하고서 선거를 해야 할 거라고 생각해요. 아주 오랜 세월 한 정권만 지속됐었고, 독재가 있었다면 순종에 종속이 있었겠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기 때문에 정치적 성향과 그와 관련된 문화정책적 선택을 같이 내 놓고 좀 더 엘리트주의적으로 갈 것이냐, 보다 민주적이고 자유주의적인 쪽으로 갈 것인가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채: 좋은 방안 일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 그런 방식이라면 혹시 정치인들이 예술분야에 공식적으로 관여하게 되지는 않을까하는 우려도 됩니다.
박: 예를 들어서 언론 같은 경우 방송이야 왔다갔다하지만 신문 같은 경우는 어느 쪽을 지지하는지 문조나 내용을 보면 뻔하거든요? 그런데 본인들은 불편부당하다고 하죠. 그런 식의 눈 가리고 아웅이면, 뻔히 보이는 것들을 툭 터놓고 이야기해야 하지 않나 싶어요.
홍: 대표성을 지닌다면, 서울시는 연극을 혹은 연극인들을 위해서 예산을 얼마만큼 배정해주겠느냐? 이러한 예산 배정과 정책에 대해서 우리 예술인들도 당신들을 지지해 주겠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죠. 이렇게 정치화 한다면....
송: 한국연극협회 이사장은 협회원들의 권익을 위해서 문광부나 예술위원회, 또는 서울문화재단을 대상으로 정책 제안을 하고, 심사를 포함해 행정상의 문제점은 없는지를 살피고, 지원금 증액을 요구하는 등의 일을 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문화재단에서 심사하고 있으면 어떡합니까. 거기는 협의해야 할 대상인데.
오: 협회장이 문화예술위원회 위원으로 들어가 있는 상황이 참......
송: 어딘지 앞뒤가 안 맞고, 뭔가 어긋나 있다는 거죠.
오: 그렇죠. 협회장은 정책적으로 큰 문제를 다뤄야 하는데, 실무 차원의 심사를 하고 있다는 건 정말...... 하지만 전반적으로 그런 생각들이 정리가 안 되고 있어요. 한 마디로 개념이 없는 거죠.
박: 우리의 상식들이 아직도 불건전하고 균형감각이 없는 것이죠.
오: 사실 많은 연극인들이 의식도 못하거든요. 이야기를 하면 그때서야 “아, 하긴, 좀 이상하네.” 하는 식이죠.
채: 좋습니다. 요약해보자면 소위 관변화라는 것 아닙니까? 즉 현재 정부의 지원을 일정부분을 받고 있으면서 그것을 당근으로 해서 단체들이 관변화가 되어있는 형태인데, 아까 홍 선생님이 NGO말씀 하셨는데..... 이런 관변화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면, 자율적이고 능동적으로 비판이나 대항할 수 있는 성향을 지닌 배짱 있는 단체장이 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예 항구적인 시스템을 마련할 수는 없는 것인지요. 다음에도 그럴 가능성이 많은데요. 특별한 일 하지 않고 여태껏 보여줬던 것들을 수동적으로 반복하는 것, 예를 들어 현 정부 들어서 인사정책이나 기타 등등, 실로 많은 문제들이 이슈화 되었는데 한국연극협회에서는 공식적으로 거기에 대해서 반론제기나 의견개진이 거의 없었지 않습니까. 연극계를 대표, 대변하는 위치에서 앞으로도 계속해서 그렇게 대응한다면 우리 연극계는 죽은 어항이나 다름없다는 것이죠. 그런 타성에 변화를 주기 위해서는 시스템의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지 않을까합니다.
박: 저는 기본적으로 어떤 예술단체, 협회, 조직 이런 것들을 생각할 때, 저는 기본적으로 아나키스트적인 예술가라고 할 수 있는데, 협회가 근본적으로 필요 없다고 봐요. 아나키스트는 무정부주의일 수 있지만 조합주의도 있잖아요? 최소한의 권익을 위한 조합적 그룹들, 또는 그런 조합들이 모인 엉성한 연합체까지가 최선이 아닐까 싶구요. 이런 식의 국가적 단위, 지역단위의 집합체들이 예술가들에게 과연 필요한가.. 물론 전제가 있습니다. 유능하고 양심적인 담당 공무원들이 이것을 해줘야 하는데 그 면에 있어서는 더 논의를 해봐야겠죠.
홍: 제 생각에는 그런 것들이 가능하려면 나라가 선진화 되어있어야 하는데 그런 정도까지 이르지 않았으니까요. 사실 그 정도는 신경 안 쓰게 해야 하는데 별것을 다 신경 쓰게 하니까요..
박: 제 이야기가 만약에 그럴듯하다면 그러한 단계로 가기위한 지금 상태에서의 그 다음 단계가 뭐냐는 것이 우리가 이야기해야 할 다음 단계인 것 같습니다.
홍: Arm-length 정책이라고 있는데, 조금 설명드리면.... 실험성도 있고, 좋은 문화물, 그런 것을 만들어야하는 가이드라인을 통해서 정부가 지원을 합니다.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지원신청을 한사람들을 대상으로 심사를 해서 결정이 되고 나면 정부는 이후 아무런 관여도 하지 않습니다. 지원금을 어떻게 썼는지, 작품을 잘 만들었는지 안 만들었는지 그런 평가를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예술인들도 책임감도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죠. 그에 상응하는 좋은 결과물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이니까요. 물론 받았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지요. 만일 평가를 안 한다면 그냥 흐지부지 되어버리고 돈만 받으면 되는 식으로 흘러갈 소지가 있다고 우리나라 정부는 생각하는 거거든요. 어떻게 보면 양쪽의 상호발전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또 하나는 말씀하신 것처럼 문화, 예술만을 위해서 애를 쓰고, 그런 것들을 가능하게끔 하는 정책이 있고, 목표한 바대로 행해지고 있다면 크게 신경 쓸 일이 아닌데 문제는 예술인들의 의견도 거의 반영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모든 것들이 정해지는 현실이 우리나라의 모습입니다. 예술인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면, 예술인들의 목소리가 들릴 수 있게 하는 그 절차나 자리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과연 그런 이야기가 전해질수 있게 하기 위해서 현재 한국연극협회가 과연 제 역할을 할 수 있느냐에 대해서 상당부분 저는 회의적이라고 봅니다. 그렇다면 다른 대안은 무엇이냐에 대해선 생각해볼 문제죠.
김: 너무 난감합니다. 이 문제는 우리 연극인들 문제만이 아니라. 대통령, 정책, 이사장 등의 문제들, 많은 일들이 서로 얼키고 설켜 있기 때문에 혼란스럽고, 이거저거 생각하니까 무력감이 들어요. 예를 들면 이사장이 할 일을 안 하는 것에 대해서 항의하는 사람도 없고 어른들도 “너 이놈아 그러면 안 돼!” 하는 사람들도 없는 듯 하고, 주변에 맴돌면서 자기네들 편하면 그만이다 하는 생각이고. 어떻게 보면 연극계에는 어른이 없구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어디서부터 뜯어 고쳐야할지.... 아까도 말했지만 이사장이면 연극인들의 복지와 지원에 관한 문제를 제기 해야 하는데, 시각이 대외적인 차원보다 대내적으로 근시안적 태도로 보이고, 최근에는 권위적이고 심사만하는, 연극인들을 심사, 관리 하는 태도까지 보이니까 뭐가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사장을 뽑은 건 우리인데, 선거 제도 때문에 그렇게 된 원인도 있고, 선생님이나 선배님들, 위에서부터 해왔던 관행적인 선거분위기가 이런 결과로 나타난 것에 대해 우리 스스로 책임을 묻고 반성해야 할 일이겠죠... 저 또한 소위 선거판에 뛰어들기 전까지는 남의 일로 작업만 하면 그만이지하는 소극적 태도였었는데, 안으로 들어와서도 고치거나 개혁하기 보다도 묻혀 들어갔다는 생각이 드니까 참 자괴감도 들고 그 세월동안 뭐했나 반성도 들고... 사실은 말 못 할 것들도 있어요. 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라.... 어렵네요. 우물안 개구리식 싸움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에, 이런 문제가 연극판을 참 어렵게 만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해결책을 내놔야 하는데 당연히 하향식 관주도에 맡길 일은 아니고 우리 모두가 깨어있어야 하는데, 목전의 이익 앞에 우리 모두 무릎을 꿇어버리는 약삭빠른 계산식 행동 때문에 쉽게 풀릴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홍: 노조하고도 비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우리나라는 중앙교섭을 많이 하거든요. 노조의 지금 문제를 보면, 예전에는 다른 나라들도 중앙 교섭을 하는 나라들이 많았는데 최근에는 주로 산별 노조로 교섭을 하거든요. 중앙교섭을 하면서 민노총과 같은 단체의 힘이 커진 것이죠. 싸우다 협상이 결렬되면 ‘총파업’ 이렇게 되는 것인데요. 지금 우리나라에는 한국 기업체만 있는 것이 아니고 다수의 외국 기업들도 있는데, 상명하달식 지령이 내려오는 거죠. 민노총 소속 산별노조한테. 이번 몇 월, 몇 일부터 파업을 한다. 그러면 우리는 아무 문제도 없는데 파업이 되어야 하는 거예요. 그러면 그 회사에서는 ‘왜 파업을 하냐’ 얘기를 하자하면 문제 삼을 얘기가 없다는 거죠. 그런 악순환이 계속되고 해결할 수 없는 지점에 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죠. 결국 문제가 생기죠. 공장이 안돌아가고. 여기선 안 되겠다 기업은 그렇게 생각할 거구요, 그러면 공장을 아예 닫아버리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2백 명, 3백 명 일하던 공장의 자본이 빠져 나가 버리는 것은 물론, 거기서 일하던 노조원들도 일자리가 없어져 버리는 거죠. 대부분 단순직종이다 보니까 다른 직종으로 이종도 안 되고요. 어떻게 보면 어느 선에 서 있다가 자기 직장만 없어지는 실업의 상황이 벌어지는 것인데, 어떻게 보면 우리들도 배우협회, 연출가협회 등이 있다면 자기 목소리를 내야하는데 위에만 보고 있다가 하라는 대로 �다보면 결국엔 연출가들을 위해서 연출가 협회는 과연 무엇을 했느냐. 배우들을 위해서 배우협회는 무엇을 했느냐 라는 이런 문제가 생겨나는 거죠. 그런 것들이 해결이 안 되다보니까. 들이대야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준다고 말하는 쪽에 하나 더 주게 되는 그런 그림이 생겨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냥 위에서 주는 것을 기다리고 있으면 안 되지 않나 싶습니다.
박: 그렇게 기능적 단체들이 각각의 개별적 조직체로 발언을 할 만큼 연극이라는 것이 그렇게 복합적으로 기능적으로 산업화 되어 있느냐, 그런 건 아니거든요. 저는 각각 기능의 협회라는 것은 동아리 수준으로 가야 한다고 봐요. 그게 더 자연스럽거든요? 어떤 연극에 대한 사안가지고 배우로서 연출로서 제작자로서 각각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은 사실 많지 않거든요. 단체가 생겼기 때문에 뭔 일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거든요. 중요한 역할을 한 것도 있지만은 존재 자체가 존재의 이유라는 경우도 꽤 있어요. 연기자들도, 제가 쉽게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지만, 배우협회도 1년에 한두 번 공연을 해야 해요. 또 거기서 꾸려가는 연극이 어느 정도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고. 연출가협회에서 하는 경우도 있잖아요,. 재밌고 긍정적인 역할도 하지만 때로는 연례적인 행사를 하는 것 같기도 하구요. 좀 더 자유롭게 더 조직자체가 조직이라기보다는 연성화 되어 발전해야 하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송: 저도 동의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시간이 지나면 한국연극협회 같은 단체는 자연스럽게 없어질 거라고 봐요. 의미가 없어지는 거죠. 과거에 아무 것도 없던 시절에는 대표하는 사람들이 끌어모아야 했던 거고, 지금은 오히려 자생적으로 움직이고 있으니까 이렇게 간다면 없어지겠죠. 예총도 이미 오래 전에 사라져야 할 단체인데 아직도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놔둬도 없어지는데 굳이 의견을 모아 보자고 하는 이유는 시기를 당기기 위한 것이죠. 불합리한 것들을 없애자는 거니까요. 말씀대로 서울연극협회에서 현재 서울지역 연극인들을 위해 일을 잘 하고 있다면 저는 그걸로 충분히 커버할 수 있다고 봅니다.
오: 그런 것도 일리가 있네요. 한국연극협회가 있고 그 위에 예총이 있고 그런 식의 구조가 필요하냐. 사실 박 선생님 말씀대로 아나키스트라서가 아니라 사실은 예술가들이 단체를 만들어 뭘 한다는 것이 넌센스이긴 해요. 하지만 이미 필요악처럼 기정사실화되어 있는 것이고, 또 그때그때 시대에 맞게 계속해서 변모를 했고, 그래 좋은 의미의 진화를 해왔다면 이렇게 불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오진 않았겠죠. 뭔가 필요한 일을 찾아서 하고, 정부에 지원을 받는 것도 생각에 따라서는 주눅 들지 않고 거부할 수도 있어야 하는 것인데, 그 정도로 당차고 정확한 개념을 가진 연극 대표가 탄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일 것이고. 더 중요한 것은 연극계 내에 정확히 파악할 만한 능력들이 부족하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학자나 평론가들도 그런 일을 해야 한다고 봐요. 정책에 대해 연구를 하고, 이런 문제가 있다고 세밀한 수치까지 제시하고 우리를 스터디 시켜주는 그런 기능들이 있다면, 우리가 더 똑똑해 질 것이고, 방향성이 정확해질 것이고, 적어도 협회 이사장이 위원을 하고 실무심사를 하고 있으면 잘못됐다고 공통적으로 느낄 텐데, 사실 너무나 모르니까 거기서 별문제를 느끼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해서 벌어지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점에서 그 자체를 진화시키고 변모시키는 노력을 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냐? 아니면 다른 장르에서처럼 전혀 다른 조직을 만들거나 해체를 해서 어떤 변화를 모색할 것이냐? 뭔가 달라져야 하는 것은 당연한데 어떻게 할 것이냐? 영화인들의 경우 탈퇴를 해서 새 조직을 만들었죠. 미술 같은 경우도 단체가 세 개나 되고. 그런 면에서 연극인들은 순진한 것 같아요.
박: 연출가들만 하더라도 30대 연출가들은 가입안하거든요? 40대 초까지는? 김모 이모 박모 같은 연출가들 빼고는.. 하하~ 저도 제 후배나 졸업생들에게 가입원서 내라고 안 그래요. 앞으로도 나서서 그럴 생각이 없어요. 그러다 보면 여기 선배님들 70대 되고 저 60대 되고 그러면 노인정 돼요. 앞이 뻔히 보인다는 것이죠.
송: 지금 시작하는 젊은 사람들이 연출가협회에 들어가서 정보를 얻고, 뭔가 그 안에서 보탬이 되는 것을 찾으려는 움직임은 없어요. 저도 회원이긴 합니다만 마찬가지고요. 연출가협회도 변화하지 않는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존재감이 사라지게 될 가능성이 많다는 거죠. 지금 20대들이 들어가고 싶은 협회가 되어야 하잖아요. 한국연극협회에 대해서는 한번쯤 공론화해 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협회의 역사, 예총의 역사, 존재 이유 그리고 과연 다른 나라에서도 우리처럼 협회 만들어 놓고 지역에 내려가 돈 써서 선거운동하고 그러는지 외국의 예들도 가져오고요. 모두 일본에서 들여온 것인데, 정작 일본에는 우리 같은 성격의 협회는 없어요. 단위별 협회는 있지만, 거기도 현역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사람들이 끌어가는 게 아니에요. 이런 것들도 모두 면밀히 검토해서 문제 제기를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만약 협회가 필요하다면 왜 필요한 것인지도 진지하게 논의해야겠지요.
채: 선거 끝나고 난 다음엔 존재가치나 역할론이 유명무실 한 것으로 전락한다면 쓸데없는 낭비입니다. 그런 낭비를 반복할 이유가 있겠느냐는 것이죠. 서울연극인들은 그런 낭비적인 선거에 참여할 이유가 없다는 식으로 선언할 필요도 있지 않느냐는 거죠. 그리고 관변화되어있는 예총, 한국연극협회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도 어쨌든 연출가협회나 배우협회 등과 같은 단위협회들이 활성화되어서 연극계의 주체성을 대변하는 것도 방편의 하나라고 봅니다.
김: 지금 우리 현실로 봐서는 수구기득권이 정권을 잡는 것하고 개혁세력이 잡는 것하고 너무 다르기 때문에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가 너무 다른거죠. 완장문화가 걱정이 되고 이미 몇 년 동안 그런 문화에 우리 연극인들이 시련을 당했고, 언제 어떻게 더 해괴망측한 일이 벌어질지 모르겠고, 걱정입니다.... 예를 들어 국가를 만들어 놓고 국민을 뽑는 건 아니잖아요. 먼저 국민이 있고 국가가 있는 건데 우리도 마찬가지 입니다.
채: 예총 같은 경우 목동에 큰 빌딩을 짓고 있습니다. 역시 정부지원 받아서 짓는 것을 마치 큰일이나 따온 것처럼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것이 결국 족쇄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요. 일부 한심한 예술인들이 시대정신까지도 망각하고 있는 것이지요. 과거지향적인 태도로 말입니다. 관변화의 현실에서 탈피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기본적인 의식이 중요하다는 것이 출발점일거예요. 저도 몇 번 한국연극협회 선거에 관여해 보았습니다만, 선거가 끝나면 이게 무슨 도깨비놀음인지, 뭔가 진전이 있을 거라 해서 보면 도로아미타불이고 그나마 발전은커녕 퇴보일색이니 스스로도 한심하기 이루 말할 데가 없습니다. 또한 정부의 일방성에 속수무책인 무기력한 단체들의 모습을 보면, 그에 소속된 연극인의 한사람으로서 깊은 자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총이나 한국연극협회 등의 관변화, 수직화는 빨리 떨쳐 내고, 수평적인 관계 속에서 연극인 개개인의 주체적인 생각들이 발현될 수 있는 그러한 통로들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일 것입니다. 반복하지만 각각의 단위협회들과 지역협회들의 역할이 좀 더 활성화 되고 자기 목소리의 색깔을 확연하게 드러내야만 합니다. 사업도 물론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또 그런 것들이 창출되어야 정부지원도 받을 수 있고 연극계가 살이 찌겠지요. 그렇지만 그런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진짜 활기찬 의견제시를 통해서 연극인들의 목소리를 확실하고도 당당하게 낼 수 있는 통로가 협회들에 마련되었을 때, 자연스럽게 예총이나 한국연극협회의 관변화 고리는 끊어질 것이고, 언젠가는 생기 있고 크게 존중받는 연극계가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오: 서울연극협회는, 물론 직선제가 모든 게 만병통치는 아니지만, 어쨌든 삼년에 한 번씩 직접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장치가 있고, 그 정도 좁은 지역에서 그런 정도로 해보는 것은 가능하다는 생각이구요. 어쨌든 전체적으로 반성해볼 만한 계기가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3년에 한 번씩 홍역처럼 왔다가고 하는데요. 금방 10년 가고, 20년 가고 한다는 것이죠. 그런 것들이 반복되는 것보다는 한번쯤은 구체적으로 고민을 해서, 설령 지금의 제도로 간다고 해도, 그 내용을 채우는 사람들의 마음이 달라져서, 뭔가 아까 얘기한 것처럼 진화 내지는 변모할 수 있는, 그래서 꼭 필요한 조직이 될 수 있는 전기의 마련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채: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할 때라는 것이죠?
송: 반대하는 분들의 논리는 이렇겠죠. 다른 분야는 인원도 많고 단결해서 자기네들 목소리를 내는데, 예를 들면 선거 때 그렇다는 거죠. 없애면 어떻게 모으냐. 하지만 그거 모으려고 이거 만드는 건 비효율적이라는 겁니다. 그럴 때 의견 모으는 건 사안에 따라서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봐요.
홍: 지원과 관련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원금도 지원금 같지도 않은 것들을 주면서, 생색은 다 내고, 그러다보니까 연극인들은 길들여져서 그들이 요구하는 대로 하고 있고, 계속해서 이런 시스템이 내려져 왔잖습니까? 그러니 깎아도 할 말이 없고, 더 주면 그저 좋다고 하고.. 그야말로 어떤 획기적인 변화 없이 늘 구태의연한 방향으로 진행이 되어 왔습니다. 지금 이러한 상황에서 지원을 받아도 문제고 아니어도 문제인 상황이라면 딱 손 깨끗하게 털 수 있는 그런 상태가 될 수 있다면 더 좋을 것 같아요. 그래서 그야말로 할 말을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것이 오히려 더 새로운 변화를 추구할 수 있다고 봅니다. 정부도 환골탈태하여 새롭게 생각하는 계기가 필요할거라고 생각합니다.
김: 지원금에 대해서 어쨌든 얼마간의 지원금이 선택되고, 약간의 능력과 약간의 재능이 있는 사람들이 받는 식이 되잖아요? 어찌보면 사실은 그런 능력과 재능이 있는 사람들이 할 말을 해야 하는데, 그런 사람들이 할 말을 해야 하는데, 밥을 떠 넣어 주니 입안에 밥이 가득하고 그 밥맛에 취하다보면 할 말을 못한다는 식의 상황이 되는 것이죠. 배부르고, 편하잖아요. 할 말을 해야 할 사람들이 입을 다물고 있으니까 오히려 더 어려워지는 격이 아닌가하는 비관적 생각이 듭니다. 그런 입막음은 우울합니다.....
채: 네, 좋은 말씀입니다. 오늘 수고 많으셨구요. 중요한 것은 우리 개개인, 한명 한명에게 많은 것이 달려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술인들이 잘 할 줄도 모르는 선거니 협회니 만들어서 많이들 해보지만, 들여다보면 뭔가 진척 있는 일이 진행되는 것은 잘 보지 못한 것 같아요. 도리어 그 과정에서 3류 정치인들의 흉내 내기가 되면서 근년에는 생전 듣지도 못했던 좌파니 우파니 하는 이야기까지도 듣게 되고요. 그렇게 나름대로 편을 가르는 것을 이용하는 사람이나 언론도 있고요. 서글픈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것들 모두 우리 연극인들이 사소한 갈등 속에서 스스로 약한 모습들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그동안 우리가 많은 시행착오도 겪어왔고 스스로 자기훈련도 많이 한 셈이니까 앞으로 우리 연극인들 각자가 단련된 모습으로 성숙한 주체성을 가지고 나갔으면 합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 포럼이 나름대로의 역할을 하도록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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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기록실은 연극을 비롯한 문화예술 정책 전반에 대하여 활발한 의견 개진이 가능한 공간입니다.
게재된 의견에 대한 반론 또한 보내주시면 귀한 원고로 생각하고 적극 수용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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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현기자 jh4017@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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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 마감 날짜가 다가오면 마음을 졸이기도하고 편집 날짜를 맞추려 부단이 노력도 합니다. 그래도 이렇게 완성된 오늘의 서울연극을 보면 뿌듯한 마음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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