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의 연극

오늘의 서울연극 9-2

장코폴로 2011. 7. 1. 10:08

ISSN 2093-9140

2011.06.18

TTIS

오늘의 서울연극

Today's Theater In Seoul
제9호
                     2011. 6.18

본 잡지에 실린 내용은 서울연극협회나 연극기록실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발행처: 서울연극협회, 연극기록실
발행인: 박장렬
편집인: 오세곤
편집위원: 양기찬, 조만수, 최은옥
기자: 이정현

목차

 

- 편집인의 글 | 오세곤

1부

   Review

                                             -  4중주 | 오주희
                                             -  겨울선인장 | 김태희  
                                             -  나는야 섹스왕 | 조만수
                                             -  디 오써 | 성유경                                              
                                             -  매기의 추억 | 박연숙  
                                             -  배우수업 | 서나영
                                             -  현대극 페스티벌 부조리와 그 무대 | 이지용                

2부

   재수록

                                       -  이웃집 쌀통 |  박연숙
                                       -  푸르른 날에 | 박연숙  
                                       -  <고도를 기다리며>, <나는 아니야>, <크라프의 마지막 테이프> | 박정기
                                       -  만선 | 박정기
                                       -  사흘동안 | 박정기                                        
                                           

 

   정책기록실

                                              - 대학로 포럼  2010~2011 연속 토론 (9)
                                              - 예술인복지법 조속 통과를 촉구하는 예술인대회 성명서


 

   편집 후기

   

재수록

아줌마 유머 속에 담긴 ‘악의 평범성’: 연극 <이웃집 쌀통>

                                                                                                                     <한국 희곡 수록>

                                                                 박연숙(철학박사/ 숭실대 교수feelogo@naver.com)
원작: 김란이
연출: 선욱현
출연: 김곽경희 김소영 우승림 우진식 오민애 박무영 김시정 박예주
공연기간: 초연 2011.3.18-5.15/ 앵콜 공연 5.19-6.26
공연장소: 대학로 문화공간 이다 2관
관람일시: 3월 18일 7시/ 3월 26일 8시 / 5월 21일 7시 3회 관람



‘아줌마’ 유감

한 때 나는 ‘아줌마’로 불리는 것을 꺼렸었다. 여자에게 ‘아줌마’는 남자에게 ‘아저씨’와 다소 다른 느낌이다. ‘아저씨’라는 말은 ‘총각’보다 나이가 더 많다는 의미로 비교적 중립적인데 반해 ‘아줌마’라는 말은 ‘처녀’보다 나이가 더 들었다는 의미 이외에 드센 이미지와 때로는 이기적인 이미지까지 복합되어 묘한 감정을 불러 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아줌마’라 불리지 않기 위해 나이가 들수록 더 신경을 썼었다. 그런데 나의 친구 한 명은 스스로 아줌마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면 사는 게 더 편해진다는 말을 했었다. 그렇게 말한 이유가 궁금했지만 아가씨 행세에 힘 빼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인지, 더 솔직하게 자기 욕망을 표현하고, 자기 이익을 챙길 수 있다는 의미인지 확인하지 못하고 지나갔다. 그러나 아줌마가 되는 것은 확실히 선택의 문제나 의지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마흔을 넘긴 나는 아무리 우겨도 아줌마 이외의 다른 이름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아줌마’에 대한 긍정적 의미를 생산해내지 못한 것은 나를 포함한 대한민국 아줌마 모두의 책임이 아닌가 싶다. <이웃집 쌀통>에는 ‘아줌마’에 대한 유감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웃집 쌀통>은 한 동네에 사는 아줌마들의 모습이지만 대한민국 아줌마의 일반적인 가치관과 그리 동떨어져있지 않다는 점에서 시대상에 대한 반성이기도 하다.

단막극, 장막극, 앵콜극으로의 변화

<이웃집 쌀통>은 2010년 한국 희곡작가협회 신춘문예 당선작을 장막극으로 개작한 작품이다. <그녀들만 아는 공소시효>는 동네에 남몰래 버려진 정체 모를 쌀통 하나를 처리하기 위해 생겨난 사건을 중심으로 한 동네 아줌마들의 심리와 행태를 보여준 작품이다. 버려진 쌀통 속에 불에 탄 아이 손가락 다섯 개와 발이 발견되어 처음에는 신고하자는 의견으로 모아지지만, 나중에 천만 원이 든 검은 봉투가 발견되면서 신고하는 대신 자신들이 나눠 갖게 되는 결말이다. 이 사건을 중심으로 확장된 장막극 <이웃집 쌀통>의 등장인물로는 50대의 순이네(김곽경희 분), 40대의 동진네(우승림 분)와 미나네(김소영 분), 30대 영실네(우진식 분)가 있다. 영실네를 제외하고 이들은 10년 가까이 지내고 있는 한 동네 아줌마들이다. 영실네는 새로 이사 왔고 마트를 오갈 때 마주치는 정도의 거리에 살고 있는 설정이다. 세 아줌마들이 신고하는 대신 이백오십만 원씩 나눠 갖자고 할 때 영실네만 극구 반대하지만 세 아줌마들의 기세에 눌려 결국 사건을 은폐하는 모습이 씁쓸하게 여운을 남긴다.
<이웃집 쌀통>은 총 2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들만의 공소시효>의 주된 사건을 2장으로 넘기고 새로이 1장을 덧붙이는데, <이웃집 쌀통>의 1장은 미나네 집 앞에 버려진 무단 쓰레기 때문에 골치 아파하는 모습으로부터 시작하여, 순이네와 동진네가 선거를 앞두고 구청에서 선심성으로 여는 주부퀴즈대회를 준비하자고 미나네를 재촉하는 과정으로 옮겨지고, 마트를 가기 위해 지나가는 동진네를 설득하여 두 팀을 이루는 과정을 보여준다. 처음에 순이네와 동진네는 똑똑하게 보이는 미나네를 자기 짝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적극적이다. 미나네는 비교적 침착하고 순이네와 동진네 사이에서 공정함을 지키려고 노력 한다. 미나네는 순이네와 동진네 중 한 사람을 선택하는 대신, 한 명을 더 보태 두 명씩 두 쌍이 대회에 나간다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것이라 제안하고, 우연히 지나가는 영실네를 붙잡아 퀴즈대회 동참을 권유할 만큼 합리적이고 효율성을 중시한다. 영실네가 승낙하자 순이네는 그 동안 자신과 한 팀이 되자고 채근했던 미나네를 버리고 더 젊고 똑똑할 거라고 여겨지는 영실네를 붙잡는데 이러한 순이네의 모습은 의리보다는 이익에 밝은 사람으로 짐작하게 한다. 영실네는 선거를 앞둔 선심성 주부 퀴즈대회가 불법인지를 묻는데 이런 모습은 영실네의 남다른 정의감을 추측하게 한다.
순이네와 영실네, 동진네와 미나네로 짝이 정해진 후 본격적인 퀴즈대회준비를 시작할 때는 연습인데도 불구하고 상대를 이기기 위해 남의 가정사와 치부를 들추는 것이 문제가 되어 두 팀의 사이가 크게 벌어진다. 처음에는 협력하여 1,2등을 차지하고 상금을 똑같이 네  등분 하자는 계획이었지만 끝내 두 팀은 등을 돌린 채 예선전을 치르게 되고, 예선전에서 두 팀은 모두 실력 부족으로 통과하지 못하여 아무 소득 없이 끝나고 만다. <이웃집 쌀통>의 1장은 <그녀들만 아는 공소시효>의 핵심사건이전의 설정으로, 네 아줌마들의 성격을 자세히 알려주는 프롤로그 성격에 해당하지만 공연 시간으로 볼 때 2장에 버금가는 길이라 다소 부담스럽다. 게다가 코믹이 너무 강조되어 앞으로 전개될 무거운 주제와도 상당히 이질적인 느낌을 주고 있다. 간간이 무대 왼편의 앞 쪽의 폐허 속에서 들리는 고양이 소리와 오르골 소리가 공포의 분위기를 조장하고 버려진 쓰레기 더미에서 불탄 여자 아이의 원피스가 발견된 것이 앞으로의 사건을 예고하고 있다.
초연된 장막극 <이웃집 쌀통>의 2장은 앞서 말한 대로 버려진 쌀통이 등장하는 <그녀들만이 아는 공소시효>의 핵심사건이 그대로 옮겨지는데 2장에서 충격적인 장면은 쌀통 속에서 나온 불에 탄 아이 손가락 다섯 개와 발과 함께 천만 원이 든 돈뭉치가 나오자 순이네는 손가락과 발을 족발이라고 우기고, 동진네 역시 침침한 눈을 탓하며 족발처럼 보인다고 합세하는 것이다. 미나네는 자신들의 행위가 절도죄임을 상기시키지만 세상 사람들 모두 마찬가지라는 것으로 죄의식을 덜어낸다. 결국 세 아줌마들은 유아 살인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아이 발과 손가락, 돈을 네 등분으로 나누는데, 여기서 영실네의 태도가 주목된다. 영실네는 무조건 신고하자고 주장했고, 돈을 나눠 갖는 것에는 더더욱 반대했다. 그러나 미나네가 억지로 돈과 손가락이 든 비닐 봉투를 영실네 가방에 넣으면서 눈 한 번 질끈 감았다 뜨라고 말하고 떠난 후 영실네 혼자 남겨져서는 쌀통에 묻은 자신의 지문을 지우고 쌀통을 치우는 과감한 행동을 보인다. 사건이후 네 명의 아줌마들이 길에서 우연히 마주쳐 어색하지만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이 인사를 나누며 일상으로 다시 돌아가려는 순간, 또 다른 버려진 쌀통이 발견되어 다시 한 번 긴장이 고조되지만 그것이 중국집 배달통이었다는 설정으로 막을 내린다.
5월 중순에 시작된 앵콜 공연은 불과 3일간의 공백을 두고 다시 시작한 공연이지만 배우들이 증원되어 주중에도 2회 공연을 감행하는 모험적인 시도를 하고 있다. <그녀들만이 아는 공소시효>의 핵심 사건이 2장에 그대로 이어지고, 앞뒤에 변화를 주었는데, 초연된 장막극 1장의 길이를 줄이고, 새로이 3장을 추가하는 점에서 주목된다. 1장의 프롤로그에서 이곳이 하수구임을 밝히고, 하수구 구청장의 음성이 라디오 방송을 통해 나오면서 이곳의 상황을 부연 설명하고 있는 점이 달라졌고, 퀴즈 대회 준비 과정을 다소 축약한 점이 달라졌다. 에필로그에 해당하는 3장에서는 순이네(오민애 분)가 전국노래자랑이 자신의 구에서 하게 되었다며 상금을 타기 위해 노래 대회를 준비하자고 제안하고 여러 곡의 노래들을 불러보지만 가사에 등장하는 “손”과 “발”에 걸려 애를 먹는 내용이다. 그러는 중에 영실네(우진식 분)가 유아 토막 살인 사건에 관한 현상금 전단을 들고 나와 자신들이 나눠 갖은 손가락과 발을 신고하자고 하지만, 네 아줌마들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처분했기에 현상금을 포기하는 내용이 삽입된다.
3장의 추가는 확실히 설명적이다. 네 아줌마들이 네 등분한 사체의 일부를 어떻게 처분했는지, 사체 유기와 절도 이후 그들의 일상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설명해 준다. 그러나 그 과정이 앞선 진행과 반복되어 효과적이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우선, 3장의 길이가 짧았음에도 불구하고 전국노래자랑 전단지와 유아 살인 사건에 대한 현상금 전단지가 두 장이나 등장함으로써 1장의 주부퀴즈대회 전단지로 상황을 설정했던 방식을 반복하고 있다. 공포를 유머로 해소하는 방식도 반복되는데, 2장에서 나눠 가진 사체를 국 끓일 때 넣겠다든지, 개라도 있었으면 좋았겠다고 했던 말들을 더 구체화하여 각자 어떻게 처분했는지가 말하게 되는데,  그 처분 방식은 2장에서 나왔던 것의 반복에 불과하다. 2장에서 개가 있으면 개에게 주겠다고 했던 동진네(박무영 분)가 말했던 방식을 순이네가 실행했고, 그 밖에는 다져서 쓰레기 봉투에 넣어 버렸다든지, 믹서에 갈아 버렸다든지, 화분에 주었다든지 등으로 앞서의 유머와 별반 차이가 없다. 가장 불편한 장면은 노래자랑대회에 나가기 위해 노래를 부르며 “손”과 “발”이 등장하는 가사에서 움찔거리며 끝나는 엔딩이다. 이미 3장 초반에 보여준 장면의 반복이라 식상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엔딩은 새로운 쌀통의 등장으로 긴장을 한껏 고조시키다 배달통임이 밝혀지고 끝나는 장막극 초연 때보다 긴장감도 떨어지고 잔상의 여운도 줄게 하였다.    
앵콜극에서 1장을 축약하는 과정에서도 한 가지 문제점이 발견되었다. 장막극 초연의 1장에서 무단 쓰레기 더미에서 미나네(김시정 분) 혼자 불탄 아이의 원피스가 발견할 때는 그것의 등장 앞뒤로 충분한 시간과 내용의 전환이 있어 공포감이 고조되는데, 앵콜극에서는 원피스의 소품은 더 끔찍하고 선명하게 준비되었지만 발견 이후 즉각 아줌마들의 퀴즈 대회 준비가 이어져 공포와 의혹의 강도를 약화시켜 버렸다.  

공포스런 아줌마 유머

장막극으로 확장된 <이웃집 쌀통>의 가장 큰 특징은 공포에 찬 내용을 아줌마들의 유머로 풀어낸다는 점이다. 2장은 평범한 아줌마들이 끔찍한 유아 살해범죄를 은폐하고 범인이 공모를 위해 넣어두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돈을 절취함으로써 또 다른 범죄자로 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 만큼 섬뜩하고 어둡다. 그러나 연출자 선욱현은 이러한 내용을 블랙 유머로 담아내고 있다. 아이의 말라 비틀어진 손가락과 네 등분으로 나눈 발을 담은 봉지를 어떻게 할 거냐는 물음에 저녁거리로 하겠다는 말은 확실히 공포스럽지만 웃음이 터져 나온다. 그러나 그 웃음은 인간성을 상실한 사람들에 대한 지독한 불신과 절망을 담은 웃음이다. 관객은 웃지만 그 웃음은 우리 사회에 대한 또는 나 자신에 대한 불안한 웃음이다. 우리 사회 곳곳에 저런 행태가 있지 않을까, 과연 나는 그러지 않을 수 있을까? 아무리 정의를 지키려 해도 주변의 압력이 세지면 눈 한 번 질끈 감고 묵인할지 모른다는 불안을 웃음으로 내뱉는다.
공포를 웃음으로 변형시킨 연출 장치는 조명과 음향이었다. 다소 반복적이긴 하지만 집중해야할 공포의 지점에서 강한 스포트라이트를 비추었다. 뭔가 공포스런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무대 왼편의 폐허에서 들려오는 고양이 울음과 오르골 소리를 활용했다. 결말에 이를 때가지 왜 오르골 소리가 나는지는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폐허가 된 곳에 무언가 있을 것으로 짐작하게 하고, 그것이 누군지 모를 살인범과 연관 있으리라 추정하게 한다. 그러나 그곳은 실제의 장소라기보다 우리 모두의 무의식 속에 있는 어둠과 악을 은유적으로 말하고 있다고 해도 상관없다. 영실네가 문제의 쌀통을 숨기는 곳도 바로 그 폐허의 언저리이다. 은폐와 악의 장소로 적절히 활용된 지점이다. 음향 효과에 관해 아쉬운 점은 앵콜극에서 고양이 울음 소리가 더 커지고 반복적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이것의 효과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장막극 초연 때처럼 고양이 소리가 작고 은밀할수록 더 깊은 불안과 공포를 자극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무대에 짧게 두 번 등장하는 사나이도 살인의 공포와 연결되며 의심을 증폭시키지만 확실한 답은 주지 않는다. 장막극 초연 때는 두 번 다 검은 헬맷을 쓰고 등장하는데, 앵콜극에서는 처음에는 아이보리 계열의 모자와 잠바, 면바지를 입고 쌀통 발견 직전에 등장하고 마지막에 배달원의 신원으로는 검은 핼맷을 쓰고 등장한다. 남자의 의상이 한 번 바뀐 것인데, 의상 변화에 대해서는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검은 핼맷의 반복적 의상은 범인이 바로 배달원이라는 추정을 하게 하는데 그것이 이 작품이 의도한 바는 아니기 때문이다. 반면 앵콜극에 등장한 아이보리 의상의 남자는 여전히 미스테리로 남는데 그러한 미지의 범인이 이 작품의 불안을 더욱 증폭시키는 효과를 준다.  
그러나 앵콜극에서 생겨난 한 가지 수수께끼는 3장에 등장하는 현상금 전단지의 범인이 여자라는 것이다. 관객은 앞서 사건 직전에 이 동네를 은밀히 지나친 아이보리계열의 남자가 범인일 것이라고 추정하지만 전단지에 나타난 범인이 여자라고 하니, 전단지가 잘못된 것인지, 범죄에 연루된 인물이 여럿이라는 것인지를 궁금하게 하면서 앞서의 아이보리 의상의 남자가 더 의문으로 남게 한다. 반면 전단지의 범인을 여자로 둔 설정은 아마도 네 명의 아줌마들이 2장에서처럼 잘 모르는 이웃을 범인으로 지목하는 것을 너머 서로를 의심하게 하는 장치로 생각된다. 그러나 이는 긴장감이 전혀 없는 장면이다. 관객의 입장에서는 2장의 전개로 볼 때 결코 범인이 될 수 없는 네 아줌마들을 공연히 의심해 보는 것으로 지루하게 시간을 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네 아줌마들이 추정하는 살해범이 확대되고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장막극 초연 때는 이웃에 살고 있는 불특정 다수였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수정이 엄마, 가게의 친절한 아저씨, 남편에게 불평 많은 세탁소 여주인 등등을 꼽아 보지만 모두 잘못된 추정이었다는 것이 이내 밝혀진다. 이웃 중 중 누구도 확실한 범인으로 지목되지 않지만 끝까지 범인을 밝히지 않기 때문에 더 공포스럽다. 누군가 살해 되었고, 시체를 유기한 범인은 있지만, 신고를 포기했기 때문에 찜찜한 결말이다. 앵콜극에서는 전단지의 범인 여자 모습을 단서로 매니큐어, 헤어스타일 등등의 유사점을 들어 네 명의 아줌마들 모두가 한번 씩 의심받게 되는데, 이는 그들 자신이 신고하는 대신 절도를 행한 사건의 공모자로서 서로를 더 불신하게 되는 징후이다.

악의 평범성

<이웃집 쌀통>을 통해 확인한 것은 ‘악의 평범성’이다. 악을 저지르는 사람이 우리와 다른 특별한 괴물이 아닐지도 모른다. 심지어 악마적인 동기조차 필수적인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나치 친위대 중령이자 유대인 이주국 담당자였던 칼 아돌프 아이히만(Karl Adolf Eichmann, 1906-1962)의 재판에 참관한 독일계 유대인 철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1975)는 그에게서 아무런 근본악을 찾지 못했고, 오히려 너무도 평범하고 정상적이었다고 보고했다. 이스라엘에서 행한 전범자의 재판을 관찰하고 얻은 결론이 ‘악의 평범성’인 셈이다. 한나 아렌트는 「사유와 도덕적 고려들」(1971년)이라는 논문에서 사악한 행동을 하는 자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인격적 특징이란 특별한 천박성일 뿐이라고 한다. 그 행위가 아무리 괴물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그 악을 행한 자는 괴물적이지도 악마적이지도 않고, 다만 사유를 하지 못하는 전적으로 진정한 무능한 것 뿐이다.
<이웃집 쌀통>의 아줌마들도 너무도 평범하고 정상적인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조금 넉넉하지 못한 형편이었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살인 사건을 신고하면 집값이 떨어질 것이라는  걱정을 할 만큼 자기 집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사실 악한 행동을 감행하는 데는 경제 형편이 문제되지 않는다. 신문에서 보듯 부유한 아줌마들은 명품 호피코트나 보석을 두고, 값비싼 유명 화가의 그림을 두고, 더 교묘히 악행을 저지르기 때문이다. 처음에 ‘그깟’ 이백 오십만 원에 흔들리지 않을 것으로 말했던 미나네조차 시간이 지나면서 딸의 성형수술을 위해 가담하는 것으로 보면 갖가지 이유로 누구나 악의 공모자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준다. 결국 사유하기를 멈추고, 반성하기를 멈추고 나의 이익을 위해 눈 한 번 질끈 감았다 뜨면 누구라도 예외 없다. 그래서 공포스럽다. 악은 내 가까이, 심지어 내 안에 늘 우리의 사유가 졸고 있는 틈을 노리고 있다.
   
<이웃집 쌀통>은 현실의 불안과 공포를 아줌마의 수다와 유머로 풀어낸다. 그 불안과 공포 속에 존재하는 악의 존재가 가까운 이웃일 수 있고, 심지어 누구라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악에 공모하고 협력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매우 불편한 작품이다. 그러나 불편함이 전부는 아니다. 능수능란한 연출 덕에 불안과 공포를 웃음으로 털어내게 하지만 자기 자신만 알고 있는 내면의 검은 그림자는 더 훤히 비추게 하는 블랙 유머의 힘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마술적 리얼리즘 연극의 힘 <푸르른 날에>

                                                                                                                     <뷰즈 수록>

                                                                 박연숙(철학박사/ 숭실대 교수feelogo@naver.com)
일시 2011. 5. 10 - 5. 29
장소 남산예술센터
원작 정경진
각색 ˙ 연출 고선웅
무대디자인 이윤수
조명디자인 장영섭
출연 김학선 정재은 이명행 양영미 박윤희 조영규 최광희 외.
관람일자 5. 26/ 5. 28

                                                         

1. 그것도 다 연극이었을 뿐이다.

무대 1층에는 암자로 설정된 공간에서 스님이 불공에 정진하고 있고 2층에는 중년 여인이 남자 두루마기를 짓고 있다. 청첩장을 들고 암자로 찾아온 한 남자는 우스꽝스런 몸짓으로 스님에게 다가가 스님의 불공을 방해한다. 스님은 불공을 멈추고 차를 마련하기 위해 아이를 불러 놓고는 남자에게 아이를 소개하며 잡일을 하며 ‘연극’을 할 거라고 한다. 이처럼 이 작품은 처음부터 관객에게 ‘지금’, 여기 ‘무대’에서 ‘연극’ 같은 인생 이야기를 보게 될 거라고 말해 준다. 그 이야기가 2층의 여인에 관한 것이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청첩장의 주인공은 스님과 여인 사이에서 태어난 딸 운화(최광희 분)이다. 스님의 법명은 여산(김학선 분), 속세 이름은 오민호(이명행 분)이고, 여인은 서울에서 찻집을 운영하는 정혜(정재은 분)이다. 31년 전 이들은 연인이었지만 1980년 5월 광주에서 있었던 참혹한 사건으로 인해 영영 남남이 된 사이이다. 관객은 현재의 이들과 1980년 5월, 푸르른 날의 두 젊은 연인의 이야기를 연극으로 보면서 그들 인생의 관객이 된다.
 
부모 없는 정혜에게 혈육이라고는 동생 기준(조영규 분) 하나 뿐이고, 부모 없는 민호 또한 배다른 형 진호(박윤희 분)만이 혈육이다. 31년 전 대학생 기준과 민호는 자취하는 선후배이고, 민호와 정혜(양영미 분)는 연인이며 진호는 정혜를 흠모하고 있었다. 학생운동과 거리가 먼 민호였지만 상황은 점자 민주항쟁의 중심으로 그를 몰아갔다. 야학으로 알고 지낸 고등학생이 계엄군의 곤봉에 맞아 죽고, 기준이 민주 항쟁에 나서자 민호 역시 얼떨결에 민주항쟁의 현장인 전남도청에 들어가게 되었다. 처음에는 기준을 설득하여 빠져 나오려 했으나 기준은 죽고 민호는 투항한다. 이후 민호는 고문의 후유증과 기준에 대한 죄책감으로 오랜 시간 제정신을 잃고 지내다 스님의 도움으로 출가하여 살아갈 길을 찾게 되고, 정혜는 진호의 도움으로 민호의 아이를 낳고 부부가 되어 살다 과부가 된 것이다.  

이 작품은 민주 항쟁에 대한 다큐멘터리나 역사적 진실을 밝히는 연극이 아니다. 그래서 계엄군의 등장이나 시민들의 학살에 대해서는 중요한 것조차 설명하지 않고 생략한다. 그러니 이 작품은 광주민주항쟁에 대한 연극이라고 할 수 없다. 중요한 전개는 학생운동과 거리가 먼 대학생 오민호의 인생 여정이다. 역사적 사건은 일어났지만, 그 사건의 원인이나 의의, 결과 보다는 그 사건으로 인해 어떻게 한 사람의 인생이 달라졌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리고 그 영향력이 31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현재하고 있다고 말해준다.

오늘의 관객에게 광주민주항쟁은 아련하게만 기억된다. 보도를 통한 왜곡 탓에 사건에 대한 기억조차 정확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 역사적 사건으로 인한 누군가의 인생 이야기가 관객의 가슴 깊이 스며들수록 관객은 그 사건에 더 이상 무관심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이 작품은 광주민주항쟁에 대해 직접적으로 설명하지는 않지만 그 역사적 현장으로 안내하는 작품이며, 동시에, 개인이 역사로부터 결코 독립적일 수 없고, 현재가 과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2. 마술적 사실주의가 주는 위로

<푸르른 날에>는 제 3회 차범석 희곡상 수상작인 정경진 작가의 작품이지만 고선웅의 각색과 연출로 매우 독특한 스타일과 형식을 띠고 있다. 그래서 재밌다. 광주민중항쟁이라는 무거운 소재였지만 연극적 유희로 풀어냈기에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과 공감을 끌어낸 것이다. 고선웅의 마술적 사실주의의 힘이 다시 한 번 확인된 셈이다. 그의 마술적 사실주의는 환상적인 내용의 문제라기보다 극형식을 푸는 방식에 대한 모토이다. 그래서 과거와 현재, 사실과 바람이 최적의 비율로 교차되면서 ‘싱싱한 감수성’이 생겨난다.

마술적 사실주의가 돋보인 설정은 중년의 여산과 정혜, 푸르른 날의 민호와 정혜가 무대에 동시에 등장하여 현실과 과거, 실제와 의식을 수시로 오가게 하는 점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장면은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회고하며 네 명의 배우가 한 자리에 모여 함께 대화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 이외에는 현재의 여산과 정혜, 과거의 민호와 정혜가 분리되지만, 바로 이 한 장면에서는 서로의 대사를 이어서 하기도 하고 동시에 하기도 한다. 특히 여산이 민호를, 중년의 정혜가 젊은 정혜를 손잡고 쓰다듬고 안아주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이 장면은 현재의 자기가 과거의 자기를 위로하며 오랜 상처를 스스로 달래는 모습이라 애틋하다.  

특히 3중 구조로 된 마지막 무대는 마술적 사실주의로 표현된 아름다운 장면이다. 무대 전면에는 여산이 딸 운화의 결혼식 동안에 입은 두루마기를 벗어 정혜에게 건네며 조용히 마주하고 있고, 이어서 후면에 운화의 결혼을 축하하는 하객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런데 그 하객들은 31년 전 광주의 사람들이다. 그들의 차림은 시민군이었을 때 그대로이지만 매우 기쁜 표정이다. 역동적인 움직임으로 사진을 찍으며 환호하는 그들을 뒤로하고 홀연히 민호와 젊은 정혜가 사랑스런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로써 무대 1층에서만 3중 구조를 갖게 된 셈이다. 무대 전면은 현재, 중간은 과거, 후면은 과거와 현재의 만남이다. 이내 딸 운화의 웨딩 티아라(tiara)가 민호의 손에 건네지고, 민호가 그것을 정혜의 머리 위에 올려놓는다. 31년 넘게 아물지 못한 상처가 치유되고, 이루지 못한 소원이 풀어지는 순간이다. 마술적 사실주의로 표현된 이 절정의 장면에서 연극이 가진 치유의 힘을 확인할 수 있다. 하얀 티아라를 쓴 정혜의 모습은 과거에도 이루어지지 못했고, 현재에도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연극을 통해 여산이 과거의 자신을 용서하고 화해하였기에, 그의 의식 속 민호도 푸르른 날의 정혜를 신부로 맞이할 수 있다.

3. 절제가 과잉보다 더 강하다.

<푸르른 날에>는 광주민주항쟁을 시로써 말해준다. 김지하의 ‘푸른 옷’ 김남주의 ‘학살2’와 ‘진혼가’가 낭송되는데, 특히 16명의 배우들이 토하듯 절규하는 ‘학살2’는 총구로 내려치는 어떤 영상이나 연기보다 더 강렬했다. “오월 어느 날이었다. 80년 5월 어느 날이었다. 광주 80년 5월 어느 날이었다. 밤 12시 나는 보았다. 경찰이 전투경찰로 교체되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로 시작하여 50행이 넘는 시를 어둠과 안개 속에서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읊는데 그것이 주는 전율은 망각된 과거를 현재로 불러 오기에 충분했다. 자칫 영상으로 쉽게 처리하거나 과잉된 감정으로 연기하기 쉬운 장면이었으나 절제된 시로 표현했기에 더 인상적이다. 민호가 고문으로부터 풀려나 개처럼 생명을 구걸했던 자신을 떠올리며 혼자 낭송하는 ‘진혼가’ 역시 비겁자에 대한 동정과 연민을 절제된 시로 표현한 장면이었다. “총구가 나의 머리숲을 헤치는 순간 나의 양심은 혀가 되었다. 허공에서 헐떡거렸다. 똥개가 되라면 기꺼이 똥개가 되어.....” 세 편의 시는 자칫 신파 연애극으로 끝날 수 있는 요소를 차단하고 광주민주항쟁의 역사성과 그 시대의 아픔을 진지하게 보여준 장치이다.  

이 작품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된 음악은 시민군의 군무와 함께 연주 된 핑크플로이드의 ‘Another brick in the wall’이다. 저항과 도전 정신이 담긴 가사가 잘 어울렸다. 그런데 이 작품의 한 특징은 시든 음악이든 작품에 대한 소개를 하고 있는 점이다. 이 음악이 연주될 때는 메가폰을 잡은 소녀가 계엄군이 쳐들어오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다급한 상황이었는데, 말 끝머리에 “참고로 배경으로 흐르는 음악은 79년에 전 세계를 강타했던....”이라고 소개한다. 이러한 개입이 관객의 감정 이입을 차단하며 관객의 사고를 이끄는 장치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푸르른 날에>를 장식하는 최대의 곡은 서정주의 시에 곡을 붙인 송창식의 ‘푸르른 날’이다. 여산이 딸 운화와 만나 마주하여 차를 마시는 장면에서 운화가 차 맛이 좋다고 말 할 때 이 곡이 울려 퍼지는데, 긴장이 풀리는 이때 마침 암전 효과까지 더하여 관객은 엔딩이라는 생각에 박수를 치게 된다. 사실, 이 부분이 엔딩이었어도 좋았다는 생각을 한다. 감정적으로도 매우 충만할 부분이고 그 이후의 일어날 일을 관객들이 마음껏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목에 맞는 곡인데다 가사 하나 하나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엔딩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시 조명이 밝아지고 두루마기를 걸친 여산이 정혜와 마주하는 장면이 이어진다. 이후 운화의 손을 잡고 식을 올리고 다시 정혜와 마주하며 무대 전면으로 빠지게 되고, 이후 운화와 하객, 민호와 푸르른 날의 정혜가 마주하는 앞서 말한 3중 구조의 장면이 길게
이어진다. 이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곡은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오월의 노래’이다. “봄볕 내리는 날/ 뜨거운 바람 부는 날/ 붉은 꽃잎 져 흩어지고 꽃향기 머무는 날/ 묘비 없는 죽음에 커다란 이름 드리오./ 여기 죽지 않은 목숨에 이 노래 드리오.......”가 차분하게 흐르고 무대 후면에서 하얀 꽃잎이 휘날리며 막이 내린다. 이 마지막 장면은 앞서 말한 대로 마술적 사실주의의 정수라는 점에서는 훌륭하다. 그러나 여산과 정혜의 대사가 오갈 때 이미 긴장이 풀어진 관객이 참아내기에는 길고 지루한 휴지(pause)가 있다. 그 휴지가 어떤 효과를 주는지는 의문이다. 앞서 ‘푸르른 날은’에서 터져 나온 감정을 추스르게 하는 효과는 있겠지만 뜨거운 감정으로 관객을 열광시키게 하는 데는 역효과를 주는 것 같다.

그 밖에도 이 작품에는 진호가 민호에게 불러주는 남진의 ‘마음이 고아야 여자지’와 기준과 민호가 함께 부르는 김소월의 시 김영조 작곡의  ‘엄마야 누나야’가 등장한다. 남진의 노래는 진호가 기타를 치고 시중드는 아이가 춤까지 춰가며 거나하게 전곡을 다 불렀는데 관객을 이완시켜 주는 효과를 냈다. 반면 ‘엄마야 누나야’는 두 번 부르고 하모니카 연주가 한 번 더 나오는데, 두 번째는 민호가 혼자 부를 때는 기준이 죽은 후 정신 나간 상태에서 정혜 앞에서 부르는 것으로 민호의 죄책감과 함께 민호를 바라보는 정혜의 안타까움을 느끼게 해 적절했다. 이후 하모니카의 연주도 애절함을 담아내고 있어 효과적이었다.

반면 시민군1이 부르는 남일해의 ‘빨간구두 아가씨’는 다소 어색했다. 항쟁이 시작되기 전 천정에 있던 크고 육중한 무대 장치가 무대 중앙으로 내려오고 밑으로 영상 글자가 투사되었지만 금방 사라져 글자를 알아 볼 수 없었고, 그 장치 위로 시민군1이 무대 장치 위를 걸어가면서 이 곡을 부르는데 노래가 끝나고 나서는 바로 장치가 다시 천정으로 올라가 그 장치의 효과가 의문스러웠다. 특히, 노래가사나 분위기도 적절하지 않아 어색했다. 제대로 활용되지 못한 무대장치였고 노래였다. 절제가 과잉보다 강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는 장면이다.

이 작품에 수시로 등장하면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하는 인물은 민호가 방황할 때 만나 여산이라는 법명을 지어 준 일정스님(이영석)이다. 그는 이미 수년 전에 입적한 혼령이지만 여산의 번민 중에 나타나 여산을 꾸중하는데, 이 꾸중의 내용에 일반인이 이해하기에 다소 어려운 내용이 포함되어 있고 말의 분량도 많았다. 이는 작가가 이 작품을 구도(求道)와 다도(茶道)를 통해 풀어내려 했던 의도에서 나온 것이라 짐작된다. 그렇다면 전달에 있어 좀 더 세심한 배려가 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든다. 배우의 목소리와 발성에 조정이 필요했고, 객석과 등을 지고 발화할 때 잘 전달되지 않는 점도 개선되어야 한다. 대사 분량 역시 배우의 연령과 호흡에 맞게 조정하는 방법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 작품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던 부분은 민호가 고문실에서 풀려난 직후의 장면이다.  여러 대의 북소리로 무대가 고조되고 천정에서 바닥까지 내려오는 거대한 천 그림 앞에 민호가 서 있고, 여산이 그 앞으로 뛰어 나오면서 자기가 야차였다고 말하는 장면이다. 그림이 순식간에 천장에서 떨어지면서 “추악한 탈을 쓴 야차”라고 여산이 말하는 것으로 야차의 존재를 어렴풋이나마 짐작하게 되지만 거대한 천 그림의 효과나 장엄한 북소리에 비해 그 의미가 관객에게 잘 전달되지 않아 아쉬웠다. 무대의 효과나 음향으로 보아 매우 중요한 장면으로 연출한 것이었으나 그 의미가 전달되지 않아 곤욕스러웠다.

4. 이 연극의 힘

<푸르른 날에>는 연극적 요소를 잘 살린 작품이다. 아이는 처음에 여산이 말한 대로 무대 위의 이야기가 연극임을 확실히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진호가 “기타”를 외치면 아이는 기타를 가져오고, 민호가 “술”하고 외치면 아이는 술을 가져온다. 사랑에 얽힌 남녀의 행동에도 신파적 요소가 가미되어 있어 극적 요소를 확실히 했다. 그러나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과장된 행동을 하지 않은 인물로는 혼백인 일정스님과 광주의 시민군들이다. 과잉 연기를 하는 역과 그렇지 않은 역의 기준이 궁금하다. 같은 인물도 과장된 연기에서 그렇지 않은 연기로 변화하다. 첫 부분의 여산과 정혜가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는 과장된 행동을 하는 반면, 실제로 마주하는 마지막 장면의 여산과 정혜는 매우 조심스럽고 차분하다. 첫 장면의 대화가 실제의 사건은 아닐 것이다. 정혜가 서울에 있고, 여산은 보성에 있으니 우선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둘의 의식 세계에서 만나는 것이고 어차피 앞으로의 진행이 연극이라고 하였으니 그들의 과장에는 이유가 있다. 그런데 점점 과장이 줄고 진지해지면서 마지막 장면에서는 지나칠 정도의 엄숙함을 유지한다. 이러한 변화는 연극의 유희가 결국에는 현실에 맞닿아 있으며, 그것이 현실의 엄연한 진실로 녹아들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셈이다.

이 작품은 자칫 과잉으로 넘쳐날 수 있는 연극이었지만 절제를 잘 살려냈다. 광주민주항쟁이라는 역사적 사건과 다섯 명의 안타까운 남녀 배우, 세 편의 장대한 시와 다섯 곡의 노래, 다도와 구도, 불상의 이미지와 뻐꾸기의 은유 등으로 넘쳐났지만 조화롭게 잘 다룬 점에서 놀랍다. 그리고 반갑다. 그 역사적 사건에 무관심했던 나의 눈과 귀를 깨우쳐 준 점에서. 그것도 크게 위로해주면서.

1)고선웅은 자신의 마술적 리얼리즘을 남미 소설가들의 경향과 구분한다. 즉 말도 안 되는 것을 마치 실제로 일어난 것처럼 표현하는 마술적 리얼리즘이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아무도 그것을 판단 할 수 없지 않은가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한다. 『공연과 이론』2006년 봄호, “인간탐구를 넘어서 마술적 리얼리즘으로”와 『공연과 이론』2009년 여름호,“<들소의 달>을 띄우기까지”참고.

 

제3회 현대극페스티발 극단 노을 <고도를 기다리며> 극단 창파 <나는 아니야>

극단 TNT <크라프의 마지막 테이프>를 보고

                                                                           
                                                                          한국희곡창작워크숍 대표 박정기(朴精機)
극단 노을, 창파, TNT
작가 사무엘 베케트
번역 오세곤, 이원기, 이지훈
연출 오세곤, 정대용, 변영후, 이지훈
공연기간 5월3일-10일
공연장소 대학로 노을소극장
관람일시 5월10일 15시-20시


대학로 노을소극장에서 제3회 현대극페스티발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나는 아니야> <크라프의 마지막 테이프>를 관람했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극단 노을의 오세곤 역/연출 정대용 협력연출로 공연했고, <나는 아니야>는 극단 창파에서 이원기 역 변영후 연출로, <크라프의 마지막 테이프>는 극단 TNT에서 이지훈 역/연출로 공연을 했다.
사무엘 베케트(1906-1989)는 아일랜드계 영국인 작가다.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는, 프랑스의 드골 장군이 국외로 도망을 하고, 프랑스가 나치 독일의 지배를 받게 되니, 보클루주에 숨어 지내던 베케트가 프랑스의 해방과 드골의 귀국 그리고 자유를 갈망하며 쓴 희곡이다. 작품의 등장인물인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처럼 대다수의 프랑스 국민이, 나치독일의 지배 하에서 속수무책으로 막연하게 기다리기만 하던 자유와 해방과 평화의 갈망을 희곡에 반영한 것으로, 프랑스 국민이 직접 용기를 내어 앞장서 나아가 해결하려 들지 않고, 고도를 기다리듯 해방과 평화가 찾아 올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는 모습을 빗대어 묘사한 것으로, 마치 이 연극에서 폭압적인 지배자 포조에게, 노예처럼 이끌려 다니는 럭키의 모습처럼, 럭키가 장문의 대사를 읊어댈 능력과 발군의 암기력을 갖춘 지성의 소유자이지만, 노예의 신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프랑스의 지성들과 식자들의 용기 없고 비굴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희곡이다.
나치독일의 지배 하에서 프랑스 지성들의 자아상실과 희망을 잃은 존재로 실존주의만 부르짖는 모습에, 사무엘 베케트는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몽둥이를 휘둘러, 정신을 차리게끔 프랑스 지성인들의 머리에 충격을 가한 장한희곡으로 평가되어 1967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 된다.
극단 노을의 오세곤 역/연출의 <고도를 기다리며>는 원작의 의도를 충분히 살리면서 무용까지 곁들여 예술성을 높였고, 협력연출을 한 정대용이 블라디미르를 맡아 좋은 연기를 보였다. 정대용, 한기민, 황지우, 윤대홍, 한정원의 호연과 민들레, 윤정진, 한국화, 강다운, 박소현, 정초희의 무용이 오세곤 교수의 연출력과 합하여 독특하고 색다른 <고도를 기다리며>를 창출시켰다.
극단 창파의 이원기 역 변영후 연출의 <나는 아니야>는 사무엘 베케트의 원작을 한 단계 뛰어넘는 연출력으로 연극의 도입부터 관객을 단숨에 극 속으로 몰입시켰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부터 무대 왼쪽 객석 가까이로, 붉은 융단 옷을 입은 미모와 관능미까지 갖춘 여인이 붉은 색 안락의자에 기대앉아 잠이 든 듯 꼼짝 않고 있고, 사무엘 베케트가 젊었던 시절 빠리에서 유행하던 대중가요가 흘러나오면서 다섯 명의 남성 출연자들이 흰색 와이셔츠와 검은 색 바지를 입고, 춤추듯 등장해 각자 의자에 앉기도 하고, 가운데에 놓인 좌변기에 앉기도 하면서 별의별 동작을 다하기 시작한다. 백색 슈미즈만 입은 긴 머릿결의 여인이 등장하면, 붉은 옷 여인의 대사가 시작되는데, 무슨 소리인지 명확히 전달되지는 않으나, 마지막 대사가 <나는 아니야>로 끝나는 것으로 보아 자기 부정의 소리인 듯싶다. 남성들은 한결같이 입술에 붉은 색 루즈를 칠했고, 의자를 들고 회전을 하거나, 바지를 내리고 변기에 앉거나, 무대바닥에 앉아서 각자 무언극을 펼치는데, 전체가 조화를 이루기도 하고, 깨뜨리기도 하면서, 땀투성이가 되도록 몸을 움직인다. 붉은 옷 여인은 허벅다리를 노출한 채 요염한 자세로 가랑이를 벌리고 앉아 조잘거리다가 웃으면서 <나는 아니야> 소리를 되풀이 하고, 백색 슈미즈의 여인은 갈구하듯 손을 벌리고 눈물까지 글썽이는가 하면, 남자들은 여자주위를 맴돈다. 백색옷의 여인은 입술연지를 양 손등으로 지우기 시작하고, 그것이 한동안 지속되면서 남성들도 자신들의 입술연지를 손등으로 지우는 동작이 계속된다.
대단원에서 붉은 색 옷 여인이 <나는 아니야> 소리를 마친 후 안락의자에서 일어나 흰색 여인에게 다가가고, 두 사람이 한동안 바라보다가 자리를 바꾸어 흰색 옷 여인이 안락의자에 앉으면 3, 40년대 빠리에서 유행한 <에디뜨 삐아프>의 <라비앙 로즈> 가 흘러나오면서 연극이 끝이 난다.
붉은 색 옷의 여인에 전순일, 흰색 옷 여인으로 김한아가 출연을 해 열연을 했고, 김혁종, 이경준, 구본진, 김관규, 한동준 등 남성출연자들의 열연과 한형민의 음향, 김태성의 소품이 변형우의 연출력과 조화를 이루어 사무엘 베케트의 원작을 능가하는 <나는 아니야>로 만들어 냈다.
마지막으로 극단 TNT의 이지훈 역/연출의 <크라프의 마지막 테이프>는 2010년 서울연극올림픽 개막작으로 미국연극인 로버트 윌슨이 연출과 미술, 그리고 출연까지 해, 화제가 되었던 작품이다.
70세의 작가가 40세 때 자신이 녹음한 테이프를 틀고 바나나를 먹으며 옛 여인과의 정사장면을 회상하고, 그 장면만을 되풀이 해 들으면서 바나나를 계속 먹어대고, 나중에는 객석에 맡겨놓은 바나나까지 다시 찾는 모습에서 사무엘 베케트라기보다는 오히려 필자 자신의 모습처럼 느껴지는 <크라프의 마지막 테이프>였다.
해설자로 나온 권남희의 뛰어난 연기와 미모를 10여년 만에 접할 수 있었고, 김준삼의 호연은 사무엘 베케트보다 더 베케트다운 모습이었고, 비비람소리를 효과음으로 제대로 살려낸 양용준과 정경희의 음향, 극적분위기를 한껏 돋운 남종우와 채의성의 조명과 영상, 그리고 김희재의 적절한 무대미술이 이지훈 교수의 품격 높은 연출력과 혼연일체(渾然一體)를 이루어 <크라프의 마지막 테이프>를 본고장 연극보다 앞선 형태로 구현해 냈다.
현대극페스티발의 발전적 향상에 칭찬과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극단 작은 신화의 김원 작 신동인 연출의 <만선>을 보고


                                                                          한국희곡창작워크숍 대표 박정기(朴精機)
공연명  만선
극단 작은 신화
작 김원
연출 신동인
공연기간 5월12일-15일
공연장소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관람일시 5월15일 15시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극단 작은 신화의 서울연극제 참가작 김원 작 신동인 연출의 <만선>을 관람했다.
2009년 11월에 대학로 정보소극장에서 극단 작은 신화의 이시원 작 신동인 연출의 <천국에서의 마지막> 계절을 보았다. 무능한 아버지에 의해 야기된 가정경제의 파탄과, 속수무책으로 정신공황증과 난청증세와 대인기피증에 빠져 화장실 변기덮개에 성냥개비만 쌓으며 허송생활을 하는 아버지, 거액의 대가를 받는 대리모를 해서라도 채무를 변제해 보려는 어머니, 성매매를 해서라도 절대 위기를 극복해 보려는 큰 딸과 교내 수석의 우수학생이지만, 학업을 포기하고 인터넷 자살동호회에 치명적 약품광고를 내서 그 의약품 판매로 가정의 경제난을 해결해 보려는 아들, 미성년이지만 자신도 문제해결의 힘이 되어보려는 옹골찬 막내에 이르기까지, <천국에서의 마지막 계절>이 아닌, <지옥에서의 마지막 계절>을 보내는 가족 간의 사랑과 갈등이 무대 위에 펼쳐진 연극이었다. 아버지 역의 장용철과 어머니 역의 홍성경의 열연이 돋보였고, 큰딸 역의 송윤과 아들 역의 오현우와 막내 역의 박소연 그리고 여인 역의 최복희의 호연이 관객모두에게 감동을 불러일으킨 것으로 필자는 기억한다
연극 김원의 <만선>은 천승세의 만선과는 전혀 다른 작품이다. 바다 위를 떠다니는 보트피플(boat people)이야기인데, 보트피플은 살기위해 조국을 떠난 사람들이고, <만선>은 그와는 반대로 죽으려고 뭍을 떠난 가족들의 이야기다.
연극이 시작되기 전부터 무대중앙에 떠있는 뗏마(작은 전마선) 위에는 너덧 사람의 남녀와 각자 움직이는 모습이 보인다.
연극이 시작되면 이들의 주고받는 대화를 통해 한 가족임이 알려지고, 아버지는 팔다리가 하나씩 없는 장애인이고, 어머니는 예수를 믿는 것 이외에는 기댈 곳이 없고, 할아버지는 치매로 의식불능상태이고, 아들은 비리공무원으로 감옥으로 들어갈 처지이고, 막내인 딸은 책을 읽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일을 할 수 없는 척수장애자임을 알게 된다. 가족은 극심한 생활고와 가족 간의 갈등으로 동반자살을 하기로 결심하고, 뗏마를 타고 바다 한가운데로 나온 거라는 사실도 알게 된다.
도입에 저마다 용변을 먼저 보려는 다툼이 전개되고, 변소 열쇠가 없어진 것을 알아차리고, 열쇠를 찾기 위한 탐색이 시작되면서 관객은 이들 가족이 서로 밧줄로 묶여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술병을 늘 들고 술을 들이키며 욕설이 입에 붙어있는 아버지, 어머니가 싸가지고 온 상한 음식을 먹어보고, 구토를 일으키며 욕을 바가지로 퍼 붙는 아버지의 모습과는 대조를 이루어 조용히 바다만 바라보는 할아버지, 툭하면 성경책을 펴들고 기도를 하라며 권하는 어머니, 더욱 요란스럽게 지체장애 몸 덩이를 흔들며 불만을 터뜨리는 딸, 이런 가족들의 행태에 치를 떠는 아들의 모습에서 관객은 이들 가족의 동반자살결심에 공감대가 형성되기 시작한다.
돌연 확성기의 음성과 함께 방송취재선이 다가오고, 여성방송인이 뗏마 위에서의 가족의 일상을 취재 촬영하겠노라고 접근한다.
극 속에서는 미모의 여성이 변소의 천정 위로 불쑥 몸을 일으키는 것으로 처리된다.
가족들은 일순 당황하고 혼란을 일으키지만 아들이 거절하니, 방송취재는 무위로 끝이 난다.
아버지는 가족들에게 자살하기 전에 가슴에 묻어두었던 이야기를 털어버리자고 제의를 한다. 그러면서 아버지는 사고를 당했을 당시 피해보상금을 타서 경마로 날렸음을 고백한다. 아버지에 대한 가족의 항의와 어머니의 저주는 극에 달한다. 아들은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무자비한 폭력에 앙심을 품고, 시도 때도 없이 닥치는 대로 도둑질을 한 일화를 털어놓는다. 아버지의 분노가 격렬해 진다. 딸은 어머니와 함께 찾은 교회목사가, 어머니가 자리를 뜨기만 하면, 자신의 몸을 구석구석까지 손을 디밀고 쓰다듬는 추행으로, 모멸감을 느꼈다는 이야기와 작가가 되고 싶었다는 이야기를 떠듬거리며 고백한다. 딸의 소리를 듣고, 위선자인 교회목사를 저주하며, 딸에 대한 미안함과 후회로 어머니의 북받치는 한은 하늘을 찌른다.
딸은 이러한 가족들에게 동반자살보다는, 죽기를 결심한 심정과 마찬가지로 가족들에게 다시 열심히 살아보자고 권한다.
일순간의 동요가 가족들에게 찾아온다. 객석에서도 딸과 같은 심정으로 이들 가족을 바라본다.
아버지는 자신의 보잘 것 없던 총각시절에 어머니를 집식구들에게 결혼상대자로 소개하며 자랑스러웠던 심정과 새신부가 아들을 출산하자 여보란 듯 가슴을 펴고 세상을 활보했던 시절의 이야기를 울부짖듯 펼쳐, 객석을 눈물바다로 만든다.
그러나 뗏마까지 도둑질을 해 가족들을 태우고 바다로 떠나온 아들로서는 다시 돌이켜 살아간다는 것이 죽음보다도 어렵다는 것을 알고, 동생인 척수장애자를 물에 던져 넣고 자신도 바다로 뛰어든다. 어머니가 그 뒤를 따르고, 할아버지도 결국 사지로 보내진다. 마지막 남은 아버지가 죽기를 결심하듯 가족을 살리겠노라고 밧줄을 온힘을 다해 끌어당긴다.
그러나 끌어 올려 져 관객 눈앞에 들어난 것은 집채만 한 해파리뿐이었다.
이 연극은 필자를 비롯한 관객 모두에게 가족을 되돌아보고, 잘못된 삶을 반성하도록 만드는 천둥벼락 같은 충격과 전율을 던져준 공연이었다.
장용철의 빼어난 연기와 이연희의 놀라운 척수장애여인역의 연기가 송현서, 최지훈, 정선철, 전유경의 열연과 혼연일체(渾然一體)가 되고, 유영봉의 무대, 최보윤과 송인서의 조명, 김철환의 작곡, 이유선과 김가희의 의상, 오충섭의 움직임, 송영옥의 분장, 김주희의 조연출, 홍승만의 무대감독, 김다정의 음향이 비범한 연출가 신동인의 열정과 조화를 이루어, 김원의 <만선>을 걸출한 연극이자 한편의 문제작으로 제시했다.
극단 작은신화의 창단25주년을 축하하고, 차기작을 기대한다.

 

극단 디딤돌의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 원작 최종률 번역/연출의

<사흘동안>을 보고

                                                                           한국희곡창작워크숍 대표 박정기(朴精機)
공연명 사흘동안
극단 디딤돌
작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
번역/연출 최종률
공연기간 5월1일-29일
공연장소 동숭동 문화공간 엘림홀
관람일시 5월26일 20시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August Strindberg, 1849년 ~ 1912년)는 스웨덴의 극작가이자 소설가이다. 강렬한 개성을 지니고, 세기 말의 모순과 격동으로 번뇌하는 인간상을 작품에 그렸다.
스트린드베리는 스톡홀름의 몰락한 상인과 하녀와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항상 사랑의 결핍으로 고뇌하면서 아름다움과 지고지순한 사랑을 동경하고, 사랑을 찾아 방황했다. 그는 9세에 첫사랑을 경험하고, 15세에는 30세의 여인을 사랑하였으며, 세 번 결혼에 실패하고 59세 때 19세의 아가씨에게 구애하기도 했다. “여인 속에서 천사를 발견하려다가 결국은 지옥에 빠졌다”고 말했듯이, 스트린드베리는 상대를 높이 끌어올리고, 자신은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는 웁살라대학에 입학했으나 중퇴하고, 의사 ·화가 ·배우를 지망하기도 했다. 자살기도를 하고 자포자기적인 생활을 하다가, 그 뒤 1874년에 왕립도서관의 직원이 되어 생활이 다소 안정되자 문화사와 중국학(中國學) 등의 연구에 몰두하였다.
이듬해인 1875년 후에 《천치의 고백 Die Beichte eines Thoren》(1888)의 여주인공인 남작부인과 알게 되었고, 그녀와 결혼해 창작에 전념하였다. 그 후 1879년에 강렬한 자연주의 소설 《빨간 방 Rda Rummet》을 발표하였으나, 부인과의 사이가 벌어지자 1883년 고국을 떠나 6년간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등지를 전전하였다. 그동안 결혼생활의 이모저모를 묘사한 단편집 《결혼 Giftas》(1884∼1885)을 발표했다.
그리고 자전적인 소설 《하녀의 아들 Tnstekvinnans son》(1886) 《대해(大海)에서 I hafsbandet》(1890) 등의 소설과 《아버지 Fadren》(1887) 《율리에 아가씨 Frken Juli》(1888) 등의 희곡을 계속 발표하여 철저한 무신론과 자연주의로써 세상을 놀라게 하였다. 인생을 전장으로 보았던 그는 부인과도 결별하고, 반미치광이처럼 되어 1894∼1897년경에는 ‘지옥 시대’라고 그 자신이 주장했듯이 광기에 찬 불모의 시절을 보내게 되었다.
그러나 기독경전과 <E.스웨덴보리>의 영향으로 다시 신앙심을 회복하고 창착 활동을 재개했다. 이후 희곡 《다마스쿠스까지 Till Damaskus》(1898∼1904) 《강림절 Advent》(1899) 《죽음의 무도 Ddsdansen》(1903) 《백조 아가씨 Svanevit》(1902) 《비텐베르크의 휘파람새 Nktergaleni Wittenberg》(1903) 《뇌우 Ovder》(1907) 《유령 소나타 Spksonaten》(1907), 그리고 소설로는 《고독 Ensomk》(1903) 《역사의 축도 Historiskaminiatyrer》(1905) 《검은 기 Svarta fanor》(1907)를 발표했다. 1907년부터는 실험극장인 ‘친화극장(親和劇場)’을 설립하여 3년간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 40년 연하의 젊은 여배우와 맺어졌다가 1912년에 세상을 떠났다.
희곡 <사흘 동안(1899)>은 원제가 부활절(Easter)이다. 부활절에 이르기까지 <사흘 동안> 한 가정에 닥쳐온 위기와 절망, 고통과 번뇌가 어떻게 해소되고 극복되는가를 감동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무대는 격자무늬 창살의 정문이 배경막과 네자(4尺) 떨어져 무대중앙에 세워지고, 문 좌우에도 격자창이 연결되어있다. 배경막에 풍경이 그려져 있고, 정문 밖 좌우로 길이 나있어 외부와 연결된다. 무대 왼쪽에도 격자무늬의 창이 나있고, 그 옆으로 등퇴장 로가 만들어져 있다. 무대오른쪽 벽면에도 등퇴장 로가 개설이 되고, 그 옆에 벽난로가 만들어져 있다. 무대왼쪽으로 탁자와 의자가 놓여있고, 무대 오른쪽에는 긴 안락의자도 놓였다.
연극이 시작되면 도입에 주인공인 교사와 제자 간에 시험과 성적에 관한 승강이가 벌어지고, 두 사람의 대화로 제자가 시험에 실패해 유급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교사의 약혼녀가 등장하면서 두 사람이 곧 결혼하리라는 사실과 아버지가 횡령혐의로 감옥에 수감되었고, 가정 형편은 파산 직전임을 알게 된다. 게다가 주인공의 여동생은 정신병원에 입원했고, 수제자에게 논문을 도용당하는 사건까지 발생한다. 더욱이 채권자로부터 공포에 가까운 심리적 압박을 받는 주인공과 정신병원에서 부활절까지 사흘 동안 귀가허락을 받은 누이동생이 수선화를 들고 집에 돌아와, 오라버니의 제자와 첫 대면을 하고, 서로의 마음이 이끌림을 감지한다. 누이의 귀가를 달갑게 여기지 않는 오라비, 그와는 반대로 누이를 반기는 약혼녀, 어머니의 귀가로 마을 꽃집에 도둑이 들었다는 이야기와 딸의 급변하는 태도에서 딸의 소행임이 알려지고,
오라비의 제자는 딸 대신 도둑누명을 대신 쓰려한다. 갑자가 둔탁하고 육중한 지팡이 소리와 함께 채권자의 방문이 예고되지만, 채권자의 모습은 보이지를 않는다. 약혼녀의 음악회 참석명분의 외출, 그것도 논문도용 제자와 동행하리라는 약혼녀의 말에 실망과 분노를 하는 주인공, 대단원에서 채권자가 등장하고, 주인공의 고집과 그 고집을 꺾으려는 채권자와의 갈등이 극에 달하고, 소시 적에 주인공 아버지로부터 도움을 받은 채권자와 채권포기의 조건이 주인공에게 제시되고, 갈등 속에 조건을 받아들이는 주인공의 심경변화와 함께 가족전체는 위기에서 벗어나게 되고, 행복한 부활절을 맞게 된다는 줄거리다.
아들역의 유승민과 약혼녀 역의 김남희가 호연을 했고, 어머니 역의 김덕주가 탁월한 연기를 보였으며, 제자역의 양진억과 누이역의 안수현의 열연이 돋보였고, 채권자 역의 임동진 목사의 중후한 연기가 대단원을 감동적으로 마무리했다.
프로듀서 박병욱, 드라마트루기 차승목, 조연출 서희, 무대감독 최계원, 조명감독 정태민, 음악감독 박세영, 무대제작 김종선, 분장 김은희, 의상 김시정
소품 민두홍, 사진작가 하형주, 디자인 우춘식, 기획 윤혜영, 하미영, 홍보 김민수 박일권, 진행 신은혜의 노력과 열정이 탁월한 연출가 최종률 교수의 발군의 기량과 조화를 이루고, 임대일 대표의 노력과 헌신이 하늘에 닿아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의 <사흘 동안>을 부활절에 가장 어울리고 적합한 연극으로 탄생시켰다.

정책기록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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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재된 의견에 대한 반론 또한 보내주시면 귀한 원고로 생각하고 적극 수용하겠습니다.

대학로 포럼  2010~2011 연속 토론(9)

‘한국의 연극 정책 어떻게 볼 것인가’

주제 / 연극인 양성을 위한 교육 과정은?

참석자/  송선호(연출가), 김태수(연출가), 전용환(연출가), 오세곤(평론가, 연출가), 채승훈(사회, 연출가), 김한아(배우, 기록)
일시/ 2011년 5월 14일 대학로 민들레영토


: 오늘 토론은, 연극인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연극계에 입문하고 활동하는지, 또한 대학이나 조기교육 등은 어떤 양상으로 진행되는지,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개선될 방향은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현재와 과거에 연극계로 어떻게 진입을 했는지, 각자가 ‘나는 ~식으로 연극인이 되었다.’ 라든지, 어떤 것은 발전시켜야 하고 어떤 것은 수정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서 각자의 경험담을 곁들여서 애기해 보도록 하지요. 그럼 듣고 싶은데요. 여기 계신 분들, 어떻게 연극인이 되었는지,

: 어쩌다 보니 연극을 올리고, 한번 발을 들여서 창조, 창작의 맛을 보고 발을 못 땐 케이스인데,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미술반에서도 활동하고 그랬는데 개인적으로 예체능을 좋아했던 것 같아요. 시작은 그렇게 된 것 같아요. 관심도가 활동사진, 미술 등을 좋아하고.. 우리 어렸을 적에는 영화를 많이 구경다녔어요. 당시엔, ‘역전마당’ 이런 곳에 흑백영화가 포장 쳐놓고 상영되곤 했거든요. 그런 곳에 쫓아다녔죠. 대체로 구경하기를 좋아했으니까요. 바람타고 어떻게 연극을 하게 되어요. 그러다 대학교 때 7~8년 다니면서 학과공부는 거의 안하고 연극과도 아닌데 극회활동만 주구장창 열심히 했어요. 젊음을 그렇게 보냈죠. 나중에 어떤 책을 보니까 그런 얘기가 나오더라구요. ‘20대 때 뭘 하고 놀았느냐가 그 사람 인생을 좌우한다.’라고 하더라고요. 20대 때 가만히 보니까 만날 노래듣고 술 먹고, 오 선생 산책하는 거 구경하고 그다음에 연극하면서 동료들하고 함께 시간 보낸 것이 젊은 날이었으니까 지금도 그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 졸업하고 바로 연극계로?

: 졸업 전부터 현장과 관계가 있고 현장에 선후배가 있어서 바로 할 수 있었죠. 학교에서 공연한다는 것도 대학교도 그땐 굉장히 중요했어요. 현장에 선배들이 있었으니까 바로 들어가게 되고 대학에 선배들이 연결되어있다는 것은 곧 현장하고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었으니까요.

: 연극계는 특별한 입문과정, 통과의례라 할까요, 그런 것은 없는지...

: 일종의 시험이라면 그런 것일 거예요. 대학극 말고 일반 사회에 나와서 대관을 해서 밖에서 공연을 한다. 그것이 통과의례라고 할까요. 그러면서 연극계에 첫 발을 내딛었다. 옛날말로 ‘입봉했다.’ 데뷔했다는 것으로 볼 수 있죠.

: 이 계통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청소년기에 문학이나 미술에 관심을 갖고 있다가 대학에 입학해 자유로운 환경에서 연극을 택하게 되는 경우가 많죠. 저도 그렇습니다. 학창 시절에 신촌에 있는 소극장에서 선생님들 연극도 보고, 그러면서 쉽게 시작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지금 나한테 부족한 게 무엇인가를 반성하다 보면 교육을 받아 본 적이 없다는 것, 쉽게 시작 했다는 데에 문제가 있었다고 봅니다. 춤이나 악기 같은 기능은 동아리 연합에서 익혔고, 연극에 관한 이론은 전공을 바꿔 대학원에 들어가면서 고시공부처럼 한 거죠. 그러니 정작 연출에 관해서는 어떤 교육이나 도움도 받질 못했어요. 필요한 시기에 갈고 닦질 못한 거죠. 거기서 비롯된 문제가 20년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은 채 약점으로 남아 있는 겁니다. 그것을 채우기가 버겁고 시간이 많이 걸리죠. 그러나 현실은 그런 것보다 뭐든 빨리 만들어 내기를 원하고. 어쨌든 엄벙덤벙 연극인이 됐네요.

: 대학원은 연극과를 나왔나요?

: 네.

: 저도 마찬가지로 전공이 아니었기 때문에 동아리에서 대학4년 동안 10편을 연출한 것 같아요. 연극만 했죠. 아마추어로요. 졸업할 때 보니까 학점도 안 되고 그렇다고 대학로에 어느 극단에 들어가기도 싫고.... 그래서 솔직히 말해서 공부를 한다기보다는 간판을 위해서 대학원을 갔죠. 체계적인 것 보다는 부딪혀서 습득한 것이 사실은 더 많은 것 같고, 그렇다 보니까 깨지면서 배웠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쉽게 갈수 있거나 빨리 갈수 있는 길들을 너무 많이 돌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개인적으로 그 자체가 나쁘다고, 저 자신에게 ‘후회스럽다.’라기 보다 더 많이 배웠다고 생각은 해요.

: 저도 극회 출신이고, 문학도 찔끔, 미술도 찔끔 이러다가 결국 그게 계기가 되서 고등학교 동문들이 모여서 하는 극단, 이런 관련된 곳에서 대학교 입학 전에 활동하다가 그 계기로 연극을 시작했죠. 대학교 가서 극회에 들어가서 활동을 하고요. 전 많은 연출을 한 것 같지는 않은데. 가끔 김 태수 선배가 예쁘게 봐주셔서 연출도 하고 했던 것 같아요. 하하. 저는 전공이 문학이어서 희곡을 전공할 수 있었고, 드라마 전공이 가능했던 것이고, 그것 때문에 오히려 현장에 들어오는 건 늦게 들어오는 계기가 되었죠. 연극과 대학원을 나왔다면 빨리 들어왔을 텐데 불문과 대학원을 나오게 되니까 주로 그쪽에서 불어를 가르치고 강사생활을 오래하게 되니까 현장관련은 번역으로만 관계를 맺다가 나중에 박사논문 끝나고 본격적으로 연극계로 오게 되었는데.... 사실 저도 말씀하신 것과 비슷하게 그런 것을 느낍니다. 연극과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부럽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렇게 자세히 설명해주고 가르쳐주면 낭비가 없겠다 싶고요. 한편으론 전용환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후회는 없다.’란 것처럼 우리 연극계에는 헤매는 것에 대한 장점도 있잖아요? 딱 짜인 것만 하면 두께가 안 나온다고 해야 하나요? 물론 너무 헤매면 낭비가 심하죠. 거의 개기다 인생이 끝나는, 그런 건 반성이 필요하죠. 아까 시험이 있었냐는 말도 있었지만 결국 가장 어려운 시험은 살아남는 것이겠죠. 서바이벌논리를 가지고 연극계에서 얼마나 버티고 오래 살아남느냐 그러다보면 헤매면서라도 터득하는 것이 있고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 되어 있다는 건데. 핵심적인 이야기는 그거인 것 같아요. 나이가 많을수록 제대로 전공을 하고 교육을 받고 하지 못한 상태에서 시작한 경우가 많고, 최근에 올수록 제대로 전공을 하고 규격화된 교육을 받고 나온 친구들이 많은데, 장르로 보면 국악하고, 문학, 연극 정도는 비교적 다양한 배경의 비전공자가 들어오는 게 가능하지만, 미술이나 무용, 음악 같은 장르는 비전공자가 들어오기 굉장히 힘들어요. 대부분 전공자로 이루어져 있죠.
물론 연극도 후자와 비슷한 방향으로 점차 가고 있지 않은가 합니다만, 아직은 연극과를 나오지 않은 사람도 들어오고 있거든요.

: 여기모인 사람은 연극과 출신은 하나도 없네요?

: 40~50대는 극회출신이 더 많지 않나요. 30대는 반반쯤 섞이고, 20대는 연극과 출신이 상당히 많고요. 저희 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60대는 어떤가요.

: 중대, 동대, 서라벌, 예대 출신이 몇 있죠.

: 현장에서 헤맨다는 이야기도 나왔는데요. 현장에서 필요한 진입의 방법과 필요한 인력이 ‘어떻게 양성되어 들어와야 하느냐’ 이런 것에 대해서.... 양성이라는 범위는 규격화된 교육, 헤매며 터득하는 것도 포함해서 어떻게 오는 것이 좋은지 이야기 해보도록 하죠!

: 연기 연출에서 비전공자로서 현장에 뛰어들어서 공부하면서 주변의 동료들과 함께 작업을 한 현상을 한마디로 하면 몸으로 때웠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개인적으로야 연출의 방향을 고민하고 대본 읽고 새로운 사조를 곁눈질하면서 어깨너머로 여러 가지 아등바등 한 것 빼고 가장 많이 부딪힌 것은 연기자였어요. 지금도 현재 대학로에서 이루어지는 공연들을 보면 가장 눈에 거슬리는 게 기본기에 관한 것이죠. 신체, 음성, 화술에 관한 것인데 ‘이완’에 대한 탐구와 소리내기, 자기소리 찾기, 말하기. 말하기 중에서도 음성훈련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 무대뽀는 낯 뜨거울 정도로 한심한 수준입니다. 배우가 말만 할 줄 알아도 그나마 작품을 조금 더 살릴 수 있는데 그런 기본기 훈련 때문에 무대가 풍성하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 이게 속상하다는 거죠. 기본기 교육에서 말하기, 음성교육을 어떻게 좀 교육 시켜야 되고....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적어도 들을 줄 알아야 하는데.... 사실은 어떤 소리가 무대에서 어떻게 표출하고 어떻게 발성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학교나 지도자나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알고 있는지, 혹은 소리는 알아듣는지, 여러 가지로 의문점이 많이 있어요. 음성훈련이 소홀하게 받아들여지는 것 같아요.

: 처음에 교육이 필요하고, 교육이 커버할 수 있다고 판단해서 학교가 생겼을 겁니다. 그 이후에 생긴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죠. 돈이 되니까 생기고... 저는 좀 나눠서 생각해보고 싶어요. 대학 교육은 사실 일반교육이잖아요. 학문을 통한 사회공용에 가치를 두는 거고요. 그런데 과거에 비해 대학 교육의 범위가 넓어졌다 하더라도 특별한 기능을 익히는 교육이라면 전문학교가 맡아야겠죠. 이게 섞이니까 문제가 생기는 것 같아요. 말씀하신 기본기라는 것이, 우선 생각이 정리가 안 되면 말이 안 나오는 거고, 귀가 인식 못하면 정확한 언어를 표현할 수 없는 거잖아요? 결국 사고하고 인식하는 교육이 잘 안되어 있기 때문에 말을 못하는 거죠. 이건 기능 이전의 문제라고 봐야 하고요. 연출을 20년 넘게 했지만 아직도 컨셉 하나 잡는데 길을 모르고 헤맨다는 것은 연출자로서 사고하는 교육이 안되어 있기 때문일 겁니다. 세트를 만들고 무대를 채우는 기능의 문제가 아니라 기본적인 자기 철학, 사고하는 방식을 철저하게 훈련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을 자기 혼자 현장에서 해결해야 하는 어려움이 생기는 것이죠. 이런 문제들 때문에 대학의 연극교육이 유용하다고 판단한 이상 인문학적 교육의 가치를 인정하고 기능 교육과는 분리해서 생각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 중요한 포인트죠. 대학이 많이 생겼어요. 필요하니까 생기는 것이 맞는데, 문제는 우리가 헤매면서 여기까지 왔던 것이 그대로 대학에서도 되풀이되고 있다는 것이죠. ‘교육기관이 생기면 잘 되겠다.’ 해서 만드는 것은 맞는데 교육기관이 생기면 잘될 수 있다는 것이지 ‘무조건 잘된다.’는 것은 아니다 라는 거죠. 그 교육기관에서 체계적으로 그것을 감당할 만한 그런 모든 것들이 준비된 것이 아니고 우리 모두가 헤맸듯이 그 대학에 들어가 있는 교수들도 저를 포함에서 모두 헤매고 있습니다. 제도상의 문제를 많이 지적하죠. 전문인 양성차원의 기능 훈련이 지금 같은 4년제 대학에서 가능하겠느냐? 하드트레이닝을 할 수 있는 구조가 되어야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가능하지 않거든요.

: 저는 과연 전문성이라던가 훈련의 주체가 그런 개념이라면. 극단이나 학교가 되어야 한다는 것에 책임감들이 아직 대학 쪽에는 별로 없는 것 같아요. 대학 쪽에서 기본기가 되어있는 배우를 배출해야한다는 책임감이 없는 것 같습니다. 학교의 시스템이나 이런 것들이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수업을 했을 때 5~6명 정도가 되었을 때 제일 재밌고 집중력 있게 진행된다는데 어느 학교에는 한반에 30명 되면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되나요. 1:1 수업처럼 진행되어야 하는데 일단 너무 많다는 거죠. 분명히 거기서는 썩 내키지는 않지만 학교 커리큘럼 하에서 들어야 하기 때문에 듣는 친구도 있을 테고요. 솔직히 말한다면 이론과목을 20~30명 정도로 하면 모르겠는데 실습과목이 10명이 넘어가면 한 시간도 모자란 편이죠. 한 학기에 학생 자신들이 내는 비싼 학비 500만원어치의 교육을 과연 해줄까 하는 부분에는 조금 아쉬운 것 같아요. 물론 학생들이 찾아먹지 못하는 부분들도 있지만요. 저는 개인적으로 선배후배들 간에 부딪히면서 어떻게 더 나아질 수 있을까 하면서 배운 부분이 있는데 학점에 치이면서 하다보니까 그런 것들을 못 느끼는 것 같아요.

: 사실 우리나라 예술계에 공통적인 문제죠. 예술학 또는 인문학 차원의 학과라면 모르겠지만 기능 훈련을 대학에서 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거든요.

: 학교 안가고 학원 다니는 것이 실질적인 수업이라 생각하는 학생이 ‘나는 이렇게 공부를 해서 과연 여기에 올인 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 좀 더 더 근본적인 생각을 해보고, 재능을 가진 학생들은 대학에 가게 되는데 이런 것들이 19살, 20살 애들에게는 대학교가면 기능적인 면도 나아지고 ‘훨씬 더 좋겠다.’ 라는 부분을 가지고 간다는 거죠. 요즘 막말로 진짜 재능 있는 학생들은 기획사를 들어가요. ‘거기서 배우는 것이 훨씬 빠르고 대학교 가는 것보다 났다.’ 라는 말이 나올 정도이니까요. 말뿐 아니고 실질적으로 그러고 있죠.

: 그 점과 관련해서 인문학적 교육과 기능 교육, 이렇게만 나누면 되느냐 하면 의문이 또 생기는 거죠. 기능 교육이라 하더라도 셰익스피어를 가르치는 극단이나 러시아처럼 극장 부설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교육과 사설 연기학원 같은 양성소에서 가르치는 교육을 같이 놓고 볼 수 있느냐는 겁니다. 전혀 다른 교육이라고 봐요. 특정 극장이 무대에 필요한 인력을 장기간 교육시키는 것과 기획사에서 필요한 재능을 갖추게 하는 교육과는 다르겠죠. 연출자도, 연기자도 스텝들도 마찬가지고요. 인문학적 교육과 기능교육이 섞여 있는 것뿐만 아니라 아예 장르 구분도 없이 다 섞여버렸다는 데 문제가 있는 거죠. 다 똑같이 배우니까 현장에 나와서 어디로 가야할 지 길을 모르고 또 헤매게 되는 거고요.

: 19~20세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이쪽에서 직업을 갖고 인생을 바라봤을 때 어느 쪽이 좀 더 유리한가. 어느 쪽으로 가야지 자신에게 더 맞는가에 선택이 불분명하게 전달이 되기 때문에.. ‘좋은 대학을 가면 좋은 연출가, 연기자가 될 것이다.’ 하는 막연한 생각을 갖게 되는 것 같아요. 차라리 기술을 배울 거면 액터스 스튜디오를 가는 것이 더 낫죠. 기능적인 부분을 살려주고 끄집어내고 발전시켜주는 역할을 하니까요. 하지만 나머지 부분들은 알아서 자기들이 공부하게 놔두는 것이고, 그 부분에 정보들이 가장 전반적으로 애매모호하게 ‘이 학교를 가면 연기를 잘하게 만들어주고 학문으로서도 된다.’ 라는 부분들이 없죠. 막상 와서 보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것이죠. 대학 시스템 안에서....

: 연극인 양성에 관해 뭔가 핵심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은 사실이죠. 가장 중요한건 조기교육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 무용, 미술 같은 경우는 나름대로 탄탄한 조기교육을 받지 않으면 대학에 입학할 수 없는 형편인데 연극과 같은 경우 단시간의 준비로도 입학이 가능한 것으로 인식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수요와 공급의 문제이지요. 현재 대학교 연극과가 90년대 말 부터 많이 늘어서 약 70~80개 관련학과가 있고 매해 나오는 졸업생들이 숫자상으로는 2,000명이상이 되어야 하는데 실질적으로 70~80% 정도는 연극계 혹은 연기자로 나오지 않고, 다른 분야로 취업을 하는 형편이지요. 거품이 많은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 같아요. 대학도 서로 간에 상업적인 경쟁 상태에 있고 입학 경쟁률을 위해 잘나가는 전공을 유치하다보니 이렇게 되는 기현상이 생긴 건데, 들여다보면 졸업 후까지 책임지는 일을 전혀 못 하는 것이죠. 그러다보니 아까 전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실질적이고 효율적인 교육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형식적인 겉치레에 치우치게 되는 거죠. 이렇게 조기교육도 부족하고 대학에선 형식적인 교육에 치우치다 보니까 막상 졸업시켜놔도 현장에 가서 관계자들에게 좋은 이야기를 못 듣고 ‘너 뭐 배우고 왔니’ 하는 비아냥을 듣게 되는 것이겠지요. 하여튼 그 시스템자체가 어떻게 되었든 간에 정리나 정립이 잘 되어야 하는데 우리들, 연극인들, 교수들만의 힘으로는 좀 부족한 부분입니다.

: 지금의 제 생각에는 일반적인 편견에서 연극하는 사람들이나 학부모, 학생들 그렇고 대학에서 기본적인 부분을 분명히 강화 시켜줄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지 학문으로서 다양하게 대학교 졸업하면서 연극을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연극뿐 아니라 다른 예술도 그렇지만. 예를 들면 서울대 같은 경우 실습 같은 건 학생 2명당 선생님 1명이라면서요. 카이스트 같은 경우도..... 그런 것을 생각하면서 학생들도 오고 학부모도 보내고 하는 것이죠. 반면 만약에 극단에 입문한 연극과 졸업생이 어느 대학 나왔다하면 거기서 그만큼 배우고 왔구나 생각하는 것과 막상 지금 대학이 갖고 있는 본연의 자세와의 괴리가 있는 것이죠. 일반적인 편견에서. 대학 쪽에서 지금보다는 강화 시켜줘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거죠. 그 친구들이 대학교 졸업하고 훨씬 더 뭔가 나아져서 뭐라도 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했는데 막상졸업하면 아무것도 안 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죠. 물론 순탄하게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들도 많지만요. 내가 대학까지 나와서 왜 또 학원을 다니면서 화술수업을 해야해 하는.. 또 그런 모습을 창피해하고.

: 수박겉핥기 식의 것들이 거의 불가피한 것 같아요. 애정이 있는 교수들이 방과 후 교육을 한다든가 등등, 부분적으로 리드를 해줄 수는 있는데 근본적으로 맨투맨식의 강의가 이뤄지기에는 힘든 것이 현실이고 한예종에 있는 연극원 정도가 가능한 거죠. 연극원 학생들을 보면 졸업하고 나서 일반 다른 친구들 보다는 평균적으로 수준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요. 물론 그것이 얼마나 지속되느냐 하는 것은 좀 더 두고 봐야겠지만 제 생각으로는 좋은 배우나 연출가를 키워내야 하려면 조기교육이 전제되어야 하나고 봐요. 현재 대학 1,2,3학년 때 습득하는 교육은 이미 조기교육에서 끝마쳐야 하고, 대학에 오게 되면 구체적, 세부적으로 전문인 교육이 이뤄져야 하는데 현실적으론 대학 교육이 무용, 미술이나 음악으로 치자면 고등학교 수준의 교육을 가르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거죠. 그렇다면 현재와 같은 시스템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면, 그럼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교육해야겠느냐가 중요한 거죠. 스킬은 시간이 걸리도록 놔두더라도 소위 이성적인, 정신적인, 인문학적인 훈련, 이런 훈련을 학교에서 충분히 습득시켜서 졸업시키는 것이 필요하겠지요. 연극인에게 스킬만이 다는 아니고, 반은 그런 정신적 능력도 중요한 거니까, 그런 능력이라도 대학교에 충실히 해서 내보내고 반 정도의 스킬은 아쉽긴 하지만 현장에서 보충하도록 내보내야 하는 형편이 아닌가 하는 거지요.

: 교육문제를 짚어보자면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의 교육이 인간성 말살의 교육이라서 학생들이 가만히 앉아서 듣고 받아 필기하고 외우고 사지선다형 고르기에 익숙해져서 자기의견표출에 대단히 소극적이고, 보면 그저 멍하니 앉아 듣기만하는 소극적 교육 끝에 어떻게 보면 머리로는 아는데 몸으로 표현할 줄 모른다. 자신의 의견을 말할 줄 모른다 즉 자신의 소리를 낼 줄 모른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연극이 무대 위에서 몸과 말로 모든 걸 표현해야 하는데 거기에 필요한 천부적 소질들을 아예 그 씨부터 말려버린 셈이 되는 거죠. 그래서 무대에 서기 위한 몸을 만들기엔 20년 이상 습관 된 몸과 맘을 무대체질로 바꿔놓기가 그리 쉬운 노릇은 아니다 이런 푸념입니다. 그래서 교육의 문제가 가장 큰 거 같아요. 체육, 미술, 음악을 없애는 교육에 문제가 있는 것 같고요.
비전공자로서 연출공부를 하면서 느끼는 거는, 이론서들은 그래도 꽤 있는 것 같아요, 근데 그 이론을 실기로 잘 풀어낼 수 있는 역량이 우리 모두 좀 부족하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어요. 예를 들면 연출자들끼리 의견이 근본적으로 다를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가장 기초인 이완에 대한 연구가 우리가 다 안다고 생각을 하지. 실질적으로 열린 소리나 몸에 필요한 그러니까 궁극적으로 다시 한 번 말하자면 이완에 대한 연구가 깊이 있게 탐구 되어야 하지않겠느냐는 생각이 뼈저리게 느껴집니다. 모두가. 가르치는 사람이나 배우는 사람이나. 그래서 기본기 이야기를 잠깐 한 것이고요. 눈치 있는 사람들은 잘하는 배우나 작품을 보고 저 배우다 저거다 하고 나름대로 공부를 하겠지만 우리 현실로서 좋은 모델을 경험하기가 그리 쉬운 문제도 아니고 평생 뇌리에 각인되도록 좋은 모델을 만나는 행운을 만나기가 그리 쉽겠는가. 어찌됐든 부지런히 이 무대 저 무대를 기웃거리며 좋은 영향을 받아야 할 텐데 주위 환경도 열악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 우선 채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이 큰 과제인데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우리나라 사회에서 연극을 전공한 사람이 과연 몇 명이 필요하냐고 했을 때, 현장예술인들로만 볼 것이냐, 아니면 일반인을 위한 교육자까지 볼 것이냐, 또 아니면 전체적인 사회분위기가 바뀌었을 때, 즉 일반 회사에서도 ‘10%정도 예술 전공자를 뽑았더니 전체적으로 창의력 향상에 도움이 되더라.’ 하는 정도의 사회분위기가 되었을 때 그런 인력까지 볼 것이냐 하는 거죠. 연극 전공 졸업하고 비서로 가는 친구들이 꽤 있죠. 일 잘한대요. 학교에서 배운 것이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것이라 도움이 된대요. 그렇게 사회적 수요하고 잘 맞춰서 정교한 인력수급 설계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지금 현재는 굉장히 낭비적인 문제가 있죠. 연극원도 그 낭비를 줄이기 위한 일종의 실험 아닌가요? 그렇게 하니 확실히 질 좋은 사람들이 배출이 되더라, 이러면서 일반 대학들도 반성하고, 체제를 바꾸든지, 아니면 대학 밖으로 나오든지.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대학 울타리를 벗어나서 나오는 것이 정말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힘든 일이거든요. 어렵죠. 조기교육은 사실 일부 중학교도 있고, 고등학교도 많아지고 있는 것 같지만 아직 충분하지 않은 것 같고, 더 중요한 것은 일반 초중고 교육에서 어렸을 적부터 연극을 접하고 했더라면 이렇게까지 초보적인 교육을 대학에서 받고 있고, 또 대학을 나와서도 현장에서 “뭘 배웠니?”라며 무시하는 상황은 안 될 텐데. 국어 교육에서조차 연극이 무시당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 굉장히 큰 문제인 것 같고, 그런 것들이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인 셈이죠. 이론이라는 게 무엇인가를 심각히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아요. 어떤 사람이 무지무지 헤매다가, 수 십 년 고생을 하다가 자신의 것을 발견했을 때,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해결한 것을 잘 전달하는 것이 이론이라 생각하는데, 그렇게 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 그런 것들을 파악해서 전달해낼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느냐? 결국 한마디로 교육에 필요한 이론이 준비가 제대로 안 돼 있다는 거죠. 교육표준 아시죠? 표준이라는 게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일반인을 위한 연극교육표준도 필요하고, 특히 K-12, 즉 유치원서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의 연극교육표준이 우선 필요하고, 전문인 양성을 위한 연극교육표준도 필요합니다. 그런데 전문인 양성 부분은 대학과 현장이 공조해야 합니다. 특히 연극교육표준이 확립되기 전까진 더욱 그렇죠. 대학의 교육 상황을 살펴서 비어 있는 곳을 현장에서 채우는 식으로라도 필요한 기능은 갖추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근본적으로 연극이론, 특히 연기자 양성이론이 취약한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음악이나 미술은 서양 것이 들어오면서 이론이나 훈련법이 같이 들어올 수 있었지만 배우는 어떤 경우에도 우리 말과 동작을 사용해야 하거든요. 그런데 기존의 우리 전통연희 훈련법을 이용할 수도 없었죠. 스타일이 전혀 다르니. 어쨌든 이론적으로 능력 있는 사람들은 현장체험이 약하고 현장 체험을 한 사람들은 이론이 약한 상황이 발생하고, 그개 결국 현재의 취약한 상태로 이어진 겁니다.

: 저는 조금 다른 생각입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외국들도 고등학교에서 연극에 대한기본적인 훈련은 안하고 있다고 알고 있어요. 동아리 활동이 활동화 되었으면 되어있지 그것이 정규 커리큘럼 화 되어있진 않다고 봐요. 비전공자라도 우리처럼 헐리웃이나 브로드웨이가서 학원을 다니면서 하는 건 좋은데 정규교육과정에서 일단은 대학교 교육과정에서 지금의 문제점들을 발전시킬 수 있을까를 보는 것이 현실적으로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고요. 물론 단기적으로 그런 부분들이 강화되어야 하는데 그런 부분이 강화 될 때까지 지금 대학들이 현실적인 대안이 없을까. 사실 천차만별이거든요.
서울이던 지방대학이던 잘하는 아이들은 잘합니다. 별로 열의가 없거나 재능이 없는 친구들이 들어온 경우도 많고. 수업을 하다보면 평균보다 아래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다 만족시켜야 하니까.. 맨 처음에는요 50명중에 다 마음에 안 드니까 서른 몇 명을 F주니까 다음 학기에 바로 짤렸어요. 그것도 전문대니까. 그래서 그러면 안 되는구나 싶었죠. 지금은 노하우가 생기니까 제일 잘하는 애에게 맞추겠다하죠. 못하는 친구들은 어느 정도까지 제가 어떻게 일일이 다 봐주겠느냐 하죠.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죠. 그 안에서도 어떤 수업이 있다하면 우열을 나누거나 자기수준에 맞는 수업을 찾아 갈수 있는 기초연기라고 하면 상중하가 있을 수 있는 것이고, 이런 식으로 세분화가 되면 정 적응 못하는 학생이 있으면 빨리 놓을 수도 있고 잘하는 친구들은 자기들끼리 묶어 놓으니까 발전할 수 있고.... 선생들도 맞춰 나갈 수 있고 이런 방법들도 훨씬 낫지 않을까....

: 당연히 학교들도 반성이 필요하죠. 큰 차원에서 변화와 시간이 걸리니까. 당장 그런데 우리는 현장에서는 급하잖아요. 능력 갖춘 친구들이 필요하니까.

: 극단에 들어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조기교육이 필요하다고 했을 때 연극교육 전체 커리큘럼이 관건일 것 같아요. 적어도 교육이라면 목적과 목표, 내용이 있고, 또 그에 대한 교육적 기대치가 있을텐데 우리는 너무 포괄적이니 세분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예를 들면 연극사, 그렇다고 그런 거 없애라는 게 아니라 좀 더 구체적인 과목명과 교육 목표가 필요하고, 또 기초연기, 중급연기, 화술, 제작 실습... 이런 분류보다 더 세분화하는 과정에서 조기교육과 대학교육이 나눠지겠죠. 조기에 필요한 것들을 일단 빼놓으면 대학 커리큘럼이 나올 테고, 그러면 ‘이것만은 4년 동안 가르쳐서 내보내겠다.’ 하는 시스템이 생길 거고요. 각 대학의 세부적인 방향에 따라 자연스럽게 특성화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그래도 안되는 것들, 즉 현장에서 맡아야 하는 것들을 정리하면 대강 단계별로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요.

: 우리가 2001년에 처음 연극교과서라는 것을 만들었잖아요. 그 교과서 대학에서 써도 무지 어려워요. 그때 돈이 없으니까 예산이 될지 안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필자 섭외를 하는데, 거의 교수들로만 했단 말이죠. 그런데 그 교수들 모두 자기 분야는 꼭 필요하다고 하더라구요. 17명의 필자가 다 중요하다고 하니까, 그러다 보니 책이 무지 어려운 책이 되었어요. 각 단계별로, 그러니까 어떤 연령대에는 어느 정도까지 배워야 한다는 게 확실해야 하는데, 그게 서로 합의가 안 돼 있는 거죠.

: 극작가와 연출가들은 어떻게 키워나가는 것이?

: 극작가는 다 영화판으로 갑니다. 박사과정에 갔는데. 극작수업은 없어요. 동국대에는 영상대학원이라고 있어서 극작가 수업에 3~40명이 있는데 글쓰기에 재주가 있는 친구들은 방송 쪽으로 다 가요. 다 영상 쪽이예요.

: 그런 쪽이 돈이 되니까 그쪽으로 다 빼앗긴다는 것이죠. 표현이 좀 그렇지만.... 심지어 연극계에서 일하는 것을 단지 정거장처럼 생각하는 젊은 연기자들이 있을 정도로, 여기서 연기 공부 좀하고 어떻게 하면 TV나 영화에 가서 인기도 끌고,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을 까 생각하는 것인데.... 극작도 마찬가지거든요. 극작도 이제 전혀 경제성도 안 되고 기회도 주어지지 않으니까 여기서 있느니 TV드라마 써서 성공한 작가가 되어서 돈도 벌고자 하는 것이죠. 좋은 극작가를 양성하는 일이 사실은 좋은 연극을 만들어 내는 가장 기본이 되는 일인데 좋은 극작가를 만들어 내는 시스템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궁금한 것이죠. 극작과가 많이 생겼죠? 문창과 안에서 극작을 전공하는 곳 포함해서 한예종, 서울예대, 동국대 등이 있고....

: 작가라는 것이 배워서 되는 건 아니잖아요. 개인적으로 자기가 인생이나 삶이 보는 길들이 있어서 좋은 작품이 나오는 건데. 그렇게 잘하는 친구들도 있는 반면에 전체적인 분위기는 자판에 영향인지 너무 쉽게 쓴다는 거죠. 고전에 관한 접근도 부족할뿐더러 너무 새로운 것만 남이 안 한 것만 찾다보면 막장드라마 유행하듯 막가파식 상상만 난무할 수도 있는거고.. 어떻게 보면 새로운 것은 없다는 것을 모르는 건 아닌가..
전체적인 분위기는 연출가도 너무 쉽게 연기자도 너무 쉽게.. 너무 쉽게 접근했다가 나중에 점점 어려움을 느끼고 생산적인 것 보다 소비적인 에너지 낭비로 가는 분위기가 있는 것 아닌가. 정말 내가 하고 싶어서 자판을 두드리는 것이 아니라 .. 옛날에는 원고지로 쓰라니까 귀찮아서 안 쓰는 부류들도 자판 두드리는 재미로 너무 많은 양산을 하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어요. 조금 더 아니 이 말을 하지 않고는 못 배겨 하는 심정으로 글쓰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생각의 깊이가 얇아졌다. 잘 쓰는 사람 소수 빼고는.. 좋은 작가가 풍성해 지면 당연히 우리 연극판이 풍부해 지겠고. 그렇게 생각 있는 사람들이 여기 기웃거릴 것이고 그런면에서는 우리 사회분위기도 상당히 중요한 것 같습니다.

: 극작 전공도 아니면서 대학원에서 희곡 수업을 맡고 있지만, 저는 오히려 다른 문학 장르를 전공한 사람들에게 희곡을 쓰라고 종용하는 편이에요. 해외의 경우도 문학을 공부한 사람, 철학을 공부한 사람들이 희곡을 쓰는데, 우리는 취약하죠. 문학의 타 장르에 비해서도 취약하니까 관심을 안 갖는 거예요. 소설 쓰는 사람들이 희곡을 안 읽어요. 어느 순간 연극도 안 보러 다니게 됐고요. 시 쓰는 사람도 연극을 우습게 보죠. 볼 만한 작품이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오히려 시나 소설에 뜻을 둔 사람들의 관심을 이쪽으로 끌어오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우선 연극이라는 장르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관람 기회를 주고, 자연스럽게 관객들 틈에서 창작 동기가 일어나게 하는 거죠. 그러면 소설도 쓰고, 시도 쓰고, 희곡도 쓰는 작가가 되는 겁니다. 방송 쓰면 어떻습니까. 여기서 기초가 되어 있는 사람이 방송을 써도 더 잘 쓸 것 아녜요. 영화도 기본기가 있으면 시나리오가 더 탄탄해질 테고요. 여기를 거쳐서 타 장르로 간다 해도 실력을 갖추고 간다면 연극 분야가 역할을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극작가를 학교에서 꼭 키워야 하는가, 그 문제는 연기, 연출 분야에도 다 해당되겠죠. 현장에서 직접할 수도 있는 거니까. 수요 문제와도 연관되겠지만 과거와 달리 현재 대학에서 일반교육으로 다루고 있으니까 인문학의 커리큘럼 내에서 극작 교육을 해야겠죠. 그렇게 보면 극작가의 경우도 말씀하신 것처럼 조기 교육이 필요하게 됩니다. 근본적인 문제에 접근하는 훈련이 안 되어 있기 때문에 작가들도 똑같이 헤매는 거죠. 문학작품도 꽤 많이 읽었고, 글재주도 인정받았는데 결국 무대로 갔을 때 틈이 생기는 겁니다. 왜냐하면 기본적인 독서량과 소화했어야 하는 연극 편수가 많이 부족하고, 거기에 작가로서 자기 점검의 시간들도 부족했기 때문에 특히 사람이 직접 나오는 연극을 쓰려고 하니까 이게 소설처럼 안되는 분야라는 걸 뼈저리게 느낄 수밖에 없는 거죠.

: 프랑스 같은 경우 문인들이 희곡을 못 쓰면 대접을 못 받거든요. 희곡을 써야 인정을 받으니까 도전을 하죠. 우리가 아는 빅토르 위고도 희곡작가거든요. 근데 우리는 어렸을 적부터 연극이란 장르는 익숙할 기회가 거의 없죠. 소설가들도 연극을 보고 감동을 받고 희곡을 쓰고 싶은 충동을 느끼고 그 장르의 매체특성을 연구하고 하는 사람들이 나오는 분위기가 돼야 하는데 말입니다. 저는 문과를 나왔지만 문과에서도 희곡교수는 가장 늦게 뽑거나 안 뽑아요. 시나 소설 선생이 똑같이 독해 식으로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 다음에 초, 중, 고등학교에서 희곡이 포함되는 경우가 정말 적은데, 그나마 그 부분은 뛰어 넘어버리는 경우가 많아요. 가르칠 입장이 안 되니까요. 최근에는 그것도 희곡에서 드라마로 옮겨가고 있어요. 국정에서 검정으로 바뀐 이후 교과서를 보면 오히려 드라마로 가는 경우가 많거든요. 드라마 ‘사춘기’ 라든가. 그런 식으로 희곡장르에 대한 국가 전체에 대한 이해도가 낮기 때문에 희곡작가가 잘 안 나오는 것이 아닐까요?

: 학생 때부터 자기가 쓴 것들이 공유화가 되어야지 뭔가 자기도 그것을 생각하고 쓴건데 근데 이런 것들이 학교교육에서 연계가 되어서 자기가 쓴 것 들이 아마추어지만 이것이 수업에 일환으로서 연극과 친구들과 30분짜리로라도 만들고 보여주고 검증하고 하는 시스템으로 가야 재미를 느끼지 않을까요? 한예종이 그런 시스템을 하고 있는데. 그런데 다른 장르에 비해서 많이 읽히지 않으니까 극작가는 점점 외로워지고 지망하는 친구들이. 그 성과를 어떻게 검증받거나 하는 것이 기껏해야 교수님들이 채점을 매기는 것 밖에 없을 텐데..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요소들이 적지 않나 생각해요. 극작 전공하는 친구들이 있다고 하면 연극과 친구들과 연계해서 연극과 친구들도 그 수업을 어떻게 무대형상화 하는가를 연구하고 이러면서 친해지고 시너지 효과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극작가들이 자꾸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재미있다.’, ‘내가 저런 부분이 어색했구나?’ 막상 만들어 놓고 봐야지 알 수 있죠.

: 공연 안 되는 희곡 굉장히 많죠? 언젠가 대산문학상 심사를 하는데 희곡 작가 협회에서 항의를 했어요. 왜 자기들것을 심사 대상으로 안 삼느냐고. 공연된 것만 대상으로 삼으려고 했거든요. 그래 어쨌든 뒤늦게 자료가 왔는데 책이 몇 십 권이 온 거예요. 근데 공연 거의 하나도 안 된 거더라구요.

: 저는 좋은 연기자를 만들어 내는 것과는 조금 다른 각도에서 극작가의 양성에 관해서 이야기 하고 싶은데요. 저는 우리나라의 극작가들이 어떤 측면에서 뭐가 있어야 하냐고 생각하는가하면, 그 중 상상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좋은 재능, 풍부한 상상력을 지니고 있는 극작가들이 많아야 연극도 다양해지고, 새로운 관객층을 유입시킬 수 있는 그런 효과도 이끌어 내고, 한마디로 객석도 풍성해지고 연극도 풍성해지는 거죠.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 연극계 풍토가 새로운 신진 극작가들의 상상력을 도리어 마모시키는 쪽으로서의 교육문화가 형성되어 왔다고 생각합니다. 소위 60년대부터 지금까지도 기승전결을 중심으로 한 웰메이드 연극 작품들의 가치를 정도 이상으로 숭상하는 그런 풍토가 있다 보니, 그런 것들이 신진 극작가들에게 영향을 준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과거에는 혼자 글을 써서 신춘문예나 문예지 등을 통해서 등단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입문을 한 신진작가들이 극작 워크샵이라고 해서, 소위 연극계 중견 들이 가르치는데, 거기를 거친 작가들을 보면 도리어 다 비슷비슷해 진다는 거예요. 그런 것을 많이 봤거든요. 기발한 상상력을 가진 신진작가가 현장에 입문하자마자 쉽게 보편화 되는 것이지요. 상상력도 죽고 답습하는 풍토가 조성되어 선배를 뛰어넘는 청출어람은 불가능해지지요. 조금만 다르게 하면 변종이니 기괴망측하다느니 경박하다느니 하면서 그들의 창조력을 막는 그런 문화도 존재했었지요. 게다가 우리나라의 모든 심사, 작품에 대한 지원, 시상에 관한 그런 것들만 보더라도 대체로 보수적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균형이 좀 있어야 하는데.... 소위 재능이나 천재성들에 대해서 이해도나 포용이 약한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까 젊은 친구들이 답습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거죠. 저런 식으로 써야만 관객도 오고 기회를 가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되면서 거기에 맞추던지, 나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거나, 그렇게 쓸 재능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친구들은 떠나게 되는 식으로 양분되어서 대체로 보편적이고 평이한 희곡작가들이 군을 이룰 수밖에 없는 현상이.... 그런 면에서 기성연극인들의 열린 태도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저는 연출가 협회든가 해서 그런 개념이라면 새로운 형태에 희곡을 5작품을 해서 연출가나 극단에서 연계해서 보여주면 ‘지금 뭘 하고 있구나..’ 하는 것인데. 그것이 사실은 별로 다양하지 않잖아요. 극작에 장르라든가. 아주 완벽한 구성과 전통적인 희곡에 관해 끊임없이.. 나이제한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33살 이하라든가,. 그래야 젊은 사람들이 계속 희곡을 해서 공연을 했다, 괜찮다, 멋있다 이런 것들을 듣고 하겠지요. 돈보고 쓰겠습니까? 영화면 모를까.... 그런 것들에 대한 지망생들이 흥미를 느끼고 재밌다 는 생각을 줘야하는데 재미없다는 느낌을 사실 많이 받을 것 같아요.

: 물론 보편적인 것들 속에서 다양한 소재를 가지고 깊이를 찾는 그런 시각들도 있어야 하지만 소위 발상의 전환을 하는 작업들에 관해서도 큰 배려가 있어야 한다고 봐요. 왜냐하면 궁극적으로 세계 연극사를 보면 하나의 방점을 찍은 작품들을 보면 그런 것들에서 비롯되어진 작품들이거든요. ‘관객모독’ 같은 것도 그렇고 ‘고도를 기다리며’도 그렇고 그 당시로서는 상당히 발상의 전환인 작업이거든요. 우리도 그런 걸 통해서 큰 성과를 바랄 수 있는 친구들을 기다려야 한다는 거고, 그들을 찾기 위해서는 그런 쪽의 배려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들을 응원할 수 있는 분위기, 지원, 응원, 시상, 다양한 기회, 이런 것들이 어느 퍼센티지는 항상 존재하여야 되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합니다. 그런 잠재력을 가진 작가와 인식을 뒤바꿀 수 있는 작품이 필요하죠. 연극사에 언급되는 작품들은 머물러 있는 상태에서 세련되게 만든 것들이 아니라 거의 독립극단의 작업에서 나왔으니까요. 사람들이 기존의 연극 언어로는 만족 못하니까 그 언어를 바꿔 놓은 것들이 전환점을 만들어낸 거죠. 만약 50년대, 70년대 유럽이나 90년대 독일의 경우처럼 뭔가 인식을 바꿔 놓을 만한 것들이 나온다면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거예요. 그래서 우리 삶을 담아낼 수 있는 새로운 단계의 언어를 기다리게 되는 거고요. 그런데 이미 3, 40년 전에 나왔던 언어들, 찾아보면 전부 다 나오는 것들인데, 새롭다는 생각으로 쓰니까 문제가 되는 거겠죠. 또는 필연적으로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가 없는 상태에서 시도하니까 거기에 대한 반감들이 생기는 것일 테고요. 당연히 말씀대로 되어야 하고, 그런 작품이 나올 수 있는 가교역할을 기성세대의 작품이 해줘야 합니다. 기존의 연극을 보면서 ‘저건 현실감이 없으니까’ 라는 생각에서 튀어나오는 작품들일 테니까요. 하지만 그건 아마 과거 독립극단 작업의 예에서 보듯이 당장 이해받기는 어려운 실험적인 개념이겠죠. 파격적인 형식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작품에 처음부터 지원을 기대하기는 어렵지 않나 싶습니다.

: 네, 예를 들어서 독일 같은 경우 굉장히 모범적인 사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브레히트나 하이너 뮐러 같은 경우 당시에는 그전과는 비교도 될 수 없는 새로운 언어를 가져왔단 말이죠. 그들은 베를리너 앙상블(Berliner Ensemble)이라고 나라에서 지원하는 국립극단에서 작품들을 발표하였습니다. 그 사람들이 아무리 천재적인 재능을 타고났다 하더라도 희곡을 쓰는데 과거의 것이 섞이지 않고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은 아니라고 봐요. 제가 얘기하는 것은 뭐냐 하면 바로 그러한 것을 쓰겠다고 하는 친구들에게 한 번의 기회를 더 주는 것, 그래서 그들이 그런 얘기도 주고받을 수 있는 경우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죠. 지금까지의 극작가 양성을 하는 과정을 들여다보면 새로운 표현형식의 언어로 말하는 사람들이 근본적으로 나오기 힘든 시스템이라는 이야기예요. 그런 기발성을 이해해줄 만한 심사위원들이 얼마나 될까요. 극작 공모에 상상을 초월하는 작품이 많이 응모함에도 불구하고 그냥 떨어지는 경우가 부지기수이지요. 그런 작품을 극단을 통해서 발표한다하더라도 비판받기 일쑤였지요. 당연히 그런 상상력들이 장벽에 가로막힐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물론 최근엔 그런 양상이 조금 바뀌긴 했지요. 작가들이 직접 연출을 한다든가, 연출가들이 그런 작품들을 공연화하는 경우가 늘어났으니까요. 한편으론 지금 시대에 도리어 좋은 극작가들을 발견해 내는 것은 어쩌면 생각 있는 연출가들의 몫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열린 생각으로 신진 작가들의 작품을 수용해 줄 수 있는 직접적인 유일한 통로이니까요.

: 극작가에서 그런 수업을 받기도 하고 했는데. 선생님들이 이런 식으로 쓰라고 하지는 않아요. 자기들이 쓴 것을 다듬어 주고 기술적인 부분은 들어내고 가르치고 하죠. 어떤 식으로 써라 그런 것이지 그 자체 소재나 아이디어를 가지고 뭐라 하지는 않더라고요. 문제는 자기 들이 관심이 없는 거예요. 솔직히 말한다면. 환경이 그런 거예요. 연극이 재미있다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자기들이 재밌는 연극을 안보고 연극은 재미없다고 생각하고 자기네 상상력은 아무래도 영화 쪽이 맞는다고 판단하고 그쪽으로 나가는 거지. 제 얘기는 극장에서 발표를 하잖아요. 무대 위로 옮기면 좋겠다는 그런 생각이 없는 겁니다.

: 학생들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봐요. 가르치는 사람들이 학생들을 그런 쪽의 세계로 인도를 잘해서 재미있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예술이라는 것에는 근본적으로 정답이 없기 때문에 모든 것에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을 열어주는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봐요. 왜냐면 배우들하고 다른 게 배우들은 그런 텍스트를 가지고 일정 부분의 스킬을 가지고 객석에 전달해야 해요. 즉, 대사를 가지고 발성, 발음을 정확하게 못하면 전달이 안 되는 것과 같은, 적어도 50%정도의 스킬이 사전에 필요하지만, 극작이나 연출이라는 것은 굉장히 유아독존적인 것이거든요. 그런데 기존에 가르치고 있는 사람들이 예를 들어서 모든 것이 독자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느냐 아니면 혹시나 기존에 있는 보편적인 것들이 대체로 정답이라는 식으로 그 친구들을 교육시켜나가고 있는 것은 아니냐 하는 생각을 한 번 해볼 필요가 있죠.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다음시간에는 연출 등에 관해 이야기 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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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인복지법 조속 통과를 촉구하는 예술인대회 성명서

2011년 6월 7일 국회, 예술인복지법 조속 통과를 촉구하는 예술인대회

                                                               성명서

예술은 인간의 특징이자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근본이다. 예술은 사회를 떠받치는 문화의 바탕이자 문화를 이끄는 동력이며 또한 방향타이다. 즉 예술은 교육이나 국방과 함께 국가의 근간이자 존립의 기반이다. 이에 역사상 최고의 국가 경영자 세종이 한글 창제나 과학 발명 외에 음악의 체계화에 몰두했던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예술을 문자나 과학기술과 함께 국가 경영의 중요한 요소로 간주했던 것이다.
예술은 본성적으로 성공 확률이 낮다. 그러나 이 비효율은 최고의 효율을 낳는다. 고도의 과학기술조차 제로의 확률을 무릅쓴 예술인의 무모한 도전에 빚을 지는 경우가 많다. 더욱이 그 고도의 기술로 실현할 콘텐츠는 예술의 도움 없이는 결코 높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다. 이른바 ‘비효율의 효율성’을 깨닫지 못한 채 예술에 근시안적 경제 논리를 들이대는 정책은 3류 국가로 전락하는 지름길이다.
예술은 본성적으로 부정형이다. 예술인을 인정하고 예술인 복지 정책을 세우는 일에 부정형을 핑계로 주저하는 것은 침대에 눕힌 뒤 침대보다 큰 사람은 잘라서 죽이고 작은 사람은 늘여서 죽였다는 서양 신화보다 더 어리석은 짓이다.
예술은 마치 자연이 그렇듯 오랜 세월 쌓이고 쌓여 우리의 삶을 지킨다. 마치 물과 불과 공기가 그렇듯 묵묵히, 마치 자식을 위하는 부모가 그렇듯 불평 한 마디 없이 거대한 짐을 감당하며 우리 인간을 살린다. 그러나 굳게 다문 입술 사이로 새어나오는 그 무언의 신음을 듣지 못 한다면, 끊어질듯한 허리로 버티는 그 무형의 짐을 보지 못 한다면, 지각판을 받치는 돌기둥처럼 억지로 견디던 예술은 마침내 그 끈질긴 생명 끈을 놓고, 인간은 대지진의 재앙을 맞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예술과 예술인의 가치에 대하여 분명한 인식이 필요하다. 예술인 복지가 취약 계층에 대한 복지와는 근본적으로 다름을 확실히 알아야 한다. 마치 국가의 유지를 위해 필수적인 요소를 지키듯 예술과 예술인을 지켜야 한다는 인식이 국가 경영자들의 뇌리에, 나아가 국민 전체의 의식 속에 확실히 자리 잡아야 한다.
그렇다. 국가가 나서야 한다. 국가의 근간인 예술이 사망하지 않도록 예술인을 살려야 한다. 시혜자의 오만한 태도가 아니라 절실함과 인내심으로 구체적이고 치밀한 대책을 마련할 때 예술인들은 비로소 숨을 쉬며 주옥같은 예술작품을 뽑아내고 그렇게 예술이 발전할 때 국가는 비로소 활력을 얻어 성장을 하게 될 것이다. 21세기 우리의 국운이 걸린 일이라는 생각 아래 크게 결단할 때이다.
그러나 <예술인복지법> 처리가 지연되고 있다. 올해 초 최고은양의 죽음에 이구동성으로 높이던 법 제정의 목소리도 어느덧 고요하기만 하다. 늘 그렇듯 다시금 부박한 경제 논리와 무지한 형평 원칙이 맹위를 떨친다. 진정한 대책 마련을 위한 고민과 노력은 어디에도 없다. 이에 우리 예술인들은 이 사태를 심히 우려하며 오랜 세월 지켜오던 침묵을 과감히 깨고 국가와 사회에 대해 근본적인 각성을 촉구하고자 한다.

하나. 국회는 <예술인복지법>을 즉각 처리하라.
하나. 기획재정부와 고용노동부는 <예술인복지법>에 대한 부정적 입장을 즉각 철회하라.
하나. 정부는 <예술인복지법> 시행령을 즉각 마련하라.
하나. 정부는 <예술인복지법> 시행에 필요한 예산을 즉각 확보하라.

                                                    2011년 6월 7일
                                             <예술인복지법> 즉각 처리를 촉구하는
                                                    대한민국 예술인 일동


편집후기

   이정현기자 jh4017@hanmail.net

원고 마감 날짜가 다가오면 마음을 졸이기도하고 편집 날짜를 맞추려 부단히 노력도 합니다.
그래도 이렇게 완성된 오늘의 서울연극을 보면 뿌듯한 마음이 듭니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동숭동 1-139 한양빌딩 4층 서울연극협회
E-mail : jh401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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