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이름을 내걸고 신의 축복과 의로움에 대한 확신 속에서 얼마나 혹독한 파괴와 잔혹한 살육이 이루어져 왔는지 가해자에게는 아무런 기억도 남아 있지 않는가 보다. 피해자로서 이 추장은 기독교도들의 공격을 받는 고통보다는 기독교도들이 없는 세상이라면 차라리 지옥의 어떤 고통이라도 달게 받겠다는 선언이다.
이런 갈등은 16세기에만 있었던 일이 아니라, 21세기에도 지속되고 있는 것 같다. 빈 라덴이 저지른 9.11 테러의 만행을 가슴 아프게 새겨두지만 그동안 이슬람인들이 어떤 고통을 받았던지는 전혀 기억조차 없다면, 어떻게 그 테러와 저항이 그치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빈 라덴을 죽였다고 워싱턴 광장에 모여 환호하는 군중들을 보면서, 예수의 사형판결을 듣고 환호하던 빌라도 법정의 유태인 군중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두 군중들 사이에 무엇이 다른지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자기중심적 본능을 극복할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인간다운 품격을 확보할 수 있다.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보라”(易地思之)는 격언을 흔히 끌어다 쓴다. 자기 입장에만 사로잡혀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상대방의 처지에 서서 생각해보는 발상의 전환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렇게 서로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다면 나와 네가 대립하고 갈등을 일으킬 일이 거의 대부분 해소될 수 있게 될 터이다.
나만 옳다는 독선은 상대방을 무시하고 해치는 악의 원천이다. 이러한 독선이 가장 심한 경우가 바로 종교일 것이다. 나는 진리고 정의고 선이라 확신하는 순간 상대방은 거짓이고 불의고 악이라 판단하여 증오하고 배척하기 십상이다.
조선시대 유학자들이 독선에 빠져 불교를 배척하였던 사실이나, 근래에 한국의 기독교도들이 독선에 빠져 다른 종교들을 배척하였던 태도는 모두 자신만이 옳다는 확신의 굳은 껍질에 갇혀, 서로 소통하고 화합할 수 있는 길을 잃은 소아병적 행태일 뿐이다. 독선의 껍질에 갇히면 자기가 전체를 지배해야 한다는 공격성만 키우게 되어, 남과 어울리고 화합하려는 포용성을 상실하고 만다. 그 결과는 대립과 갈등이 일으키는 온갖 폭력과 비극만 초래할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