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반값 등록금

장코폴로 2011. 6. 11. 06:57

반값 등록금
김 민 환(고려대 명예교수)

현 정권은 이미 대선 공약으로 대학 등록금을 대폭 인하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그러나 정부나 여당은 그동안 이 문제에 미온적이었다. 정권이 바뀐 지 몇 해가 지났지만 이렇다 할 대안을 내놓지 않았다.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으로 끝나는가, 했더니 요즘 여당에서 다시 등록금 인하 문제를 사회적 아젠다로 제기했다. 늦었지만 그나마 반가운 일이다.

현재 대학 가운데는 1년에 1천만원에 육박하는 등록금을 받는 곳이 많다. 그럼 이 정도는 합당한 수준일까? 물론 그렇다. 대학에서 등록금을 책정할 때 주먹구구로 하는 것이 아니다. 주기적으로 학문분야별 교육비를 산정하고 물가인상률을 감안해 액수를 정한다. 이런 절차를 거쳐 대학은 현재 수준의 등록금을 받고 있다. 대학 등록금 문제는 대학이 적정 수준의 등록금을 받고 있다는 가정을 전제로 해야 정답을 얻을 수 있다.  

사립대학은 ‘기여 입학제’도 검토해야

대학 등록금은 사실 대학 처지에서 보면 앞으로도 더 많이 올려야 할 필요가 있다. 사회가 대학의 세계화를 요구하고 있다. 세계 수준의 대학이 되기 위해서는 과감한 투자가 불가피하다. 더구나 여러 곳에서 대학평가를 해대는 통에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투자를 머뭇거릴 수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등록금을 올리는 것보다 용이한 방법은 없다.

문제는 어디에 있는가? 그 답은 정부도 알고 학생도 안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가운데 정부의 대학에 대한 재정 투자가 매우 빈약한 나라에 속한다. 국립대학에 대해서는 그런대로 국가가 재정지원을 하지만 사립대학에 대해서는 간섭은 하되 지원은 하지 않는다. 사립대학의 경우 법인이 돈을 내놓아야 하는데 전입금이 그저 상징적인 수준에 머무는 대학이 많아 투자재원 확보를 위해 등록금을 올리는 것 말고는 왕도가 없다.

정부가 일거에 교육투자를 큰 폭으로 늘릴 수 없다면, 기여 입학제의 점진적인 시행도 검토해야 한다. 기여 입학제란 돈 받고 합격증을 파는 제도가 아니다. 대학 발전에 기여한 이의 후손에게 응분의 보상을 주는 제도로 선진국에서는 합리적인 내규를 만들어 별다른 잡음이 없이 잘 운영하고 있다. 기여 입학제를 도입한다면 등록금은 낮추고 장학금은 대폭 늘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이에 대한 논의조차 금기시하고 있다. 대학 처지에서 보면 정부 지원도 시원치 않고 기여 입학제도 길이 막혀 있어 등록금 의존도를 떨어뜨릴 방법이 없다. 

등록금 낮추기, 답 찾는 방법부터 숙고해야

정부가 대학의 세계화와 질적 향상을 압박하면서도 대학에 대한 투자를 소홀히 하는 바람에 대학 등록금은 천정부지로 오르고 말았다. 부모의 소득이 높은 경우 그래도 견딜 수 있겠지만 대다수 서민의 생활수준으로는 자식이 대학에 합격하는 순간부터 등록금 압박에 시달려야 한다. 전에는 아르바이트로 학생 스스로 학비를 마련할 수 있었지만 요즘은 한 학기를 쉬고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해도 다음 학기 등록금을 손에 쥘 수가 없다.

이제 어떤 수를 써서라도 대학 등록금을 내려야 한다. 그러나 이 문제는 결코 간단하거나 만만한 것이 아니다. 교육재정을 획기적으로 확충하면 되겠지만 그게 말처럼 쉬울 턱이 없기 때문이다. 선거용의 미시적 접근은 접어야 한다. 이제 대학의 백년대계를 내다보는 장기대책을 세워야 한다.

그러나 요즘 전개되는 등록금 논쟁을 보면 문제만 키울 것 같다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 반값 등록금이라는 말 자체가 허황한 수사(修辭)다. 어디 그뿐인가. 진지한 검토도 없이 이런 저런 안을 내뱉는다. 거기다 논의 초반부터 민감한 이해당사자인 학생부터 끌어들이고 있어 이게 뭐 하자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대중영합적이고 경솔하고 조급하기는 여야가 다르지 않다. 정책수립의 과정이 이 모양이어서는 안 된다. 답을 내놓기 전에 답을 찾는 절차와 방법부터 숙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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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민환
· 다산연구소 대표
· 고려대 명예교수
· 한국언론학회 회장 역임
· 저서: <개화기 민족지의 사회사상>
          <일제하 문화적 민족주의(역)>
          <미군정기 신문의 사회사상>
          <한국언론사>
          <민주주의와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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