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의 아름다움
금 장 태(서울대 명예교수)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목민관이 지녀야 할 마음의 자세에서부터 행정의 실무에 이르기 까지 자세하고 절실하게 문제를 짚어주고 방법을 제시하였다. 그렇지만 정상적인 조건 아래에서 행정의 문제들을 논의하기만 하였던 것은 아니다. 재난을 당한 비상사태에서 백성들을 어떻게 구제해야 할지 그 대책을 점검한 ‘진황’(賑荒)편을 설정하고 있는 점은 그의 생각이 얼마나 빈틈없이 용의주도한지를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목민심서』‘진황’편에는 백성을 재난으로부터 구제하는 방책을 6조목으로 분석하여 해명하고 있는데, 그 첫째 조목으로 ‘비자’(備資)는 흉년이나 뜻밖의 재난을 당하기 전에 미리 대비하여 물자를 비축해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언제 어떻게 닥칠지 모르는 재난에 아무 준비가 없다가 당하면 당황하여 혼란만 가중되다가 파탄에 빠질 위험이 높다. 재난이야 하늘이 내리는 시련이라 하더라도, 미리 대비해 놓는다면 재난의 위기도 슬기롭게 넘길 수 있는 역량이 인간에게 주어져 있다.
남의 일이 아닌 재난, 차마 그냥 둘 수 없는 불행
‘진황’편의 첫 조목(備資)이 재난에 대한 대비라면, 나머지 다섯 조목(勸分·規模·設施·補力·竣事)은 재난을 당한 다음에 백성을 구제하는 대책을 제시한 것이다. 이 다섯 조목의 첫머리에 재난을 당했을 때 나누어 쓰기를 권장하는 ‘권분’(勸分)을 들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우리에게는 전통적으로 재난을 당하거나 길흉 간에 큰 일을 당했을 때는 이웃이 모두 나서서 서로 돕는 아름다운 풍속이 있다.「향약」(鄕約)의 4조목에서도 마지막 조목에 ‘우환과 재난을 당하면 서로 구제한다’(患難相恤)는 것이 바로 이웃 간에 넘어지려는 사람이 있으면 서로 붙들어주고 일어나려는 사람이 있으면 서로 도와주는 ‘상부상조’(相扶相助)의 정신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최근에 일본이 엄청난 지진과 해일의 타격을 입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핵발전소까지 폭발의 위험에 놓이게 되어 참담한 재난을 당하고 있다. 도시가 폐허가 되고 가족의 생사를 물어 헤매거나 대피소에서 피난생활을 하는 생생한 광경을 바로 곁에서 일어난 일을 보듯이 화면으로 지켜보자니 놀랍고 안타까운 마음이 그지없다. 재난이 언제 누구에게 닥칠지 모르니 결코 남의 일 같지 않다.
우리 정부는 물론이요 국민들 가운데서도 혹독한 재난을 당해 고통받고 있는 일본을 돕겠다고 나서는 것을 보면서 우선 반갑고 자랑스러웠다. 이웃 집에 불이 났는데 불구경이나 하려 들거나 남의 불행을 보고 속으로 기뻐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의 마음 한 구석에 숨어 있는 이기적이고 사악한 마음일 것이다.
맹자는 어린 아이가 우물에 빠져드는 광경을 보게 되면 누구나 놀라고 측은히 여기는 마음이 일어나 살려내려고 뛰어들게 된다고 하였다. 이렇게 이웃의 불행을 보고 안타까워하며 구제하려는 마음은 결코 그 집안과 친교를 맺기 위해서거나 마을 사람들과 친구들의 칭찬을 받으려는 속셈으로 계산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였다. 바로 이 측은히 여기는 마음이 ‘차마 남이 다치게 버려두지 못하는 마음’(不忍人之心)이요, 인간의 성품이 선한 증거라 하였으며, 이런 측은히 여기는 마음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라고까지 맹자는 역설하였다.
한국인은 누구나 일본에 대해 착잡한 복합적 감정을 가슴 속에 지니고 있다. 국권을 침탈당하여 나라를 잃고 식민 지배를 받았던 36년간의 굴욕과 고통을 결코 잊을 수야 없다. 그러나 묵은 원한에 젖어 상대방이 당한 불행을 내심 기뻐하는 소아적(小我的) 편협한 감정에 빠지지 않고, 이웃이나 친구가 당한 불행처럼 걱정하며 도우려 나서는 대아적(大我的) 열린 도량의 마음을 보면서 우리의 성숙한 국민의식이 어찌 자랑스럽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마음에서 우러나서, 또한 조용하게
이웃이 어려움을 당했을 때 서로 도울 수 있어야 진정한 이웃이다. 잘 나갈 때 만난 친구보다 곤궁하고 어려웠던 시절에 사귄 친구를 잊을 수 없는 것처럼, 위급할 때 서로 도울 수 있어야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다. 좋은 이웃 진실한 친구는 처음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려울 때 서로 도우면서 비로소 만들어져 가는 것이다. 우리가 먼저 좋은 이웃 진실한 친구가 된다면 분명 일본도 우리에게 좋은 이웃 진실한 친구가 되리라 믿는다.
재난으로 어려움을 당한 이웃에게 나누어 주고 구조해주는 데에도 원칙이 있다. 정약용은 재난을 당했을 때 서로 나누어 쓰기를 권하는(勸分) 조건으로 자발성을 강조하였다. 그는 재난을 당해서 나누어 쓰기를 권유한다는 것은 스스로 ‘베풀기’(施)를 권유하는 것임을 언급하고, 억지로 내놓게 하는 것은 베푸는 것이 아니라, ‘바치게 하는 것’(納)임을 지적하였다. 남의 눈치를 보거나 체면 때문에 마지못해 내놓는 것은 스스로 베푸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어 바치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 이웃돕기 운동도 좋은 의도에서 출발하는 것이지만, 정도가 지나치면 강요의 분위기로 흐를 수 있음을 경계하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가 우리보다 훨씬 잘사는 이웃인 일본이 재난을 당했을 때 조금이나마 도울 수 있다는 것은 이웃나라 사이에 우호를 다지는 데도 좋은 기회이다. 그런데 우리 주위에는 어쩌다 천재지변의 재난을 당한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 그 자체가 극심한 재난의 수준에 놓여 있는 이웃이 많이 있다. 가까이는 북한의 우리 동포가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으며, 멀리는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들이 내전과 빈곤에 엄청난 고통을 당하고 있다. 사실은 우리나라 안에도 빈곤과 질병에 고통받는 이웃이 얼마든지 있다. 거리의 걸인이나 노숙자들에게는 냉정하리만치 무심하다가 이웃나라의 재난을 돕는 데 너무 요란하게 나서는 것도 모양이 좀 이상하다. 남을 도울 때는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도 모르게 하라고 했는데, 조용히 그러면서도 진심으로 서로 돕는 마음이 발휘된다면 정말 아름답지 않겠는가.
글쓴이 / 금장태
· 서울대 종교학과 명예교수
· 저서 : 『실천적 이론가 정약용』, 이끌리오, 2005
『한국의 선비와 선비정신 』, 서울대학교출판부, 2000
『한국유학의 탐구』, 서울대학교출판부, 1999
『퇴계의 삶과 철학』, 서울대학교출판부, 1998
『다산 정약용』,살림, 2005
『다산 실학 탐구』, 소학사, 2001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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