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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이런 곳도 있다고?
우리나라 동서남북의 꼭지점부터 시작해서 속속들이 파고드는, 보는 것만이라도 신나는 이야기들을 만나보겠습니다.
인터넷 시대인 요즘 인터뷰도 이메일로 진행된다. 미리 전화라도 한 통화 주고 메일을 보내면 좋으련만 마감에 쫒긴 탓인지 메일만 달랑 보내는 황당한 경우도 있다. 작가들에게 인터뷰 요청이 들어오는 경우는 새 책을 낼 때가 가장 많다. 몇 년 전 가족여행 테마의 해외여행서를 내자 이름을 대만 알만한 여성지의 몇 가지 질문이 이메일로 날아들었다. |
이 땅에서 여행작가로 산다는 것 |
‘여행전문 작가... 정말 부럽네요. 활동하신 지 얼마나 되셨지요?’ 그래서 ‘88올림픽이 끝날 무렵 자유기고가 생활을 꿈꾸며 다니던 직장을 접고 여행작가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해 겨울부터 여행지를 찾아 떠도는 일을 시작했으니 올해로 20년 가까이 되는 셈입니다.’라고 답했다. 그 다음 질문은 ‘얼마나 많은 여행지를 다니셨는지, 어디가 가장 좋은 여행지였는지, 여행 갈 때 꼭 가지고 가는 것은 무엇이 있는지’ 등 평범한 질문들이 이어졌다. 별로 어렵지 않은 질문인지라 별 고민 없이 적어 내려갔다. 이어지는 질문부터는 조금씩 내 신경을 건드리기 시작한다. ‘여행작가란 어쨌든, 모아놓은 돈이 꽤 있는 상태에서만 가능한 것은 아닐까 하는 궁금증이 듭니다.’ 그래서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취재를 다니기 위해서는 금전적인 문제가 먼저 해결 되어야만 하지만 작가로서의 능력만 인정받으면 미디어 팸투어나 취재 요청에 따른 경비 제공 등 여러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라고 별 생각 없이 답했다. ‘여행을 통해 얻는 순수입은 얼마 정도이신가요?’ ‘여행경비는 어떻게 충당하시는지요?’ 라는 질문이 이어졌다. ‘혹시 세무서에서 여행작가들이 돈 많이 번다는 뜬소문을 듣고 조사를 벌이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갑자기 들기 시작했다. 그래도 ‘설마’ 하는 생각으로 ‘돈 못 벌어요. 춥고 배고픈 직업입니다. 앞으로 자식이 여행작가 한다고 하면 도시락 싸가지고 쫓아다니며 말릴 생각입니다.’라는 내용을 구체적인 예까지 들어가며 장황하게 답을 달았다. 다음 질문은 한 술 더 떴다. ‘수입이 안정적이신 편입니까? 여행만으로 생활유지가 가능한 정도인가요? 투잡을 하시거나 하시진 않는지요?’ 이쯤 되자 슬그머니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나는 불안정한 직업을 가진 무능력자다. 여행만으로 생활 유지가 불가능해서 어쩔 수 없이 투잡 한다.’ 라고 적고 싶은 생각이 마구 들었지만 내 사회적 위치(?)를 생각해서 참기로 했다. 그런데 ‘생활에 있어 안정감은 없을 것이라는 염려가 드는데, 어떠한가요?’ 라는 질문이 이어지자 갑자기 부아가 치밀었다. ‘그래 난 벌면 쓰고 못 벌면 굶는 일용직 인생이다. 그런데 네가 보태준 거 있어?’라고 한바탕 해주고 싶었다. 내 많지 않은 인내심도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거 인터뷰 맞아? 더 이상 대답해 준다는 것은 내 자존심이 도저히 허락되지 않아. 더 이상 대답한다면 난 자존심도 없는 인간이야’라고 스스로를 타이르며 모범 답안 만들 듯 착실하게 답을 달았던 파일을 지우려 하다가 문득 다음 질문이 궁금해졌다. |
‘여행전문가, 여행작가를 지칭하는 사람들도 너무 많은데, 어떻게 차별성을 두시는지요?’ ‘인맥이 있어야 가능한 것은 아닌지요?’ ‘기존 인간 관계에 트러블이 생겼던 적은 없었나요?’ ‘운이 좋아야 뜰 수 있는 것 아닌가요? ’ 이런 내용들이 이어져 있었다. 이 때 문득 머리를 스치는 생각, ‘아! 이 기자양반의 장래 희망은 여행작가구나. 당장이라도 직장 때려치우고 여행작가가 되고 싶기는 한데 어떻게 하면 돈 벌어 생활하면서 여행을 다닐 수 있는지 궁금했겠구나. 그렇다면 노하우를 가르쳐 줄 순 없지.’라고 판단하고 과감하게 메일을 지워버렸다. 이런 경험을 하면서 보통 사람들이 내 직업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과연 이 땅에서 여행작가로 살아간다는 것이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어떻게 보일까? 여행도 즐기고 생활도 할 수 있는 최고의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 생각하지는 않을까? 인맥이 있어 매체에 글을 실을 수 있었고, 어쩌다 운이 좋아 떴고, 쥐꼬리 같은 고료로 생활하지만 안정감이 없어 주변 사람들이 걱정하는 그런 사람은 아닐까? 이런 생각이 꼬리를 물자 정말 우울해지기 시작했던 경험이 있다. |
여행작가 이종원씨는? |
8년 전 어느 봄날로 기억된다. 나른한 오후 30대 후반의 열정 넘치는 사람이 나를 찾아왔다. 내가 운영하는 여행웹진 <와우트래블>에 ‘부부가 함께 떠난 유럽배낭여행기’를 투고했던 그가 내민 보험회사 명함에는 과장 직함이 박혀있었다. 인터넷 문화유적답사 카페도 운영하고 있다는 그는 』『우리나라 어.디.까.지. 가봤니? 56』의 저자 이종원 작가다. 나를 찾아 온 이유는 ‘여행작가를 하고 싶은데 넥타이를 풀어버려도 되겠냐?’는 것이었다. 안정감 있는 회사를 멀쩡하게 잘 다니던 사람이 ‘여행작가’라는 매력적인(?) 직업에 홀려서 큰 일 내겠구나 싶었다. 기억이 희미하지만 여행작가 일을 하면 고생하는 이유를 내 경험담과 함께 10가지 정도 말해주면서 말렸던 것 같다. 자신의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그려놓고 행동에 옮기는 사람들이 주변사람들을 찾아가 조언을 구하는 경우는 자신의 결정에 힘을 실어주기를 원하는 묘한 기대심리가 깔려있다. 그 날 그와 대화를 나누면서도 그런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희망적인 이야기와 여행작가로 살아가는 방법을 듣고 싶었던 그가 내게 느낀 실망은 생각보다 컸을지도 모른다. 우여곡절 끝에 여행작가 일을 시작한 그를 지켜보는 것은 흥미로웠다. 취재하고 기사 쓰는 일에서 시작한 다른 작가들은 청탁해오는 일만 기다리는 편인데 이종원 작가는 달랐다. 기업의 마케팅 부서에서 갈고 닦은 능력을 바탕으로 일감들을 만들어 냈고 빠른 시간에 자리를 잡았다. 항상 에너지 넘치고 좌충우돌 부딪쳐 나가는 역동적인 모습과 일가를 이루고 있는 그를 볼 때마다 ‘나중에 난 뿔이 우뚝하다’는 속담이 생각난다. |
놀라운 우리나라 구석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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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걷기 좋은 길 111 한국여행작가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