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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미러클
미래 경제를 좌우할 아시아의 부상, 이는 미국의 좌초에서 비롯된것일까요, 아니면 정부의 똑똑한 정책과 리더십 덕분일까요? 아시아의 기적 같은 성장에는 과연 어떤 힘이 작용한 것인지, 현직기자의 예리한 취재력을 통해 파헤쳐 봅니다.
아시아의 기적, 원동력은 어디서? |
서에서 동으로 경제권력이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시작된 글로벌 경제위기가 부의 이동 속도를 가속화하고 있다. 아시아의 부상은 미국의 좌초에서 비롯된 걸까? 아니면 그들 나름의 독특한 비결이 있는 걸까? 많은 전문가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아시아의 기적은 정부의 간섭으로 이뤄진 것일까? 타임의 홍콩 특파원으로 아시아 전문기자인 저자 마이클 슈먼은 그의 저서 『더 미러클(The Miracle) 』에서 “아시아 국가들이 정부의 리더십 때문에 발전했다는 평가는 상당히 과대평가됐다”고 말한다. 저자는 왜 이처럼 말하는 것일까? 홍콩은 단 한번도 ‘강력한 국가의 손’을 경험하지 않았고 중국과 인도 경제의 붐은 정부가 오히려 한 발짝 물러나 민간에 좀더 많은 자유를 줌으로써 이뤄졌다는 분석이다. 한국도 정부가 중추적인 역할을 했지만 더 중요한 힘이 작용했다.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
‘세계화’가 아시아의 성공을 이끌었다 |
저자는 아시아가 다양한 방식을 통해 성장할 수 있었던 한 가지 공통요인은 바로 ‘세계화’였다고 규정한다. 세계화를 구성하는 몇몇 기초 요소의 활용법을 간파해 자유무역, 자본의 자유로운 흐름, 자유로운 기업활동을 글로벌 경제에 밀착시켜 성공을 거뒀다는 분석이다. 한국도 경제에 대한 국가의 개입이 뚜렷했지만 관료의 힘보다 기업들이 창출해낸 교역의 힘이 수출 경쟁력을 만들어냈다고 진단하고 있다. 저자 마이클 슈먼이 찾아낸 또 다른 해답은 바로 ‘사람’이다. 아시아의 경제기적은 ‘사람들의 치열한 노력’의 결과라는 것이다. 생산과 수출현장의 근로자를 비롯해 사업가들의 창의력, 놀라운 국가 리더들이 아시아의 미러클을 이끈 주역이라는 분석이다. |
페리제독, 아키오 일본을 이끌다 |
일본경제에 있어는 소니의 창업자 모리타 아키오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소비자의 심리를 파악하는 데 천부적인 재능을 보였다. 미래의 기술적?사회적 트렌드를 읽는데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었다. 그 트렌드를 읽어 탄생시킨 것이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 워크맨이다. 워크맨은 ‘메이드 인 재팬(Made in Japan)’의 이미지를 바꿔놓았다. 제품 디자인이나 생산, 마케팅 등에서 일본을 우수 품질의 대명사로 만들어줬다. 이후 모리타는 미국의 웨스턴 일렉트릭으로부터 트랜지스터 기술 사용권을 얻어 일본을 IT국가로 탈바꿈시킴으로써 일본 경제사의 전환점을 만들었다. 매튜 페리 제독. 그는 1853년 7월 군대를 이끌고 도쿄항으로 쳐들어가서 일본 개방의 문을 두드린 주인공이다. 막부 정부를 굴복시킨 페리 제독은 일본 지도자들에게 자신의 최우선 과제가 경제적 근대화임을 자각하게 만들었다. 이 사건은 ‘메이지 유신’으로 불린 정치혁명을 유발시켜 일본은 막부를 몰아내고 일왕을 정부의 최고 권위자로 옹립하게 된다. |
박정희, 정주영 ‘아시아 모델’을 만들다 |
박정희는 무에서 유를 창조해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주인공이다. 생산시설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자동차는 물론, 가전제품, 선박, 철강까지 생산하는 나라를 만들었다. 박정희는 일본 통산성의 개발 모델을 도입해 이를 활성화시켰고 국가의 개입이 경제를 끌어올릴 수 있다는 확실한 증거를 보여줬다. 이를 통해 한국도 일본처럼 ‘한국 주식회사’를 만들었다. 일본 통산성이 그랬던 것처럼 박정희도 ‘한국 주식회사’의 최고경영자로서 한국의 경제계획을 직접 통제하고 디자인했다. 이로 인해 그의 통치는 ‘개발 독재’로 불린다. 이는 기존 고전경제학을 무시한 것이었다. 심지어 앨리스 암스덴 미국 매사추세츠대 교수는 “한국의 사례는 수세기 동안 경제학자들이 세운 가정들에 정면으로 도전한 새로운 산업화 모델이다”고 분석했다. 저자는 박정희가 최고경영자였다면 정주영의 최고운영책임자(COO)였다고 해석한다. 정주영은 자동차 트럭 선박 반도체 전자제품 중장비산업을 통해 한국을 건설했다. 건설부가 제시한 예산의 40%에 현장생활을 하며 박정희와 손잡고 전국 고속도로를 닦았다. 그 후 박정희의 신임을 얻었고, 자동차와 조선업의 신화를 일궈냈다. |
리콴유, 고겡시 싱가포르를 일으키다 |
도시국가인 싱가포르의 첫 총리 리콴유. 지방 공무원 출신인 그는 1967년 말레이시아와의 연방관계를 끝내고 독립을 선언했다. 도시국가가 살아남으려면 독특한 경제성장 방식을 취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리콴유는 일본이나 한국과 달리 빠른 성장을 위해 외국 자본을 활용했다. 자국경제에서 외국자본이 일정 수준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도 기꺼이 받아들였다. 도시 국가를 실용주의로 무장시켰다. 정부가 해외투자 유치에 앞장섰고 다국적 회사를 적극 유치했다. 즉, 외국의 투자를 활용해 가난한 나라를 부자나라로 탈바꿈 시켰다. 교육, 시장주의, 평등주의, 사회주의, 다문화주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를 통해 세계에서 가장 분주한 항구, 금융의 허브, 세계적인 줄기세포 연구 중심지로 국가를 도약시켰다. 리콴유가 싱가포르의 국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조력자 고겡시가 있었기 때문이다. 대학친구인 고겡시는 리콴유의 분신역할을 했다. 기술관료로 싱가포르의 산업화기적을 만들어낸 주인공이다. 리콴유는 “그의 도움이 없었다면 싱가포르는 오늘날 모습의 절반도 갖추지 못했을 것”이라고 그를 평가한다. |
슈퍼맨 리카싱, 홍콩을 들어올리다 |
홍콩은 정부개입이 아닌 옛날식 자본주의 방식으로 미러클을 일으킨 곳이다. 이 미러클의 핵심에 창조적 사업가 리카싱이 있다. 그는 개방경제를 잘 활용해 홍콩을 ‘제조업의 허브’로 만들어 의류와 완구, 직물, 전자제품을 미국과 유럽에 수출해 거대 기업을 일궈냈다. 이 같은 홍콩식 개발모델은 국가 주도의 금융이나 정부의 강압적인 지침 없이도 경제성장을 빨리 이룰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가 되고 있다. 슈퍼맨이란 별명을 가진 리카싱은 플라스틱 제조업으로 큰 돈을 벌어 싱가포르의 미래에 투자했다. 부동산, 이동통신망, 슈퍼마켓, 건설 등으로 사업영역을 확대해나갔다. 특히 영국계 무역상사인 허치슨을 인수해 홍콩 경제사의 시발점을 만든다. 리카싱은 정치인도 행정가도 아닌 사람이 홍콩의 경제사를 바꾼, 홍콩을 들어올린 주역이라는 점에서 주목할만하다. |
덩샤오핑, 세계경제를 뒤바꾸다 |
1978년 12월 13일. 이 날은 중국의 물줄기를 바꿔놓은 날이다. 덩 샤오핑이 정치투쟁이나 이데올로기 논쟁을 뒤로 하고 중국을 개혁, 개방의 길로 들여놓았기 때문이다. 그는 당 최고지도자들을 대상으로 “마오쩌둥식 경제이론이 실패작이었다”며 “마오이즘을 버리고 경제발전에 박차를 가하자”는 연설을 내놓았다. 이른바 중국식 사회주의를 내걸고 ‘부자되는 것은 영광스러운 것이다(To Get Rich is Glorious)’는 마인드를 심어줬다. |
아시아의 경제를 심층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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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 세계경제의 라이벌 빌 에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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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디아 피트 엔가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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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부론 던컨 휴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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