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노트(영화일반론)

1990년대 한국영화와 비평이 남긴 것

장코폴로 2010. 3. 17. 14:09

                       1990년대 한국영화와 비평이 남긴 것

                    

                                장석용 (영화평론가,경희대 신문방송학과 강사)


 90년대 한국영화는 21세기의 산업적 토대를 이루는 다양한 실험이 이루었던 시기이다. 영화산업의 팽창과 더불어 평단이나 학회의 작업도 활발하게 이루어 졌으나, 언론매체 중 신문매체에서 평론가가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축소되었고, 방송의 기획․특집 물이나 맞춤 인터뷰로 독특한 목소리를 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캠퍼스에 있어야할 선생들은 언론의 변방이나 정치권의 끝자락에 달라붙는 추한 몰골이 연출되기도 했다.

 한국 영화 연구의 괄목할 성과는 보이지 않았고, 우리영화사 연구는 뒷전으로 물러나 앉았으며, 평단이나 학회에서 작업이 최고의 논문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또한 미국 편중의 논문 쓰기는 일반인이나 영화학도들에게 다양한 사고의 장을 열어주지 못했다는 점에서 한국 영화 연구는 영화학회가 발족된 29년, 영화평론가협회 발족 36년이 된 이 지음에도 토착 영화연구 방법론의 면모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영화평론의 역사는 1925년 이구영 선생의 「조선영화계의 과거․현재․미래」가 조선일보에 11월에 발표된 이래 76년이 되었고, 1950년 9월 10일,오종식, 허백년, 박인환, 이봉래, 오영진, 유두연, 이진섭 등 11명이 주축이 된 한국영화평론가협회가 부산에서 창립되었으나, 이들의 다양한 성격과 직업들로 곧 해산을 맞았다.

 50년대 후반인 57년 10월 호현찬, 임영, 신우식, 이명원, 김진찬등이 시네마 클럽을 만들어 ?한국영화비평가협회?로 명명한 적이 있고, 60년대인 60년 9월, 故 이영일 (대표 간사), 김종원(총무), 김정옥 등이 발의한 한국영화평론가협회는 5․16으로 자진 해산 형식을 밟는 비운을 맞았다. 따라서 90년대 평단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평단의 역사를 알 필요가 있다.

 오늘날의 한국영화평론가협회는 65년 11월 10일 저녁 8시, 을지로 3이, 중국집 「안동루」에서 이영일, 최일수, 변인식, 김종원 등 7인이 모이고, 김정옥, 이진형, 허창 3인이 총회에 전권을 위임 10명이 한국영화평론가협회 창립을 선언했다.

 올바른 비평정신 확립과 비평 활성화를 통해 한국 영화 발전에 이바지를 주창한 이 단체는 ?한국영화비평가협회?후신인 셈이다. 故 최일수, 故 허창, 변인식 등이 가담 새 영화평론가협회를 만든 셈이다. 65년부터 79년까지 이영일 선생이 회장을 맡았고, 80년부터 정일몽 회장이 임기 1년으로 있다가 조관희 전임회장부터 오늘까지 임기가 2년으로 되었다. 

 발족 당시 10명이던 영평회원은 현재 45명으로 늘었고, 그들 대부분은 언론계․ 학계에 대부분 포진되어 있다. 영평은 오늘까지 영평상 시상식 21회, 연간 협회지 「영화평론」 12권의 간행, ‘ 한국 영화의 방향타’를 잡는 역할과  영화분석의 전문가 집단으로 우뚝 서 있다.

  평론가 정영일 (89),여수중 (90),최일수(95), 김진찬 (99), 안병섭(00), 허창(00), 이영일(00)등 평론가가 타계했고, 학회에서는 실험영화와 미국현대영화 이론을 강의하던 권병순 선생이 고인이 되었다. 이들의 작업은 직․간접적으로 90년대 한국영화 평단에 연관되어져 있다. 

 90년대의 영화비평이 그 이전의 영화연구 작업들과 확연한 차이를 이룬다고 보기에는 어려우며, 장문의 연구 작업이 이루어진 것은 『영상시대』,『영화평론』,『영화연구』등의 협회 지들이 간행되면서 부터이고,유학파들을 중심으로 한 번역서 작업, 현대미학사를 비롯한 몇몇 예술서적 전문출판사들이 영화연구의 기틀을 만드는데 커다란 역할을 하였다. 

 또한 80년대부터 작업을 해오고있는 영화전문 월간지 『스크린』등이 대중적 영화정보 제공과 영화감상의 기본적 자료들을 제공해 주었다. 90년대에는 『공연과 리뷰』,『키노』등이 장문의 영화비평들을 수용하면서 정부가 해내지 못하는 작업들을 해내고 있는 편이다.

 90년대는 필자가 한국영화학회의 총무․학술간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의 출판간사,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의 섭외이사, 독일에 본부를 둔 국제영화비평가연맹의 한국본부 사무국장을 지냈고, 이태리 세인트 빈센트 정기총회 참석과 이태리 황금금배상 심사위원을 역임하고 국․내외적으로 영화평단을 조망하는 위치에 있었기에 발제자로 배정되었으나 아쉽게도 한국영화평단을 제단하기에는 아직도 전문화 분업화가 덜 이루어졌기에 구체적으로 영화비평의 성과를 논의하기에는 한계가 있음을 밝힌다.

 영화의 전문영역을 논한다 함은 국가별로 영화전문가 존재와 장르별로 영화전문가, 영화음악, 영화조명과 같은 부문별 전문가, 映畵史家등 존재를 말한다.

 영화가 연도별로 세분화되고 작가별 주제별 장르별로 10년 단위로 묶을 만한 시간과 노력등 깊은 호흡으로 작업을 하기에는 이를 격려할 경제적 뒷받침이 부족함도 한 요인이 될 수있다. 사실 영화비평집단의 가시적 성과는 개인들의 단행본, 연감, 세미나와 영화제 등에서의  발표된 연구 성과물과 학위논문들이 될 것이다.

 이 기간에 쓰여지고 발표된 논문들이 연구자들의 열정으로 쓰여진 것이라기 보다는 학위나 학술지원비를 염두에 둔 것들이라서 당대의 시대정신을 읽는데는 부족하고, 현실감 실려있지 않은 글들의 대한 성과성의 검토는 서평과 마찬가지로 무리가 따른다.

 이런 이유로, 이 발제문은 개관․학술과 비평 의 큰 줄기․이슈를 중심으로 엮어져 있으며,90년대 비평집단의 성과물로 읽기에는 한계가 있으며 비평에 영화흐름이 실리는 것이 아니라 영화흐름에 대한 비평적 모색으로 생각함이 타당할 것이다.

 한국영화 역사 82년 동안 90년대 10년의 단편들은 타 시대와 유별나게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니며 새로움을 모색하는 영화들이 한국영화사에서 어떠한 위치를 차지하고 평론가들은 어떻게 대처했는가를 90년대의 영화들을 우회하여 보면서 전체의 흐름을 읽게 하는 데 목적이 있다. 결국 영화와 비평사이의 불협화음과 조화가 영화비평의 발전의 장이 되어왔고, 갇혀있고 움직이지 않은 글들은 비평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음을 밝혀둔다.


1. 90년대의 영화비평


  영화비평에 대한 평론가들과 학자들의 구체적 업적이랄 수 있는 학회지 『영화평론』과『영화연구』는 90년대의 흐름을 비교적 긴 호흡으로 읽을 수 있다.

 1965년의 영화평론가협회, 1972년에 발족한 영화학회는 사실 한국영화의 양대 산맥이다.저널리즘에강한 영화평론가협회와 학술연구 성격이 강한 영화학회는 1990년대에 해마다 한 권의 협회 지를 간행했는데 90년대 후반에 필자들은 다수의 젊은 필진으로 채워지고 내용도 다채로워졌으며 각 협회의 칼라를 확실하게 나타내었다.

 영화평단도 케이블과 위성,다매체의 소용돌이 속에 기존의 방법과는 다른 엔터테이너 화하는 양상을 띄고 급기야는 기자, 아나운서 및 프리랜서 영화 소개자들이 영화평론의 전부인 것처럼 호도 되고 영화평론가들은 뒷전으로 밀리는 듯 착각하도록 만들었다.

 사실 영상 ,사운드,몽타쥬의 역사를 심도 있게 연구하는 사람들은 영화평론가 들이기에 일반대중들이 브라운관에서 보는 영화의 단편적 지식들은 신기루 현상에 불과한 것이다.

 한동안 우리는 포스트 모더니즘이니,해체주의니, 기호학이니, 페미니즘이니 하는 서양이론의 틈바구니에서 우리영화들을 그것들에 짜깁기하는 어색한 짓거리를 계속해 왔는지도 모른다.

 피자 맛을 모르는 사람들을 바보시하고 조롱하는 듯한 경박한 풍토는 아직도 그 도도히

기승을 부리고 있는데 결국 그것은 우리영화계가 정체성의 혼돈을 일으키는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져야 할 것이다.

 90년대 영화비평의 특징은 난삽한 문장으로 미로를 헤메는 듯한 문체들이 칭송되어지는 분위기도 있고, 외국용어와 이론으로 도배한 어색한 글들의 나열이나 우리영화를 죽이고 비평이 살고자하는 얄팍함 등으로 매체가 채워지는 혼돈으로 가득 차 있는 인상을 주었다.

 타성으로 일관한 한국영화비평에 대한 비판적 평가와 모색이나 스타성 발언에 대한 질책과 같은 문화착시현상에 대한 비평에 대한 혁명적 도전은 불가능해졌고 한국영화의 미학에 대한 탐구와 모색은 원론에 가까운 것이었다. 결국 비평문화의 수용과 변화에서 우리영화의 역사와 미학, 정체성과 산업 등에 대한 사적 퇴적층이 얕은 결과가 지금에 도출되었기 때문이다. 분단예술사의 복원 가능성모색이라든가 다양한 이름으로 불려지는 영화제목이나 이질화된 용어문제등도 정리되지 않은 가운데 영화연구를 논의하고, 아직 관객에 대한 통계가 엉터리인데 쓰여지는 연감을 두고 무엇을 말하겠는가?   

 우리는 우리에게 통증으로 와 닿는 금기 영역이 있음을 인정하고 바른 영화 연구방법론을 제시해야한다. 화려한 외국이론에 주눅 들지 말고 토착영화이론이 나올 공간을 마련해야한다. 


2. 영화비평의 심도에 관한 단상


 예술장르 중 가장 흔하게 많이 쓰여지는 글들은 영화에 관한 글들일 것이다. 모든 애호가들이 가장 쉽게 비판하고 욕하고 칭찬하고 아부하는 장르가 될 수 있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글들이 얼마나 전문성을 가지고 있느냐는 평론가들이라면 금방 알아낼 수 있는 것이다. 평론가의 글들은 매체에 따라 다를 수 있으며, 간혹 어떤 독자적 견해에 의해서 글의 방향이 잘못 되어질 때도 있는 것이다. 평론가의 글이 모두 같다면 평론가는 한사람 있으면 될 것이다.  

 영화연구자들이 저명한 단체에 발표한 글들이 얼마만큼 자기 목소리를 담고 있으며 독창적인가 하는 문제는 90년대에도 제기되었다. 그러나 독창적인 연구들은 오히려 타학문에서 영화 쪽으로 접근하면서 활기를 띄는 모습을 모여주었다. 예를 들면 영상문학회의 활동이 대표적인 경우가 될 것이다. 이런 작업은 영화연구자들에게 자극을 준 셈이다.

 이런 경우는 유럽에서도 그랬고 신 이론이 탄생해서 발효 숙성된 대부분의 경우가 그랬다. 종가라고 할 수 있는 영화단체들보다도 배양 정제되는 과정에서 그 에너지는 영화와 연계된 외부 학문과의 조우에서 시너지 효과를 창출시킬 수 있다는 것이 입증된 것이다.

 1930년대 영화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탄생시킨 프랑스의 경우도 별반 다를 게 없다. 앙리 랑글로아의 경우, 도서관 개념을 도입시켜 체계적으로 영화를 학문으로 접근시킨 경우이다.

 이제 영화는 종합예술의 각 영역은 물론 컴퓨터 사진 등의 효과를 극대화시키고 있다. 따라서 영화전공자는 예술 각 장르의 전문적인 지식습득이 필수적이 되어버렸다. 심리학뿐만 아니라 마케팅, 영화경영에 이르는 과정까지를 인턴쉽으로 해야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그 동안의 영화연구는 문학성에 너무 친밀도를 나타내었다. 영화에 대한 심도 깊은 연구는 그만큼 힘들어 졌으며 많은 연구자가 필요하게 되었다.

 잡화점식 영화언급은 저널리즘에 맡겨야하며, 비평가는 그 본래의 영역인 聖職에 버금가는 외로움을 타야되는 계절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한 대안은 총체비평이 될 것이다. 각 장르의 비평가들이 다양한 관점에서 한 작품을 심도 깊게 평하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예술평론가들의 집단 활동이 활성화되도록 도와주는 것도 바람직한 모습이다. 장기적 안목에서 영화발전은 좋은 비평가 그룹이 대상작품을 정하고 철저하게 분석 검토하면서 각 장르의 예술이 동시에 발전하는 것이다. 그 보고서는 한국영화의 정체성을 확보하고 진보적인 흐름을 주도하며 학파를 탄생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건설적 스타디와 토론, 세미나는 필요하지만 변질되고 분질화를 자초하는 집단의 탄생은 한국적 상황에서 위험할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지닌다.

 

3. 90년대 영화비평은 거품인가,리에종인가?


 영화비평은 분석에서 출발하여 정제과정을 거쳐 종합, 피드백 되어야 한다. 분석 자체로 임무를 끝내버린 90년대의 평단은 이전 세대의 모습과 다를 게 없다. 비평가 전문가 연구가들은 제작자들이나 프로듀서들이 듣건 말건 영화의 바람직한 발전 방안에 대해 설파할 책임이 있다. 그 점에서 대부분의 비평가들은 자유로울 수가 없다. 그 결과 작금의 영화는 독특한 한국적 전통을 세우지 못하고 할리우드 아류의 영화를 생산하는 일회용 껌공장으로 바뀌어 있는 것이다. 

 물론, 비평가들의 일차적 임무가 영화 분석임에는 틀림없으나 그 분석이 왜 필요하고 결과물을 어떻게 가져갈지를 따져주어야 한다.몰아주기식으로,패거리 형태로 자기중심적평들이 객관성을 획득한 듯 오도되는 상황은 어느 나라나 가능한 일이지만 비평가는 어는 한쪽에 쏠리지 않고 멀찌감치 물러서서 객관적 시각을 확보해야 하는 것이다. 

 90년대 영화비평은 영화비평의 홀로 서기를 두려워한 측면이 없지 않다. 다중의 힘에 침묵하거나 방관하는 쪽이 있었고, 바른 글들은 실릴 곳이 없었다. 또 그렇게 치열하게 평단의 전통을 세우거나 비평가로서 이론가로서 예봉을 세우는 사람들도 찿기 힘들었다.

 합종연횡의 패거리 문화가 영화비평쪽에도 유입된 것이다. 진압군이나 계엄군에 진배없는

세력들이 새로운 질서를 제편한다는 명목으로 50대 이후의 향수 신장권을 박탈하고,40대 후반이후를 노인정감으로 여기도록 고립시켰다.

 이런 황당무계한 비평풍토는 사회현상과 절대적 관계가 있음이 타 장르에도 잘 드러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우리 영화비평계는 어설픈 짝짓기를 시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다양한 비평가들이 다양한 시각으로 얼마만큼 내공을 쌓으며 연마했느냐,그성과물은 무엇인가라는 문제에 봉착되는 것이다. 90년대의 영화비평은 앞으로 겪게될 서러움의 전주곡이다.

 현재 눈에 보이는 현상들만 영화비평의 대상은 아니다. 영화역사를 소설식으로 그려나갈 수는 없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우리 것보다 앞선다고 할 수 있는 근거를 생각해보면 우리의 영화사료들이 얼마나 빈약한지 알 수 있다. 사실 이 글은 나 자신의 주관적인 글임과 동시에 나의 비평 반성문으로도 볼 수 있다. 결국 필자의 글처럼 90년대의 영화비평은 양적으로는 비대해지고 보다 과학적인 방법이 동원되기는 했어도 이전과 확연히 차별되어지는 글들은 눈에 많이 띄지 않는다.   



'영화노트(영화일반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계 3대영화제(2000년 기준)  (0) 2010.09.26
영화진흥위원회  (0) 2010.03.26
버디영화  (0) 2010.03.14
변인식론  (0) 2010.02.17
신상옥론  (0) 2010.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