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한식에 철학과 이야기 담아 세계화하자

장코폴로 2010. 3. 5. 09:18

한식에 철학과 이야기 담아 세계화하자 (중앙일보, 2010년 3월 5일)

 

최근 일본 출장 중 들렀던 도쿄 신주쿠의 음식점에서는 일본산 쌀과 누룩으로 만든 ‘도쿄 마코리’를 팔고 있었다. 마코리는 중국산 쌀로 만든 한국 막걸리와 경쟁하면서 점차 일본 소비자들의 인기를 얻고 있었다. 김치가 기무치로, 불고기가 야키니쿠로, 막걸리가 마코리로 일본 시장을 장악해 가고 있는 것이다. 한식 세계화에 대한 얘기는 무성하지만 구체적인 추진 방안은 아직도 막연하다.

 

한식의 세계화를 위해선 중·단기적으로는 식단 현지화와 서비스의 매뉴얼화, 조리법 표준화, 코스요리 개발, 홍보 강화가 필요하다. 그러나 장기적 관점에서는 한식에 깃든 문화와 이야기, 한식이 지닌 가치를 알리는 것이 관건이며 요체다. 한식은 다양하면서도 맛과 영양이 뛰어나고 음식궁합(飮食宮合)이 있다. 또한 한식은 식약동원(食藥同源)을 지향하는 웰빙 건강식이며 친자연·친환경적 요소를 갖추고 있고 오장육부와의 조화를 중시한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제1의 맛은 소금, 제2의 맛은 양념, 제3의 맛은 발효 맛”이라며 “세상은 서서히 제3의 맛 시대로 옮아가고 있다”고 예견한 바 있다. 젓갈과 된장·김치·막걸리 등 발효음식은 미래지향적인 음식으로 세계인들의 각광을 받을 것이다.

 

서양에는 고기를 굽는 강도가 세 가지인데 우리는 숯불의 강도와 잿불의 엷고 두터움, 화기의 쪼임 거리, 석쇠의 열전도율 등에 따라 열 가지 이상의 구이방법을 가지고 있다. 서양 쇠고기 요리는 35가지 정도인데 반해 우리는 무려 120여 가지나 있으며, 김치 종류도 140가지나 된다. 이 같은 다양성과 가치를 일깨우면서 다른 나라 음식과 차별화하는 전략이 개별 음식을 알리는 것보다 더 빠른 한식 세계화의 지름길이다.

 

게다가 한식엔 철학이 깃들어 있으며 이야기를 품고 있다. 섞임의 미학을 보여주는 ‘비빔밥’, 뜸들이기 과정의 극치인 화해의 음식 ‘탕평채’, 오색과 오미가 조화된 음양오행의 ‘구절판’ 등 한식에 깃든 철학과 이야기는 수없이 많다. 음식의 유래나 양념·조리법 등에 담긴 이야기를 나누며 먹는 ‘슬로 푸드’는 배만 부르게 할 뿐 아니라 가슴과 머리에도 저장된다. 생각을 하지 않고 허겁지겁 먹는 음식은 ‘사료’와 다를 것이 없다. 한식을 먹으면 가슴이 따뜻해지고, 음식을 기억하고 다시 찾고 싶도록 문화와 이야기를 담아야 한다.

 

이 세상의 맛은 엄마의 수만큼 존재한다. 그러나 최고의 음식은 하나로 통한다. 마음을 움직이고 감동을 주는 음식이다. 엄마의 정성이 깃든 감동적인 음식, 문화와 이야기가 담긴 음식, 여기에 건강식이라는 인식이 퍼져 나갈 때 한식은 세계인의 입맛을 돋우고 마음을 살찌우는 음식으로 세계화에 성공할 것이다.

 

신승일 한류전략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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