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또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읽었습니다. 읽고 또 읽어도 글마다에서 새로운 뜻을 찾아내기도 하고, 까맣게 잊고 있던 대목에서 와락 마음에 와 닿는 내용을 발견하게도 됩니다. 행여라도 고향에 두고 온 아들들이 절망에 빠지거나, 실의에 잠겨 아버지가 바라는 아들의 길에서 벗어날까 봐, 거듭거듭 강조해서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도록 신신 당부하는 글을 접하면, 살아계실 때의 우리 아버지 생각을 떠오르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차례 배가 부르면 살찐 듯하고 배고프면 야위어빠진 듯 참을성이 없다면 짐승과 우리 인간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겠느냐. 소견이 좁은 사람은 오늘 당장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있으면, 의욕을 잃고 눈물을 질질 짜다가도 다음날 일이 뜻대로 되면 벙글거리고 낯빛을 편다.” 이런 세속적인 인간의 수준에서 벗어나 달관한 입장의 수준으로 아들들이 격상되기를 다산은 바라고 또 바랐습니다. 조금 즐거운 일이 있다고 해서 만족하게 여겨서도 안 되지만, 조금 슬프고 괴로운 일이 있다고 해도 참고 견디면서 평상심을 유지해주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심정이 다산의 마음이었습니다.
“요컨대 아침에 햇볕을 환하게 받는 위치는 저녁때 그늘이 빨리 오고, 일찍 피는 꽃은 빨리 시드는 법이어서 바람이 거세게 불면 한순간도 멈추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세상의 흥망성쇠와 인간의 행불행에 대한 일이란 수시로 변화고 달라지기 때문에 자신이 처한 순간의 입장에 얽매이지 말고, 변화하고 달라지는 순환의 논리에도 적응할 수 있어야만 한다는 사려 깊은 생각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어려운 처지나 힘드는 경우에도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말고 높고 먼데를 바라보면서 난관을 극복하는 지혜를 지니라고 요구하였습니다. 다산의 결론은 더욱 멋집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은 한때의 재해를 당했다 하여 청운(靑雲)의 뜻을 꺾어서는 안 된다. 사나이의 가슴속에는 항상 가을 매가 하늘로 치솟아 오르는 듯한 기상을 품고서 천지를 조그마하게 보고 우주도 가볍게 손으로 요리할 수 있다는 생각을 지녀야 한다.” (學游家誡) 이런 내용의 글을 읽다보면, 다산의 글은 어떤 학자의 글이라기에는 성경현전(聖經賢傳)을 읽는 기분에 빠지기도 합니다. 담담하고 평이한 내용에는 세상을 살아갈 기막힌 진리들이 온전하게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폐족이 되어 희망을 지니기 보다는 어렵고 힘들어 좌절하기 쉬운 아들에게 그런 높은 교훈을 전해주는 다산의 지혜는 역시 멋지기만 합니다.
박석무 드림
|